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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재경 망명설’ 오보의 교훈 세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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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재경 망명설’ 오보의 교훈 세가지

<김창룡의 미디어비평>

3년전 사망한 인사와 멀쩡하게 근무하고 있는 사람까지 해외로 망명했다고 보도한 연합뉴스의 북한관련 보도가 국제망신을 자초하고 있으며 한국언론의 신뢰성을 실추시키고 있다.

그동안 국내언론의 북한관련 오보는 시리즈로 묶을 만큼 많았지만 이번처럼 신속하게 오보로 확인된 경우는 드물다. 또한 연합뉴스가 오보를 인정하고 해명과 사과를 발표한 경우도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신속했다. 연합뉴스의 오보를 바로 잡은 일에는 일방적으로 오보를 수용하며 확대재생한 방송사들과는 달리 중앙일보가 큰 몫을 했다. 언론에 의한 언론보도 감시와 견제 구조가 제대로 작동했다는 점에서 한국언론의 진일보한 모습을 역설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길재경 망명설’ 오보 소동은 한차례의 해프닝으로 넘어가기에는 풀어야 할 심각한 문제점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이 기회에 한국언론계에 고질적인 문제 세가지를 제기하고자 한다. 특히 연합뉴스는 최근 ‘연합뉴스사법’까지 제정해서 국가기간통신사로 거듭날 수 있는 법적 토대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과거의 관행을 탈피하지 못하면 한시적 법안은 용도폐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기를 촉구한다.

지난 17일 연합뉴스가‘북한 김정일 비서실의 길재경 부부장의 망명설’을 첫 보도하자 KBS, MBC, SBS 등 방송3사는 이를 크게 보도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지난 19일 중앙일보는 "길재경 부부장이 3년 전인 2000년 6월 7일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관련 증거로 평양 애국열사릉에 있는 길재경 부부장의 묘비를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오보를 밝혀냈다.

이에따라 연합뉴스는 19일 '길재경 망명설 사과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사고(社告)를 내고 "국내외에 엄청난 파장과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연합뉴스는 해당 기사에 거론된 인사들 개인은 물론, 관련 기사를 실은 국내외 언론사,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한바탕 소동은 연합뉴스의 ‘항복’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 소동을 지켜보면서 이번 기회에 논의되고 풀려야 할 세가지 언론계 숙제의 첫 번째는 취재원 공개여부다. 연합뉴스는 사과문에서조차 오보경위를 자세히 밝히지 않으며 ‘취재원 보호’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중대한 보도를 하면서 독자들에게 취재원을 공개하지는 못하더라도 부장과 국장 등과는 상의가 있었고 취재원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야 했다. 기자 한 개인의 ‘취재원 보호’를 맹신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하고도 무책임한 보도태도다.

최근 152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뉴욕타임스가 제이슨 블레어라는 기자 때문에 1면에 사과기사를 내보내고 진상을 조사하는 소동을 벌이는 이면에는 ‘취재원 조작’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가 1981년 취재원 조작으로 퓰리처상까지 받은 자네트 쿠크 기자의 ‘지미의 세계’ 기사도 취재원 조작과 가공의 인물 등장때문이었다. 이후로 이들의 언론윤리강령은 부분적으로 수정됐다. 취재원 보호와 함께 취재원 공개를 더욱 중시하는 쪽으로. 특히 중대한 사안이나 비판하는 기사의 경우 취재원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언제까지 취재원 보호라는 편리한 보호막안에서 오보행렬을 이어갈 것인가.

더욱 한심한 쪽은 확인이 어렵고 사실관계에 확신이 없는 이런 북한관련보도를 가장 중요한 첫머리 보도로 선정하여 내보내는 국내방송사들의 뉴스가치판단 행태다. 기사의 경중판단은 기자보다 부장과 국장들의 주업무인만큼 안이하고도 무책임한 부장, 국장들이 주비판대상이 돼야 한다.

KBS는 17일 저녁 9시 뉴스에서 헤드라인으로 '길재경 망명설'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첫번째 기사는 '김정일 최측근 길재경 부부장 등 망명' 두번째는 '길재경 부부장 망명, 파장 클 듯'이라는 기사였다. MBC 역시 헤드라인 3건 모두 길재경 관련 보도였다. SBS 역시 길재경 부부장 관련 보도를 앞머리에 위치하여 비중있게 다뤘다.

연합뉴스가 북한관련 보도에 관한한 ‘취재원 보호’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 적어도 해당부장, 국장은 취재원이 누군가를 알고 있어야 하며 이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언론기관에 송고서비스를 결정해야 한다. 방송사들이 보다시피 이처럼 정신못차리고 확인조차 않은 채 보도하는 관행을 몰라서 ‘소문수준의 보도’를 내보내는 것인가. 연합뉴스의 보도강령 재손질과 준수가 시급하다.

두 번째 한국 방송사들이 관행적으로 해오는 비윤리적인 보도관행이다. 기사의 출처를 밝히지 않으며 마치 자사 특파원이나 기자가 취재, 보도하는 부도덕한 후진적 보도관행이다. 특히 이라크-미국간 전쟁보도를 한번 살펴보라. 이것이 미국방부의 보도자료인지, 외신종합인지, 어느 잡지에서 번역한 번역물을 재가공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보도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출처를 밝히는 것이다.

이번에도 KBS와 SBS는 연합뉴스의 기사를 보고난 뒤 보도하면서도 연합뉴스 크레딧을 밝히지 않은 부도덕한 짓을 범했다. 그것이 관행이고 방송계에서 일반화된 것이라 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고쳐야 한다. 당장. 남의 기사를 인용, 보도하면서 출처를 밝히지않고 자사 취재보도인 양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도적질’이다. 공영, 상업방송에서 약속이라고 한 듯이 ‘기사 표절’ 차원을 너머 ‘기사 도적질’이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더구나 연합뉴스는 방송사와 경쟁매체도 아니며 계약에 의해 뉴스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사다. 통신사 크레딧을 밝히는 것이 마치 방송사의 게으름과 무능을 탓하는 것이라 오버하지 말라. 시청자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제발 쫌스럽게 굴지말고 당당하게 출처를 밝혀주고 시청자의 판단을 구하라. 이 부분에 대해 연합뉴스는 당당하게 소송을 걸어서라도 연합뉴스 크레딧 명기를 의무화 시켜야 한다. 과거 회원사 관리차원에서 알고도 넘어가주는 관행이 지금과 같은 크레딧 무시와 비윤리적 보도관행으로 이어졌음을 연합뉴스는 부분적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보 그후 뒤처리 방식이다. 신속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사의 보도는 때로 불가피하게 오보를 범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오보 그 후를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신중한 보도를 담보할 수 있는 구조와 맞물려 있다. 연합뉴스가 즉각 오보를 해명하고 사과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진일보한 모습이다.

그러나 사과문에는 오보와 관련한 처벌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온적이고 조직보호논리의 인상이 강하다. 물론 오보를 범한 자에게 모두 징계를 가하라는 주장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중대한 보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보도하게 됐는지 그 경위를 소상하게 언론사에 밝히는 것이 급선무다. 더구나 북한관련보도는 남북관계에 치명적인 상황악화를 가져올 수도 있고 외교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책임자 하나 없다면 어불성설이다. 물론 그 당시 상황에서 모두가 최선을 다한 결과라면 책임을 물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회사전체의 신뢰도를 무너뜨린 오보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와 공개, 관련자 문책은 당연한 수순이다. 엄중한 책임을 묻지않는 곳에 취재원 보호논리를 내세우며 조작기사와 기자편의의 부도덕한 기사양산은 되풀이 된다.

CNN은 오보를 내보낸 뒤 어떻게 일처리를 했는지 명심하라. CNN은 1998년 6월 월남전 당시 미군이 사린가스를 사용했다는 고발보도를 내보냈다. 그러나 이 보도는 훗날 오보로 판명났다. 한국같으면 방송위원회가 ‘경고나 견책’ 정도 내렸거나 아니면 이런 오보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CNN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가혹할만큼 무거운 자체 징계를 내렸다. 프로그램 담당 피디 에이프릴 올리버와 잭 스미스를 해고했다. 군사 평론가 페리 스미스도 해고했다. 이 프로그램 진행자 피터 아넷트만 견책을 당했다. 이 사건이후 CNN은 기사의 정확성과 공정성, 책임성을 심사하는 평가기구를 별도로 설치하기로 했다. 선진언론은 한 사건에서 반드시 교훈을 찾고 재발방지 장치를 마련하지만 후진언론은 잘못을 반복하는 미련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연합뉴스의 '대오보 이후'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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