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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처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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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처세 <중>

신세대를 위한 論語 30강 <25>

***한글 번역문**

공자가 말하길, 사람으로서 떳떳하게 말하는 것, 그렇게 하려면 쉬운 일이 아니다. (헌문편)

***논어 원문**

子曰, “其言之不怍, 則爲之也難.” (論語, 憲問)

***한글 독음**

자왈, “기언지불작, 칙위지야난.” (논어, 헌문)

***원문 자구 주석**

其言之不怍 : 怍(작)은 부끄러워하다. 不怍은 부끄러워하지 않다, 즉 떳떳하거나 당당하다. 言之不怍은 떳떳하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 제일 앞의 其는 불특정 인칭 대명사. 여기서는 그냥 '사람'으로 해석함.

則爲之也難 : 則은 부사, 동작이 단시간에 일어남을 표시. 앞에 상황을 제시하고 그런 조건이라면 곧바로 어떠한 상황임을 제시해줌. 爲之也는 그렇게 하려면. 難은 어렵다.

***해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입에 침바른 소리를 하거나 혹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표정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힘들지 않던가요? 게다가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하고, 아울러 눈동자를 과연 어디에 두어야 좋을지 마냥 굴리게 되지요. 그래서 말을 하면서 떳떳한 표정, 당당한 표정, 나아가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는 일이 힘들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평소에 행실이 떳떳해야 하지 않겠어요?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지었던 송나라 때 사마광(司馬光)은 “남에게 말못할 일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곧 자신이 한 일은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다는 것으로 떳떳함을 뜻하는 것이죠. 이런 사람은 말을 할 때 떳떳하고 당당하게 말할텐데 그렇게 하려면 평소에 얼마나 자신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였을까요? 그러므로 힘든 일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건 경험담인데, 필자가 대학교 다닐 적 이야기입니다. 돈을 좀 써야 할 일이 있었어요. 연애도 하고 그러려면 실탄이 필요하더라고요. 그 당시 다들 어려웠던 시절이라 등록금과 정해진 용돈 이외에는 집에 손벌리기가 참 힘들었죠. 하지만 필요하니까 거짓말을 해서 돈을 좀 탔는데 그때 말을 꺼내며 부모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뭔가 속이 찔리니까 그랬죠.

몇년 되었지요, 한보 청문회라는 게 열렸습니다. 정X수라는 영감님이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데 시종일관 눈길을 외면하거나 아니면 눈길을 아예 내리깔고 대답하더군요. 그때 필자는 위 구절이 또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당당하면, 마음에 전혀 꺼리낄 게 없으면 상대방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학생들 중에 간혹 필자를 찾아와서 무슨 이야기하는데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면 그거 약간 의심가는 것이죠. 다른 일로 결석해놓고선 아파서 못 왔노라고 둘러대거나 하여튼 십중팔구 무슨 수작을 피운다고 판단합니다. 흠냥, 필자가 너무 오바한 건가요?

<논어>에서는 이렇게 말 조심을 하라고 하면서도 공자도 사람인지라 인간적인 약점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그런 무지막지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는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음과 같이 뒷구멍도 열어놓았습니다.. 그건,

실수했는데 고치지 않아? 그게 실수야. 子曰, “過而不改, 是謂過矣.” (위령공편)

참 간단해서 좋군요. 이건 비단 말 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듯 하군요. 잘못 했는데, 혹은 실언했는데... 이런 경우 그냥 인정하고 반성하고 그 다음부터는 잘 하려고 하면 그만인데, 공자 당시의 사람들은 제대로 반성하고 잘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변함이 없단 말입니까? 참 묘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공자는 <논어>에서 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 힘들다. 난 지금까지 자기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깨닫고 자신을 가혹하게 꾸짖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子曰, “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 (공야장편)

참 난감하군요. 적어도 공자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그 당시에도 잘못한 행동에 대해 심하게 자신을 꾸짖는 사람이 없다니요. 나는 공자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보았습니다.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했다. 그런데 그걸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경우 대개 속으로 살았다, 아무도 모르니까.. 그냥 넘어가자.. 대개들 이렇지 않나요? 이런 관점에서 내 자신을 돌아보니까 정말 그러네요. 차 몰고 가다가 안산 상록수 역 근처에서 중앙선을 가로질러 간 적이 있습니다. 남들은 보았지요. 하지만 급하니까 그냥 저질렀습니다. 경찰이 없었기 때문이죠. 만일 경찰이 있었다면 필자는 결코 그러진 않았을 겁니당. ^^

사람들이 보는데도 경찰이 없으니까 이러는데, 만일 경찰은 고사하고 사람들이 전혀 없는 그런 곳에서는 유턴이 뭐야... 아마 무슨 짓이고 할지 몰라. 그래도 필자가 인격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아닌데도 이러는데 하물며 떨거지 같은 인간들이야. 그래서 위 구절은 공자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훗날 송나라 명나라 때 공자의 추종자들은 '신독(愼獨)'이란 슬로건을 들고 나오는데 이거 바로 공자의 위 이야기를 표어로 압축한 것이예요. 신독이란, 혼자 있을 때에도 자신을 추스린다... 이런 뜻입니다. 남이 보건 보지 않건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하게 다스린다 이런 뜻입니다.

대략 이렇게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하고 자신에게 엄격하고 이러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실수는 없을 것같군요. 대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자신에게 묻기보다는 상대방에게 남에게 문제점을 찾으려고 한단 말이죠. 그래서 그런지 <논어>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안 좋은 일이 생겼을 경우, 수양이 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으려 하는데 수양이 덜 된 사람은 남한테 문제를 찾는다.” 子曰,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위령공편)

이건 정말 남 이야기가 아니네요. 필자도 가슴이 뜨끔거립니다. 학부제 이후로 선후배 사이의 정이 약해진 것은 물론이고 사제간에도 문제가 생겼죠. 특히 수강생들이 학기말에 강의평가서를 작성하면서부터는 교수들의 태도가 이상해졌어요. 이상해졌다기보다도 학생들을 대하는 데 따뜻한 그 무엇이 결여되기 시작했습니다. 필자부터도 그렇게 되더라 이겁니다. 이 문제의 근원은 학교라는 배움의 터에서 학생이 선생을 평가하는 방식이 소비자가 판매자를 평가하듯 한다는 데 있는 것이지요. 지식과 인격을 교육시키는 것과 TV나 PC를 파는 것은 성격이 다른 것 아닌가요? 이걸 동일선상에서 획일적으로 재단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설령 이렇다 하더라도 공자와 <논어>의 관점에서 보면 남을 탓할 일이 아니다 이거지요.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길래 이런 지경까지 왔느냐... 자율적으로 알아서 지식과 인격을 알차게 전수했느냐? 휴강을 자주 하지 않았느냐? 강의실에 늦게 들어오고 일찍 나가지 않았느냐? 리포트를 내주기만 하면 다냐, 과연 꼼꼼하게 보고 피드백을 했느냐? 교육부 탓하고 학생 탓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자.. 이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논어>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요, 남을 탓하고 남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물어서 떳떳하면 된다는 것이 <논어>의 이야기예요. 강의평가면 어쩌고 업적 평가면 어째, 자기 자신만 잘 하면 되는 것이지......

그런 의미에서 <논어>의 다음 구절은 의미가 있습니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라.”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학이편)

“남이 나를 인정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능력 없음이나 걱정하라.”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其不能也.” (헌문편)

“자신에게 가혹하고 남에게 관대하면 나쁜 소리 들을 일이 없을 것이다.” 子曰, “躬自厚而薄責於人, 則遠怨矣.” (위령공편)

이 정도의 수양과 정신이면 처세에는 문제가 없을 것같군요. 사람마다 성격이 다 틀려서 벼라별 인간이 다 있지요. 공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돈이 많게 되면 사람이 좀 거만해진다. 돈이 없게 되면 사람이 좀 째째해진다. 거만하느니 차리리 째째한 편이 낫다.” 子曰, “奢則不孫, 儉則固. 與其不孫也, 寧固.” (술이편)

째째한 거야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요? 돈이 없는데 어떻게 있는 체 하며 흥청망청 해요? 그런데 돈이 많으면 대개 거만해져요. 거드름을 피운다 이겁니다. 공자는 거드름을 피우느니 차리리 째째한 편이 낫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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