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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전쟁 - "문명에서 야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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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전쟁 - "문명에서 야만으로"

<데스크 칼럼> 이라크 전쟁과 한국의 선택

미국 대통령 부시가 마침내 전쟁을 선택했다. 20일이면 미국의 무시무시한 공습이 이라크를 향해 퍼부어질 것이다. 일어나서는 안 될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아니, 전쟁이라기보다는 침략이라고 하는 편이 옳으리라. 세계를 문명에서 야만으로 되돌리는 폭력의 난무가 시작될 것이다. 미국을 세계의 지도국가에서 세계 최대의 깡패국가로 끌어내리는 첨단무기의 잔치가 벌어질 것이다.

이번 전쟁이 잘못된 전쟁이라는 점은 이미 지겨울 정도로 지적됐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공격해야 하는 이유라며 내세운 3가지 근거의 허구성에 대해서는 뉴욕의 김재명 기자가 정확하게 지적한 바 있다(프레시안 17일자 보도 참조).

우선 9.11테러의 주범인 알 카에다와 이라크 정권과의 연계는 입증된 바 없다. 부시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중동지역의 민주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말하지만 미 국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민주화는커녕 오히려 극단적 회교주의 정권의 성립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공격의 마지막 명분으로 내세운 지난 89년 화학무기에 의한 쿠르드족 살해에 대해서는 미 육군 보고서나 전 CIA 정보분석관 등은 이라크군이 아니라 이란군 소행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부시는 전세계 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번 전쟁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유럽, 아시아 등 각국 국민들의 80-90%가 이번 전쟁에 반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몇 안되는 동맹국들인 영국, 스페인 등에서도 반전 여론은 매우 높으며 벌써부터 일부 공직자가 항의 사임하고 있다. 오직 미 행정부와 제도언론의 선전선동에 파묻혀 있는 미국 국민들만이 전쟁을 찬성하고 있을 뿐이다. 세계 최고의 민주국가, 세계 최대의 문명국가, 세계의 지도국가임을 자처하는 미국이 세계의 반전여론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근대 이후 형성돼 온 국제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특히 2차대전 이후 자신의 주도 하에 출범한 유엔의 권위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말았다. 유엔 안보리에서의 2차 결의안에 대한 찬성표가 전체 15표 중 4표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자 일방적으로 이라크 침공을 결정한 것이다. 국제문제를 대화와 협상에 의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이었던 유엔의 권위는 이로써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제 유엔은 무용지물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부시의 전쟁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국가간의 분쟁은 유엔이 아닌, 힘센 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국제사회는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무법천지, 야만의 시대로 회귀할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우리에게 위험하다'고 지목한 나라에 대해서는,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는 선례를 남기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부시의 전쟁이 성공을 거둔다면 이른바 '선제공격' '예방전쟁' 독트린이 하나의 현실로 굳어지게 되는 것이다. 부시는 이미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한 바 있다.

테러조직과의 연계도 입증되지 않았고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도 밝혀지지 않은 이라크에 대해 일방적 침략을 강행하는 부시 행정부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북한에 대해 어떻게 나올지는 이제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북한의 반격에 따른 남한측의 엄청난 피해, 또는 세계의 신경제성장 중심지로 떠오른 동아시아에 미칠 경제적 파장 등을 고려해 부시 행정부가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예측이 아직은 우세하다.

그러나 전쟁의 구체적 명분도 없고, 국제여론에 반하며, 국제사회의 현존 질서를 무너뜨리면서까지 이라크를 침공하려는 부시의 결정을 과연 이성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부시 행정부는 이미 이성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리고 이번 결정을 고비로 이제 미국은 더이상 어제의 미국이 아니다. 적어도 냉전시절 자유진영의 지도자로 군림하며 자유를 수호했던, 냉전후 지역 및 국제분쟁을 조정ㆍ관리하던 그 미국은 이제 없다. 압도적 군사력을 앞세워 중동지역의 엄청난 석유자원을 독식하고 기존의 경제적 헤게모니 유지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탐욕스러운 세계 최대의 깡패국가 미국만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변한 것이다.

이른바 현실정치(Realpolitik)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압도적 힘을 갖고 있는 미국편에 붙는 것이 안전한 길이라며 '이라크전쟁 지지'를 표명한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미국이 어려울 때 도와줘야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해 미국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라크의 무장해제를 지지하는 것과 무장해제를 위한 전쟁을 지지하는 것과는 엄창난 차이가 있다. 대량살상무기의 보유ㆍ개발 여부도 불분명한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위해 북한을 공격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대량살상무기의 보유ㆍ개발 여부도 불분명한 이라크 공격을 지지한 마당에 대량살상무기 개발이 확실한 북한에 대한 공격을 무슨 명분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제아무리 압도적 군사력을 갖고 있다 해도 세계의 지도국가가 되려면 최소한 명분과 국제사회의 질서를 지켜야 한다. 자유, 민주, 주권존중, 유엔, 국제여론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지금 부시가 이끄는 미국은 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말았다. 적어도 부시 이전의 미국은 이런 것들을 지키려는 시늉은 해왔다.

현실정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헨리 키신저와 함께 현실정치의 대가로 꼽히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브레진스키는 지난 16일자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근세 들어 미국이 이렇게 고립된 적이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우리 맘대로 세상을 다룰 순 없다.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도 강하지만 전세계에 명령만 할 수는 없다. 바로 이 점에서 부시 행정부가 큰 실수를 하고 있다고 본다."

미국의 최고권위지 뉴욕타임스도 전쟁에 즈음한 17일자 사설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은 전쟁을 하면서" "동맹국은 과소평가하고 군사력은 과대평가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면서 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힘은 손상받지 않겠지만 미국의 영예의 핵심은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설은 이어 "미국의 행동에 대해 세계로부터 최대의 선의를 이끌어내야 할 시점에 미국은 세계로부터 최악의 반응을 초래하고 있다. 이같은 결과는 신에 의해 점지된 것도, 불가피한 것도 아니었다'면서 부시 행정부를 질책했다.

부시는 지금 자신의 정치생명은 물론 미국과 전세계의 운명을 건 일대 도박을 감행하고 있다. 이 세계사적인 도박에서 한국은 어느 편에 우리의 운명을 걸 것인지, 노무현 정부는 신중히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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