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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말타기를 좋아했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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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말타기를 좋아했던 딸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4> 딸과 말-上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우리도 바빴다. 월요일은 드라마와 스피치 클라스, 화요일은 걸즈 브리게이드라고 우리나라의 걸 스카웃과 비슷한 모임이 있고 수요일은 수영 클럽, 목요일은 승마 렛슨, 금요일은 다시 수영 클럽 이런 식으로 학교 갔다오면 아이 데리고 다니기에 바빴다. 아쯤 되면 나도 엄청난 극성 엄마에다가 승마 렛슨까지 받게 한다니 재벌 며느리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거리가 한참 멀다.

이 곳에 오기 전 강릉에 놀러간 적이 있다. 그 바닷가에 조랑말을 태워주는 곳이 있었는데, 우리 아이는 바다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긴 아무 것도 필요없으니까 그 말만 태워 달라고 해서 그 조랑말을 타고 서너바퀴 큰 원을 그린 적이 있다. 그리고는 말 타고 싶다는 타령을 해서 과천 경마장에 혹시 말 가르치는 데가 있다 해서 알아보았더니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질 않지만 우리 같은 서민에게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서 포기했는데, 이곳 뉴질랜드에 오니까 말 태워주는 곳이 가는 곳마다 있다. 모처럼 가족끼리 놀러간 곳에서도 다른 것보다는 말만 타겠다는 아이에게 우리 사는 오클랜드에도 말 태워주는 곳은 있을 거다고 달래서 데리고 와서는 전화번호부를 뒤지다 보니 아이들 말타는 포니 클럽들이 있었다.

이왕이면 클럽에 들어가는 것이 어떨까 해서 알아보았지만 일단 자기 말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포기를 하고 그냥 말 타는 곳을 찾았다.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 가량 떨어진 곳에 놀이삼아 한 시간 두시간 말을 태워주거나 승마 렛슨도 하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을 타고 안내자를 따라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한시간 돌아다니는 것이나 렛슨을 한 시간 받는 것이나 값이 같았다. 한 시간에 혼자는 40불, 서너명 그룹으로는 20불. 나도 한국 엄마인지라 이왕이면 정식으로 배우는 것이 낫겠다 싶어 아이는 말 타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림픽 경기 중계 할 때나 볼 수 있는 승마 기술을 아이에게 배워주기 위해 나는 일주일에 한번 아이를 데려다 주었고, 우리 아이는 몇 년을 참았던 일, 말을 타러 다녔다.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말 타러 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비행기를 13시간 타고 오셨어도 그 일은 건너 뛸 수가 없었다. 렛슨이 끝나도 마굿간에 들어가 말을 보느라 마굿간 나오는 일이 쉽지를 않았다. 말을 타면 견마를 잡히고 싶다더니 우리 애는 자기 말을 가지고 싶어했다. 왜냐, 렛슨받을 때마다 늘 같은 말을 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 이야기인 즉은 사람과 말이 서로 맞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결혼 상대 고르는 것이 제 눈의 안경이라더니 우리 아이 설명에 의하면 말도 마찬가지다. 가령 다른 애들은 싫어하는 말은 우리 애는 좋아하고 다른 아이는 사납다고 싫다는 말이 우리 아이에게는 유순하다든지 뭐 이런 식이었다. 그러니 렛슨 받으러 갈 때마다 자기 마음에 드는 말을 꼭 탈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그 곳 사정에 따라, 그날 말 타러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이 말 저 말 주는 대로 타야 하는데 그것이 싫다는 거였다.

말에 관한 한 생짜로 무식한 나와 남편은 아이에게 말 값이 얼마나 하는지부터 물어보았다. 잘 하면 공짜에서부터 비싸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액수를 초월하는 말까지 천차만별인데, 한 백만원이면 그냥 엔간한 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컴퓨터를 사주는 대신 말을 사주기로 했다.

그런데 말을 사면 어디서 키워야 하나. 아무리 우리집 뒷뜰이 넓다 한들 말을 키우기에는 태부족이고ㆍㆍㆍ 다시 포니클럽에 전화를 했다. 몇 군데 알아본 끝에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클럽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빈 자리가 있는 클럽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6개월에서 1-2년 걸려야 클럽에 자리가 날거고 했다. 말 사는 일이 급할 것이 없다 싶었는데, 웬걸 한 달만에 다시 연락이 왔다. 자리가 났다는 거였다.

알고 보니 주택개발 붐으로 클럽이 빌려서 쓰던 땅이 팔렸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자리가 난 거였다. 기존 멤버인 아이들이 존폐가 불분명한 그 클럽을 떠나 근처의 다른 클럽으로 하나 둘씩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고 대기자 명단에 올라있던 아이들은 아예 가입을 포기해 버린 덕분이었다. 우리도 잠시 고민을 했지만 아이의 말에 대한 사랑이 못 말리게 강했고, 다른 클럽에 다시 대기해보았자 언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가입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니 말 사는 일이 급해졌다. 중고품 매매광고만 나오는 신문을 하나 사서 말 광고란을 보고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광고에는 팔려는 말의 키, 나이, 성격이 좋은지 거친지, 그리고 말이 무엇을 할 줄 아는지, 말하자면 승마 기술을 얼마나 배운 말인지가 나와 있다. 물론 가격도 나와 있고. 우리는 2000불 내외의 말을 보자는 것만 정해놓았고 보러갈 말을 정하는 것은 아이의 몫이었다. 말 키가 말 탈 사람의 키하고 맞아야 한다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고, 포니가 어린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당나귀가 다르듯이 말하고는 아예 종자가 다른 짐승으로 말만큼 키가 크지 않는다는 것도 아이를 통해서 처음 알았다.

말을 팔겠다고 광고낸 사람에게 전화하고 말을 보러갈 시간을 약속하고 그 집까지 아이를 데리고 가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다음 살지 말지는 아이 혼자서의 결정에 맡기기로 했다, 우리가 워낙 말에 무식하니까. 서너군데 약속을 해놓고 처음 간 집의 말에 우리 애가 홀딱 반했다. 우리는 그래도 약속했던 몇 군데 더 보고 마음을 정했으면 싶었는데, 아이는 그 말이 자기하고 맞다는 것이었다. 물론 타보고 하는 말이었지만 우리는 말이 13살이면 나이가 많지 않느냐, 건강은 괜찮은지 수의사에게 먼저 진찰을 받아보자고 달래놓았다.

또 왜 그 집에서 말을 팔려고 하는지도 궁금했다. 중고차를 살 때 사고난 적이 있나 고장이 잘나는 차여서 팔려고 하나를 확인해보고 싶은 심정과 같은 마음이었다. 그 집 아이도 포니 클럽 회원이었는데 이제는 댄스에 더 취미가 붙어서 댄스 클럽에서 활동하는 것 만으로도 너무 바쁘기 때문에 판다고 했다. 시간이 없어서 말을 잘 돌보지 못하면 말이 불쌍하기 때문에 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또 우리는 말을 일주일에 서너번은 타야 말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을 태우고 달리면 말 허리가 아프지 않을까, 말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속으로 했었던 것은 나의 무식의 소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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