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라크전쟁에서도 미군은 각종의 첨단무기들을 활용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이런 첨단무기를 보고 있으면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게 얼마나 집요한지 놀라울 정도다. 그러나 이런 첨단무기로만 전쟁이 수행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제 전장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구식 무기들이 더욱 빈번하게 사용된다. 첨단무기들도 새로 개발되고 있지만 구식 무기들도 계속 개량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는 열화우라늄(DU, Depleted Uranium)을 이용한 여러 무기들이다. 열화우라늄탄은 지난 걸프전에서 처음 사용된 이래 국제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을 빚어 왔다. 그리고 지난 달 28일, 미국 국방부는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도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했다.
***핵발전의 쓰레기, 열화우라늄**
열화우라늄은 99.3%의 U238과 0.7%의 U235로 구성되는 천연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농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일종으로, 방사능을 방출하는 U235의 함량이 천연우라늄보다 낮은 0.3%이기 때문에 “열화(劣化)” 우라늄이라고 불린다. 열화우라늄탄은 지난 91년 걸프전에서 처음 실전에서 사용된 이래 보스니아 내전, 작년 9.11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등에서 사용되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주한미군의 A-10기가 매향리 등지에서 훈련도중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공개되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열화우라늄탄은 주로 대전차무기로 사용된다. 상대 전차의 두꺼운 장갑을 관통하기 위해서는 보다 무거운 포탄을 보다 빠른 속도로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전차전에서 상대방이 보유하고 있는 대전차무기의 유효사거리 밖에서 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전투를 매우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대전차무기의 성능은 기갑부대 중심의 지상전의 승패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인의 하나이다.
대전차무기의 소재로 열화우라늄 대신 텅스텐합금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텅스텐합금에 비해 열화우라늄이 무기로 유리한 이유는 관통성능이 텅스텐 합금에 비해 10% 정도 우수하기 때문이다. 열화우라늄은 텅스텐에 비해 열전도도가 낮기 때문에 포탄이 목표물에 맞았을 때에 접촉부분의 변형이 적다. 다시 말해, 목표물에 포탄이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열이 포탄 전체로 전달되는데, 이 때 텅스텐합금은 급속하게 변형되어 앞이 뭉툭해지지만 열화우라늄탄은 상대적으로 변형이 적기 때문에 장갑을 뚫는 데에 더 우수한 능력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림 참고).
목표에 부딪혔을 때, 접촉부분의 변형정도 ⓒ 국방저널
그러나 열화우라늄탄을 이용하는 데에는 이런 기술적 이유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70배가 넘는 핵폐기물의 처리문제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미국은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게 되면 핵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셈이 된다. 골치아픈 핵폐기물 처리 문제를 ‘불량 국가’의 응징과 맞물리게 할 수 있으니, 이야말로 일석이조이다. 120mm 대전차포탄 하나에는 약 4kg의 열화우라늄이 사용되므로 전쟁을 한 번 치를 때마다 엄청난 양의 핵폐기물이 미국 본토를 떠나 다른 곳에 버려지게 되는 셈이다. 지난 걸프전 당시에는 약 320톤의 열화우라늄탄이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위험은 남는다**
걸프전이 끝난 후, 참전한 군인들이 각종의 병리현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열화우라늄탄에 대한 반대가 일어났던 것은 나토(NATO)군의 코소보 폭격이 끝난 후였다. 코소보 폭격 당시 사용된 열화우라늄탄이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유해한 결과를 낳았다는, 다시 말해 ‘발칸 신드롬’의 원인이 열화우라늄탄이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이로부터 본격화되었던 열화우라늄탄 논쟁은 이라크 정부가 걸프전 당시 미군의 집중적인 폭격이 있었던 바스라 지역에서 암환자 발생이 급증했다고 발표하고 영국과 미국의 군부 내에서 이미 열화우라늄탄이 잠재적인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격화되었다.
그 후 유럽연합과 나토는 사람이 직접 우라늄 먼지를 흡입하지 않는다면 발암효과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면서 열화우라늄탄의 위험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2001, 2002년 영국 왕립학회에서 열화우라늄탄이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두 권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논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 보고서에서는 정상적인 전장환경에서 열화우라늄탄을 취급하는 군인들에게는 심각한 위험은 없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전투중 열화우라늄탄의 파편에서 나오는 먼지를 흡입하는 경우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현재까지 열화우라늄탄에 대해 발표된 결과들은 잠정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직까지 열화우라늄탄이 사용된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해당 지역의 식수, 우유, 대기환경에 대해 지속적으로 조사해야 할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부유하는 열화우라늄탄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포탄의 파편들을 청소하고 해당 지역을 포장하는 등의 작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라크전이 발발한 직후인 지난 달 25일, 유엔환경계획기구(UNEP)에서는 열화우라늄탄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에서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사용되었던 열화우라늄탄에 의해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어 있으며 몇몇 건물도 열화우라늄에 의한 오염이 관찰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 내전이 끝난 지 7년이 지났지만 열화우라늄은 25%정도만 줄어들었으며 완전히 없어지려면 25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영국 왕립학회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열화우라늄탄에 포함된 U235에서 발생하는 방사선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우라늄 먼지들을 대기 또는 지하수를 통해 흡입하게 될 경우에는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열화우라늄탄의 사용은 금지되어야**
이라크 전쟁은 이제 막바지에 이른 것같다. 이번에도 엄청난 양의 무기들이 사용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던 대량살상무기(생화학무기)를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는지는 아직도 논란거리지만, 설사 이라크군이 이를 갖고 있다고 해도 ‘후진국의 마지막 카드’로 불리는 이 무기가 사용되지 않고 전쟁이 끝나기를 바란다.
유럽연합과 나토 등 열화우라늄탄의 문제를 부인하는 세력은 이것이 핵무기와 달리 대전차포탄이나 기관총에 사용되는 ‘재래식 무기’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열화우라늄탄은 그 피해가 당대에 그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피해를 미치며 심하게는 후손들에게까지 비참한 흔적을 남긴다는 면에서는 핵무기와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결코 사용되어서는 안되는 무기이다.
‘인간적인’ 전쟁은 없다. ‘자비로운’ 무기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끝난 이후까지 전쟁의 상흔을 지속적으로 남기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열화우라늄탄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아니다. 2001년 김원웅 현 개혁국민정당 대표는 주한미군이 5만발의 열화우라늄탄을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우리가 열화우라늄탄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지금 이라크 민중들 뿐만이 아니라 주한미군의 훈련장으로 사용되는 인근 지역 주민들, 그리고 바로 우리가 될 지 모르는 잠재적 희생자들을 위해서다.
<‘Citisci Group’은 모두 5인(강양구, 김명진, 김병수, 김병윤, 안성우)으로, 자연과학ㆍ공학과 인문ㆍ사회과학, 학계ㆍ연구소와 시민운동, 제도권과 비제도권, 학생ㆍ직장인과 룸펜ㆍ백수 사이의 경계를 어지럽게 넘나들고 있는 인간들의 종잡을 수 없는 집단이다. 이들은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주류적 관점에 피곤함을 느끼고 이를 갈아치울 수 있는 이론과 실천을 모색중이라는 점에서(만)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연락하기 위해서는 citisci@jinbo.net이라는 경로를 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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