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이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아랍권 및 국제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한 한 아랍 지식인의 글이다. 아이만 엘-아미르라는 이름의 이 이집트 언론인은 바그다드 함락을 지켜보면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 제멋대로 무력을 휘두르고 약자들이 의지해야 할 국제법이나 유엔 등이 유명무실해진 이제, 약자들이 기댈 것은 테러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미군은 결코 해방군으로 인식되지 않을 것이며, 미군은 이번 침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온갖 문제를 야기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이집트의 영자 주간지 <알 아람 위클리> 4월10-16일자에 '임박한 재앙의 전조(The writing on the wall)'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편집자
***임박한 재앙의 전조(The writing on the wall)**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말했던, 이라크 국민들의 민심을 잡기 위한 전투는 이제 끝난 듯이 보인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과시했지만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는지는 의심스럽다. 바스라와 바그다드에서 일단의 이라크인들은 약탈극을 벌임으로써 미·영군의 승리를 축하했다. 이는 이라크 길거리에서 법과 질서가 잠정적으로 무너졌음을 의미하는 사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게는 이라크전쟁 후 중동지역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는 등 국제질서가 혼란에 빠져들 것임을 예고하는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이라크는 물론 아랍지역에서, 어제(9일) 바그다드 중심부에 있는 사담 후세인 동상의 철거가 상징하는, 후세인 및 그의 정권의 몰락을 애석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시작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전세계에서 계속된 반전 시위는, 이라크의 독재자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미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한 나라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무력을 동원하는 데 대한 반대였다. (근대 이후) 국제사회의 성원들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폭력행사의 위협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또 유엔헌장의 원칙을 소중한 것으로 여겨 왔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약속에 비추어) 이번 전쟁은 불길한 사태의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이라크에 대한 미·영군의 이번 공격은 부시의 선제공격독트린에 의해 추진된 것이다. 미국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판단되는 나라들에 대해서 선제공격을 가하겠다는 부시의 이 원칙은 지난 해 가을 처음으로 공식 표명됐다. 그러나 이같은 원칙이 공식 채택되기 전인 지난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및 미 국방부 건물에 대한 9.11 자살테러 직후 선제공격독트린은 이미 아프가니스탄에 적용된 바 있다. 아프간전쟁의 성공으로 이 모델은 이제 이라크에 적용되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궁극적으로 미 국방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라크국민평의회(INC) 지도자 아메드 찰라비를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를 수립할 것이다.
이라크 침략은 곧 끝나겠지만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사담 후세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미·영의 군사력은 언제나 해방자가 아닌 침략군으로 인식돼 왔기 때문이다. 미국정부보다는 영국정보가 하루빨리 이라크문제로부터 손을 빼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힘이 곧 정의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치적 목적들을 달성하는 데 있어 무력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미국 부통령 딕 체니나 국방부의 군벌들이 유엔을 통한 외교적 해결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목적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느냐 아니냐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라크의 정권으 교체해, 제멋대로 굴고 있는 중동지역을 점차 통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힘의 균형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그것도 자신만의 근시안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초강대국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세계에서 테러리즘은 균형자(equaliser)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이나 가치체계에 위협이 된다는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의지해야 할 국제법도 없고 유엔마저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는 테러리즘은 약자의 방패막이가 된다. 그렇게 테러는 만연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세계관은 아직도 각국을 동맹국과 깡패국가로 갈라서 보는 레이건류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9.11을 거치면서 이러한 사고방식은 반테러의 원칙 아래 더욱 강화됐다. "우리 편이 아니면 우리의 적"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질문은 시리아의 머리 위에 다모클레스의 칼처럼((Dionysius왕이 연석에서 Damocles 머리 위에 머리카락 하나로 칼을 매달아, 왕위에 따르는 위험을 보여준 일에서 나온 말: 역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이라크 민중들의 고난에 동정을 표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미국은 또 이스라엘의 불법점령에 맞서 싸우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운동에 테러리즘이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있다.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정벌이 절반쯤 진행된 상황에서 부시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간청에 못 이겨 '로드맵(roadmap)이란 것을 내놓았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갈등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팔레스타인인에게 국가 비슷한 것을 허용하는 것조차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부시 행정부 핵심관리들로부터 무조적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만일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들에게 허용된 코딱지만한 국가를 거부하고 무장저항을 택한다면 그들에게는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고 팔레스타인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팔레스타인 문제는 국가건설의 권리라는 문제에서 또하나의 반테러전쟁으로 성격이 뒤바뀌는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핵심동맹국이자 미국을 위한 중재자, 미국을 대신한 중동지역의 총독으로 군림하게 될 것이다.
상당수 아랍국가들은 사담 후세인의 정권이 곧 소멸할 것이라는 점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이들은 미국의 정책에 자신의 운명을 맡겼다. 미국으로부터 최상의 동맹국이라는 인정을 받고,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하에 이들은 미국의 이라크 유린에 자신들의 영토를 이용하라고 제공했다. 그들은 미국이 우정과 이해관계를 결코 혼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미국은 아직도 아랍세계의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정권들이 9.11 테러의 원인 중 하나라고 믿고 있다. 이라크 침략, 이에 따른 인명의 희생과 파괴는 이 지역의 모든 정권들에 재앙이 닥쳤음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에 대한 전쟁에서는 승리를 거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자신들이 당초 해결하려 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문제를 초래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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