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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에겐 아플 자유밖에 없는가?

hari-hara의 '생물학 카페' <15> 신약 개발 이야기 (4ㆍ끝)

***LG생명과학 "팩티브" 신약승인 美 긍정평가**

국내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에 등록되는 신약이 탄생할 전망이다. ㈜LG생명과학(대표 양흥준)은 미국 FDA에서 신약승인을 추진 중인 신규 퀴놀론계 항생제 `팩티브'가 5일(한국시간) 개최된 `FDA 신약 심사자문위원회(Advisory Committee)' 공개 심의에서 심사위원들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LG생명과학은 이날 공개적으로 진행된 자문위원회 심의 결과, 팩티브의 적용 증상 가운데 `경ㆍ중 폐렴'에는 심의위원 19명 중 18명이 찬성의견(기권 1명)을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만성 호흡기질환의 급성악화'에 대해서도 심의위원 대다수가 찬성의견을 표명했다고 LG생명과학은 덧붙였다. 회사 관계자는 "심사자문위원은 FDA가 선임한 외부 전문가들"이라며 "올 상반기중으로 FDA에 등록되는 국산 신약이 탄생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3월 5일

안녕하세요, 여러분.

간만에 신문에서 반가운 기사를 읽었습니다. 예상대로만 된다면 팩티브(FACTIVE)는 최초로 FDA의 허가를 받는 국내 신약이 될 전망입니다. LG에서 팩티브를 개발하여 세계적 제약회사인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비참)에 기술 수출한 것이 지난 97년이었고, 99년과 2001-2년에 각각 FDA에 승인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으니까요. 벌써 세번째, 그동안의 실패 경험으로 조심스러운 입장이긴 하지만, 주가 540선이 무너지는 폭락장에서도 LG생명과학 주식은 매수 추천을 받는 입장일 정도로 이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들어 불안하고 걱정스런 뉴스만 계속 들리는데, 반가운 소식 하나 들려오길 기대해 봅니다.

글리벡과 신약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네요. 오늘은 마무리를 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하죠. 우선 글리벡 등 각종 신약들을 둘러싼 문제의 저변에는 TRIPs(Agreement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즉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이 깔려 있습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서 좀 알아보기로 하죠.

TRIPs는 1994년에 실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생각보다 역사가 짧죠? 물론 TRIPs 협정 이전에도 무형 재산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인정하는 협약은 있어왔죠. 그러나 TRIPs가 기존 지적재산권 관련 협약과 다른 커다란 차이점은 의약품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다른 공산품과 같은 수준으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TRIPs가 실시되기 이전에는 50여개국에 이르는 이른바 개발도상국에서는 의약품을 아예 특허에서 제외하거나 물질 특허 대신 제법 특허만을 인정했을 뿐이었습니다(이는 지난 칼럼에서 잠깐 언급했습니다. 제법 특허만 있고 물질 특허가 없는 경우, 같은 물질이라도 다른 공정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면 각각에 다른 특허를 부여해서 특허권 침해가 없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TRIPs 이전에 이런 예외 조항을 둔 것은 의약품과 같이 생명과 복지에 직결되는 영향력을 가진 영역에서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보호보다는 공공의 이익이 우선된다는 인식에 기초했던 것입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거꾸로 돌아가는 건지, 세상이 그만큼 각박해진 것인지는 몰라도 TRIPs는 이런 면에 있어서는 한 발 물러나서 신규성, 진보성, 산업이용성이 있는 물질 및 제법에 대한 특허를 인정함으로써 의약품에 대한 특허를 인정했습니다. 거기다가 옵션으로 특허보호기간을 최소 20년으로 보장하여 개발자에게 절대 배타적인 독점권을 부여하는 독점권을 주기도 했구요. TRIPs 가 철저히 이미 기술과 능력을 가진 선진국을 위주로 체결되었음을 의심케 하는 것은 TRIPs에는 약속된 협정을 위반했을 때,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절차를 따라 무역 제제를 할 수 있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TRIPs 이전의 지적재산권 협약에서는 개발 도상국에서는 제법 특허만 인정하는 등 약간의 유예점을 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TRIPs 협정 이후에는 선진국이건 개발도상국이건 관계없이 그 나라가 WTO 회원국이라면 국민생활 수준이나 국력, 영향력, 경제력 등에 하등 관계없이 동일한 지적재산권 제도를 적용할 것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특허로 인정된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WTO의 분쟁해결절차에 따라 무역보복까지 가능한 발판을 만들어 준 것이죠. 상대가 강하든 약하든 똑같은 룰을 적용받는 것, 이것은 언뜻 봐서는 타당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출발선상 자체가 차이가 난 이후에 시작했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합니다. 바둑을 두더라도 상대가 실력이 뒤떨어지면 몇 점 접어주고 시작하는 것이 통례인데, 생명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제약 산업에서 이런 독불장군식 협정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도 당연하죠.

TRIPs 이전에 실시된 지적재산권 협정은 영토에 속박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선진국인 A국에서는 특허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개발도상국인 B국에서는 지적재산권 제도가 없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죠. 이로 인해서 자신들만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해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억울했었던가 봅니다. 이런 이들은 타국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보호를 이들은 '해적질(piracy)'라고 불렀으니까요. 물론 자신들이 힘들여서 어렵게 어렵게 얻어낸 결과를 손 안 대고 코 풀 듯 낼름 가져다가 사용하는 경우에 분통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이미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불평등은 TRIPs 이후 공평해진 것이 아니라, 더욱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저번에 잠깐 예를 들었던 에이즈를 다시 이야기해 볼까요? 에이즈는 우리 나라에서는 그다지 크게 문제가 되는 질병은 아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나라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위험 요소입니다. 다음은 에이즈 환자들의 전세계 분포를 나타낸 지도입니다.

<지도>

붉은 색이 짙어질수록 에이즈 유병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하라 사막 아프리카 이남 쪽으로 갈수록 핏빛 같은 붉은 기운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고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들의 HIV(에이즈 바이러스)의 감염 비율은 적게는 45%에서 많게는 72%까지로 끔찍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지금 18살인 청소년의 50%만이 서른살이 될 때까지 살 수 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입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에이즈 유병률은 치명적일 정도로 끔찍하지요. 에이즈에 걸린 여성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에이즈에 걸려서 죽고, 이런 악순환은 인구 피라미드를 흔들어 국가의 존립자체를 위협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목을 더욱더 조르는 것이 TRIPs를 비롯한 선진국 중심의 지적재산권 협정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TRIPs 하에서 특허는 특허권자에게 최소 20년동안의 배타적 권리를 부여합니다. 즉, 최소한 20년 동안은 특허받은 상품을 다른 사람이 생산해서도, 마음대로 판매해도 안되며, 허락없이는 수출ㆍ수입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독점적 권리로 인해 최근에 개발된 의약품의 가격은 교과서에서 배웠던 단순한 수요/공급 곡선에서 벗어나, 독점기업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업의 지상 목표는 최대 이윤의 추구인만큼 이럴 경우, 의약품의 가격은 수요에 상관없이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최고의 가격으로 결정이 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 정도 가격을 지불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의약품 시장에서 과감히 배제해 버리고 말이죠. 이는 에이즈 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는 심각한 질병으로 취급되지 않는 폐렴, 말라리아, 결핵 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질병에 쓰이는 한 달 약값은 10달러 수준이지만, 한달 수입이 수십 달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이들에게 이 약값은 나머지 식구들이 굶어야 얻을 수 있는 가격입니다. 그나마 이 정도야 굶어가며 애를 써가며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특허권의 보호를 받는 에이즈 약가 1만달러는 이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돈이지요.

기업의 목표는 이윤 추구이고, 힘들여 개발한 물질에 대한 특허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논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치원에서부터 배웠던 '나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상충될 때, 공공의 이익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논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과연 사람의 생명에 직결된 부문에서조차도 돈과 힘의 논리만이 유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논리일까요? 가난한 사람에 주어진 자유는 아플 자유 뿐, 치료받을 수 있는 자유는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일까요?

hari-hara(harihara@pressian.com)

추신: 자세한 내용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신 분은 글리벡 공대위( http://glivec.jinbo.net )의 자료실을 참조하세요. 글리벡을 비롯한 각종 신약 사업과 TRIPs에 대한 자료들이 가득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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