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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북핵 위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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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북핵 위기 <3>

'김민웅의 반전평화주장' <7> 부시 정권의 전략적 기조

***3. 부시 정권의 전략적 기조**

***(1)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 보고서과 그 기초이론**

미국의 체제적 선택을 보다 구체적으로 밀고나가는 부시정권의 세계전략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이와 관련한 기조는 앞서 언급했던 <미국의 국가안보전략(The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보고서에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문서는 냉전시대를 승리로 이끈 미국의 힘이 이제 역사상 전례 없이 강력해졌으나, 새로운 위협이 등장함에 따라 이를 사전에 제거함으로써 평화, 민주주의, 인권, 자유시장, 자유 무역 체제 등을 보호, 인류적 번영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이 전략보고서는 9.11 이후 미국의 변화한 전략의 요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주목되는데, 지난 60-70년대의 “안보국가론(National Security State)”의 확대이자 헨리 키신저가 미국의 국가적 역량과 관련하여 언급했던 “남고 처지는 힘(surplus of power)”(26)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하겠다.

이 전략 보고서의 핵심은 <새로운 유형의 위험>이 등장한 현실에서 “필요하다면 <선제공격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대목으로서, 이는 단지 하나의 전략 선택으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미국의 군사주의 노선에 대한 내외적 규제는 해체하고, 자신의 통제력은 강화하는 가운데 국제질서와 미국 내부의 정치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주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9.11 이후의 변화된 현실 때문이라고 하고 있으나 사실상 부시 정권의 세계 지배전략을 추진하는 세력들이 오래 전부터 강조해왔던 바이며, 9.11은 그러한 주장의 현실적 근거를 마련해준 계기일 뿐이라고 하겠다.

얼마 전 미 국무부 정책 기회국장 자리를 사퇴하고 <외교위원회(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27)의 신임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리차드 하스(Richard Haass)의 경우, 지난 2000년 11월 “제국 아메리카(Imperial America)"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을 발표, 이제 미국은 국제관계에서 하나의 초강대국가라는 역할을 넘어서서 세계 전체를 통괄하는 제국의 위치를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부의 정치체제를 그에 맞게 다지는 일이 관건(Imperialism begins at home.)이라고 하면서, 군사력 강화와 정보기관의 통합을 위한 정책적 선택이 중요하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리차드 하스가 부시 정권의 주요 정책 책임자였다는 점만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점령정책의 정책적 지휘자였으며 부시 제1기 정권 하에서 안보보좌관을 지냈다는 점에서 부시 정권의 정책 사고를 잘 보여주는 보기라고 하겠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1997년에 출간된 그의 책, <주저하는 보안관, 냉전 이후의 미국 (The Reluctant Sheriff; The United States After the Cold War>(28)에서 이미 그 골격이 정리된 바 있다. 그는 여기서 냉전 이후 통제력을 상실해버리고 있는 세계를 다시 미국의 규제(regulation) 아래 두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동맹 체제를 가동하는 것이 좋겠지만, “필요하고 실현성이 있다면(if necessary and feasible)” 단독적으로라도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제도에 묶인 “경찰”과는 달리, 상대적인 독자성을 가진 “세계 보안관”으로서 이제는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다. 리차드 하스의 이러한 개념들은 ”규제“가 자본에 대한 규제로만 이해되었던 신자유주의 논법에서 다른 나라들의 “일탈행위”를 규제하는 것으로 바뀌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규제조처로서 미국의 전략 보고서에서 “필요하다면” 선제공격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것으로 정식화되었다. 또한, “조국 안보부(Homeland Security Department)” 창설에서도 나타나듯이 제국의 안전은 내부에서 시작한다는(Ultimately, the foundation of the American strength is at home.) 논리로 앞서 지적한 바대로 공화정의 원칙들을 제국의 목표를 위해 규제하는 체제를 지향함을 명확히 했다.

이 같은 리차드 하스의 아메리카 제국 프로젝트의 군사주의 노선은 그의 1999년 재개정된 그의 책 <개입: 미국의 군사력을 탈냉전 시기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Intervention: The Use of American Force in the Post-Cold War World)>(29)에서 이론적으로 체계화 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위한 인도주의적 개입을 명분으로 하여 군사적 개입이 정당함을 역설하고, 그에 따라 그 대상 국가의 “국가건설(Nation building)”전략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 국가건설 과정에서 그는 일체의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점령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정책에 대한 국제적 비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맹체제가 필요한데, 이는 럼스펠드의 언급대로 “목적이 동맹을 규정하는 것이지 동맹이 목적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the mission determines the coalition. The coalition must not determine the mission.)”, 그래서 미국의 판단기준과 행동반경, 능력이 제한 없는 우선권을 갖도록 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폴 월포비츠(Paul Wolfowitz“의 ”1992-1994년 국방계획지침 문서“를 토대로 한 구체적인 전략들이 정리되게 된 것이다.

부시정권의 세계전략 사고가 극명하게 드러난 이 같은 논리는 미국 외교사에 교차적으로 등장한 테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의 <함포외교(Gunboat diplomacy)>와 우드로우 윌슨(Woodrow Wilson)의 <달라 외교(Dollar Diplomacy)> 가운데, 그 중심이 무력 사용을 앞세우는 <함포외교> 쪽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30) <함포외교>는 최강의 제국주의 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미국의 일방적 행동과 결단을 중요시하는 반면, <달라 외교>는 세계 자본주의 질서 유지를 위한 국제적 협력 체제를 강조하는 차이가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선택의 경향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단지 그 제국 경영 방식에 따른 전략적 차이이지, 제국 자체를 놓고 본질적인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함포 외교의 선택이 달라 외교의 포기는 아니며 기본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 대상이 없는 안정의 독점적 확보”를 위해 어떤 전략이 효율성을 가질 것인가가 그 논란의 내용이 된다.

***(2) 부시정권의 세계전략, 그 지정학적 구조**

부시정권의 세계전략은 지정학적 편재로 보면, 유라시아 지역에 대한 압도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정점으로 하여 세 가지 위계 수준으로 나뉘게 되는데 첫째는 일본을 포함한 유럽을 미국이 이끄는 동맹체제 내부에서 주니어 파트너 지위로 유지하는 것, 둘째, 한국 등 중간급 국가들을 종속적 하위 단위로 통합하는 것, 셋째, 중동과 아프리카 등의 지역을 미국의 직접적 지배영역으로 관할하는 것 등이 된다. 그리고 넷째, 중국과 러시아 등에 대해서는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체제 내부로 편입하도록 하는 압력을 꾸준히 가하는 것이다. 즉, 미국을 최고 지휘부로 하는 서구 제국 동맹체제의 견고화와 이에 종속 의존하는 중간급 국가, 그리고 자원과 노동에 대한 강도 높은 통제력의 대상이 되는 제3세계 지역이 하나의 통합단위가 되며, 중국 등이 이에 맞설 것인지 아니면 편입되어 자신의 위치를 미국의 의사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정하든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하는 것이다. 그로써 미국 주도의 세계적 자본축적 전략(아메리카 제국주의에 의한 영원한 착취지배구조)의 원활한 구조 형성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위계질서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바로 그 기반이 되는 제3세계 지역의 자원과 노동에 대한 통제력 강화와 과시가 된다. 최근 부시 정권이 아프리카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까닭도 바로 이러한 의도와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특히 중동지역의 원유 장악은 단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정책으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의 자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타 국가들, 특히 유럽의 독자적 노선을 규제하는 매우 중대한 고리가 된다.(31) 이라크 침략전쟁은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유로(Euro)화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정치경제적 결속과 군사적 독자성을 막고 미국의 동맹체제 내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전략이라고 하겠다.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반기를 든 것은 반전평화 운동의 연대라는 각도에서보다는, 그러한 미국의 전략 목표의 거부였던 것이다. 제1차 부시정권 시기 걸프전쟁의 전략 목표도 탈냉전의 기류를 타고 당시 경제적 통합과, 나토(NATO)와는 별도로 독자적 신속 배치군 결성 움직임을 보이고 있던 유럽을 견제하고 미국의 세계전략 구도 속에 이들을 그대로 존속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결속 체제를 만들기 위해 “공동의 적”을 부각시키고 전쟁정책을 정당화하면서 제국 통솔의 주도권을 장악해나갔다. 미국의 세계전략 구도 속에서 소위 “악의 축”이란 이렇게 보자면, 그 대상 국가의 속성 자체가 악이라고 하기 보다는 제국 통합 전략에 순응하지 않은 주요 고리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악”의 규정은 미국이 주도하는 진영의 결속을 위해 필요한, 그 고리에 대한 고립, 봉쇄 전략의 정당화 근거로 작용할 뿐이다.

한반도 문제도 이렇게 따지고 보면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포함하면서도, 동북아시아 전체의 결속을 저지하고 중국이나 일본이 이 지역의 맹주로 역할하게 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작업의 사슬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중동지역과는 달리 자원의 문제 보다는 지정학적 가치로서의 의미가 있는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장악이 성공하게 될 경우, 미국은 일본의 엔화나 중국의 원화가 달라 경제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장래의 기축통화로 나서게 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으며 군사적으로도 동북아시아의 독자적인 군사적 블록화를 규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 문제를 거론했던 지난 2002년 10월의 상황은, 북한과 주변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그로써 동북아시아 전체의 대미 의존도가 떨어지면서 이 지역이 미국의 주도적 영역에서 이탈할 수 있는 조짐을 보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여, 전체적으로 부시 정권의 세계전략의 특징을 총괄하자면 다음과 같다. 즉, 냉전 시기에 미국의 입장을 반영하는데 의미가 있었던 기존의 국제법적 규제나 국제조직 내부의 논의구조가 이제는 자신에게 압박의 요인이 되고 있음을 주시,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단독적 일방주의를 내세워 각 지역 국가의 역할을 위계질서화하고 자신의 세계제국 체제 내부에 편입, 통합 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동원되는 이데올로기는 “탈냉전 이후 새롭게 등장한 위협에 대한 문명권 전체의 공동대응의 긴박성”이며, 자신은 이러한 문명권 전체의 가치를 수호하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의 사명의식을 가진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체제에서 이탈하는 것은 곧 “공동의 적”이 되는 것이며, 인류사회를 위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는 “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시 정권의 세계전략은 현실에서 그 자체가 도리어 정작의 인류적 위협이 되고 있으며, 세계 도처에서 전쟁과 죽음, 폭력적 지배와 점령, 그리고 야만을 결과하고 있다. 한반도는 바로 이와 같은 거대한 폭력체제의 위협 앞에 있는 것이다.

***(3) 아메리카 제국주의 발전 경로와 이론적 논의**

오늘날 미국의 세계전략은 다시 강조하건데, <제국의 지배전략>이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제국>의 개념은 최근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며, 미국 역사 내부에 이미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국가발전의 중심전략이다. 미국의 세계전략이 가진 근본성격을 제국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오래 동안 미국 사회에서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타부였다.(32)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이 펼쳐졌던 60-70년대에도 일부 좌파운동권에서만 제국주의 논쟁이 전개되었으나, 다양한 세력이 반전운동에 참여하던 조건에서 그 같은 논의의 대중적 확산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국에 대한 논의가 좌파에만 한정되어있던 상황에서 벗어나, 보수세력 자체가 스스로 “제국의 정책”을 강조하고 있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변화로 인해 이에 대한 논의의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로버트 터커(Robert Tucker)와 데이빗 헤노익슨(David Henoaickson)의 <제국의 유혹, 새로운 세계질서와 미국의 목적: The Imperial Temptation, The New World Order and America's Purpose>(33)의 경우, 탈냉전 직후 미국의 세계전략을 새롭게 짜야한다는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서 부시 제1기의 제국건설 정책을 표면화하기 시작한 작업이라고 하겠다. 2000년대에 이르면 1990년대의 이러한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앤드류 바세비치(Andrew J. Bacevich) 같은 자유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학자들조차도 그의 책 <아메리카 제국(American Empire>(34)을 통해, 미국의 모든 세계전략은 결국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것에 있음을 명백하게 증언하고 있다. 즉, 최근 미국은 자신의 제국주의 전략에 대하여 보다 분명하게 속내를 밝히고 있는 셈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제국 건설의 역사는 앞서 언급했듯이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공화정 체제 형성 초기 중요한 역할을 했던 토마스 제퍼슨은 이미 “자유의 제국(Empire of Liberty)>이라는 개념으로 미국의 역사적 지위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설정한 바 있으며 공화정의 가치와 제국의 야망을 어떻게 하나로 통합시켜나갈 것인가를 구상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의 독립전쟁은 식민지 해방투쟁의 성격을 가졌다기보다는, 영국의 제국주의 통치제제에서 이탈하여 자신의 독자적 경로를 통한 제국건설의 목표를 지닌 사건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기 이전에도 이미 미국은 아메리카 토착주민들에 대한 대량 학살과 생존권 박탈, 그리고 이들의 정착지역 축소과정을 통해 “백인 우월주의(white supremacy)"와 근본주의적 기독교 논리에 따른 선택받은 자들의 사명의식을 결합시켜 “최일선의 경계선(frontier)”을 끊임없이 자신의 소위 문명권에 통합시켜나가는 “팽창주의”를 지향해왔다. 극단의 인종주의와 선악을 가르는 기독교 신학의 근본주의적 배타성을 근거로, 자신을 “선의를 가진 문명”으로, 타자를 “제거해야 할 야만”으로 인식하여 보편적 가치의 방어와 확산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학살과 점령, 지배와 통합을 정당화해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팽창주의적 선민의식은 1848년 멕시코와의 전쟁을 통한 영토점령의 과정에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35)이라는 방식으로 유럽 제국주의의 “백인의 의무적 책임(white man's burden)”을 변형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냈다. 이보다 앞선 1823년는, 자신의 영향권에 손대지 말라는 식의 개념으로 이후 발전하게 된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이 나오면서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 안에서의 제국의 질서를 통합적으로 구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1860년대 북부의 자본주의 세력의 주도권을 확정한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동서를 연결하고 명실상부한 거대한 북 아메리카 제국의 틀을 완료하게 되며, 철강과 금융 등의 분야에서 독점 대자본의 등장과 관련된 팽창주의 정책의 기운은 1898년을 고비로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한 쿠바와 필리핀 점령으로 본격적인 제국주의 정책으로 전환된다. 이 시기 미국은 제국주의 논쟁의 치열한 시기를 거치게 되며, 세계사 속에서 미국의 국가적 진로는 본격적인 제국열강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된다.

1910년대에 이르면 미국은 앞서 언급했던 테오도르 루즈벨트의 <함포외교>와 우드로우 윌슨의 <달라외교>라는 방식의 전개를 통해서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질서의 패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관철하는 양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미국의 세계전략이 제국주의적 속성을 지닌 것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는 1960년에서 70년대에 이르러 심화되지만, 이미 1921년 스컷트 니어링이 쓴 <아메리카 제국(The American Empire>(36)이나 그가 조세프 프리맨(Joseph Freeman)과 공저한 <달라 외교: 아메리카 제국주의에 관한 한 연구(Dollar Diplomacy, A Study in American Imperialism)>(37)같은 연구는 20세기 초반에 이미 그 골격이 완성되다시피 한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전략의 구체적인 면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시 미국의 이른바 ”명예로운 외교적 고립주의(glorious isolationism)“가 외쳐졌던 현실과는 달리 미국의 대외정책은 철저하게 독점 대자본의 이해를 관철해나가기 위한 개입주의적 군사정책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이들 대자본의 요구와 외교, 군사정책의 결합이 체제적 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고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좌절시키기 위한 군사적 개입은 이후 반혁명 전략의 기본방침이 된다.

제1차 대전이 종료된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게 전쟁부채의 채권이 있게 된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주도권을 보다 압도적으로 장악해나가기 시작했고,(38) 종말의 단계에 이르렀던 영국 제국주의를 향해 최종의 도전을 시도했던 파시즘 세력에 대한 승리를 통해 제국경영의 세계적 패권을 이양 받게 되었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과의 경계선을 일정하게 정리한 전후(戰後) 처리의 과정에서 미국은 이른바 자신의 “영향권(sphere of influence)”에 들어온 지역에서 “(1) 미국의 제국주의적 질서로부터 이탈하려는 민족주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체제를 지향하는 좌파세력의 제거, (2) 일부 핵심을 제거한 구 파시스트세력의 복원”이라는 전략으로 제국의 위계질서에 순응하고 그 이해관계를 관철해낼 수 있는 국가권력을 수립하게 된다.(39) 이러한 과정은 내부적으로는 좌파세력을 비롯하여 정치적 이견자들에 대한 사회적 숙청을 의미했던 맥카시즘을 통해서 냉전형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세력을 제거하고, 외부적으로는 제3세계 지역의 민족해방전선진압으로 나타난다. “한국전쟁”은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사태로서, 제국 수호의 군사적 성격을 강화하는데 결정적인 요건을 마련하게 된다.

한편, 1960년대에 미국 사회과학계를 풍미했던 “발전론(Development theory)”은 민주적 근대화론을 내세우면서 실상은 군사주의 세력을 기반으로 한 제국의 질서 하위단위를 만드는 작업의 이데올로기적 전략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의 전개과정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 논쟁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수정주의 역사관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가진 팽창주의에 대한 윌리암 애플만 윌리암즈(William Appleman Williams)의 지적은 이른바 인도주의적 개입을 정당화했던 논리에 중대한 도전이었고,(40) 좌파진영의 폴 바란(Paul Baran), 해리 매그도프(Harry Magdoff)(41) 등의 미국 자본주의가 가진 제국주의적 본질에 대한 논란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이론적 축을 구성하게 되었다.(42) 달라화의 과잉에 따른 문제로 1970년대에 일정한 수세기에 몰렸던 미국의 제국주의 전략은 자본에 대한 통제를 푸는 방식으로 투기적 자본시장의 급격한 성장을 가져오기 시작한 1980년대에,(43) 레이건의 등장으로 반격의 시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냉전지형이 종료된 이후 그 주도권은 전 지구적 규모의 국제적 협력체제 구성을 통해 제국 동맹 전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달라 외교의 전통에 서 있는 신자유주의 세력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앞서 분석한 것처럼 이들의 주도권도 투기자본의 과잉에 따른 모순의 발생과 이에 대한 세계적 차원의 도전이 일어나면서 자유주의적 명분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서 보다 노골적인 군사주의 정책을 위주로 한 제국 질서의 선택으로 전략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간략히 재정리해보자면,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발생은 이미 미국의 국가건설 초기에서부터 그 맹아(萌芽)가 시작되었으며, 독점 대자본의 주도로 인한 자본주의 체제 구축과정에서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지배권 완결을 넘어 팽창주의적 방식으로 세계전체를 향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미국의 지배계급은 자유, 민주주의, 인권, 자유시장 등의 부르주아 공화정의 가치를 내세워 팽창적 개입주의를 대중적으로 신념화했으며,(44) 실상은 지구 제국의 질서를 구현하는 행태를 꾸준히 지속해왔던 것이다. 미국의 지난 역사의 진로를 되 돌이켜보면 특히 1898년을 고비로 하여 이러한 침략적 대외 팽창정책이 중단된 적이 없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제국경영 방식은 오늘날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이라크 침략 전쟁 이후 전개되고 있는 내외적 도전의 양상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각주**

(26) Henry Kissinger, Does America Need a Foreign Policy?: Toward a Diplomacy for the 21st Century, (New York: A Touchstone Book, 2001) 키신저의 외교개념은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에 대한 반동적 봉쇄동맹체제인 메테르니히의 신성동맹 전략에 기초해 있다. A World Restored, Metternich, Castlereagh and the Problem of Peace, 1812-1822, (Boston: Houghton Mifflin Company) 따라서 그의 논지에 따른 미국의 외교정책이란 반체제적 대안(anti-systemic alternative)에 대한 봉쇄 포위 전략이 된다는 점에서, 그의 영향력이 여전한 미국 대외정책의 기본사고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7) 외교위원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가 미국의 독점 대자본의 대외정책 요구를 이론화하는 현장임을 Laurence H. Shoup & Wiiliam Minter는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서 밝혀내고 있다. Imperial Brain Trust:the Council on Foreing Relations & United States Foreign Policy (New York: Monthly Review, 1977) 리차드 하스의 외교위원회 회장 직 이동은 미국의 단독적 외교행위가 점차 동맹세력 내부의 지지를 상실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는 자신의 국무부 재임 시와는 달리, 동맹세력 구축을 통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 전략을 취할 움직임이다. 이는 부시정권의 일방적 군사주의 노선이 한계에 직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28) The Reluctant Sheriff: The United States After the Cold War (New York: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1997)

(29) Intervention: The Use of American Force in the Post-Cold War World. (Washington D. C.: Brookings Instituion Press, 1999)

(30) 미국 외교사의 중요한 저작으로서 Walter LaFeber의 The American Age: US Foreign Policy at Home and Abroad, 1750 to the Present, (New York: Norton & Company, 1994)를 권한다.

(31) Peter Gowan의 경우에도 이와 유사한 인식을 보이고 있는데, 그는 미국이 과거 냉전시기에 각 지역에 행사했던 주도권 질서를 그대로 유지해낼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 미국의 세계전략상 가장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은 변화한 현실을 수용하여 이에 합류하기 보다는 자신의 질서에 다른 나라들을 복속시키려는 무리를 범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US Hegemony Today", in Monthly Review, July-August 2003

(32) New Left Review의 창립 편집 위원이기도 했던 Norman Birnbaum은 바로 이렇게 미국인들 자신의 역사적 정체성과 관련한 인식이 빈곤하여 진정한 정치적 변화가 기대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The Radical Renewal: The Politics of Ideas in Modern America (New York: Pantheon Books, 1988)

(33) The Imperial Temptation: The New World Order and America's Purpose (New York: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1992)

(34) American Empire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2)

(35) 미국의 제국주의 대외정책의 기본성격에 대하여 이 명백한 운명의 개념이 멕시코 전쟁과정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역할을 했는지를 정리한 책으로는 Frederick Merk의 Manifest Destiny and Mission in American History(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3)을 참고할 수 있다.

(36) The American Empire (New York; The Rand School of Social Science, 1921)

(37) Dollar Diplomacy, A Study in American Imperialism (New York: B. W. Huebsch, 1925)

(38) 1차대전과 2차대전의 사이에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적 채권국가가 된다. 특히 영국의 경우, 1차대전의 전쟁부채를 미국에게 지는 과정에서 제국주의적 패권의 급속한 약화를 경험하게 된다. Michael Hudson, Super Imperialism, The Economic Strategy of American Empire, (New York: Holt, Rinehart and Winston, 1972)

(39) Gabriel Kolko가 분석한 미국의 전후 대외전략의 기본성격은 따라서, 유럽 내부에 미국 자본주의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제3세계 지역에서는 전쟁시기 동맹세력이었던 민족해방운동 세력의 제거를 특징으로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미국의 전후 대외 전략은 한반도의 점령정책에서 그대로 관철된다. The Politics of War; The World and United States Foreign Policy, 1943-1945 (New York: Pantheon Books, 1990)

(40) The Tragedy of American Diplomacy, (New York: A Delta Book, 1962) 이 책을 통해 윌리암 애플만 윌리암즈는 미국이 다른 나라가 자신의 국가적 운명을 스스로의 손에 의해 해결할 수없다고 보고 개입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선의를 가진 제국”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주의적 원칙을 명분으로 한 제국주의적 개입정책과 팽창전략에 불과한 것이라고 신랄한 비판을 제기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논의로 수정주의 역사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41) Paul Baran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 동맹체제가 제3세계에 이식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결국 이들 중심 국가의 독점 대자본의 이해에 봉사하는 것일 뿐, 사실은 이들 국가의 경제적 성장에 중대한 장애를 조성할 뿐이라는 주장으로 제국주의 정치경제학의 위선과 착취를 입증해나갔다. The Political Economy of Growth (New York: Monthly Review, 1957) 이러한 그의 인식은 Harry Magdoff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끼쳐, 미국의 대외정책 속에 담긴 제국주의적 본질에 대한 정치경제적 분석에 공헌했다. The Age of Imperialism: The Economics of US Foreign Policy (New York: Monthly Review, 1969)

(42) 이 시기 제국주의 논쟁에 있어서 Pierre Jalee의 저작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The Pillage of the Third World, (New York: Monthly Reveiew, 1968), Imperialism in the Seventies, (New York: The Third Press, 1973),

(43) 달라화 과잉에 따른 금태환 장치가 작동을 멈춘 이후, 브레튼 우즈 체제의 통제장치는 힘을 잃게 되었고 이후 이들 달라화는 투기 자본화하여 새로운 자본시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Eric Helleiner, States and the Reemergence of Global Finance: From Bretton Woods to the 1990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4) 이 과잉 달라는 중동지역의 무기시장 확대로 일정부분 흡수되었고 그 결과 중동지역은 세계적 중무장 지대로 변화했으며, 레이건의 군사주의 노선과 맞물려 이 지역 경제에 부담을 주었다. 팔레비 체제를 무너뜨린 이란 혁명은 그러한 과정에서의 산물이었다. 오늘날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체제를 복원하려는 미국의 정책은 자신이 만든 문제를 끌어안고 대치하는 형국이라고 하겠다.

(44) William Appleman Williams는 미국 대중들의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지지가 하나의 신념체계처럼 되어 있는 상황을 주시했는데, 그의 논지는 미국 정치와 사회가 자신의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자기인식이 명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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