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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처세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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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처세 <하>

신세대를 위한 論語 30강 <26>

***한글 번역문**

설사 천하에 둘도 없는 재주와 지식을 구비했다 하더라도 사람됨이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밖의 것은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

***논어 원문**

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 (論語, 泰伯)

***한글 독음**

자왈, “여유주공지재지미, 사교차린, 기여불족관야이.” (논어, 태백)

***원문 자구 주석**

如有周公之才之美 : 여(如)는 같다. 주공(周公)은 주나라 무왕의 동생, 성왕(成王)을 보좌하여 주 왕실의 안정을 확보함. 공자가 추종했던 이상형 인물. 여유(如有)는 도치된 구조. 주공과 같은 재주와 능력이 있다.

使驕且吝 : 使는 연결사, 가정을 나타냄. 且는 연결사, 병열 관계를 나타냄. 교만하고 또한 인색하다면.

其餘不足觀也已 : 其餘는 그 나머지. 不足觀은 볼만한 것이 없다. 소용 없다는 뜻. 也已는 어기사. 어감을 나타냄.

***해설**

공자는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요즘처럼 자기 PR을 하면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풍조와는 전혀 다르죠. 아무래도 이건 시대가 변한 것이니까 문제거리로 삼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남이 잘난 체 하는 모습을 곱게 봐주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겸손은 역시 미덕이죠. 교만의 문제에서 공자는 매우 민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공과 같은 인격과 능력이라 하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해서는 그 밖의 것은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겸손의 문제와 관련하여 김용옥 교수와 서지문 교수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필자가 대학 2학년일 때 영문과 무슨 수업을 들었죠. 담당 교수가 들어오는데 처음에는 영문과 조교인 줄 알았습니다. 아직도 미혼이라 소녀의 수줍은 티가 남아있는데 하물며 그 당시야 오죽했겠어요. 서지문 교수였습니다. 목소리도 어찌나 가늘고 조용조용 야그하든지 앞자리에 앉아서 경청했는데 침 한방울도 안 튀기며 다소곳하게 강의했더랬죠.

그렇게 얌전하고 조용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던 서지문 교수가 한때 동료교수였던(고대 문과대에서 몇년 같이 교수했음) 김용옥 교수를 정면으로 비판하기 시작했죠. 김용옥 교수가 TV에서 <논어> 강의를 하면서 오만방자하게 굴었다는 것이죠.

서지문 교수가 김용옥 교수를 공격하는 이야기 중에 가장 중요한 논점은 겸손의 문제였죠. 사람들은 서지문 교수의 비판 목표가 <논어>의 해석에 있지 않고 <논어>를 해설하는 김교수의 태도를 문제삼는다고 하지만 그러나 서양 학문은 학문을 객관적인 대상으로 연구할 따름인데 반해 중국 학문은 학문을 생활과 인생의 실천적 관점에서 연구하지요.

공자 자신도 스스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본인 스스로도 겸손했고 제자들에게 겸손할 것을 요구했어요. 이런 면에서 본다면 김용옥 교수가 허물 잡힐 일을 하긴 한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문제를 여기까지만 본다면 김용옥 교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야요. 왜 그럴까요?

무릇 김용옥 교수가 살아온 내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왜 이렇게 튀는 행동을 하는지 짐작합니다. 아버지가 의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린 시절 온몸의 뼈마디가 쑤시는 정체불명의 질병을 앓았어요. 너무도 심한 통증에 송곳으로 팔뚝을 마구 찔렀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가 처음부터 중국 철학을 공부했던 것은 아니고, 무슨 생물학과에 들어갔다가...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다시 신학대학을 들어갔다가 거기서도 중퇴했다고 하지요. 그리고는 다시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당시 고려대 철학과에는 한국 중국철학계의 대부격인 김충렬 교수가 있을 때지요. 이 분의 강의에 홀딱 반해서 중국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해요.

대학을 졸업하고 대만대학 철학과에서 석사, 도쿄대학인가 교토대학인가에서 아마 석사를 또 했을걸요. 그리고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바드 옌칭학원에서 박사를 했어요. 한국에 이런 인재가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경하할 일입니다. 그가 귀국하여 교수 자리를 알아보려할 때 당시 고려대 철학과 원로교수였던 은사 김충렬 선생은 "내 자리를 내놓을테니 용옥이를 교수 시켜라"고 했답니다. 예나 지금이나 넘 튀는 사람은 교수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죠. 그런 상황에서도 은사는 제자를 위해 자기 자리도 내놓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정도로 아낀 제자였다는 겁니다. (은사에게 보답하는 측면에서도 TV강의에 모셨으면 했는데 성사되지 못했음)

일반적으로 동양학, 특히 중국학을 전공하는 경우 학문으로서 연구하기 때문에 부득이 방법론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데 연구 방법론에 있어서는 서양 쪽이 비교적 체계가 잡혀있죠. 김용옥 교수는 서양물을 먹었기 때문에 새로운 각도에서 중국철학을 다방면으로 재조명하기 시작했어요. 소위 "기철학"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그런 맥락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신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 매스컴을 타면서 뜨게 되면 그 맛에 중독되고 말죠. 차분히 저술하고 강의해도 훌륭한 연구성과를 올리며 학계에서도 충분히 인정받을 사람인데 대중 쪽으로 신속하게 접근했던 것입니다. 그가 대중 쪽으로 접근하게 된 계기는 제5공화국 군부정권 시절, 양심 선언과 함께 교수자리를 사퇴하면서 촉발되었다고 봐요. 그러나 그의 울분은 어릴 적 질병의 고통, 성장 후 목격한 사회부조리, 교수 사회의 불협화음 등도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양심 선언과 함께 떠났던 교수직에 훗날 다시 복귀하려 할때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복직이 안되었으므로 그가 부득이 대중 쪽으로 접근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러나 일반 대중이란 차분히 설명하는 것보다는 즉흥적이고 자극적인 제스처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갈수록 강도를 높이지 않으면, 더욱 엽기적인 제스처가 아니면 이 또한 갈수록 약발이 안 서는 것이죠. 김용옥 교수는 바로 그러한 순환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학문의 대중화에 성공했지만 후유증은 적지 않을 것 같아요. 그 하나가 바로 <논어>를 강의하면서 '공자'까지도 동생 취급을 했잖아요. 그건 김용옥 교수의 스승 김충렬 선생도 감히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죠. 즉흥적이고 엽기적인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김용옥 교수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다소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건 한나라 때의 동방삭(東方朔)이 생각났기 때문이죠.

동방삭, 들어보셨는지요? 삼천갑자 동방삭.. 들어보셨나요? 기지와 재치가 당대 최고였던 동방삭은 물론 박학다식하기로도 유명했죠. 한무제 당시 사람이었는데 말단관리로 평생을 보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동방삭을 비꼬아 다음과 같이 찔러댔죠.

"사람들은 당신이 넘 튀는 행동을 해대서 미쳤다고 하는데 아시는지? 당신은 박학다식하고 그렇게도 재주 많은 사람인데 어찌 이리 말단에서 고생하시오? 전국시대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타고난 입씸으로 6개국의 재상을 거머줬는데 당신은 제자백가에 통달하고 학문이 당대무쌍이라 떠들면서 고작 차지한 자리는 말단에 끼니까지 걱정하다니 할 말 있으쇼?"

이에 동방삭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맹꽁이들.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인 것이야. 시대가 틀려욥. 소진 장의 시절은 전국시대에요. 정신적 지주가 있던 때도 아니었고 누구나 존경하고 따르는 그런 원로도 없던 때였다구.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국력을 강성하게 해야할 때였기에 소진 장의 같은 허접한 녀석들이 얼마든지 자신의 포부를 펼쳤어요. 근데.. 지금은? 위로는 영명한 지도자 한무제가 계시고, 천하는 통일되어 상하질서가 잘 잡혀있다구. 그저 백성들은 정해진 루울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시절인데 여기서 튀어봐야 튈 방도가 없는 것이에욥.
소진 장의가 나랑 동시대에 살았다면, 그놈들 말단관리는 커녕 아마도 밥굶어 죽었을 거요. 흐흐"

무슨 뜻입니까? 현시대는 사회 그물망이 안정된 구조로 촘촘히 짜여있어 동방삭의 재주를 가진 사람은 많겠지만 그러나 파격적인 제스처와 엽기적인 화두가 아니고서는 매스컴의 주목을 못받아요. 결국, 김용옥 교수가 보여주고 있는 패러다임은 이 시대의 지식인에게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문을 대중화시키려면 어쩔 수 없이 동방삭이 되어라. 점잖게 품위있게 해서는 약발이 잘 안 설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지식인 중 일부는 우울해한다고 합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나요? 대학교 학부제 이후로 점점 엽기적으로 변해가는 대학강의들. 이젠 대학에서도 실용적인 강좌가 아니면 동방삭 교수의 동방삭 교수스타일이 아니고서는 견디기가 점점 힘들지 않습니까? 얼마전 모 대학의 기말고사 시험에 고스톱 점수 계산 문제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어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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