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이라크전쟁에 관한 미국의 석학 노암 촘스키의 대담 기록 중 주요 내용이다. 지난 13일 반전평화사이트 ZNet에 게재된 이 대담에서 촘스키는 이번 침략의 가장 큰 목표는 미국이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할 것임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앞으로 미국의 무력행사는 시리아, 이란 등 중동지역을 물론 중미 지역에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문은 'Noam Chomsky Interviewed'라는 제목으로 ZNet에 실려 있다. 편집자
(1)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부시 행정부가 여러 가지 이유를 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이라크를 장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담 후세인은 지난 1991년 미국의 묵인 덕택에 자신에 대한 봉기를 야만적으로 진압할 수 있었다. 이 봉기가 성공했더라면 이라크 정권은 워싱턴에 고분고분하지만은 않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후 십수년간의 범죄적인 경제제재로 이라크 사회는 황폐화됐고, 독재자의 힘은 강화됐으며, 국민들은 독재자의 생필품 배급시스템에 의존해야만 했다. 따라서 경제제재는 현재 워싱턴에 있는 고위관리들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며 철권통치를 자행했던 마르코스, 뒤발리에, 차우세스쿠, 모부투, 수하르토 등 여러 독재정권들을 끝장냈던 대중봉기의 가능성을 잠식해 버리고 말았다. 경제제재가 없었다면 후세인도 같은 운명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부로부터의 정권 교체는 (워싱턴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이라크인들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놔두는 것 의미하기 때문이다.
누가 이라크를 지배할 것인가라는 것이 핵심적 문제로 남아 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반대파들도 전후 이라크에서 유엔이 핵심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면서 미국에 의한 정부 구성에 반대하고 있다. '이라크 이슬람혁명을 위한 최고평의회(SCIRI)' 의장이며 시아파의 주요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사예드 무하메드 바케르 알-하킴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이번 전쟁이 이라크에 대해 미국 헤게모니를 강요하기 위한 것임을 알고 있다"면서 미국은 "해방군이라기보다는 점령군"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엔이 선거를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외국 군대는 이라크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또 이라크의 운명은 이라크인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들은 중동지역의 다른 나라들과 같이, 보다 중요하게는 지난 1세기동안 미국의 지배를 받아온 중미 지역이나 카리브해 지역에서와 같이 이라크에 괴뢰정권(clienr regime)을 세우려 하고 있다. 이는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버지 부시의 안보보좌관이었던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미국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자유선거를 통해 과격파들이 정권을 잡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결단코 과격파들이 정권을 잡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동지역의 민심은 어떠한가? 최근의 조사들에 따르면 모로코에서 레바논, 걸프지역에 이르기까지 인구의 95%가 이슬람 종교지도자가 정부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맡기를 바란다고 응답했다. 또한 비슷한 비율의 사람들이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석유를 장악하고, 이스라엘을 강화시키는 것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에 대한 반감은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고조됐다. 미국이 기존 중동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진정으로 민주적인 선거를 용인하며, 그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물론 세계 2위의 매장량을 가진 이라크의 석유자원을 장악하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이다. 마이크 클레어가 지적했듯이 미국은 이라크 석유 장악을 통해 "세계경제의 목줄을 쥐게 됐으며" 세계지배를 위한 보다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게 됐다.
(2) 전쟁이 끝난 이라크에서 후세인이 제거된 것에 대해 환호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는 반전 논리를 약화시키지 않는가?
나는 후세인 제거에 대한 환호가 너무도 늦게, 또한 너무도 제한적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분별있는 사람들이라면 독재자가 제거되고 고통스러웠던 경제제재가 끝난 것을 환영해야 한다. 내가 아는 한, 반전운동도 늘 독재와 경제제재가 끝나길 바랐다. 그것이 내가 경제제재를 반대한 이유다. 경제제재는 이라크를 파괴했고, 후세인을 없애버릴 내부 반란의 가능성마저 없애버렸다. 반전운동은 미국정부가 아니라 이라크인들이 이라크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전쟁 반대자들은 또 공격이 가져올 인도주의적 결과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에 경악했고 이라크가 "시범 케이스"가 되는 무시무시한 전략에 섬뜩해했다. 기본적인 쟁점은 남아있다. 첫째, 누가 이라크를 이끌 것인가? 이라크인인가 크로포드 목장(부시 대통령의 개인 목장: 역자)의 도당들인가. 둘째, 미국인들 자신은 스스로의 국내외적 야심을 이루기 위해 간신히 정치력을 유지하고 있는 편협한 반동세력에게 계속 정권을 맡겨둘 것인가, 말 것인가?
(3)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부시의 전쟁명분을 깎아내리지 않았나?
그 명분을 심각하게 생각할 때만 그렇다. 백악관은 아직도 대량살상무기가 있는 듯 행동한다. 그들이 뭔가를 발견한다면 전쟁이 정당한 것이었다고 나팔을 불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 못한다면, 모든 이슈를 조용히 없앨 것이다.
(4) 만약 지금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된다면 그건 또 반전 진영의 명분을 깎지 않겠나?
그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책이나 의견은 무엇이 알려졌나, 무엇이 믿어지고 있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사후에 발견되는 것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기본적 상식이다.
(5) 이번 공격의 결과로 이라크에 민주주의는 정착될 것인가?
어떤 "민주주의"냐에 달렸다. 부시의 선전팀은 특별한 내용이 없는 한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이식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시아파에게 실질적인 발언권을 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시아파는 중동지역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이란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할 것인데 이는 부시 일당이 결코 원치 않는 것이다. 두 번째 인구 비중을 차지하는 쿠르드족에게 실질적인 발언권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쿠르드족은 연방 체제의 틀 안에서 일정한 자율성을 갖고 싶어 할 것인데, 이는 미국의 이 지역 최대 군사교두보인 터키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최근 터키 정부가 자국 국민의 95%가 원하는 바를(미군의 터키 영토 이용 불허: 역자) 정책으로 채택하는 '범죄'를 저지른 데 대한 미 지배계층의 히스테리칼한 반응을 보라. 이는 미국의 지배계층이 민주주의를 얼마나 증오하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며, 나아가 제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대로 작동되는 민주주의는 미국 헤게모니가 추구하는 목표와 양립할 수 없다. 한 세기 동안 우리의 '뒷마당'이었던 남미에서처럼.
(6) 이번 전쟁이 세계 여러 나라에 준 메시지는 무엇인가?
"시범 케이스"란 말이 의미하듯,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다. 그것은 힘에 의한 세계지배를 뜻하고 세계 최강의 지위를 영구히 고수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이라크와 북한의 케이스에서 보듯 미국의 공격을 피하려면 보다 더 믿을 만한 억지력(북한의 핵을 말함: 역자)을 갖는 것이 더 낫다는 것도 하나의 특별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미국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감은 대량살상무기와 테러의 확산을 부추겨서 세계 평화에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전쟁 전부터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평화냐, 전쟁이냐의 문제는 어느새 인류라는 생물종 자체의 생존 문제가 됐다.
(7) 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주류 언론이 한 역할은 무엇인가?
미국 언론은 이라크의 위협, 테러와의 연계 등에 대한 행정부의 정치선전만을 무비판적으로 중계했다. 일부 언론은 메시지를 확대시키기도 했고 다른 일부는 그냥 중계만 했다. 이것이 여론조사에 미치는 영향력은 놀라웠다. 토론은 대개 "실용적인 차원"에서만 이뤄졌다. 전쟁 비용이 미국 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커지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전쟁이 시작되자 언론은 '홈팀'을 응원하는 부끄러운 치어리더가 돼 세계를 경악시켰다.
(8) 부시 세력의 다음 목표는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다음 목표가 시리아와 이란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를 위해서 이라크는 커다란 군사 기지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이것도 이라크에 의미있는 민주주의가 들어서기 어려운 이유가 된다. 미국과 그 동맹국(터키, 이스라엘 등)은 이란 해체를 위한 수순을 밟아왔다. 그러나 미국의 목표가 될 수 있는 곳은 또 있다. 석유를 비롯해 여러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남미 안데스 산맥 지역이다. 그 지역은 독립운동으로 소란스럽고 정부의 통제 밖에 있다. 그곳은 이미 미 군사기지들로 둘러싸여 있다. 또다른 곳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9) 부시 세력에게 놓인 장애물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장애물이 생기겠는가?
주된 장애물은 미국 안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즉 미국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10) 반전운동을 통해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 그리고 반전운동의 목표는 무엇이 돼야 하는가?
이번에 일어난 반전운동은 규모나 강도에서 전례없는 것이었다. 이제 반전운동의 당면 목표는 이라크인이 이라크를 다스리도록 하는 것, 후세인을 지원했고 전쟁을 했으며 경제제재를 가하는 등 20년간 미국이 이라크에 저지른 일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돼야 한다. 그리고 지원도 충분히 해서 이라크인들이 결정하고 이라크인들에 의해 쓰이도록 해야 한다. 이는 미국의 납세자들이 핼리버튼이나 벡텔에 보조금을 주는 것 이상으로 훌륭한 것이 될 것이다. 또한 반전운동의 최고 목표는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이 가진 위험한 정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돼야 한다. 그리고 반전운동은 전쟁의 결과로 예상되는 무기 판매 대박을 막아야 한다. 그것은 세계를 더 무섭고 위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 반전운동은 전 지구적인 정의확립운동과 지속적으로 연계해야 한다. 그것은 아마 오랜 시간이 필요한 목표일 것이다.
(11) 이라크 전쟁과 기업 주도의 세계화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반세계화운동과 평화운동은 어떤 관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기업 주도 세계화의 핵심 세력들도 이라크전쟁을 강하게 반대했다. 지난 1월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파월 장관이 전쟁에 관한 얘기를 할 때 너무도 야유가 심하게 터져나와 파월은 고함을 질러야 할 정도였다. 그는 '불쌍한 블레어만 빼고 아무도 따르지 않아도 미국은 전쟁을 주도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얘기했다. 전지구적 정의확립운동과 평화운동은 그 목표가 너무도 긴밀히 연계돼 있어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두 운동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세계화와 평화 사이의 연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지배를 꿈꾸고 있는) 기획가(planner)들도 그들 나름대로 그 둘 사이의 연계관계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대로 '세계화'가 진행될 것이며, 이는 '만성적인 금융 불안(다시 말해 경제성장의 침체와 빈곤계층의 고통 가중)'과 '빈부 격차의 확대'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나아가 그들은 "경기 침체, 정치 불안정, 문화적 소외가 더 심화돼 인종적ㆍ이데올로기적ㆍ종교적 극단주의와 함께 폭력이 난무하게 될 것"임을, 그 폭력은 주로 미국을 겨냥하게 될 것임을, 즉 미국에 대한 테러가 더욱 많아지게 될 것임을 예상하고 있다. 군사작전 수립가들도 동일한 가정을 한다. 이는 급속한 군사비 지출의 좋은 명분이 되고 있다. 군사비 지출은 우주공간을 무장시킨다는 계획까지 포함하는데 이는 전세계가 저지하려고 하는 일이다.
우리의 과제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런 다음 이에 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시도해야 한다. 우리(미국인)는 다른 어떤 나라 국민들보다도 이 일을 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미국인만큼 특권과 권력과 자유를 누리고 있는 국민은 지구상에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인은 그에 걸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또한 너무도 자명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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