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번역문**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논어 원문**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論語, 雍也)
***한글 독음**
자왈,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요지자. (논어, 옹야)
***원문 자구 주석**
知之者不如好之者 : A不如B. A는 B만 못하다. 知之者는 아는 것. 好之者는 좋아하는 것. 之는 불특정 대명사. 好는 동사, 좋아하다. 중국어로 읽을 때는 hao 4성으로 발음.
好之者不如樂之者 : 樂之者의 문법적 설명은 위와 같음. 樂는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나 여기서는 ‘요’로 발음하는 것이 좋을 듯. 동사, 즐기다.
***해설**
공자의 위 말을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대학 시절이었던 듯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이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슴에 팍팍 와닿지 않았어요. 도대체 아는 게 왜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는 건지, 그리고 또 좋아하는 것이 왜 즐기는 것만 못한지 구체적인 예를 설명해놓은 책도 없었고 그래서 그냥 넘어가긴 했으나 이게 필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는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세월이 흘러흘러 나이도 들어가고 세상 경험도 하나 둘씩 쌓여가자 이제 이 말의 의미를 어느 정도나마 알 듯도 합니다. 평생 교육의 개념이 새롭게 대두되는 이 시절에 공부라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도록 할까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지식을 전수받는 일이든 아니면 인격을 도야하는 일이든간에 여하튼 학교에서 이런 저런 경로와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됩니다. 알게 된 것, 이걸 지식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은 일단 배움의 길로 접어든 사람에게는 사실상 끝이 없는 길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설령 대학을 졸업하여도 자기 발전을 위해서는 일생을 두고 계속 노력해야만 하는 대상입니다. 특히나 정보화사회에서는 어제의 지식이 오늘은 필요없는 지식이 되고 오늘의 지식이 내일은 쓸모없는 지식이 되는 예가 허다하죠. 그러므로 지식이란 것은 확실하지도 영원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확실하지도 영원하지도 않은 지식이라지만 그러나 이걸 습득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러한 지식의 습득이 대개 자발적으로 수행되는 예가 매우 드물어요. 자기가 주동적으로 찾아서 하기보다는 정해진 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행해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가령 여러분들이 학기 초에 수강신청을 할 때, 과연 정말 들어야겠다고 해서 신청한 과목이 몇 과목이나 되나요? 필수가 아니라면 피할 과목이 태반이 아니던가요? 해당 과목이 취업에 도움이 될 것같아서.. 혹은 만만한 과목일 것같아서.. 혹은 공강시간을 죽이기 위해.. 혹은 친구가 들어서 함께 붙어 다니려고... 여하간에 자신이 만사 제껴놓고 듣고 싶어서 들어야겠다고 작정하여 수강 신청한 과목이 몇 개나 되나요?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이러한 지식을 자발적으로 신청해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면 이 인생은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지식 습득 효과를 볼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 다음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게 되면 굳이 하라 마라 옆에서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열심히 하게 됩니다. 자발적으로 주동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죠. 타의에 의해,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하는 일과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그 효과에서 얼마나 차이가 나겠습니까? 게다가 억지로 배우게 되면 그건 대개 시험 치르고 나서 다 까먹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좋아하는 것은 그렇지 않죠. 시험과는 무관하게 계속 노력하고 계속 정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축적되면 그 차이란 것이 더욱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그 분야가 어떤 분야이든간에 항상 의욕에 넘치죠. 결과야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이 또 문제네요. 그건,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허거덕.....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어떤 일을 좋아한다.. 특히 지식을 습득하는 일은 좋아한다고 합시다. 아주 노골적으로 이야기해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런 좋아함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죠. 세상 일이란 게 자기 뜻대로 되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결국 자기가 공부를 좋아하고 열심히 해도 결과는 나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령부득이었기 때문이든 아니면 운이 나빴든 간에.. 특히 이런 결과는 대개 시험의 결과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시험이 중간고사든 기말고사든, 아니면 외부의 어떤 자격고시든간에 그런 시험의 결과 같은 것에 연연해 하지 않고 자기가 하는 공부 자체를 즐기는 사람, 그리하여 배움이란 것이 생활화된 사람, 이런 사람은 딱히 시험기간에 밤을 새지도 않고 평소에 다 합니다. 이런 사람이 시험에 떨어지고 실패할 확률이 있겠어요? 설령 그럴 가능성이 있다해도 그 확률은 극히 낮지 않겠어요?
즐기는 사람에게 당할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이 즐거워 잠을 안 자도 졸리지 않고 먹지 않아도 시장기를 느끼지 않는 것이죠. 우리가 종종 어떤 일에 너무 빠져 몰두할 때 그런 경험을 느끼지 않나요? 설령 그게 고스톱이든 PC게임이든 간에....
그래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좋아함만 못하고, 좋아함은 즐김만 못하다.”
결국 이것은 효과면에서도 그러하고 마음가짐에서도 훨씬 느긋하여 정신적인 건강에도 보탬이 되는 잠언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지금 하고 있는 공부, 안 한다면 모를까, 기왕에 하는 것이라면 좋아하시라, 좋아하시라고. 그리고 한걸음 더 나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이젠 즐겨요, 그리하여 생활화시켜요. 생활화 되면 그게 바로 습관입니다.
우리는 운명(運命)이란 말을 곧잘 합니다. 자기가 애비 에미를 골라잡아 나올 수는 없지요. 이건 움직일 수 없는 부분이예요. 도저히 자기의 의지로서는 결정할 수 없는 부분, 그래서 그걸 하늘의 뜻으로 돌립니다. 하늘이 명(命)했다 하여 명(命)이라 합니다. 우리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넋두리로 하는 말 중에 간혹 들리지요. "아, 왜 이리 명이 모질어......" 모질다는 말 아시지요? 왜 이리 내 명이 힘드냐 이런 뜻입니다.
그러나 운(運)은 움직일-운.... 이건 자기가 하기 나름이죠. 이 운이란 것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호박넝쿨이 굴어오듯 오는 게 아니지요. 이건 자기가 나서서 챙겨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 운을 결정짓는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개인의 성격과 습관이라고 보고 싶어요. 왜?
개인의 성격은 그 성격에 이끌려 하나 둘 행동에 옮기게 되면 그게 바로 습관이 됩니다. 일단 습관으로 굳어지면 행동은 습관에 지배되어 반복되는 것이죠. 이렇게 하루 이틀 반복이 계속되어 10년 20년 누적되면 그게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런데 바로 이러한 습관은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써 얼마든지 콘트롤 가능한 부분입니다. 그러니 습관이 곧 운이라 하는 것죠.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런 습관을 일컬어 '생활화'라 합니다. 생활화는 습관의 다른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자 하고, 그 알고자 하는 것을 좋아하고, 마침내는 즐기는 그런 습관을 기른다면 그리하여 생활화 된다면 비단 공부 뿐아니라 무슨 일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선생이라면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고 더 나아가 즐긴다고 했을 때 얼마나 좋은 연구 성과가 나오겠으며 얼마나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겠습니까? 이건 월급쟁이로서 자신을 비하시키고 시간이나 떼우는 경우와는 하늘과 땅 차이 아니겠어요?
학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죠. 배우고 그걸 응용하고 그 응용이 바탕이 되어 또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이러한 일련의 돌고 도는 과정을 타의에 의해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좋아서 하고 그 좋은 것이 생활화 되어 즐길 때 학교 생활이 유쾌한 것은 둘째요 무엇보다 그 자신의 인생이 알차게 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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