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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 되고 싶은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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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 되고 싶은 펜?

남재일의 ‘사람과 사람 사이’<3> - 김훈

이전에 나는 김 훈을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한번도 없다. 십 년 전쯤 광화문의 어느 카페에서 후배기자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한 번 봤을 뿐이다 그때 받은 인상은 날렵하고 완강하고, 그리고 뭔가에 젖어 있는 사람 같았다. 맞은 편 자리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전방을 주시했을 때 그냥 눈에 들어오는 그 자리의 사물은 아니었다.

그의 몸에는 주변과 자신을 구별짓는 경계선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 속에서 조각처럼 도드라졌다. 마치 숲 속에 파묻히기를 거부하고 극도로 긴장된 몸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초원의 동물처럼,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하면서 시선을 붙잡는 힘이 있었다고나 할까.

나는 이 느낌을 문장에서 먼저 받았다. 문학담당 기자일 때 모델이 될 만한 기사들을 스크랩해서 틈틈이 읽었는데, 김 훈의 글은 탁월했다. ‘아, 기자도 이런 글 쓸 수 있는 거구나’ 싶을 만큼 낯설기도 했다. 그의 기사는 무지 꼼꼼한데도 독자에게 친절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의 문장은 자연스런 대화가 아니라 치밀한 독백이었다. 기자의 역할이 현실과 독자를 연결하는 거라면, 마땅히 기사는 ‘현실을 얼마나 잘 옮겼는가’와 ‘기사로 얼마나 잘 전했는가’ 모두가 만족스러워야 한다. 당시 내 소견으로 김 훈의 기사는 현실을 기사로 옮기는 데 사력을 다한 글처럼 보였다.

제대로 옮기기만 하면 전달은 되게 마련이라고 확신할 때 기자는 독자라는 하향 평준화의 관념에 대해 퉁명스러워질 수 있다. 왜냐하면 제대로 옮기면 제대로 읽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처럼 언어를 비틀어도 따라가기 어려운 그 많은 세상의 곡선을 어떻게 각진 팩트로 옮겨 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이 문제를 노동으로 해결한다. 얽히고 설킨 세상의 진실이 팩트로 그려질 때까지 조각이 맞지 않는 언어의 레고 게임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 나는 그의 글을 그렇게 이해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가 글을 내 놓으면 이번엔 레고를 어떻게 맞추었는지가 궁금해진다. 내 생각에는 그의 글은 레고의 틈새에 의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김 훈이 독자를 신경 쓰지 않아도 독자는 김 훈을 신경 쓴다. 그의 문장은 그 자체로 사물을 지향하는 변화무쌍한 독백으로 타인의 틈입을 금지하면서 눈을 다른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김 훈이 쓴 글을 나는 거의 다 읽었다. 그래서인지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는 사람인 듯한 착각을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잘 모른다. 이래저래 전해 듣는 얘기가 많았지만 쉽사리 ‘스타일’을 논하기에는 사실 하나 하나가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선배기자 누군가에게 들은 얘기지만, 김 훈이 사회부 경찰기자 시절 사고현장에 가면 바로 전화로 기사를 부를 정도로 순발력이 뛰어났다는 얘기도 의외였다. 그런 기자는 문학기자를 안 하고 못하는 게 보통이고, 문학기자로 실력을 발휘한 기자들은 사건기자를 못하거나 못 견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그가 여행에 쓴 자전거 가격이 오백만 원이 넘는다는 것, 그가 쓴 두 편의 소설 주인공이 각각 소방수와 장군이라는 사실, 그의 육체적 감각이 대단히 까다롭다는 누군가의 얘기, 주변의 여자 후배들에게 자상한데 인터뷰에서 여성능력에 대해 불신한다고 밝힌 사실 등이 나는 인상적이었다. 그에 관해 들은 단편들은 멀리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는 잘 연결이 안됐다. 이 궁금증 때문에 나는 그를 만날 생각을 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를 하자고 전화를 했을 때 그는 접근을 쉬 허락하지 않았다. 맨 처음 전화를 했을 때 그는 “기자 회견 중이니 오후 늦게 다시 하세요”라고 했다. 다시 전화를 해서 인터뷰 방향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내가 아예 질문지를 이메일로 보내겠다고 했다. 그는 “저 이메일 안 씁니다. 팩스로 넣어주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간략하게 질문 방향을 팩스로 넣었다.

그리고 전화를 기다렸는데 전화가 오지 않아서 내가 다시 했다. 그는 “xx일 보기로 하고 그 날 아침에 전화를 줘요”라고 했다. 결국 이날 아침 전화를 해서야 약속 장소에서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아침이 돼야 시간 약속을 할 수 있는 경찰 출입기자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두 번 만났다. 첫 날은 인사동 토 아트에서 두 시간 얘기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남: 경찰출입기자를 한다고 들었다. 기자 경력으로 보면 편집국장은 제작 현장에서는 정점이다. 그리고 경찰기자는 출발점이다.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지내고 다시 경찰기자를 하는 셈이니, 한 바퀴 돌아와서 원점에 선 셈인데 그 동기가 궁금하다. 또 지금 나이에 경찰기자를 하면 뭔가 다른 느낌이 있을 것 같은데...

김: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소설 쓰면서 내가 하는 일이 오래 들어앉아서 책 읽는 게 전부다 보니 관념과 추상의 세계에 빠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현실감 없는 인간이 되지 않나 그런 생각에서, 그건 글 쓰는데도 위기니까,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현장이 기자밖에 없고, 이왕 기자를 할 바에는 경찰 출입기자하자 그렇게 된 거다. 그러고 며칠만에 경찰기자가 돼 버렸다.

이제 한 4개월 됐나...다시 현장에 나와보니 삶의 바닥은 지극히 난해한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수많은 욕망과 생각의 차이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 삶의 현장이다. 무수한 측면과 측면들이 저마다 정의라고 주장한다. 점점 판단을 정립하기가 어렵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는 근원적 문제보다 존중과 타협이 중요하다. 그 어느 것도 절대 선이라고 주장할 수 없고, 절대 악으로 반박될 수도 없는 나름의 사연과 치열함이 현장을 복잡하게 만든다.

남: 언론사를 여러 군데 옮겨 다녔다. 다 같은 기자 일인데 여러 곳을 옮긴 이유가 궁금하다.

김: 그 때마다 각기 다른 사정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직장을 떠나는 게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직장에서 불화가 생기면 구태여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그냥 내가 떠난다. 불화를 유지하고 불화인 상태로 있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시사저널 그만둔 배경에 대해 묻자) 시사저널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 내용을 갖고 주변이 추잡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그 날 바로 그만뒀다. 세상은 무서운 게 아니라 우습더라.

남: 신문사 있을 때 친한 선배가 기자는 자신이 2류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일류가 된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을 기자는 ‘나’라는 주어를 버려야 한다는 걸로 해석했다. 선배는 주관이 매우 강한 사람으로 알고 있고, 문체도 누가 봐도 식별할 정도로 개성이 뚜렷하다. 그래서 신문사 조직과 자신의 스타일을 조화시키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기자를 통해 무엇을 추구하고 얻는 것은 무엇인가?

김: 내가 생각하는 기자의 본질은 첩보원 같은 거다. 많은 정보를 논리적으로 배열하는 게 본업이다. 팩트가 없는 사람은 수사학에 의존한다. 그런데 팩트의 취사선택은 기자 개인의 판단이다. 결국 주관과 객관의 문제인데,,,그건 해결이 안 된다. 기사의 객관성이 6하 원칙이라는 형식인데 그 자체는 맞는 얘기다. 그러나 진실을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그릇이다. 그걸 넘어서려는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은 고통스런 실험이다. 6하의 존엄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넘어서는 것...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스트레이트 문장은 깔끔하다. 사실에 바탕을 둔 점 그리고 긴장감이 매력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을 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로 문학 기사는 사실보다 기자의 직관이 끌고 가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훌륭한 직관은 진실에 근접한다. 문학담당 할 때 나는 평론가나 저자 인용 거의 안 했다. 그냥 꼼꼼하게 읽어보고 썼다. 인용이 객관성을 담보한다는 발상은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다.

남; 주변에서는 이번에 경찰기자 된 거 글감 찾으러 간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던데...

김: 세상을 들여다보기에 가장 좋은 게 기자다. 글감을 찾기 위해서 일부러 다시 기자하는 건 아니다. 체험이 다 소설이 되는 건도 아니고 극히 일부가 소설에 반영된다. 현장감을 유지한다는 것은 언어와 관념에 내가 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남 : 김훈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문장을 떠올린다. 내가 아는 한 신방과 교수는 수업시간에 문체를 얘기하며 “칼로 조각한 것 같다”는 표현을 썼다. 대체로 팬들은 감각의 밀도에 가 닿는 관념의 각에 매료되는 것 같다. 나도 개인적으로 그 쪽이다. 그런데 또 다른 부류들은 그 점을 “빡빡하다” “숨막힌다”로 표현한다. 자신의 문장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김: 사람들이 문장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들으면 대개 옳다. 그런데 그런 지적들이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문장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필연성이다. 오류를 알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다른 길이 보여도 발이 그 쪽으로 가지지 않는다.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전압에 끌린다. 전압이 높은 문장이 좋다. 전압을 얻으려면 상당히 많은 축적이 필요하다. 또 그만큼 버려야 한다. 버리는 과정에서 전압이 발생한다. 안 버리면 전압이 생길 수 없다.

남: ‘칼의 노래’를 읽다가 저자가 난중일기의 문체에 반한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예컨대, “바다는 잔잔했다. 부하 모모가 군령을 어기기에 목베었다.” 같은 문장이다. 이런 문장이 전압이 높은 문장인가?

김 : 두 문장 사이에 수다를 떨고 싶었지만 참았다. 수다가 많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문장으로 가고 싶은 거다.

남: 그럼 헤밍웨이 문장도 좋아할 것 같은데..

김: 헤밍웨이의 문장은 대가의 가차없는 점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고...스타인벡의 풍요로움에 끌린다. 스타인벡의 문장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길이 넓고 깊다.

남 : 아직까지 이메일 안 쓰는 사람도 드물고, 원고 쓸 때 컴퓨터 안 쓰는 사람은 박물관에 가게 생겼는데, 불편하지 않은가?

김 : 이메일이나 컴퓨터 아직 쓸 생각이 없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나는 기계에 대해서는 정말 무능하다. 그냥 기계가 싫고, 기계적인 것이 싫다. 지금도 원고지에 연필로 쓴다. 몸으로 밀고 가는 느낌이 없으면 못 쓴다. 더디고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그게 좋다. 그리고 지우개...지우개가 참 아름다운 물건이다. 싹싹 지우면 없어지니까.

남 : ‘칼의 노래’는 슬픔을 베는 슬픈 칼의 신음소리 같았다. 문장이 그렇다는 얘기다. 칼날 같은 문장으로 궁극적으로 베고 싶은 게 있을 것 같은데...

김 :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실존한 그대로는 아니고 내가 만든 것인데....희망 없이도 잘 사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거다. 희망이나 전망이 없이도 살아야 되는 게 삶이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기도 하다. 희망을 전제하지 않고 어떻게 사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나는 희망 없이도 역사가 가능하다고 본다. 오히려 헛된 희망이 인간을 타락시킨다. 인간은 헛된 희망 때문에 무지몽매해진다. 결정적으로 인간이 무지몽매해지는 것은 어설픈 희망 때문이다

남: 그러면 거대담론을 부정하는 것도 헛된 희망을 말하기 때문인가?

김: 거대담론을 이해할 수 있었던 적이 거의 없다. 몸이 검증 안한 언어를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역사적 이런 말들이 잘 안 와 닿는다. 어떤 문제든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게 나와는 안 맞다. 언어를 사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쓸 수는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언어는 한 줌밖에 안 된다. 나이가 들수록 쓸 수 있는 언어가 점점 작아진다.

남 : 기자와 신문사의 정치적 입장이 반드시 같아야 되는 건 아니지만, 한겨레 입사를 의외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예컨대, 씨네 21의 편집장이 쓰는 칼럼이 있는데, 홍세화와 김훈의 같은 날 입사를 칼럼의 토픽으로 삼았다. 이 문제에 대한 본인의 입장이 궁금하다.

김 : 그런 거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나는 한겨레와 조선일보를 나누고 어느 쪽에 서느냐로 사람을 판단하는 그런 풍토가 못마땅하다. 보수적인 생각이 보수적인 언론을 만드는 것은 진보가 진보언론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당하다,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이름으로 사실이 왜곡되는 것이야. 진보=선, 보수=악, 이건 아니지. 그 반대도 아니고.

세상을 이해하는 다른 틀이 필요하다. 선악 대결구도로 가면 문제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리고 부도덕하다는 것과 다른 차원의 얘기지만 난 스스로 도덕적 존재라는 확신은 안 한다. 그리고 도덕적 존재라는 신념에 찬 자를 경멸한다. 이런 자는 필시 누군가를 부도덕하다는 생각을 감추고 있기 마련이다. 나는 도덕적 존재도 아니지만 부도덕한 존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가난뱅이가 도덕적이고 부자가 악인 건 아니다. 악한 부자가 있는 거지.

남 : 기자가 부자가 되려면 밤무대나 밀실에서 각별한 유능함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런 유능함은 전혀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스스로 부자라고 느끼나?

김 :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도 아니다. 어린 시절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게 싫었다. 그래서 열심히 노동하고 노동의 대가로 지금의 터전을 만든 거고...

남 :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 봐’에는 노동하지 않고 살고자 하는 인간이 등장한다. 그런 캐릭터는 좌우를 막론한 공공의 적이다. 한 마디로 근대의 적으로 규탄 받는다. 노동에 대한 생각이 궁금한데...

김 : 나는 노동을 싫어한다. 불가피해서 한다. 노는 게 신성하다. 노동은 인간을 파괴하는 요소가 있다. 그러나 이 사회는 노동에 의해 구성돼 있다. 나도 평생 노동을 했다. 노동을 하면 인간이 깨진다는 거 놀아보면 안다. 나는 일할 때도 있었고 놀 때도 있었지만 놀 때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지는 걸 느꼈다.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 같이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거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그런데 노는 거, 그게 말이 쉽지 해보면 어렵다. 놀면서 돈 쓰고 돌아다니는 거는 노는 게 아니라 노동의 연장이다. 돈에 의지하지 않으면 못 노는 거는 돈버는 노동세계와 연결돼 있어서 노는 게 아니다. 노는 거는 그 자리에 있는 세상하고 단둘이 노는 거다.

남 : 들은 얘긴데, 돈과 여자의 공통점은 누가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지 아니면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귀신같이 알아본다고 그랬다. 그래서 돈은 돈을 쓰기 위해 벌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안 가든지 갔다가 도망가든지 둘 중 하나라는 거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 말이 맞았다. 돈에 대한 생각은?

김 : 난 돈을 사랑하진 않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처지였다. 돈을 우습게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이 더 우습게 보인다. 돈은 준엄하다. 삶을 포기한 자가 아니면 어떻게 돈 무서운 줄 모르나. (돈을 꺼내면서) 이게 뜯어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을 불러모으는 걸 보면 신기하다. 사람을 모아서 삶을 잊게 하고, 삶을 간접화해서 현장에서 점점 멀어지게 하는 게 돈 같다.

남 : 먹고 살기 위해 노동하는 데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자전거 여행’에서 노동하는 할머니에 대해 길게 묘사한 대목도 그런 맥락인가?

김: 평생을 농사짓거나 고기 잡은 사람들은 삶의 직접성으로부터 터득하는 지혜가 있다. 이들의 노동 자체는 소외된 노동이 아니다. 돈은 안 되지만 인간과 친밀한 노동을 한 평생 하니까 몸과 삶이 부딪치면서 지혜가 생길 것 같다. 도시의 노동자들은 노동을 해도 그런 지혜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들의 노래는 노동의 노래를 부를 수 없는 현실을 노래 부르지 않나. 현대식 공장은 생명을 가진 것에는 유해한 공간이다.

남 : 얘기 듣다 보니 이런 표현이 가능할 것 같다. “좌우로 재는 데 관심이 없고 아래위로 치받는다.” 좌우 따지는 것은 근대 이후의 산물이고 공장은 근대의 형식 자체가 아닌가. 어찌 보면 근대의 분업 시스템 자체에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김 : 나는 근대성을 지지할 만한 명석한 신념이 없다. 구태여 말하자면 아나키에 가깝다.

남 : 아나키는 형식 자체를 부정하는 급진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보수가 될 수는 있어도 동기 측면에서 보면 진보, 보수를 떠난 일종의 탈정치적 자세다.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표현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런 건가?

김 : 나는 나이 들기 전부터 보수적이었던 것 같다. 타고난 보수의 기질은 어쩔 수 없다. 더러운 현실 아닌가. 약육강식과 비열함이 지배하는 현실. 그런데 나는 그 현실을 인정한다. 현실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몸담고 살아야 하는 현실임을 인정한단 말이지. 그럼 사회를 지탱하는 저변의 틀은 인정하는 거고 그게 보수잖아. 정치적 진보 보수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그렇다는 거지.

남 : 여성문제를 보는 시각도 지금 말한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련된 건가?

김 : 나는 가부장주의자다. 아버지에게 그렇게 교육받았다. 여자는 약하니까 보호하고 보살펴야 한다고. 그게 가부장 된 자의 덕성이다. 만일 이런 게 제대로 지켜진다면 결과적으로는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것과 가까울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페미니즘을 통해 여자를 보거나 여자를 대하지 않겠다는 거다. 그건 근원적으로 내 방식이 아니다.

남 : 소설의 문장이나 서사가 여성적이진 않는데 여성 팬들이 많다고 들었다. 여자를 풍경처럼 본다는 말은 다른 인터뷰 기사에서 봤다. 자신의 방식으로 본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김 : 여자와 생명을 생각하면 경이롭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을 느낀다. 내가 남자로 태어난 것은 어떤 결핍이고, 그 결핍이 여자의 생명을 경이롭게 보게 하는 것 같다. 여자를 보면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볼 때의 경이로움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래, 나는 여자를 풍경으로 보는 인간이다. 이 말이 참 노인 같은 말인데, 나무나 바위처럼 온전히 풍경으로 본다는 거는 불가능하고 그렇게 봤으면 좋겠다는 거지.

남 : “김훈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편애 할 때다.” 이 말을 시사저널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들었다. 편애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소통의 밀도에 대해 열망이 남아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 :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인간사이의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통되는 부분이 있지만 안 되는 부분이 많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규범과 법질서, 이런 기본 프레임을 통한 소통밖에는 안 된다. 심오한 소통은 순전히 개인의 몫인데... 나는 회의적이다. 가령 섹스처럼 남녀가 살을 맞대고 있는 경우도 남과 전혀 소통이 안 된다.

섹스 행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기의 감각밖에 없다. 자기가 느낄 수 있을 뿐이지 상대가 느끼는 바를 느낄 수 없다. 섹스는 결과적으로 편애다. 사랑하면 느낀다 이런 말들은 우스운 말들이다. 나는 편애할 때 편안하다. 사랑, 보편 타당, 이런 말들 보다 편애, 편견 이런 말들이 더 소중하다.

남 :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대개 젊을 때는 연애를 통해 완전히 소통되는 관계를 꿈꾸기도 하고, 사회에 대해서도 지금보다는 더 잘 소통되는 체제를 열망하지 않는가?

김 : 젊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생존에 대한 공포였다. 먹고 사는 데 대한 공포가 가장 컸다. 사랑이나 이념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 화두는 밥이었다.
(그는 사랑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고 밥을 편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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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 시사저널 그만 두고 ‘칼의 노래’를 썼고, 그 작품이 동인문학상을 탔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전업작가로 나설 것으로 예상했는데, 다시 경찰 기자가 됐다. 앞으로 소설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김 : 처음부터 소설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직업적 소설가로 입신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마추어다. 소설로 풀어야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도 아니다. 장편 두 편을 계획하고 있다. 이거는 죽기 전까지 사력을 다해 만들어 볼 참이다. 소박하고 작은 꿈이다. 황석영이나 조정래 선배 같은 사람들은 한없이 이야기를 풀 수 있고 사회구조 속에서 풀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임진왜란을 봐도 왜 그런지 자꾸 개인의 내면만 보인다.

남 : 장편 두 편이라고 못 박은 것은 구상이 돼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김 : 무인의 얘기와 예술가의 얘기다. 더 이상 쓸 얘기가 없다. 구체적 계획은 없다.

남 : 무인에 대해 각별한 애정 혹은 집착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칼싸움하는 영화를 좋아해서 사무라이 영화, 특히 그 중에서도 칼싸움 씬을 열심히 본다. 중국영화와 달리 일본 영화의 칼싸움 씬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사무라이 영화 좋아하나?

김 : 나는 영화를 거의 안 본다. 스크린이 너무 커 보는 사람을 압도하고 여백이 없다. 스크린에 짓눌려서 자유의 영역이 없다. 이건 영화매체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인데 나는 이 점이 불편하다. 사무라이에 대한 책은 많이 봤다. 사무라이를 긍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 있다. 당대를 자기 방식으로 헤쳐나가는 것이 좋았다.

남 : 당대를 자기 방식으로 헤쳐 나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김 : 가령 진시황 분서 갱유나 순장제도를 악의 화신으로 현대의 민주주의 관점에서 평가하는데 그건 어리석은 짓이다. 진시황이 분서갱유 한 것을 나는 긍정한다. 통일왕조를 실천하려는데 책 좀 읽은 자들이 뒤에서 재를 뿌리니까 책을 태워버린 거야. 진시황은 우리 민족이 통일 왕조민족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거야. 이걸 현대적 기준에서 평가하는 것은 무지몽매한 짓이라고.

남 : 무인과 예술가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아주 다른 사람들인 것 같다. 현대 자본주의 분업사회에서 무인의 범주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은 군인, 운동선수, 조직폭력배, 그리고 조직폭력배 지망생인 동네 건달 정도다. 이 사람들과 예술가의 공통점은 아마도 콧구멍으로 주로 숨을 쉰다는 거 이외에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 소설로 형상화하고 싶은 무인의 모습은 어떤 것이고 예술가와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김 : 앞으로 쓸 소설에 무인을 어떻게 그릴지 말하긴 어렵고...그냥 무인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삶의 현실과 몸으로 부딪치는 그 직접성과 관계가 있다. 예술가는 칼 대신 다른 도구를 사용하지만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를 개조하려는 열망에 찬 사람들이다. 방식이 다를 뿐이다. 나는 문무가 다른 거라고 생각 안 한다. 궁극적으로 같은 거다.

남 : ‘자전거 여행’ 서문인가 ‘사람들아 이 남루한 수사학을 욕하지 말아다오’란 문장이 있다. 여기서 ‘남루한 수사학’이란 표현은 작가 안의 무인이 펜을 든 자아를 지켜보는 지형에서 나온 것 같다. 칼 대신 펜으로 긁어 놓은 것은 무인의 시선에는 남루한 것이며 수사학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래서 이 문장에는 문과 무가 불화 하는데, 불화의 양상이 무가 문을 지배하고 문이 무에 도전하는 위계적 구조이다. 나는 문장의 전압이 이 수직적 낙차에서 발전되는 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문과 무의 불화는 무가 문보다, 혹은 칼이 펜보다 더 순도 높은 미학적 형식으로 자리 매김 되는 순간 발생하는 것 같다.

그런데 ’칼의 노래‘에서 칼은 미학적 형식으로서의 무의 환유적 대상물이자 동시에 잡다한 무인의 손아귀에 있는 역사적 실재이기도 하다. 김훈의 미학이 어떤 사회적 담론의 지형에 투입되면 칼은 역사적 실재로서 변신하게 된다. 이념을 둘러싼 전쟁과 군부독재를 통해 칼을 체험한 한국에서 칼의 의미가 곧바로 역사적 상처와 연결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 : 칼에 대해 조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과민함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지금의 문제는 칼이 아니다. 비틀린 펜의 폭력, 주인 없는 비열한 가면의 폭력이 더 큰 문제다. 내가 칼로써 잘라내고 싶은 게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말은 사실 절대 칼이 될 수 없다. 말이 칼이 되기 위해서는 말을 버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다시 말을 해야 한다. 이 문제는 노자도 해결 못했다. 말은 하찮은 것, 한 줌밖에 안 되는 것이지만 말을 통하지 않고는 칼이 될 수 없는 것, 그게 불우함이다. 내가 예술가를 보는 것도 이 맥락이다. 더러운데 하는 것. 하면서 견디는 것, 그게 좋은 거다.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은 흥정과 타협의 산물이 아니면 안 된다.

남 :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 본성에 가장 안 맞는 게 희망 없이 견디는 일 같다. 도를 상상하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도를 닦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그래서 사람 사는 곳은 거짓말이라도 달콤한 서사가 적당히 배치돼 있는 게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 번도 종교를 긍정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는데 요즘 와서 그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 종교를 갖고 있나?

김 : 어릴 때 천주교에 관심 있었다. 그리고 불교와 증산교에 끌렸다. 요즘도 절에도 가고 성당도 가고, 그리고 죄도 짓고 그러고 지낸다. 구원이나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구원은 애초에 없는 거다. 절이나 성당에 가서 주로 하는 건 인간의 행태를 관찰하는 거다. 행태를 인식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기쁨 중의 하나다.

남 :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게 알고 있었다. 66학번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생각이나 생활 양식이 나이 먹은 사람 같지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의 나이가 편안한가?

김 : 나이 먹는 거 쓸쓸하다. 나이 들면 어느 정도 소외돼서 적막한 자리에 처박혀 있는 게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나이 먹는 거는 바람 부는 거나 날 저무는 것 같은 자연 현상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이 든다는 것이 모멸의 대상이 된 것 같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 할 때 무모하고 추잡한 권력이 난무하게 되는데 말이다.

그는 멀리 있을 때보다 가까이서 얘기 할 때가 오히려 편했다. 사진을 찍는다고 옆에 나란히 앉아 얘기를 할 때가 마주 앉았을 때보다 더 편하기도 했다. 그는 어떤 질문이든 재지 않고 준비된 듯한 답변이 줄줄 나왔다. 불온한 마음도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털어 냈다.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무수한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하며 자신과 지겹게 놀아 본 사람, 그리고 거기서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어떤 확신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는 칼이 되고 싶은 펜 같기도 했고 칼보다 강한 펜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그는 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칼이 칼로서 자기의 존재를 증명하는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을 벨 때뿐이다. 타인을 베는 칼은 순정한 칼이 아니다. 이때 이미 칼은 칼로는 베어지지 않는 생의 더러운 역사에 묶여 있다. 순정한 칼이 진정으로 벨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 칼의 도덕성은 그렇게 엄하고 비극적인 것이다.

나는 그와 헤어지면서 ‘팩트’를 강조하는 것, 있음 그대로를 있다고 강조하는 것을 유일한 자기 발언의 형식으로 삼는 사람들의 마음의 역사를 상상해 봤다. 시작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따뜻함이 좋겠다. 배경은 삭막해야 감동이 크니까, 약육강식의 몸싸움을 동력으로 생산하는 체제에서 생산을 닦달하는 주문이 도덕의 가면을 쓰고 있는 인형극 무대라고 하자. 이 무대에 던져진 어떤 인간이 인형의 가면을 쓰기도 싫고 타인의 가면을 깨부수기도 싫다면 그에게 남은 길은 하나밖에 없을 듯싶다. 원래 인간의 모습이었음직한 얼굴을 가면으로 쓰고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가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독백은 순교를 욕망하고 있는 것일까,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문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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