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의 관계 정상화인가, '신 취재지침'인가.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운영방안을 둘러싸고 언론계가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현 정부의 기자실 폐쇄와 브리핑제도 운영방침을 권력과 언론간의 관계 정상화 차원에서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언론의 취재권리를 제한해 국민의 알 권리를 막을 소지가 있는 조치로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다. 즉 언론계의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냐, 아니면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검증기능을 도외시한 발표저널리즘의 추구이냐에 대한 논쟁이 한창인 것이다.
논란의 불씨는 지난 14일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홍보업무 운영방안'에서 비롯됐다. 이창동 문화부 장관은 이날 ▲매체의 공평한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출입기자제의 등록제 전환 ▲기자실 폐지와 브리핑제도 시행 ▲정보공개 범위의 단계적 확대와 체계 정비 ▲사무실 방문취재의 제한적 실시를 골자로 한 취재범위와 방법 제약 ▲취재실명제 도입과 기자들과의 회식 자제를 명시한 언론접촉 방법 ▲언론 오보에 대한 대응 방침 등의 운영방안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같은 방침이 각 언론에 보도되며 취재자유 제한이란 비판이 일자 노무현 대통령은 17일 청와대 수석ㆍ보좌관 회의에서 취재에 응한 공무원의 보고를 의무화한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취재 개편 방안에 대해 "공무원은 자기 직무를 보호하고 직무의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 있으나 그것은 스스로 판단해서 해야할 일이다. 지침을 내리는 것은 적당하지 않으며 지침은 개입이라고 느껴질 소지가 있어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일단 진화에 나섰다.
***동아일보 "문화부 홍보업무 운영방안은 '신보도지침'" 비판**
하지만 일단 공격의 빌미를 잡았다고 여긴 언론들의 포화는 18일에도 계속됐다.
지난 15일부터 새 정부의 언론정책이 언론의 하향평준화와 획일화를 불러온다고 반발해온 언론들 가운데 특히 동아일보는 이라크 전쟁이 임박한 가운데서도 18일자 A1면(본지) '취재제한 조치 비판 확산'을 머릿기사로 보도하고, A3면에는 '이창동 장관 신보도지침 파문 확산'이란 부제하에 '언론정책: 盧대통령 따로 李장관 따로'라는 해설기사를 실으며 18일자 종합일간지 중 가장 비중있게 다뤘다.
동아일보가 18일자 지면을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운영한 이유는 3면 해설기사와 점선으로 연결시킨 하단의 '애매모호한 자료 뒤늦게 와전'이란 기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기사는 농림부가 지난 14일 대통령 업무보고에 포함된 대북 쌀 지원문제로 곤란해하고 있다는 내용인데 "노무현 대통령이 15일 '매년 300만섬씩 3년동안 대북쌀지원'과 관련해 농림부의 건의가 있었지만 이는 결정된 정책이 아니며 일부 사실관계가 와전됐다고 직접 해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번 사태는 정부 방침의 혼선, 정부의 모호한 보도자료와 설명, 뒤늦은 해명 등이 맞물리면서 파장이 커졌다"며 "또 앞으로 정부 당국에 대한 언론의 직접 확인취재가 어려울 경우 이런 문제점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와 문화관광부 기자실 폐지 등 일련의 개혁적 언론정책이 정부의 일방적인 보도자료나 브리핑에 의존하는 새로운 취재관행으로 인해 보도과정에서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동아일보가 1면 머릿기사에서 인용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와 한나라당 언론대책특위,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등의 성명이나 3면의 농림부 사례는 현재의 폐쇄적인 기자실 제도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는 간과하고 있다.
***폐쇄적 기자실 운영의 문제점은 외면하는 언론들**
즉 그동안 배타적인 기자실 운영을 통해 가능했던 권언유착 행태, 기자들간의 담합행위와 엠바고 남발, 보도도 하지 않으면서 언론사의 이해관계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빙자한 정보보고 등의 수많은 기자실 폐해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동아일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기자실을 왜 개방하고 브리핑제도를 도입하는지보다는 운영방안중 일부의 꼬투리만을 물고 늘어지는 편향이 눈에 띈다.
한국언론재단 관계자는 "일부 언론들이 기자실 폐지와 브리핑제도 도입에 대해 반발하는 것은 결국 기득권을 고수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또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인용한 보수적인 언론학자들의 경우 과거에는 취재보도 시스템 세미나와 논문 등을 통해 언론환경의 변화에 맞춰 폐쇄적인 기자실 제도의 문제점이나 현행 출입기자제도의 개선을 주장해온 학자들이란 점에서 현재의 기자실 개방과 브리핑제도 도입 취지를 비판하는 것은 일관성이 결여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직기자 78% "기자실 폐지 후 브리핑제 도입 찬성"**
일선기자들도 기자실의 폐쇄적 운영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방향으로서의 브리핑제도 활용에는 크게 공감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례로 언론전문지 미디어오늘이 지난해 1월 기자실 폐지문제와 관련, 현직 신문방송기자 5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78.0%가 개방형 브리핑룸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기자실을 폐지하면 안 된다는 응답자는 12.0%에 그쳤으며 기자실을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9.2%로 나타났다.
물론 청와대나 문화관광부가 주도하는 언론의 취재환경 변화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많이 지적을 받는 부분은 국민의 알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는 점이다. 청와대측은 취재편의 제공과 알 권리의 혼용은 안 된다며 최대한의 정보공개와 공평한 정보접근권을 보장할 것이므로 일부 언론들의 지적은 본래 취지를 외면하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사문화된 것으로 평가받는 정보공개법 등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공개를 토대로 언론들이 기사를 작성할 경우 '통조림기사'나 '발표저널리즘'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문제점은 있다.
***"대통령과 장관이 직접 나서지 말고 맡길 것은 맡겨라"**
한 원로언론인은 "언론은 먼저 누구를 위한 알 권리를 주장하는 것인지 반성해야 한다. 과거 폐쇄적인 기자실의 유착관계를 이용해 사주나 편집국 간부들에 대한 정보보고용 알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다만 정부 부처가 기자들의 취재에 대해 공보관실을 거치라거나 취재원 실명을 공개해야 한다는 등 일방적으로 취재제한을 명시하고 이를 통제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높으며 결과적으로 알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언론인은 또 "현재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개방 등 언론정책이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은 정부가 언론개혁의 화두중 하나인 언론환경 개선문제에 직접 나섰다는 점과 일부 언론에는 이같은 시도가 적대의식의 표출로 비쳐진다는 점에 있다. 대통령과 장관이 나서서 취재환경 변화방향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좋으나 1절만 하면 된다(개괄적인 취지만 설명하라는 뜻). 나머지 공무원과 기자들간의 관계나 취재원 실명요구 등은 담당자나 언론의 몫이지 장관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다. 모든 일에 대통령과 장관이 직접 나설 수는 없을텐데 취지는 좋다고 하더라도 불필요한 잡음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최종 정책결정 전 국장급 단계에서는 언론의 검증과 비판 필요하다"**
다른 언론계 중진은 "정보공개법을 이용해 기사를 쓰라는 것은 속보성이 생명인 언론에게 기사를 쓰지 말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언론의 정부 정책검증 기능을 위해선 정책결정 과정중 적어도 국장급에서 논의가 되고 있는 사안이라면 언론의 검증과 비판을 통해 그 내용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최종적으로 결정된 정책만을 언론이 보도한다면 언론의 검증기능과 비판기능은 유명무실하게 된다"고 밝혔다.
"최근 언론계 내부에서 언론개혁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것이 안타깝다"는 이 언론인은 "노무현 정부가 브리핑제도를 도입하는 등 개방형 언론환경을 만드는 데는 동의하나 이와 동시에 정보공개와 신분노출을 꺼리는 관료사회의 보신주의와 폐쇄주의도 개선해야 할 시급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기자실 개방은 언론개혁 프로그램 아니며 권언간 관계정상화가 목적"**
청와대측은 이같은 논란에 대해 "현재 추진중인 취재환경 변화는 언론개혁 프로그램이 아니라 권력과 언론의 비정상적 관계를 체계적으로 보완해 정상화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기자실 개방 등은 기존의 잘못된 장벽을 붕괴시켜 각 매체에 대한 정보평등을 실현하겠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한 관계자는 "취재환경 변화에 대해 청와대가 갖고 있는 일괄적 기준은 없으며 각 부처별 특성에 맞춰 변화될 것이다. 일부 언론이 제기하는 언론보도의 차별화 문제는 언론이 해결할 문제이지 정부부처가 나서서 도와줄 일은 아니다. 언론과의 관계를 시스템적으로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므로 언론도 시스템을 이용해 접근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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