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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길 위에서 아줌마의 길을 보다

남재일의 ‘사람과 사람 사이’<5> 로리주희

신방과 전공과목 중에 ‘언론문장연습’이란 과목이 있다. 주로 기자가 됐을 때 필요한 기초적인 취재와 기사작성 요령을 가르치는 과목이다. 상대적으로 지방 출신이 많은 고대에서 세 학기 동안 이 과목을 강의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직장에서의 성차별이나, 한국 사회의 성형 열풍과 같이 여성문제와 관련된 주제로 작문을 하면 남학생이 오히려 더 목소리가 높다.

물론, 그 중에는 ‘남자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소신발언을 하는 사무라이도 간혹 있다. 이런 주장이 다른 학생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궁금해서 글을 읽어보라고 하면 강의실 분위기가 야릇해진다.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비장한 사무라이를 다른 남학생들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로 보기 시작한다. 우디 알렌의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어떤 사안에 대해 진보적인 주장이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집단 동조를 쉽게 일으킨다는 것은 사회심리학의 고전적인 연구 결과이다. 결혼 적령기의 여자가 ‘부티’와 ‘빈티’의 징후를 예민하게 독해해 내듯이, 대학생이란 집단은 사안의 내용에 깊이 개입하지 않고도 ‘진보’냐 ‘보수’냐는 오엑스 문제를 기가 막히게 푼다. 진보는 이들 집단에서 유통되는 기호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주의에 대한 남학생의 옹호 발언은 일상에서의 실천을 앞질러 저 홀로 달려가는 경향이 있다. 이 학생들이 취업하고 결혼해서, 가정과 직장에서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렸을 때 과연 얼마나 지금의 말을 상기하면서 살까?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강의실의 분위기는 분명 기호가치에 의해 지배되는 해프닝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세대 사이에서는 친 여성적 사고가 가부장제의 논리를 누르고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친 여성적 발언을 하고, 의식적으로라도 친 여성적 사고를 해야 온당한 남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위선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의식이 일상적 문화에 스며 구체적인 효과로 나타나는데는 상당한 지체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위선에의 노력이야말로 문화적 실천의 유일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성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강박관념을 가져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학인’ 이번 호에 ‘문학인이 만난 사람’을 선정하는데도 이런 강박관념이 작용했다. 창간부터 지금까지 김기덕, 김훈, 이창동, 이렇게 남자들만 하고 나니 편집위원들이 ‘이번엔 여자가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나도 그런 부담을 느끼고 있던 차라서 일단은 여성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물선정의 잣대로 삼은 ‘문화인물 중에 이슈가 되는 사람’의 기준을 적용하다보니 마땅한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좀 더 바깥세계로 나아가 보기로 했다. 어차피 여성을 타자의 범주로 의식한 김에 주류매체의 뉴스 망에서 배제된 영역에서 의미 있는 사람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로리주희는 그렇게 먼 길을 우회해서야 만날 수 있었다.

<사진1>

그는 아줌마이며, 아줌마를 위한 단체인 줌마네의 부대표로 일하고 있다. 줌마네는 지난해 9월 줌마네란 타이틀을 걸고 정식 출범한, 아줌마가 아줌마를 여성주의로 계몽하는 사회운동 단체이다.

80년대 사회운동이 정점에 달했던 1987년 덕성여대에 입학한 로리주희는 대학생활을 학생운동으로 보낸다. 1991년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4월 성폭력상담소 창립 멤버로 들어가 1997년까지 성폭력 교육간사로 일했다 그리고 이듬해, 한국 여성단체연합에 들어가 2년을 보내고 ‘체력의 열세’를 느껴 13년 만에 처음으로 운동을 쉬게 된다. 일년 정도의 휴지기를 가지면서 그는 앞으로 달리기만 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처음으로 갖게 된다. 이 시간 동안 그는 아줌마가 됐으며 아줌마란 존재에 대해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된다.

지구 위의 반은 여자이고, 여자의 60%는 아줌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말을 빌리면, 아줌마는 21세기의 마지막 천민이다. 천민이란 말속에는 .미학적 판단이 들어간다. 나빠서가 아니라 그냥 보기 싫어서 멀리하는 것, 아줌마는 그런 존재이다.

아무데서나 떠들고, 무식하고, 콩나물값 같은 작은 일로 상소리를 하고 싸우면서도 도대체 주변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한마디로 수치를 모르는 존재쯤으로 간주된다. 몸빼 바지와 월남치마로 연상되는 아줌마는 자갈치하고는 궁합이 맞아도 갤러리아 하고는 상충한다. 갤러리아 아줌마? 안동 피자만큼이나 썰렁하지 않는가.

그런데 아줌마는 집에 가면 어머니가 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어머니를 밖에서 아줌마라고 부른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남들은 통일해서 아줌마라고 부른다. 집 안의 어머니와 집 밖의 아줌마는 같은 인물인데도 왜 이렇게 다른 이미지로 존재하는가?

로리주희 아줌마는 이제 21세기의 화두는 아줌마라고 말한다. 그는 어머니와 아줌마의 차이에서 여성의 고통뿐만 아니라 어떤 희망을 본 듯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흔히 문화적 실천이라고 말하는 일상을 통한 현실개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아줌마의 존재를 그런 관점에서 상상해 봤다.

<사진2>

유교적 가부장제에서 아줌마, 그러니까 어머니란 존재는 가정이란 공간에서 구성원을 통해 마찰하는 다양한 사회관계들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사회적 관계의 갈등은 스폰지 같은 어머니의 수용력을 통해 그 충격이 흡수된다. 물론 이건 체제의 희망사항이다.

착한 어머니를 필요로 하는 시스템은 개인주의 문화에서 구조적인 급소를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줌마는 체제의 유지에 사실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역학적 위치에 있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아줌마는 다양한 사회관계에 충격을 전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나는 로리주희 아줌마가 아줌마를 자신의 화두로 삼은 배경을 이렇게 상상했다. 그리고, 이런 시도들이 흔히 얘기하는 ‘실천의 개인주의 방법론’ 혹은 기든스가 ‘삶의 정치’라고 명명한 사회운동의 한 사례가 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현실 정치적 해결을 특권화 하는 정형외과적 사회운동이 개인적 삶의 수준에서 미치는 효과를 미심쩍어 하는 나에게 아줌마 운동은 의미가 커 보였다.

로리주희 아줌마를 대담하고자 마음먹은 데는 그런 사적인 편견이 깔려 있다. 대담을 한 신촌의 줌마네 사무실은 아줌마들의 일터답게 작은 재래식 가정집이었다. 대담은 군불을 넣은 것 같이 뜨거운 작은 방에서 다섯시간 동안 진행됐다. 아랫목의 온기에 녹은 건지, “현장만 굴러 사변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아줌마의 수다에 녹은 건지, 여성운동과 관련된 심각한 질문들은 꺼내지 않았다.

경험에서 나오는 그의 수다에는 관념이 날을 꺾고 조청처럼 녹아 있었다. 나는 그를 처음 봤지만, 그는 남자끼리 대담할 때 있게 마련인 묘한 경계와 탐색 없이 개숫물 버리듯이 쉽게 말을 풀어나갔다.

***길 위에서 아줌마의 길을 보다**

<사진3>

남재일: 여성이 노동자처럼 구체적인 사회적 계층이 아니어서 그런지 여성 운동하는 사람들은 계층적으로도 다양하고, 그 방식도 각각 다른 것 같다. 운동을 하게 된 계기나 그 과정도 가지각색이다. 여성운동과의 인연이랄까, 어떤 과정을 거쳐 여성운동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로리주희 : 87년은 사회가 어수선했다. 학력고사 끝나고 일종의 사상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땅굴 견학도 가고 사상에 대한 강연도 들었다. 그런데 이 교육을 받으면서 오히려 역으로 의식화가 된 것 같았다. 학교 밖은 샐러리맨까지 나와서 민주화를 외치는데, 그런 교육이 참 남루해 보였다. 대학에 들어와서 운동하는 선배들 주변에 있으면서 한동안은 그들의 말이 맞나 안 맞나 탐색을 했다. 그러다가, 선배들이 말 안 듣는다고 포기할 즈음 자진해서 찾아갔다. 그렇다고 무슨 확고한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긴치마 입고 하이힐 신고 학교 온다고 선배들이 ‘쟤 프락치 아냐“라고 빈정거리기도 했으니까.

사실 당시는 운동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고등학교 때 천주교 성경 공부 모임에 다니던 엄마가 신부님에게 시국 얘기를 듣고 집에서 반정부적인 발언을 할 정도였다. 사실 내 경우는 부화뇌동해서 학생운동 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여성운동도 이상한 우연이 작용했다. 학교 안에 여성부라는 것이 생겼는데 다들 기피해서 사다리 타기를 해서 내가 걸렸다. 여대인데도 여성부를 기피할 정도로 운동권 내부는 남성화 돼 있었다. 여성에 대한 의식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도 여성에 대한 의식도 남성에 대한 지식도 전무했다. 자리 맡은 죄로 혼자서 찾아다니며 공부해서 겨우 면피만 했다.

졸업하면서 어디로 갈지 고민했는데, 노동현장은 자신이 없었다. 노동자에 감정이입할 만한 계급적 정서가 약했고, 여성으로 현장을 해쳐나간다는 것도 겁났다. 내 존재에 충실한 길을 택한다는 것이 여성운동이었다. 당시에 여성학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이대 여성학과 하고, 한국 여성연구소 전신인 여성연구회 두 곳이었다. 그래서 이대 여성학과에 찾아갔는데, 마침 그 쪽 사람들이 공부할 스타일 같지 않다며,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거기서 일하게 됐다. 일년 뒤에 다시 이대 여성학과에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다. 거기서 얻은 교훈은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들이 나말고도 참 많다는 걸 알았다. 당시에는 여성학과가 인기가 있어서, 학점이 나쁘면 들어가질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다.

남재일 : 성폭력상담소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얼핏 들으면 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를 돕는 종교적 자원봉사 활동 같다는 인상도 주는데, 사회운동 혹은 여성운동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

로리주희 : 성폭력상담소는 일종의 종합센터다. 성폭력 피해자는 사법제도를 통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재판과정에서도 심리적 상처를 입기 쉽다. 어떤 사람들은 성폭력 당하는 것보다 조사과정에서 당시 상황을 진술할 때가 더 힘들었다고도 한다. 상담소에서는 피해자가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과정에서 축적된 자료를 언론에 배포해서 이슈화하기도 하고, 김보은 김진관 사건(자신을 성폭력한 친부를 애인과 함께 살해한 사건)처럼 생부의 잘못을 부각시켜 공론화하기도 한다. 이 사건 이후에 생물학적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면서 상담소로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피해자들인데, 김보은 김진관 사건에 대한 사회의 반응을 보면서 용기를 얻어 전화를 건 사람들이다.

성폭력상담소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그런 거, 파묻혀 있는 여성의 현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거다. 나도 여기서 일하면서 놀랐는데, 친족 성폭력 중에 20%가 생물학적 아버지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어린 아이들이 성폭력 당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생각조차 하기 싫어한다.

남재일 : 성폭력의 양상도 나라마다 다를 것 같은데, 상담소에서 실재 피해 사례를 접하면서 느낀 한국적 특징이랄까, 뭐 그런 게 있다면?

로리주희: 성폭력 부추기는 문화가 있는 게 가장 문제다. 범죄라는 인식이 없고 마치 놀이의 한 방편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청소년들이 그렇다. 청소년들에게 왜 성폭력 했냐고 물으면 “재수 없어서” “이쁘지도 않은 게 공주처럼 굴어서” “벌주려고” “친구 군대 가는데 여자가 있어야 술맛이 나니까 불렀다가, 그만” 이런 대답이 많다. 그 나이부터 벌써 자신이 여자에게 벌을 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또 “술값 내고 노래방 돈 다 내가 냈는데 그냥 갈려 하잖아요” 이렇게 말하는 아이도 있다. 돈을 썼으니 여자가 당연히 성적으로 뭔가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비행 청소년들의 경우는 학교 다닐 때 ‘만날 술 먹고 놀다가 짝 지워서 흩어지면 여관 가고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한번 따먹고 나면 다시 안 만나요. 마음에 들면 그 날 안 따먹어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폭력적인가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다.

고교에 가서 성교육 해 보면 성폭력에 관한 법에 대해 굉장히 관심을 보이는데, 아주 무지하다. 성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에 대한 의식은 물론 없고, 얼마나 형을 받는지도 모른다. 강간은 ‘들키는 게 쪽 팔리고, 성적 매력이 없으니까 강간을 하지 성적 능력이 있음 왜 하나’, 이런 식으로 성적 능력하고 연결시킨다. 그런데 성인도 별로 나을 게 없다. 여자친구가 성폭력을 당하면, 여자 친구가 성적으로 가해자를 그리워할까 고민하는 남자들이 의외로 많다. 성적 능력을 비교 당하는 상황 자체가 싫은 거다. 우리 문화는 여자를 성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사람으로 존중하는 마음 자체가 극히 희박한 것 같다.

남재일 : 청소년들은 어른을 모방하다보면 더 극단적으로 드러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성인들의 경우는 그래도 성폭력에 대해서는 범죄의식이 있을 것 같고....여성에 대해서도 그런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로리주희: 97년 성폭력 관련 논문을 쓰느라고 상담소 그만 두었다. 다들 피해자 연구만 하니까 나는 가해자에 호기심이 생겨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사회정책학과에서 범죄 및 일탈 전공을 했다. 가해자 교정프로그램에 관한 논문을 준비했기 때문에 보호관찰 중인 성인 남성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그 남자들은 하나같이 성폭력 했어요, 잘못했어요, 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때린 것은 잘못했지, 그런데 걔가 먼저 꼬셨다고”, “걔는 원래 그런 애야, 우린 화간이라고, 절대 강간이 아니야”.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합리화했다. 이런 배짱이 어디서 생기겠나? 성폭력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남성문화의 지원이 없음 가능하겠는가? 이때도 개인의 문제보다 문화 구조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런 확신을 하게 됐다.

남재일 : 그럼 그런 문화를 개선하는 방법이랄까 그런 것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나?

로라주희 : 현실적으로 형량이 강화돼야 하고, 나머지는 꾸준한 사회적 계몽밖에 없는 것 같다. 사실 성폭력은 형량이 낮다. 특히 초범의 경우는 실형이 약하고 보호관찰이 많다. 피해자의 피해정도와 가해자의 동기 중에 가해자 동기를 많이 고려해서 형량을 매기는 것 자체가 남성중심적인 거다.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는 강도 당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물론 형량은 강도가 더 크다. 그러니 피해자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가 버젓이 잘 사는 걸 보고 다시 한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거다.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이 신고가 되지 않고 묻히는 점을 감안하면, 가해자는 활보하고 피해자는 두고두고 상처받는 경우가 많다. 김보은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다. 자신의 인생을 망친 아버지는 잘 살고 있으니까, 증오심이 점점 커져서 결국 살해하게 된 거 아닌가.

세계 성폭력 사건 발생율은 미국이 1위, 스웨덴이 2위, 한국이 3위다. 신고율은 미국이 46%이고 한국은 2.2% 이다. 스웨덴은 더 높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스웨덴은 신고율이 높아서 발생율이 높게 나오는 경우다. 신고율을 감안하면 한국의 성폭력 발생율은 세계 정상이다. 물론 한국보다 더 신고율이 낮은 제 3세계 국가들이 있을 수 있지만,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단연 수위임에 틀림없다.

남재일 :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다 보면 남성에 대해 혐오증 같은 게 생길 것 같다. 상대하는 남자가 다 범죄자들이고, 그것도 여성을 성적으로 폭행한 사람들이니 ‘남자는 다 그래’ 라는 생각이 들 것 같은데...

로리주희 : 유아 성폭력이나 친족 성폭력이 한창 이슈가 될 때는 지하철에서 남자가 여아를 안고 있으면 손이 어디 있는지 관찰할 정도였다. 거기 있으면 결혼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도 자주 받았다. 그런데 난 성폭력상담소에 있으면서 거기에서 만난 남자랑 결혼했다. 94년인가, 24시간 운영하는 위기센터를 만들면서 인력이 부족해 남자 자원봉사자를 받기 시작했다. 밤샘 요원으로 들어온 대학생들은 초보적인 상담을 맡는 보조요원으로 일했다.

나는 이 사람들과 일하면서 남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보다는 남성의 역사를 알게 됐다. 어쩔 수 없이 길들여진 남자들의 문화랄까, 그런 현실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된 거다. 그 전에는 데이트 강간 같은 거 이해를 못했다. 사귀는 남녀가 여자는 강간이라고 하고, 남자는 화간이라고 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납득이 안됐다. 그런데 남녀간에 소통이 안 되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봉사자 남자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해하게 됐다. 남편은 그때 자원봉사 나와서 나보고 누나, 누나 하던 세 살 연하의 대학생이었다. 지금은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의식만은 통한다. 적어도, 이때 자원봉사 했던 남자들은 성폭력에 대해 진지한 관점을 갖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남재일 : 성폭력상담소 그만두고 한국 여성단체연합(여연)으로 옮겨갔는데, 사람들 직접 대하는 현장에서 행정조직이랄까, 행정기구로 옮겨갔는데, 그 동기가 궁금하다. 한국에서는 뭐를 하든 나이 들면 중앙집권적인 행정조직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로리주희 : 성폭력상담소 나오면서 후배에게 자리 물려주고 나왔다. 다시 들어가기도 그렇고, 여연에서 일하자고 해서 하게 됐다. 그런데 여연은 여성단체 자체가 워낙 재정도 열악하고 규모도 작기 때문에 행정조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하는 일의 성격도 가두 서명 받기 등 몸으로 떼워야 하는 게 많다. 틀은 직장인데, 알고 보면 자선 사업에 가깝다. 말이 월급이지 그걸 월급이라고 하면 자존심 상해서 일 못한다. 거기 사람들은 그냥 활동비라고 부른다.

그런데 일은 오죽 많나, 2년 동안 12시 전에 남편 얼굴 본 적 별로 없고, 늦으면 2-3시까지 일하기도 했다. 남성단체는 좀 나은데 여성단체는 잘난 여자들 와서 악악거린다고 후원금도 잘 없다. 이때 남편의 3대 구호가 있었는데, “난 벼개랑 결혼한 게 아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집에서 얼굴보고 밥 먹자” “ 밤 12시 이전에 얼굴보고 살자” 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지쳐서 그만 두게 됐다. 몸도 안 좋고 아이를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서....그런데 그만 둔지 3년이 됐는데 아이가 안 생긴다. 너무 일만 하다 보니 그런가 싶기도 하다.

남재일 : 지금 하고 있는 아줌마 운동은 휴지기를 거치고 새로 시작하는 운동이다. 쉬는 동안에 자신의 운동 방향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았을 것 같은데, 아줌마 운동을 하게 된 내면적인 계기가 궁금하다. 어떻게 보면 여성 운동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것처럼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로리주희 : 2000년 7월인가. 여성주간 행사에서 호주제 폐지 서명운동을 했다. 파고다 공원 근처에서 서명을 받는데, 젊은 여성이 서명을 하면서 ‘이거 서명하면 뭐가 달라져요’하면서 시니컬하게 한마디 했다. 그 때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것 같았다.

성폭력 특별법이나 가정폭력 방지법 같은 법이 여성단체에서 서명 받아서 만들어지게 된 법인데, 대중들은 모르니까 그런 서명운동에 대해 시니컬할 수밖에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무래도 나도 현장에서 사람들과 바로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체질이어서 그런 반응이 쉽게 이해 됐다 사실 고공플레이라고 할까, 윗 단위의 행정적인 정치도 중요한데, 나한텐 잘 안 맞았고, 그래서 아줌마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남재일 : 그런데 왜 하필 아줌마인가? 아줌마 운동에 부여하는 개인적인 의미, 혹은 보람이랄까 그런 게 있다면?

로리주희 : 일단은 일을 할 때는 내 존재에 기반을 둔 것, 억지로 애 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 그런 게 좋다. 학생운동 하고 사회로 진출할 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난 처녀 때부터 빨리 아줌마가 되고 싶었다. 아줌마가 가진 파워가 부러웠다. 결혼하기 전 몇 년 간 혼자서 자취를 했는데, 참 불편했다. 스스로 금남의 집으로 만들었고, 하지 말아야 할 금기사항을 덕지덕지 달고 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을지도 모르는데, 냉장고에 술 넣어두고, 탁자에 담배 올려놓고, 남자들 들락날락 하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변명할 기회도 없이 주변에서 나를 평가절하는 소리들이 상상 속에서도 끔찍했다. 물론 이런 제약은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스스로 만든 것이지만....그래서 빨리 아줌마가 되는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아줌마의 편안함, 아줌마의 파워, 그런 게 그리웠다. 오숙희씨가 지방 강연 다닐 때 겪은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굳히게 됐다.

하루는 영등포 역에서 남자 둘이 주먹다짐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고 구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 양손에 보따리를 든 아줌마가 “도대체 다 큰 사람들이 뭐 하는 거냐, 지금”이라고 호통치자, 당사자들이 머쓱해서 싸움을 그만뒀다는 얘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이힐 신은 아가씨가 끼어 들거나 남자가 개입했으면 다른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 쉬운 상황을 아줌마는 쉽게 해결했다.

아줌마니까,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아줌마는 힘이 있고, 나는 그 힘을 빨리 갖고 싶어했다. 그래서 결혼을 했고, 아줌마가 되고 나니 아줌마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때렸다. 그래, 아줌마다. 21세기의 화두는 아줌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남재일 : 아무도 심각하게 시선을 주지 않는 아줌마란 존재가 왜 21세기의 화두라고 생각하는지 납득이 잘 안 된다. 지금 줌마네에서 하는 활동과 그런 활동이 사회운동, 혹은 여성운동으로 어떤 당대적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로리주희 : 줌마네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진데, 주력하는 것은 내공 쌓기 프로그램이다. 내공 쌓기는 쉽게 말해 아줌마들이 자아 찾는 것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자기를 찾으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데 아줌마들은 무기가 없다. 무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지금 하는 것은 자유기고가 과정이다.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는데 하루 접속량이 5천건 정도 되고 회원은 2천 6백명 정도 된다.

요즘 일본 관광객 안내 책자에 아줌마는 펑퍼짐한 기혼여성의 이미지로 미혼여성과 구별되게 소개돼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줌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버스에서 가방 날려, 몸 날려 자리 잡는 사람, 촌스럽고 몰상식하고 펑퍼짐하고 그런 모습들뿐이다. 미혼 여성들이 아줌마란 말을 참 싫어한다. 자기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며 경멸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아줌마들은 엄청난 일을 하고 있고, 어떤 힘이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너무 인정을 못 받고 있다. 특히 어려운 계층으로 가면 아줌마들이 이중삼중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남편 덕분에 자기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거기서 아줌마의 가능성, 아줌마 운동의 가능성을 본다. 작게는 우리 구성원들이 자기를 찾고 스스로의 힘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점진적으로 그런 실천들이 사회적 담론으로 확산될 거라고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아줌마의 정의는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자기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여성들이다. 21세기에는 국어사전에 그렇게 정의가 내려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재일 ; 아줌마란 범주는 어찌 보면 정체성이 모호하다.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사람들이니, 대한민국 여자의 절반 이상이 여기에 속한다. 이렇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운동하는데 남다른 어려움도 있을 것 같고, 느끼는 점도 많을 것 같다.

로리주희 : 아줌마 운동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강연처럼 내가 일방적으로 주는 게 아니라 동참해서 서로 대화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아줌마들은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자체가 서로 주고 받는 것을 좋아한다. 처녀들은 하나 주면 하나 더 안 주나 이런 경향이 있는데, 아줌마들은 서로 보살피는 힘이 있기 때문에 기브 앤 테이크가 가능하다. 내가 고갈되지 않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것도 그런 점 때문이다. 어려운 점은, 줌마네 구성원들이 대부분 중산층이기 때문에 먹고 살만해서 여유를 찾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힘들면 숨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끝까지 견뎌주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데....그럴 때 가장 안타깝다.

남재일 : 자유기고가 과정은 극히 한정된 대상에게만 유용할 것 같은데....실제로 여기서 과정을 이수해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는가?

로리주희 : 주로 대졸인데, 3기부터 고졸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처음에 목표는 30대를 겨냥했는데, 40대와 50대가 의외로 많아 지금은 평균연령이 40대다. 우리도 50대는 현실적으로 활동을 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한 분이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고, 여기 출신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사람도 40대다. 한 달에 고정적으로 다섯 꼭지를 맡고 있다고 들었다. 실재로 이런 체험을 하면서 우리 스스로도 어떤 고정관념을 깨게 된다.

남재일 : 자유기고가 과정은 중산층을 위한 프로그램 같다. 줌마네 자체가 중산층을 대상으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로리주희: 프로그램 성격이 중산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사실이다. 줌마네가 중산층을 전략적 타겟으로 보는 것도 사실이고. 중산층 고학력 여성들은 조직해 주는 단체도 없고 가장 비어있는 공간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정도를 제외하면 운동단체가 거의 다 기층 중심이다.

나는 중산층 여성이 한계도 많지만 세상을 바꾸는데 엄청난 잠재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너무 흩어져 있기 때문에 모으기만 하면 엄청난 힘이 될 수 있다. 이번 대선 때도 그런 가능성을 봤다. 줌마네 운영진도 회원들에게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아줌마들의 관심과 참여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줌마네 사이트 안의 에로티카 웹진에서 ‘아줌마 대선후보를 쇼핑하다’란 제목으로 대선 후보를 인터뷰했다. 노무현 후보와 권영길 후보가 인터뷰에 응했는데, 아줌마들이 직접 기획하고 질문지 만들고 인터뷰 요청서 보내고, 인터뷰까지 직접 했다. 이 인터뷰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있는데, 여성문제 공약에 관한 질문만큼은 다른 어떤 언론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이 일을 하면서 아줌마의 정치적 가능성을 확신하게 됐다.

남재일 : 아줌마에게서 그렇게 정치적 희망을 본다면, 남성사회에서 성공한 엘리트 여성들은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미국에서는 ‘여자의 적은 여자’란 책이 상당히 공감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내용은 여성 내부의 남성 중심적 사고에 대한 비판이었다.

로리주희 : 성공한 여자가 반여성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법조계나 언론계등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한 여성들은 성공과정에서 남성화되지 않으면 그 자리까지 가기 힘든 점이 있는 것 같다. 심한 경우, 능력 있으면 되지, 수퍼우먼이 되면 되지 못할 게 뭐 있어, 이런 식으로 자신의 성취에 도취된 경우도 있다. 그런 여성들은 여성운동을 무능력자들이 늘어놓는 불평 정도로 간주한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여성운동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여성담당기자가 오면 남자건 여자건 정말 여성운동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다. 어떤 여기자는 로리주희란 이름을 보고 “남편 성 땄나 보죠?”라고 묻기도 하더라. 여자 수가 많고 종류도 가지가지다 보니 여성운동에 대한 이해의 정도도 각양각색이다. 당연히 여성 내부에 문제가 없을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여성의 적은 여성’ 이런 표현은 거북하다. 여성운동 내부 세미나에서 그런 얘기가 나온다면 모를까, 공개적으로, 그것도 제3자가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공연히 여성계 내부를 분열시키려 드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운동이든 문제는 있다. 여성운동처럼 스펙트럼이 넓은 경우 잡음이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남성의 적은 남성’ ‘노동자의 적은 노동자’, 어떤 집단을 이 표현에 대입해도 그럴 듯 해 보이지 않는가.

남재일 : 좀 다른 얘긴데, 혹시 ‘나쁜 남자’란 영화 보았나? 여성 평론가들이 반여성적 영화로 신랄하게 비판한 영화인데...물론 지지하는 남성 평론가들도 많았다.

로리주희 : 안 봤다. 홍보되는 내용 보고 일부러 안 봤다. 난 미학적 사연이야 어쨌건 여성에 대해 너무 가학적인 이런 영화들 보고 싶지도 않고 평하기도 싫다. 그런 영화 보면 아무리 예술가지만 저 사람 상처가 깊구나, 치유받아야겠다, 이런 생각만 든다. 그 나마 주변에서 ‘오 수정’이 낫다고 생각해서 봤는데, 둘이서 합의해서 성관계를 하는 장면인데도 강간 같았다.

삽입하는 행위에서는 처음일 경우 서로 공포가 있지만 정말 잘 준비된 관계에서는 출혈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고통과 출혈을 매우 강조하고 있었다. 마치 처음 성관계를 가지면 고통과 출혈을 반드시 수반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내가 성폭력에 민감해서 그런 것도 있는데...하여간 끔찍했다. 같이 본 친구 중에는 정말 내가 연애할 때와 너무 같았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나도 연애 해봤는데도 정말 이해가 안 됐다.

남재일 : 외국 영화제에 가보면 여성 평론가들이 흔히 한국 영화의 정사 장면은 강간이 많다고 한다. 섹스를 묘사할 때도 선명한 성계급의 차이가 묻어 나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계급 차이가 덜 나는 문화권의 여성이 보면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오 수정’에서 그런 느낌을 전혀 못 받았다. 남자니까 몸에 밴 게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여성 운동하는 사람은 영화를 볼 때 운동의 관점에서 특정한 부분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 사실이다. 이 말은 남성들이 그 부분을 둔감하게 느낀다고 말해도 된다. 로리주희씨도 영화 볼 때 매우 민감한 코드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챔피언’에서 정말 가진 것 없는 김득구 엄마가 들판에서 죽은 아들의 옷을 태우는 장면 같은 게 치명적이다. ‘안개 속의 풍경’ 포스터로 쓰인 장면, 소녀와 남동생이 길 바닥에서 버려진 듯 있는 장면도 그런 과다. 말하자면 노소를 막론하고 착한 성냥팔이 소녀의 이미지 근처에 가면 눈물이 줄줄 샌다.

또 하나는 ‘무숙자’란 옛날 영화에서 전설적인 총잡이 잭 보레가드 역으로 나온 헨리 폰다가 철도에 엎드려 악당 50명과 ‘맞장 떠는’ 장면이다. 늙어서 안경을 쓰고 차분하게 총질을 하는 대목에서 나는 이상하게 박수를 안치고(옆에서 박수를 무지 쳐 댔다) 눈물을 흘렸다. ‘동사서독’에서 눈이 멀어 가는 무사가 마적들과 싸우다 전사하는 장면도 비슷하다. 사람마다 눈물샘이 자극 받는 순간은 정말 각각 다르고, 그 순간은 그 사람의 역사를 함축한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하면 자주 이 질문을 던진다. ‘오 수정’에서 강간을 봤다고 하니까 더 궁금해진다.

로리주희 : 글쎄요,, 최근에 그런 장면이 있었나? 평소에 잘 우는 장면은 착한 여자가 지속적으로 핍박받을 땐데....맞다. ‘봄날은 간다’에서 마지막에 이영애하고 남자 주인공하고 등을 돌리고 헤어지는 장면에서 펑펑 울었다. 남자 주인공이 인터뷰에서 도저히 그 애정관계를 이해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연기했다고 했는데, 난 이영애에게 공감이 갔다. 사랑이 있음에도 돌아서야 하는 갈등, 상처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상처를 주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돌아서는 아픔, 그런 게 가슴에 와 닿았다.

남재일 : 요즘 주변에서 자기가 살고 싶은 방향과 지금 살고 있는 방향이 어긋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꽤나 봤다. 나도 나이 마흔이 되면서 종종 원래 프로그램은 이게 아닌데, 하고 회의가 들 때도 있다. 운동하면서 정신없이 달려가다 보면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놓치기 쉬울 것 같다. 아줌마들 자아 찾기 해주다보면 자신도 그런 성찰을 해볼 것 같은데...

로리주희 : 마음의 힘기르기 운동이라는 게 있다. 일종의 집단 상담 프로그램인데 그림을 그린다든지 탈을 만든다든지 자신을 표현하게 하고 상담을 하는 치유 프로다. 여기에 세 번 들어가서 얘기를 듣다 보니 남의 얘기 같지가 않았다. 내 안에 분노가 참 많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 분노가 어디에서 생겼는지 진원지를 찾아가다 보니까 내가 살아온 역사를 다 더듬게 됐다.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고 칭찬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로 하여금 화를 내지 못하게 하고, 작은 화들이 모여서 응어리진 분노가 된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아닌데 엉뚱한 순간에 펑펑 우는 것도 평소에 적절하게 화를 낼 줄 몰라서 그런 거였고....고등학교 때 급우 60명 생일을 내가 다 챙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다 칭찬 받고 사랑 받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늘 내가 한만큼 돌아오지 않으니까 상처가 됐던 것 같다.

그런데, 결국 왜 칭찬 받고 싶어했을까. 이런 질문을 던져보니까, 내게 아버지에 대한 애정결핍 같은 게 있더라. 줌마네 와서 자각하게 된 것인데, 성장기 때 난 아버지가 없었다. 아버지는 외국에 나가 있었고, 그 빈자리를 장녀인 내가 채웠다. 엄마한테 나는 남편이자, 애인이자. 친구이자, 딸의 존재였다. 고 3때 아버지가 11년 만에 돌아왔을 때 집안에는 가장이 두 명이었다. 내 눈에 아버지는 합리적이지 않고 어리광부리는 늙은 남자였다.

아버지는 이사를 하면 목장갑 끼고 나와서 감독만 하고 맨 먼저 피곤하다고 그러는 분이다. 못질은 다 엄마가 했는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까 아버지를 존경할 수도 없고 의지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미워할 수도 없었다. 자식에게 애정 표현 할 줄 모르고 돈 벌어주면 책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시대의 보편적인 아버지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불평을 늘어놓을 수 있나. 결국, 나는 어리광을 부려보지도 못하고 불평도 못해보고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자체를 좌절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사랑을 계속 갈구하니까 그게 사회적으로 칭찬 받고 싶은 욕구로 나타났던 것 같다. 물론 그 욕구는 언제나 충족되지 않고 다시 새로운 칭찬을 기대한다. 사회운동으로 나를 밀고 간 것도 이 힘들이 아닐까 싶은데...사실 난 진정으로 내가 뭘 원하고 욕망하는지 잘 모른다. 줌마네에서 나같은 사람들 정말 많이 봤다. 하여간, 어릴 때부터 내가 원하는 꿈을 꿔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있나.

남재일 :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고 사는 것 같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어릴 때 꾼 꿈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원하는 것은 살면서 바뀌기 마련인데, 특히 구체적인 욕구, 혹은 욕망은 늘 변덕스러운 것 같다. 기든스가 ‘자아의 서사’란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쉽게 말해 자기가 만들어 가는 인생의 스토리이다. 현대인은 파편적인 욕구는 강하지만 자아의 서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의미를 만들지 못해서 늘 욕구 불만에 시달린다고 했다.

자아의 서사는 고시공부를 해서 훌륭한 법관이 되야겠다는 목적론적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가치나 신념의 체계라고 보는 것이 좋은데, 자신의 꿈과 상처와 관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자아의 서사를 구성하는 과정은 상당한 내면적 성찰과 고통을 수반한다. 로리주희씨는 운동가로서의 지난 삶과 한 개인의 내면을 줌마네에서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얻은 결론, 사회운동이나 개인적인 생활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변화를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로리주희 : 난 요즘 화두가 나쁜 년 되기다. 나쁜 년으로 운동하기....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동안에 너무 착한 년인 척하고 살았다. 사실은 나쁜 년인데 착한 년인 척하고 살려니까 힘든 거야, 그래 나 나쁜 년 맞아...이러고 있다 요즘. 무보수로 시작했다가 10만원 받다가 20만원 받고, 최고 많이 받아 본 돈이 80만원인데, 정말이지 그 돈을 열심히 모았다. 새벽 세시에 퇴근하고도 집에 가서 설거지하고 밥 해 놓고 다음 날 도시락 싸서 나갔다. 밥 사먹는 돈이 아까워서.....악착같이 모으긴 모았는데, 나를 위해 써 본 적이 없다.

나를 위해 공부하는데 투자하는 것도 아깝고, 옷을 제대로 사서 멋을 부려 본 적도 없다. 엄마 주고, 아버지 병원에 있을 때 주고.....다 남을 위해 썼다. 그 행위 자체가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이런 것도 다 남을 위해 뭘 했을 때 인정받고 칭찬 받으니까 한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나쁜 년이 되고 싶어졌다.

남재일 : 나쁜 년으로 운동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여성운동의 방향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가? 아님 개인적 태도를 말하는 것인가?

로리주희 : 아무래도 둘이 서로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운동하면 희생이 기본이다. 적게 먹고 많이 일하고.....욕을 먹어도 참아야 하고, 사실 어떤 종류든 사회운동은 다 힘들다. 자신에게 현실적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힘든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중으로 힘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운동을 평생 할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내 존재가 감당할 수 있는 운동, 내 생활 속에서 흡수가 되는 운동의 범위를 정해서 오래 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줌마네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리고 한 가지는 운동의 효과 문제와 연관이 있다. 운동하는 사람에게 도덕적 성인의 이미지를 투사시키는 문화는 척박한 환경에서 사람을 동원하는 효과는 있다. 유신 때나 80년대 반독재 운동은 절박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그런 위임과 위임에 대한 전폭적 신뢰를 필요로 했다. 달리 말해,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도덕적 우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절박함이 사라진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는 운동을 힘들게 하고 운동 속으로 사람을 불러들이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도덕적 우상은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는 언젠가 폐기처분을 받고, 대중은 환상에 상처를 받게 된다.

나는 지금 시점에서 여성운동은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돼야 실질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쉽게 참여하고 쉬운 일로도 기여할 수 있는 운동의 장이 넓어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쁜 년으로 운동하기는 여성으로 자기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고 희생하지 않으면서 운동하기다. 이러면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나는 이게 하나의 전략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남재일 : 줌마네 아줌마들의 수다에 나타나는 결혼생활의 가장 커다란 불만은 어떤 것이고 어떤 소통의 문제를 안고 있는지 궁금한데....

로리주희 : 내가 본 아줌마들은 남편과 소통하고 싶어하면서도 소통불능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흔한 불만은 남편이 아내의 욕구를 읽는데 장님이라는 거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세계에서 나누는 법을 배우지 못해 타인의 욕구를 읽는데 색맹 같은 점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런 불만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두는 것을 언젠가부터 중단했다. 부질없어 보였다. 요즘은 이혼을 꿈꾸는 아줌마들이 모임을 만들어 볼까 한다.

아직 우리 사회는 어느 한쪽이 바람을 피웠거나 도박을 해서 가산을 날렸거나, 폭력적인 알콜중독자가 아니면 참고 살라고 한다. 성격 차이라고 말하는 소통의 단절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소통되지 않는 가정은 무덤이라고 본다. 좀 편안한, 간혹 편안하지도 않는 무덤. 그래서 더 상처받고, 마음의 준비를 자발적으로 할 시간 없이 상황에 떠밀려서 하기 전에 이혼의 현실적 조건을 준비하게 하는 그런 모임을 떠올렸다.

남재일 : 그러면 흔히 말하는 성적 자유주의, 그러니까 결혼과 무관한 성관계라든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계약동거 하는 문화라든가. 일부일처제의 성도덕에서 비껴나는 일련의 시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로리주희 : 남녀관계에 대해 갖고 있는 개인적인 원칙은 결혼을 하든 안 하든 한 명의 상대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정신적인 교감이든 섹스든 마찬가지다. 흔히 양다리라고 하는 그런 성적 방종은 못마땅하다. 섹스는 사회적인 금기가 작동하는 지점이니까 개인이 정신적 흔들림 없이 자유로운 소통의 방법으로 여긴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문제는 개인이 얼마나 사회적 이데올로기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해명 능력을 갖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계약동거는 반대하지 않는다. 뭔가 새로운 결혼문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 때문인데....사실 계약동거의 효과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가족관계로부터 자유롭고 헤어져도 법적으로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점 외에 성공적인 결혼의 예고편으로 별 효과가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건 동거 문화인데, 남녀가 대등하다는 감수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은 기존의 결혼 양상과 비슷한 결과를 낳아서 서로에게 상처만 줄 수 있다. 그리고 법적 제약이 없는 것이 오히려 처음부터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위험도 있다.

남재일 : 젊은 청춘들은 그렇다 치고, 줌마네 아줌마들이 늘어놓는 수다에 비친 아줌마 아저씨의 성적 문제는 어떤지...

로리주희 : 30대까지 아줌마들의 성의식은 어린 아이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40대가 지나고 우리 엄마 세대인 60대가 되면 남성들의 시각이 그대로 투사돼 있는 걸 느낀다. 이때 이미 아줌마들은 성적 무능력자들인데, 남성의 성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남성의 성의식을 관념으로 전수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아줌마들은 경험을 통해 자신들의 성의식을 확립할 기회가 별로 없다.

내가 보기에 아줌마들의 성은 순수하다. 거기에 비해 아저씨들의 성은 참 솔직하지 못하고 관념적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의 경험과 실천 속에서의 성이 아닌 포르노가 알려주는 성 혹은 매매되는 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뭔가 허구에 사로잡혀 포르노 상업이 배설한 것들에 지배당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부부가 성적 느낌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성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한다는 아줌마 별로 못 봤다. 원조교제 같은 것 정말 끔찍하지 않는가.

남재일 : 지금까지 한 얘기를 들어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여성 문제는 결국 남자와 연결된 문제다. 그러니 결국 여성운동이 심한 출혈을 겪지 않고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면 남자가 변해야 된다는 결론이다. 딸아이 유치원 졸업식 때 남녀의 성 역할이 이미 그때부터 공고하고,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겪었던 남자-반장, 여자-부반장의 공식이 아주 선명하게 느껴졌다. 남자들은 그 이후로도 위계가 강한 문화를 경험하고, 군대까지 갔다 온다.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도 권력관계에 기반한 인간관계에 적응해서 생활하게 된다.

한국 남자들이 처음 만나면 우선 연고를 맞추고 그 다음은 학번으로 하든, 나이로 하든, 입대 순으로 하든 위계를 정한다. 그래야 편하게 얘기가 오고간다. 그러니 수평적인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굳이 장악돼 있는 여성에 대해 그럴 필요도 못 느낀다. 남성중심적 문화는 골수에 밴 것이기 때문에 남자가 본인이 변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잘 모른다. 결론적으로 남자가 변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적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로리주희 : 성인들은 문화적으로 쉽게 잘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아이들인데, 연령별로 성 역할 모델을 조사해보면 나이가 어릴수록 보수적이다. 대학생보다 중학생이 훨씬 가부장적이고, 중학생보다 유치원생이 더 가부장제 성 역할 모델에 충실하다. 자신들의 정체성이 없는 상태에서 어른들을 흉내내다 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인데, 결국 이런 게 누적이 돼서 여성과 소통할 줄 모르는 성인 남자가 만들어진다.

어린 시절 성 역할 모델을 배우는 가장 일반적인 출처는 부모인데, 요즘은 부모보다 대중매체의 영향이 더 크다. 만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성 역할 모델은 현실보다 훨씬 보수적 양상을 띤다. 미디어에 접근하는 것을 부모들이 일일이 통제할 수도 없고, 사실 난감하다. 대안미디어 만들기나 기성 미디어에 대한 비판 활동으로 그릇된 내용을 교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여성 운동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그는 말을 굉장히 빠른 템포로 하면서도 발음이 정확했고, 중간에 말을 자르고 들어가도 상대의 말을 금방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상대의 말이 끝나면 맥락을 잊지 않고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빨리 달리면서도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말도 사실에 충실한 단어를 골랐고 둘러 말하지 않았지만 공격한다거나 상스럽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는 매우 부드러운 직설을 구사했다. 나는 거기서 어떤 탄력 같은 것을 느꼈는데, 대화를 진행하면서 그것이 그가 가진 삶의 탄력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언젠가 그는 사이트에 성기 제 이름 찾아주기를 하자는 주제로 글을 올렸다. 남자의 성기를 고추나 페니스라고 부르고, 여자의 성기를 거시기 혹은 버자이너 등으로 부르는 것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었다. 그냥 사전에 나오는 대로 자지 보지로 부르는 것이 좋다는 주장이었다. 남자의 성기는 그래도 공개적으로 고추라고 비유라도 하지만 여자의 성기는 아예 호명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언어 습관이 은연중에 장기차별을 조장하고 성차별을 강화한다는 거였다. 어떻게 보면 언어라는 형식 자체의 정치성을 문제삼는 급진적인 주장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완곡어법에 과민반응한 투박한 시비 같기도 했다. 그런데, 글 자체는 사납지도 상스럽지도 않게 술술술 읽혀졌다. 나는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대담을 마치고 나는 그 힘의 진원지를 ‘진지한 낙천성’에서 찾았다. 그는 여성 운동에 몰입해 있는 순간에도, 사람들 관계 속에서 재미거리를 만들어내서 즐기는 재주가 있다. 진지하되 심각하게 경직되지 않는 탄력, 그의 몸 속에는 낙천성이라는 섬유질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그가 꿈꾸는 여성의 세상을 듣고 있다보면, 그때까지 얼마나 더 나아가야 할지 오리무중이다. 고지를 보지 않으면 달려가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정말 머나먼 길이다. 그가, 아니 그의 태도가 그 길 위에서 말한다. “ 가다보면 고지가 나오겠죠, 아님 말고.” 길은 그녀의 집이다.

<문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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