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세녹스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걸 보면 세녹스를 넣고 달리는 자동차가 꽤 많은 것 같다. 많은 사람이 값이 싸다고 해서 세녹스를 이용하고 이에 힘입어 세녹스 판매회사가 크게 성장한 마당에, 정부에서 갑자기 다른 자동차 연료와 똑같이 교통세를 부과하겠다고 하니 회사나 소비자가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교통세가 부과되면 세녹스가 가격경쟁력을 잃어버리는데, 이는 제조회사의 존폐가 걸린 문제로 회사로서는 사력을 다해서 저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녹스 제조회사는 언론, 정치권, 시민단체 등 우리 사회의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곳이면 어느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로비를 전방위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런 로비의 결과 일부 시민단체와 언론은 세녹스 회사에 대해 두둔하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들은 세녹스가 휘발유보다 오염물질을 적게 내놓고,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원 다변화를 위해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한편으로는 세녹스가 재벌들이 독점하고 있는 석유시장에 균열을 내는 작용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세녹스, 또다른 화석연료일 뿐 - 기후변화 방지ㆍ에너지원 다변화에 기여 못해**
세녹스는 현재 연료첨가제로 인정받아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판매 대리점에서는 세녹스가 대기오염물질을 적게 내뿜는 청정연료라고 선전하고 있고, 게다가 교통세가 붙지 않아 값이 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세녹스를 휘발유보다 더 선호한다. 그런데 세녹스가 과연 얼마나 청정할 수 있고 에너지원 다변화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세녹스는 주로 정유공장에서 원유를 정제할 때 다른 석유제품과 함께 나오는 톨루엔과 여러가지 유기용제 성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제조회사의 주장에 따르면 여기에 천연가스를 가공해서 만든 메틸 알코올이 10% 가량 포함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녹스를 태우는 것은 다른 석유제품을 태우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 없고, 이 때 나오는 오염물질의 양도 석유를 태울 때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양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약간 적을 수도 있겠지만, 이로 인한 오염물질의 감소는 무시할 만한 양에 머무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온실가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세녹스나 휘발유가 전혀 차이가 없다. 세녹스도 같은 석유제품인 휘발유와 마찬가지로 탈 때 다량의 온실가스를 내놓고, 그러므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막는 데 조금도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원 다변화와 관련해서도 세녹스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녹스에 10% 들어있는 메틸 알코올은 천연가스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나머지는 석유로부터 얻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석유와 천연가스는 전량 해외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석유를 대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에너지원 다변화에 기여하지도 못하는데, 세녹스가 왜 이토록 논쟁거리가 되는 것일까?
나는 세녹스를 둘러싼 논쟁이 우리 사회의 에너지문제에 대한 인식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세녹스를 사쓰는 소비자들은 석유 위기나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나 석유 위기에 대한 언론과 정부의 시각이 매우 모호한 탓에, 일반 시민이 그동안 특별히 심각성을 느낄 만한 정보를 별로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녹스 논쟁의 1차적 책임은 정부에 - 화석연료 대체ㆍ기후변화 방지에 관심 없어**
문제는 지금까지 석유 위기와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서 정부가 보여준 태도이다. 정부는 그동안 이들 문제에 대해서 고급 정보를 접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석유가 40년 후면 고갈된다는 것은 정설이 되었고 전세계 대부분의 기상학자들이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데, 정부에서는 이에 대해 별다른 대책도 세우지 않고 스스로 책임을 방기해 왔다. 그러므로 세녹스 논쟁이 일어나게 된 근본원인은 바로 정부의 안일한 에너지정책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에서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서 진정으로 우려하고 대처해 왔다면 세녹스 논쟁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세녹스 판매가 늘어나자 판매회사를 고발하고 교통세를 부과하려는 미봉책에 불과할 뿐인 조치를 들고 나서는 것도 정부에서 이 사태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세녹스에 교통세를 부과하면 가격이 휘발유와 같은 수준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굳이 세녹스를 넣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세녹스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정부에서 보기에 문제는 깨끗이 해결된 셈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 세녹스 논쟁이 마무리되리라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오산이다. 현재와 같은 에너지정책이 계속된다면 제2, 제3의 세녹스 논쟁이 일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세녹스 제조회사에서는 그 후속제품으로 쏠렉스라는 연료를 출시하려 하고 있다. 쏠렉스는 세녹스와 달리 석유로부터 뽑아낸 것이 아니라 석탄을 가공하여 액체로 만든 석탄액화연료이다. 석탄을 액화한 연료는 정부의 법에 따르면 대체에너지다. 대체에너지는 석유제품과 달리 정부에서 ‘대체에너지 개발 및 이용보급촉진법’(대체에너지법)을 통해서 이용을 장려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에너지에 기존의 석유연료와 똑같이 제조원가의 2배에 달하는 교통세를 매길 수는 없다. 현재 극히 일부의 경유차에 사용되는 바이오디젤도 대체에너지로 분류되는데, 여기에도 교통세를 별로 매기지 않는다. 바이오디젤과 마찬가지로 쏠렉스도 대체에너지 대접을 해야 한다면 높은 교통세가 부과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쏠렉스는 세녹스와 달리 연료첨가제가 아니고 남아공으로부터 대량으로 수입될 수 있기 때문에, 전국의 판매소에서 휘발유보다 싼 가격에 연료로 판매될 것이고, 판매량은 급속하게 증가할 것이다. 그러면 정부로서는 세수가 줄어들고 기존 정유회사들은 판매고가 줄어든다. 당연히 정부나 정유회사들이 이를 그냥 지켜볼 리가 없다. 쏠렉스의 시장 확산을 막으려고 나설 것이다. 이미 정부에서는 쏠렉스의 통관 자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통관을 허용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 정부에서 장려하는 대체에너지로 수입을 한 것인데 무슨 이유로 통관을 막는 것인가?
세녹스 사태는 점점 복잡해져가는데,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많은 사람이 세녹스와 쏠렉스를 쓰기 원하고, 판매회사는 격렬하게 저항하는데 해법이 있기나 한 걸까? 지금과 같은 정부의 접근방식이 계속된다면 해법은 없다. 그렇지만 해법은 분명히 있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해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경우 해답은 문제가 발생한 근원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체에너지법 개정하고 환경세 도입하라**
해법은 두가지이다. 대체에너지법을 개정하고, 생태세(환경세)를 도입하는 것이다. 대체에너지법에서는 재생불가능한 폐기물이나 석탄액화연료 등도 대체에너지로 정의하고 있다. 쏠렉스 문제는 바로 잘못된 대체에너지법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대체에너지법을 없애고, 순수하게 재생가능한 에너지만을 대상으로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참에 대체에너지라는 용어를 아예 폐기하고 재생가능 에너지라는 용어를 정부의 공식 용어로 채택하여 대체에너지법이 아닌 재생가능에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사실 쏠렉스는 석탄을 가지고 만든 것으로 재생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를 석유보다 더 많이 배출한다. 솔렉스는 석탄을 고온으로 가열해서 만들고, 지구 반바퀴나 떨어진 남아공으로부터 수입하는 것이다. 가열하는 데 화석연료가 들어가고 운반하는 데 또 화석연료가 투입되므로, 온실가스 밸런스가 석유보다 좋을 리 없다. 현행 법에 따라 대체에너지 적용을 받을 경우 휘발유보다 가격은 싸지지만, 이는 교통세가 덜 붙기 때문일 뿐, 원가 자체도 석유보다 더 높다. 온실가스를 적게 방출하는 것도 아니고, 재생불가능하고 원가도 높다면 이런 에너지를 지원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대체에너지법을 없애고 재생가능에너지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세녹스나 쏠렉스가 휘발유와 같은 기능을 지닌 것이라면 정부로서 이것의 사용 자체까지 막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그렇다고 바이오디젤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해서 교통세를 적게 부과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바이오디젤을 사용한다 해도 도로를 이용하고 교통량을 유발하는 것은 다른 연료를 사용할 때와 전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휘발유, 바이오디젤, 세녹스, 솔렉스 모두 자동차 연료로 사용될 경우 교통세는 동일하게 부과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 연료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크게 다르다. 바이오디젤은 일년간 흡수했던 것을 다시 내놓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아주 적고, 나머지 셋은 비슷한 수준으로 다량 내놓는다.
온실가스는 기후변화를 일으켜 장기적으로 환경을 크게 파괴한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서도 세금을 높게 부과하여 사용을 억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세금이 바로 몇몇 유럽국가에서 시행하는 생태세(환경세)인데, 이러한 방식의 세금부과를 통해서 온실가스 연료의 이용을 억제하고 환경친화적인 에너지 이용을 장려해야 하는 것이다. 연료에 대한 생태세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서 달라진다. 당연히 화석연료는 높은 생태세를 내고, 바이오디젤이나 연료용 식물성 기름은 생태세를 적게 내거나 내지 않는다. 생태세가 도입되면 세녹스나 쏠렉스도 화석연료이기 때문에 생태세가 높게 부과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이들 연료의 퇴출과 재생가능 에너지의 확대를 가져올 것이다.
생태세를 도입한다고 해도 소비자의 세 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생태세가 부과되는 만큼 교통세가 줄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단기적으로 세수가 줄지는 않는다. 재생가능 연료가 빠른 속도로 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화석연료 사용이 줄기 때문에 세수가 감소하지만, 그 대가로 대기오염과 기후변화가 완화되고, 그 결과 이로 인해 유발되는 의료비 같은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다. 생태세가 도입되면 현재와 같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세녹스나 쏠렉스 사용을 막으려 하지 않아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세녹스 논쟁은 우리에게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정부와 시민들은 세녹스 논쟁을 단기적인 이익의 관점이 아니라 장기적인 지구환경과 인류생존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대체에너지법 개정과 생태세 도입이라는 해결안은 이러한 관점을 취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세녹스 논쟁을 에너지 정책에 대한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기화로 화석연료로부터의 해방과 온실가스 배출 억제를 핵심 목표로 하는 에너지 정책을 세우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이미 멀리 앞서간 유럽국가에 비해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서둘러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는 것이 지구환경뿐만 아니라 '국익'을 위해서도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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