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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너무도 보수적 진보'라굽쇼?

[손호철 칼럼]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만 보나

'보수적인, 너무나 보수적인 진보'. 그렇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과 세계> 편집주간인 장은주 교수가 나와 박노자 교수에게 최근 이 지면을 통해 붙여준 꼬리표이다(☞관련기사 보기).

구체적으로, 진보신당의 민주노동당과의 통합부결 결정에 불복해 탈당한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이 만든 진보통합연대와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3자통합에 대해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는 나의 평가, 나아가 "대성통곡할 노릇"이라는 박노자 교수의 평가는 "참으로 어리둥절"하며 "너무도 낡고 '보수적으로' 보이기만"하는 특정한 진보의 개념("자본주의의 극복")에 기초한 것으로 "보수적인, 너무도 보수적인 우리의 '진보'"의 대표적인 예라는 비판이다.

장 교수의 글을 읽고 나 역시 장 교수만큼이나 "참으로 어리둥절"하고 소통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문제의 핵심에는 진보가 무엇이고 보수가 무엇이냐는 논쟁적인 주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이 문제는 내가 이 지면 등을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나의 논지를 밝힌 바 있어 그 글을 읽어보면 충분히 설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진보'가 그렇게 부러운가?". 2009년 8월 3일자). 그리고 이번 논쟁은 진보가 무엇인가라는 다소 고답적인 논쟁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나는 진보의 핵심에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극복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만이 진보라고 주장한 적이 없고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도 진보라고 주장해 왔다. 둘째, 장 교수가 "보수적인 너무나 보수적인 '진보'"에서 보수라는 의미를 "변화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따라서 "낡았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용법은 상당히 위험하다. 그렇다면 4.19 이후 생겨난 민주적 질서에 변화를 추구한 5.16 쿠데타나 햇볕정책에 변화를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는 진보이고, 이 같은 변화에 저항하는 것은 보수인가?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통합연대의 진보통합 작업이 마지막 단계로 가고 있다. ⓒ연합

본론으로 들어가, 나는 2012년 총선과 대선과 관련해 이 지면 등을 통해 일관되게 이념적 성격이 비슷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그리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각각 통합을 하여 통합진보정당과 통합자유주의정당을 만들고 이 통합정당들이 민주당의 탈패권주의화와 좌경화(보편적 복지프로그램 등)를 전제로 '선 진보대통합, 후 조건부 민주대연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연합정치를 말한다(3)". 2010년 9월 13일자).

또 이 같은 시나리오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차선의 방법은 민주당을 포함해 진보개혁세력이 하나의 정당을 만드는 빅텐트론이고, 민주당을 제외하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 합치는 '비민주진보대통합론'은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주장해 왔다("연합정치를 말한다(1), 연합정치를 말한다(2)"2010년 8월 31일, 2010년 9월 6일). 그리고 이 같은 입장에서 <프레시안>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진보신당의 통합부결 결정과 노, 심, 조의 불복종까지 더해진 세 정치조직의 통합에 대해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평가를 내렸다("진보통합,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 2011년 11월 20일자).

이에 대해 장 교수는 "세 세력의 통합이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공통의 지반을 매개 고리로 삼은 것을 볼 때, 그것을 거부하고 비판하는 것은 결국 복지국가의 지형의 진보성 자체를 부정하거나 최소한 그 가치를 의심한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쯤 되면 새삼 '진보'나 '진보정치'의 참된 본성이 무엇일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서로 조금 결이 다르긴 하지만, 손호철과 특히 박노자의 그런 평가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결국 특정한 진보개념일 텐데, 내게는 그것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너무도 낡고 '보수적으로' 보이기만"하다고 비판했다.

정말 어안이 벙벙하다. 세 세력의 통합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 어떻게 "복지국가의 지형의 진보성 자체를 부정하거나 최소한 그 가치를 의심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나는 진보를 정의하는데 있어서 일관되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극복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만이 아니라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를 포함시켜 왔다. 또 단순한 반MB연합을 넘어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풀뿌리 복지대연합'을 주장해 왔다.

뿐만 아니라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고 비판한 그 인터뷰에서도 민주당과 한나라당까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이 주장해온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보편적 복지로 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 "진보정당이 세력으로서는 패배했을지 몰라도 진보의 아젠다는 거의 관철시켰다고 본다"며 "세력 면에서는 실패했지만 정책면에서는 진보가 승리하지 않았나"고 반문했다. 이처럼, 보편적 복지를 분명히 "진보의 아젠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내가 복지국가의 진보성 자체를 부정한다고? 참으로 기이한 독해이다.

그러면 복지국가의 진보성을 인정하면서도 왜 나는 세 세력의 통합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는가? 그 답도 이미 나의 인터뷰 속에 나와 있다. 다소 길지만 관련부분을 읽어보자. (사실 나는 장 교수가 나의 인터뷰 내용을 다 읽었다면 나를 복지국가의 진보성 자체를 부정하는 낡은 '꼴통 좌파'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장 교수가 인터뷰 제목만 읽고 글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강하게 갖고 있다. 사실 박노자 교수도 여러 차례 글을 통해 복지국가의 진보성을 한국에 소개한 바 있다).

"현재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 통합이 되든 안 되든, 국민을 감동시켜서 더 많은 사람을 끌어야 하는데 결국 '그들만의 리그'로 끝났다...솔직히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민주당과의 대통합이 낫다고 본다. 참여당과 통합은 할 수 있는데 민주당과는 안 된다고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정략적으로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몸 불리기라고 한다면 얘기가 된다. 그러나 이념과 철학으로 따졌을 때 어떻게 참여당이 민주당보다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나? 민주당이 무상급식 등 이른바 무상시리즈를 제기했을 때 유시민 대표는 표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참여당은 복지, 사회정책에서 민주당보다 더 오른쪽에 있고 통상정책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참여당 역시 정치적 측면에서 개혁적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시대 핵심화두인 신자유주의나 경제, 복지정책에 있어선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런 정당과 통합을 하면서 왜 민주당과는 안 되는 것인가? 소통합을 할 바엔 차라리 민주당을 포함한 대통합으로 가야 한다. 민주당이 참여당보다 오히려 더 진보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민주당이 무상급식 등 이른바 무상시리즈를 제기했을 때 유시민 대표는 표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다시 말해, 유시민이 복지국가를 추구하고 있는지 모르지만(하긴 한나라당도 복지국가를 추구하고 있기 하다. 문제는 어떤 복지국가이냐이다) 그 복지국가는 진보정당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이 추구하는 복지국가보다도 훨씬 보수적인 복지국가이다. 또 진보세력이 진보대통합의 조건으로 한미 FTA 등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성을 요구한 것에 대해, 바로 몇 달 전까지도 "신앙고백을 하듯이 타인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로 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헌법이 보호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에 침해하는 것"이라고 펄펄 뛰며 반발했던 사람이 유시민이다. 단순히 정략이 지배하여 정치적 필요에 따라 정치적 신념이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정상배'가 아닌 바에야, 정치적 신념이 몇 달 사이에 180도 바뀌겠는가?

다시 말해, 나는 장 교수가 정확히 지적한 (보편적) 복지국가의 진보성을 믿기에, 현 국면에서 보편적 복지국가의 건설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진보적 과제라고 믿기에,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소통합을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차라리 그럴 바엔 복지정책에서 유시민과 국민참여당보다 진보적인 민주당과 대통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실 내가 '선 진보대통합, 후 조건부 민주대연합'을 주장해 온 것도 그것이 복지국가건설을 위한 최선의 전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진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가능하다. 그러나 나의 주장의 핵심은 소위 '진보세력'들이 민주당의 무상복지 프로그램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유시민과 같은 세력과는 당을 같이 해서는 안 되고(연합은 가능하지만) 그럴 바에는 복지국가라는 면에서 유시민보다는 진보적인 민주당과 대통합을 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입장이 '보수적인, 너무도 보수적인' 것이라면, 나는 장 교수가 부쳐준 '보수적'이라는 꼬리표를 복지국가를 사랑하는 '영광의 훈장'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보수', 만만세다! '보수'여, 영원하라!

그러나 안타까움은 남는다. 달을 가리키는데 왜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진보의 개념)만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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