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번역문**
공자가 말하길, 아랫사람은 경외의 대상이다. 기성세대를 능가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나이 40, 50이 되어서도 별볼일 없다면 이런 사람은 역시 겁날 것이 없지.
***논어 원문**
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論語, 子罕)
***한글 독음**
자왈, “후생가외, 언지래자지불여금야? 사십오십이무문언, 사역불족외야이.” (논어, 자한)
***원문 자구 주석**
後生可畏 : 후생가외. 後生은 뒤에 태어난 사람. 즉 아랫사람. 可는 조동사, ~할만 하다. 畏는 동사, 두렵다. 아랫사람은 두려워할 만하다. 즉 경외의 대상이다.
焉知來者之不如今也 : 焉은 의문 대명사, 어찌. 知는 동사, 알다. 來者는 올 사람, 不如~는 ~만 못하다. 今은 지금. 올 사람이 지금 사람보다 못할지 어떻게 알겠느냐. 이말은 곧 아랫사람들이 현재 그대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대보다 못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는 뜻.
四十五十而無聞焉 : 而는 연결사, ~이면서. 나이 40, 50이면서. 無聞은 뭐 잘났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이 없다. 焉은 어기사, 일종의 가정법의 뉘앙스가 있슴.
斯亦不足畏也已 : 斯는 대명사, 이것. 亦은 부사, 역시. 不는 부정부사, 足은 조동사, 반드시의 뜻. 不足은 ~할 필요가 없다. 畏는 동사, 두려워하다. 也已는 어기사, ~일 뿐이다.
***해설**
뛰어난 젊은이를 볼 때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글뜻 그대로는 젊은이는 경외할 만하다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성세대를 능가할 만한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빈둥거리는 젊은이는 어떨까요? 노력하지 않는 젊은이는 무시당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윗 구절에서 그대로 나오지 않나요? 나이 40 50이 되었는데도 별 볼일이 없는 인간은 무시 당해도 싸다, 이렇게 말하고 있군요.
공자와 <논어>의 이야기는 시대착오적인 부분이나 봉건적인 잔재도 물론 있지만 공자가 위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자체 하나로도 응당 높게 평가해야 합니다. <논어>에는 의외로 이런 이야기가 등장하여 사람을 좀 놀라게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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