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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과 한국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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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과 한국외교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26> 환상의 콤비, 廉頗와 藺相如

진(秦)나라의 천하통일 기세는 시황의 즉위(BC 247) 전 소양왕(昭襄王, BC 307-251) 때 이미 무르익어 있었다. 소양왕의 팽창정책에 제일 먼저 시달린 것은 진나라에 바로 인접한 강국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 BC 299-266)이었다.

혜문왕이 천하제일의 보물이라는 화씨벽(和氏璧)을 가졌다는 소문을 들은 소양왕이 사신을 보내 15개의 성을 줄테니 화씨벽과 바꾸자고 제의했다. 거절했다가는 진나라에게 침공의 구실을 줄 것이 두렵고, 응하자니 진나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보물만 떼어먹을 경우 조나라의 체면이 땅에 떨어질 것이 걱정되어 혜문왕은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이 때 인상여(藺相如)라는 한 환관이 나서서 말했다. “바꾸자는 제의를 조나라가 바로 거절하면 잘못이 조나라에 있지만, 조나라에서 보물을 주는데도 진나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잘못이 진나라에 있게 됩니다. 진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여 잘못을 진나라에 씌우는 편이 낫겠습니다. 제가 보물을 받들고 사신으로 가서 진나라가 성을 내놓으면 보물을 건네주되, 진나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보물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인상여가 진나라 조정에 사신으로 가서 보물을 진왕에게 올리니 진왕은 기뻐서 신하들과 미인들에게 돌려 가며 구경하게 했다. 보물만 삼키려는 진왕의 속셈을 확인한 인상여는 보물에 조그만 흠이 하나 있는 것을 가르쳐주겠다고 보물을 돌려받은 다음 기둥에 기대 서서 보물을 머리 위에 쳐들고 진왕을 꾸짖었다.

“저희 임금께서는 닷새 동안 목욕재계한 뒤 저를 시켜 보물을 받들고 진나라 조정에 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예절이 너무 거만스럽고, 보물을 얻자마자 미인들에게 전해주며 저를 희롱했습니다. 약속대로 조나라에 성을 주실 마음이라면 있을 수 없는 행동입니다. 저를 더 강박하신다면 제 머리와 보물이 이 기둥에 부딪쳐 깨어질 것입니다.”

이에 진왕은 자신도 닷새 동안 목욕재계한 후 정중하게 보물을 접수하고 약속한 대로 성을 내어주겠다고 다짐했다. 명분을 확보한 인상여는 부하를 시켜 보물을 몰래 조나라로 도로 가져가게 했다. 그리고 닷새 후 진왕이 보물을 청하자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 목공 이래 20여 군주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약속을 굳게 지킨 분이 없었습니다. 저는 대왕께 속임 당해 저희 나라를 저버리게 될 것이 두려워 보물을 몰래 돌려보냈습니다.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하니 진나라가 먼저 15개 성을 넘겨주면 조나라는 감히 보물을 바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대왕을 속인 죄로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소양왕은 화가 났지만 실속도 없이 화풀이만 했다가 천하의 비난을 받을 것을 꺼려 인상여를 정중히 돌려보냈다. 그리고 진나라가 끝내 성을 먼저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보물 일은 없던 일로 되었다. 몇 년 후 혜문왕과 소양왕이 민지(澠池)에서 만날 때도 인상여가 배석해 그 불같은 기개와 예리한 언변으로 조나라의 입장을 지켜냈다.

일개 환관이던 인상여는 두 차례 공로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상경(上卿)이라는 최고의 신분에 올랐다. 그런데 인상여의 벼락출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으니 조나라 최고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치던 염파(廉頗) 장군이었다. 염파는 이렇게 공언했다.

“나는 군대를 거느려 성을 공격하고 들판에서 싸우며 여러 번 큰 공을 세웠다. 그런데 인상여는 비천한 출신이면서 겨우 혀끝만 놀리고도 나보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 나는 그 밑에 있는 것이 부끄러워 참을 수 없으니 그를 보기만 하면 반드시 욕을 보일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는 것을 극구 피했다. 조정에 나갈 일도 병을 핑계로 삼가고, 거리에서 먼 빛으로 염파를 봤을 때는 마차를 돌려 도망치기까지 했다. 주변사람들이 왜 그렇게 염파를 두려워하느냐고, 맞부딪칠 것을 권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염장군이 무서운 사람이라 한들 진나라 조정에서 진왕을 꾸짖은 내가 염장군이 두려워 피하겠는가? 진나라가 조나라를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것은 염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이다. 두 호랑이가 맞붙어 싸워 하나가 다친다면 진나라가 기뻐할 것이니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것이다. 내가 염장군을 피해 다니는 것은 사사로운 은원보다 나라의 안전을 앞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윗도리를 벗어제친 맨몸에 회초리다발을 짊어지고 인상여의 문 앞에 엎드려 매질을 청하며 사죄했다. “장군의 마음이 이토록 넓으심을 무식하고 못난 이 놈이 미처 몰랐나이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생사를 같이 하는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두 사람이 조나라의 병권을 나눠 가지고 있는 십여 년 동안 진나라는 동쪽으로 뜻을 펼 수 없었다고 한다.

진나라가 화씨벽을 요구했을 때 염파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기록은 없지만, 진나라의 모욕적 요구에 정면으로 맞서자고 주장했을 것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진나라의 요구에 겉으로 응하면서 속으로 이를 거절할 명분을 쌓은 인상여의 책략은 훨씬 더 유연하다. 한편 인상여가 그런 책략을 구사하고도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염파와 같은 열혈남아들이 그 뒤에 버티고 있었던 덕분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외교’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던 이 나라다. 이라크 전쟁(‘부시 전쟁’이라는 일각의 호칭이 더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은 이 나라 외교의 첫 시험대가 되고 있다. 인상여와 염파처럼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지고도 나라 위하는 같은 마음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때 한국의 외교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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