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공자의 사상 <상>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공자의 사상 <상>

신세대를 위한 論語 30강 <10>

***한글 번역문**

개인적인 욕망을 억제하여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다.

***논어 원문**

克己復禮爲仁. (論語, 顔淵)

***한글 독음**

극기복례위인. (논어, 안연)

***원문 자구 주석**

克己復禮爲仁 : 극기(克己)는 원인, 복례(復禮)는 결과. 극기하여 예로 돌아감.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이 구절에서 다시 주어가 됨. 극기복례하는 것이 인(仁)이다.

***해설**

옛 중국의 사회 구조는 서양의 그리스나 로마와는 달랐습니다. 중국 고대사회를 지탱했던 사회구조는 서양처럼 귀족과 평민 그리고 노예라고 하는 두 계층의 대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촌수의 멀고 가까움으로 결정되는 혈연관계와 상하가 분명하게 줄그어진 등급관계가 화기애애하게 융합된 그런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주나라 왕조(周王朝)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주왕조의 구조를 분석해보면, 형님 동생으로 종파(宗派)가 나뉘고 혼인으로 상호 연결되며, 적자와 서자로 차별을 두는 등, 거대한 혈연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피라미드의 꼭대기와 중간 그리고 밑바탕 사이에는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고 층층이 서로 압박하면서도 상호 의존하는 관계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상호 의존관계가 혼란스럽지 않게 유지시켜주는 운영체계가 바로 종법제도(宗法制度)이며, 이 종법제도를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예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라는 것은 그 내용이 실로 광범위한 것입니다. 그 중에는 당연히 혼인제도도 포함되는데, 이것은 인척간의 결혼으로 윤리질서가 파괴되는 것을 막고 서로 다른 성씨끼리 결혼하도록 유도하는 작용을 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혈연관계 및 상하 등급의 관계가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또한 상복(喪服)도 대단히 중요한데 이것은 친척관계의 멀고 가까움을 표시해주고, 이와 동시에 가족 내에서의 상하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이자 일가친척을 연결해주는 고리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향음주(鄕飮酒; 동네 술잔치)와 사상견(士相見; 어른들의 모임) 등의 규범도 중시됩니다. 그 이유는 친척간, 동네간, 친구간의 인간관계를 화기애애하고 조화롭게 유지시키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알현의 예(禮)인 조근(朝覲; 윗사람이나 천자를 알현함)과 빙문(聘問; 사대부간의 외교사절 방문)에 관한 예절도 중시되었습니다다. 이는 등급간의 존비와 상하간의 합작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란 것이 강력한 법적 제도나 장치는 아니지만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법적 제도나 장치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법적 제도나 장치를 강력한 법규라고 한다면 예는 부드러운 법규라고 불러도 무방합니다. 이 부드러운 법규는 가정과 친척 사이 뿐아니라 크게는 국가 전체로 보았을 때의 각양각색의 인간관계를 세밀하게 규정하여 각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본분을 지키도록 부드럽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예가 있음으로 해서 등급질서가 문란해지지 않는다. 즉 예란 것은 사람마다 이 등급의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의 위치를 확인시켜주고 이와 동시에 각자의 맡은 바 의무와 책임을 다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단지 이 예만 착실히 준수하면 피라미드 구조는 쉽게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공자는 바로 이 예란 것과 이 예가 규정하는 예의제도(禮儀制度)를 대단히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러길래 <논어>에서 예를 수시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논어>에서 예를 언급한 부분이 무려 48번에 달한다는 점은 바로 공자의 관심을 뚜렷히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공자가 살던 시대는 바로 이 예가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왕이 왕답지 않고, 제후가 제후답지 않고, 등급이 낮은 사람이 등급이 높은 사람 머리를 타고 명령을 내리는가 하면, 등급이 높은 사람이 하루 아침에 추락하여 노예가 되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지 않나, 아내가 남편을 올라타질 않나...... 그 육중하고 안정적 구조를 유지하던 피라미드가 뿌리부터 흔들려 붕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공자의 눈에는 지극히 위험하고 가슴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이런 혼란상을 목도한 공자는 속이 타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그는 피라미드가 안정을 되찾기 간절히 바랐으며, 안정을 되찾게 되면 그 피라미드의 구조가 안정되면 자연히 세상도 편안해질 거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공자가 왜 <논어>에서 목이 쉴 정도로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외쳤는지 이제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