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많은 시위자들은 미국의 정책이 남북간 화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일부 미국인들에게 이는 가혹한 평가일지 모르지만 이제까지 말한 최근의 사태진전으로 보아 현재 한반도를 감돌고 있는 새로운 위기의 책임이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고 결론내리기는 어렵다. 확실히 북한은 부시 취임부터 2002년 10월 켈리의 방북 때까지 워싱턴과의 외교적 협상을 추구했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파트너인 러시아와 중국도 북한과 (선의의) 조치를 주고 받으며 북한을 포용했다. 오직 미국만이 이 대열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북한은 “악”으로 선언됐고 (미국의) 새로운 선제공격의 위협 아래 놓이게 됐다. 이처럼 위험스런 미 정책의 새로운 일탈을 마치 강조라도 하려는 듯이 미 국방부는 이라크와 북한의 지하강화요새에 대한 핵공격 계획들을-선제공격에 의한 것이든 또는 재래식 전투의 초기단계에서든-정기적으로 (언론에) 유출시키고, 가짜 핵무기를 이용해 이러한 시나리오를 연습해 보는 전쟁게임을 하고 있다.13) 따라서 평양의 장군이라면 누구나 새로운 “부시독트린”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안 한다면 직무유기로 쫓겨날 것이 분명하므로.
2003년 1월에 이르기까지 부시는 자신의 정책공약으로부터, 그리고 북한과의 대결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금지선(red lines)"으로부터 한 발 물러나 ”우리는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해야 했다.14) 또한 김대중 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모두 포용정책을 고수함에 따라 서울과의 관계도 매우 험난해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국인들의) 불만이 미국인 일반을 향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그보다는 지난 2년간 부시행정부가 보여 온 직무유기적이고, 일관되지 못하며, 덜 떨어진 대한반도 정책을 겨냥하고 있다.15)
따라서 서울측의 불만을 묘사하기 위해 (미국) 언론들이 끊임없이 사용하고 있는 “반미주의”란 말은 결함이 있으며 부적절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항의시위에 폭발에 대해서 부시행정부도 다른 관련 당사자들만큼이나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편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서울의 음식점에서 “미국인 사절”이라고 씌어 있는 팻말이나 미국인 일반을 비난하는 포스터 등을 볼 수 있다. “반미”라고 씌어 있는 버튼이나 포스터 등도 발견할 수 있다. 2001년 8월과 2002년 10월의 시위를 관찰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내 국적을 물어보면 뉴질랜드 사람이라고 말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나에 대해 털끝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수개월 동안 토요일마다 서울에서 열린 대규모의, 기품있고 인상적인 촛불시위에 많은 미국인과 서양인들도 동참했다. 게다가 “반미”라는 용어는 미국의 정책들에 대한 불만을 한마디로 표현하기 위해 오랫동안 흔히 사용돼 왔던 말로 미국인이나 미국 전체에 대한 반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첫 번째 저서는 전두환 독재정권에 의해 판매금지 됐었는데(그 덕분에 해적 번역판이 많이 팔렸다), 전두환 정권은 내 책에 대해 반한이자 동시에 반미이며 또한 친북이라고 비난했다. 비난의 주체를 감안해 보면 나는 이 간결한 비판적 용어의 대상이 된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최근의 갤럽 한국 조사에 따르면 “미국을 싫어하는 사람”이 1994년 15%에서 2003년 53%로 늘어났다. 이 여론조사에 관한 언론보도는 조사대상자들에 대한 실제 설문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의 질문을-당신은 미국을 좋아합니까?-던졌을 때, “예”라는 응답은 1994년 64%에서 2003년 37%로 줄었다.16) 이 조사결과를 다른 식으로 해석한다면 1994년에 조사한 사람들 중 36%가 미국을 싫어한다고 말했다는 얘기가 된다. 결코 마음 편한 숫자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로는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부시행정부의 정책과 두 미군병사에 대한 무죄평결 때문인지, 아니면 점증하는 “반미주의” 때문인지를 알아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2002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가 부시의 대북한정책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17)
더욱이 최근 시위들의 전반적인 경향은 미 정책에 대한 반대가 절정에 이르렀던 1980년대 중반과는 사뭇 다르다. 대통령선거를 수일 앞둔 12월 14일 토요일, 나는 시내 중심부의 한 호텔 객실에서, 그리고 직접 시위대 속에 들어가 아마도 사상최대였을 “반미” 시위를 목격했다. 나는 1960년대 뉴욕과 워싱턴에서 열린 대규모 반전시위에도 참여했고,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수많은 학생시위도 보아왔지만 그 날의 촛불시위만큼 인상적인 정치적 발언은 보지 못했다. 수만명의 젊은이들, 어린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 구호를 적은 팻말과 함께 인간띠를 만든 시위자들, 드문드문 눈에 띄는 중.노년의 시민들이 바람을 막기 위해 종이컵을 씌운 촛불을 들고, ‘미국은 남북화해를 지지하라’ ‘SOFA 협정을 개정하라’ ‘미군기지를 서울 외곽으로 이전하라’ ‘여중생 살해 미군병사를 처벌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하얀 플래카드들의 밑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시위는 진지했으나 부드러웠고, 감동적이고 기품 있었으며, 그리고 매우 질서 있었다.
***각주**
13) Hans M. Kristensen, Preemptive Posturing,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September/October 2002, Volume 58, No. 5, pp. 54-59. 크리스텐슨은 기밀해제된 문서들을 바탕으로 1998년 이같은 모의 핵전쟁 연습이 수행됐다고 말하고 있다.
14) David Sanger, Bush Welcomes Slower Approach to North Korea, New York Times (January 7, 2003), pp. A1, A10; 또한 Sanger, Nuclear Mediators Resort to Political Mind Reading, New York Times (January 12, 2003), p. A13.을 보라
15)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부시 행정부는 대북한 정책과 관련해 심각하게 분열돼 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고 말한다.: 한 고위 외교정책 관리는 “이 문제에 관한 회의를 끝내고 나오면 12가지 아이디어를 들었지만 합의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David Sanger and Julia Preston, U.S. Assails Move by North Koreans to Reject Treaty, New York Times (January 11, 2003), p. A1.
16) Anti-U.S. Sentiment Deepens in South Korea, The Washington Post (January 9, 2003), pp. A1, A18.
17) Howard W. French, with Don Kirk, American Policies and Presence are Under Fire in South Korea, Straining an Alliance, New York Times (December 8, 2002), p. A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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