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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권과 헌법위에 군림하는 부시"

미국인 회교도 파딜라의 인권침해 사례, 獨 슈피겔

미국은 더 이상 인권국가이기를 포기했는가. 9.11 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부시 행정부가 인권을 보장하는 법치국가 미국의 헌법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온라인은 6일 '법치국가에 대한 공격'이란 뉴욕발 기사에서 대테러전쟁을 벌이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법치국가에 대한 정의를 새로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일반 국민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있는 초헌법적 존재이며 더욱이 존 애시크로프트 법무장관은 최근 검사들에게 최고형인 사형을 더 자주 구형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미국 일반 시민들의 인권상황이 전쟁중인 부시 행정부에 의해 얼마나 침해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6일자 슈피겔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법치국가에 대한 공격"**

5월 8일은 1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미국인 호세 파딜라(Jose Padilla)에게 잊혀지지 않는 날이다. 몇해 전 이슬람교로 개종한 파딜라는 지난해 5월 8일 체포돼 1년의 수감생활중 11개월을 캐롤라이나 남부에 위치한 군 수용소에서 보냈다. 가족과 친지들과의 접촉이 금지된 파딜라에게는 변호사 선임권마저 거절됐다. 하지만 파딜라는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 미국 검찰이 아직까지 파딜라를 상대로 아무런 기소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딜라의 운명은 부시 대통령이 애시크로프트 법무장관과 함께 얼마나 미국의 법체계를 황폐화시키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전쟁에는 어떤 한계도 없으며 심지어 미국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헌법조차도 이들의 행보를 막을 수 없다. 미국 헌법은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정상적인 재판절차 없이는 어느 누구의 자유와 소유도 침해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피고인의 경우 정치적으로 독립이 보장된 법원에서 신속하고 공개적인 소송을 요구할 권리와 자신의 변호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를 갖고 있다.

이 인권선언(권리장전)은 미국인들의 생활에 깊이 각인돼 있는 아주 기본적인 존재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전쟁중에는 이같은 인권선언이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모든 것이 변했다. 부시와 애시크로프트에게는 파딜라가 체포될 당시 미국은 전쟁상태가 아니었으며 전쟁은 의회가 선언하는 것이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별다른 장애요인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부시의 무기는 반테러법과 대통령령**

부시와 애시크로프트는 그들이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법률전문가들의 비판에 대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반테러법(Patriot Act)'을 들이댄다. 반테러법은 미 의회가 지난 2001년 가을 9.11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통과시켰다. 부시는 반테러법이 미치지 않는 경우에는 소위 '대통령령(Executive Order)'을 선포한다. 이를 통해 지난 2001년 11월 혐의를 받고 있는 외국인들을 군사법정에 세우게 하는 부시의 군사명령이 가능했다. 파딜라의 경우 애시크로프트는 1942년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적용했는데 당시는 실제로 2차 세계대전중이었다.

호세 파딜라는 2002년 5월 8일 시카고공항에 도착하며 바로 체포됐는데 당시에는 파딜라가 9.11 사태 관련자들 추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증인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당시 한 뉴욕의 판사는 파딜라에게 변호사를 선임하고 한달 후인 2002년 6월 11일을 심리일로 정했다. 하지만 부시는 같은 해 6월 10일 파딜라를 '적의 전사(enemy combatant)'라고 선언했다. 법무부는 적의 전사로 선언된 사람은 무제한으로 변호사없이 구류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애시크로프트는 파딜라가 알-카에다와 접촉하고 있으며 '더러운 폭탄'을 미국에서 폭발시키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아직까지 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970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파딜라는 이미 여러 차례 수감된 전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 논쟁의 핵심은 파딜라의 개인적 품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미국인으로서의 시민권에 대한 것이다. 마이클 무카시 연방판사는 이미 두 차례 파딜라의 변호사인 돈나 뉴먼이 자신의 의뢰인과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지시했으나 부시 행정부는 두 차례 모두 반론을 제기했다. 뉴먼은 현재 상급법원이 제시할 기일을 기다리고 있다. 뉴먼이 파딜라와 대화한 것은 지난해 6월 7일이 마지막이었으며 이후 변호사협회들이 제기한 부시 행정부의 권력남용에 대한 항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통령이 법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아니다"**

법치국가 미국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는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카토연구소의 형법프로젝트 국장인 티모시 린치는 "대통령은 자신의 시각이 옳다고 하더라도 법 체계 내에서 움직여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다. 만일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한다면 전체 체계가 불안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린치는 이미 2001년 12월 미 상원에서 부시 행정부의 법해석에 대해 "대통령이 미국 땅에서 독자적으로 인간을 넘어서 경찰과 검사, 판사를 만들 수는 없다"며 "만일 행정부가 헌법이 불충분하다고 판단할 경우 개정하려는 노력을 해야지 이를 무시하는 것은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파딜라 사례에서 부시 행정부가 내세우는 논리는 끔찍할 정도로 단순하다. 부시 행정부는 로웰 자코비 군사정보국장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파딜라에게 변호사 접견을 허용할 경우 그동안 정부가 파딜라에게 가해온 심리적 압력이 수개월 후퇴하게 되며 정부의 심문방법이 비판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파딜라가 어떤 상태로 취급받고 있는지에 대한 것 뿐이다. 이는 정확하게 경찰이나 검찰의 범죄용의자 연행시 연행이유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이 있음을 미리 알려 주어야 한다는 미란다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신발폭탄 용의자 영국인은 정상적인 사법절차 향유**

반면 신발에 숨긴 폭탄을 이용해 미국 비행기를 공중에서 폭발시키려 했던 영국인 리차드 라이드는 반대로 변호사 선임과 정상적인 사법절차를 향유하고 있다. 이는 애시크로프트가 증거도 불충분한 파딜라를 고분고분하게 만들려고 한다는 비판가들의 의심을 확인시켜주는 사례다.

법치국가 미국의 위상과 헌법에 대한 손상은 9.11이 터지자마자 이미 시작됐다.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빌딩이 무너지자마자 미국내 1천2백명의 외국인들이 체포돼 1주일간 억류됐었다. 어느 누구도 혐의에 대한 뚜렷한 증거없이 임의로 구속될 수 없다는 미국 헌법과 최고법원의 판결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른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최근의 이송절차들은 종종 비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 법원이 "민주주의가 폐쇄된 문 뒤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경고한 것도 소용이 없다. 애시크로프트는 또 더 이상의 망명신청자들을 막기 위해 이민자들이 테러리스트와 관계가 없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이주절차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구금상태로 지내야 한다고 결정했다.

미국으로 이주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기소없이 '반드시 필요한 증인'으로 구금될 수 있다. 애시크로프트는 아무런 법원의 동의없이 변호사와 의뢰인의 신뢰관계를 묵살했다. 워싱턴에 위치한 시민권 보호를 위한 시민단체 ACLU의 로라 머피 국장은 "애시크로프트는 분명히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 또한 이와 관련해 지난주에 미국 연방법체계를 하이재킹(비행기납치)하려는 우파들의 끊임없는 시도라고 비판했었다.

***"미국인들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바로 부시 행정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9.11 직후 "미국은 미국인들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테러리스트들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역설적인 것은 미국 시민들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를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방해하고 제한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부시 행정부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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