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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의 또다른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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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의 또다른 “위기”

<브루스 커밍스의 한미관계 분석> <2>

부시행정부가 초기부터 동아시아 세 나라와의 관계를 망쳐버렸다고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는 현재 한반도에서 세심하게 관리해야 할 2개의 어려운 관계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대한민국과의 관계이며 또다른 하나는 2002년 10월에 시작된 북한과의 위기이다. 2001년 8월에 나는 연세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참석했었다. 그때는 마침 광복절 때였으므로 나는 몇몇 광복절 기념행사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미국이 아니라 부시행정부를 향한 감정의 폭발에 충격을 받았다. 성조기가 아니라 부시 인형이 불태워졌던 것이다. 대략 그때부터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지칭한 부시의 국정연설이 있었던 2002년 1월까지 한미관계는 비교적 평온함을 유지했다. 특히 이 기간 중에는 9.11테러사태가 발생한 지 24시간도 안 돼 평양측이 전례가 없는 공식적 조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악의 축' 북한ㆍ이라크ㆍ이란간에는 아무런 연계없어 - 북한 포함시킨 건 구색맞추기일 뿐**

많은 논평가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이라크, 이란 간에는 어떠한 “축(axis)"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물론 북한은 1979년 회교혁명 이래 이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스커드 미사일을 수출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이라크와 아무런 관계가 갖고 있지 않으며, 이라크와 이란은 1980년대 7년간에 걸친 파멸적인 이란-이라크전쟁 이후 상대를 미워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이 “축”에 포함된 것은 미국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이 될 비회교국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악의 축”은 또한 로날드 레이건의 “악의 제국(evil empire)" 수사를 본뜬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말은 부시행정부가 저지른 또 하나의 실수로 귀결되고 말았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부시는 이 “축”에 대하여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언론들이 그를 대신하여 그의 일을 해주고 있다. 올해 초 <뉴스위크>는 김정일을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는데 그 제목은 “닥터 악(Dr. Evil)"이었다.

부시에게 “악(evil)”은 분명한 의미를 갖고 있다. 어떤 사람(또는 정권)이 너무도 정상상태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와는 어떠한 관계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놈들은 그저 지옥으로 가야 할 뿐이며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는 “악(evil)”에 비교될 만한 개념이 없다. C. 프레드 알포드(C. Fred Alford)는 그의 재미있고도 우상파괴적인 책에서 “한국인들은 악이란 것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국인들에게 악은 도덕적 범주가 아니라 지적인 범주에 속한다. “잘못된 이중적 사고의 결과”라는 것이다.8) 한국문명에서 인간(人間)은 서로간에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선과 악의 분리는 나타나기가 어렵게 된다. 알포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갈수록 세계화되어가는(globalized) 세계에서 신자유주의의 “비현실적 질서(theoretical order)"는 세상을 ”단일한 분석적 틀“안에 가두어놓으려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인들이 ”자명한“ 것으로 여기는 자유주의적 신념, 그리고 미국인들은 이 신념을 다른 사람들에게 부과할 힘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한편으로 놓고 이러한 이상과 신념을 거부하는 다른 지역, 다른 사람들은 간단히 적으로 치부해 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비추어 본다면 1948년 국가 창건 이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서방자본주의 및 미국적 가치에 대한 대안 추구를 자신의 핵심적 본질로서 추구해온 북한은 너무도 당연히 ”악“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증거들은 북한이 “악의 축” 발언 이후 수개월이 지나도록, 그리고 부시가 김정일을 믿을 수 없는 인물이며 “피그미”라고 지칭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행정부와 협상할 용의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부시의 보좌관들이 평양과의 대결이냐, 포용이냐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는 동안 김대중의 대북문제 핵심 보좌관인 임동원이 2002년 4월 남북간 고위급 접촉의 물꼬를 텄다. 북한은 이후 수개월동안 정력적인 외교활동으로 임동원의 방북에 화답했다.9) 남한과의 고위급 접촉을 재개, 경의선 재연결 등 일련의 합의를 이끌어냈으며 북한 내에 새로운 수출자유지역을 창설했다. 북한의 외교활동은 2002년 8월 김정일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그리고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사상 최초의 방북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한편 같은 달 미 국가안보회의는 새로운 선제공격독트린을 천명했으며 10월에는 제임스 켈리가 평양을 방문했다. 켈리는 이 방문에서 북한이 새로운, 제2의 핵무기 프로그램, 즉 우라늄농축을 시작했다고 비난하는 한편 새로운 “포용” 선물꾸러미를 시사함으로써 포용 대 대결이라는 미 행정부의 내부논쟁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12월 선제공격독트린에 대한 보충설명이 제시됐다. “세계에서 가장 파괴적인 무기로 우리들을 위협하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들 및 테러리스트들”에 대항하여 억지와 제지, 그리고 선제공격을 병행하겠다는 것이었다.10)

이러한 부시독트린의 새로운 조합과 (북한에게 매우 불안하기 짝이 없는) 켈리의 불운했던 방북은 북한을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곧바로 평양은 1993-94년 위기 때의 시나리오를 재연하기 시작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이었다(사찰관 추방, NPT 탈퇴, 영변 원자로 재가동). (위기의) 재연은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농축우라늄을 수입했다는 증거를 켈리가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켈리에 따르면 북한 측은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나중에 호전적인 만족감을 감추지 않은 채 시인했다. 부시행정부가 유출한 정보들에 따르면 1998년 언젠가 북한은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파키스탄과 거래를 텄다. 파키스탄의 우라늄 농축 기술을 받는 대신 자신의 미사일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보들에 따르면 지난 해 여름 언젠가 북한이 농축 우라늄을 제조하고 있다는 증거가 확보됐다. 그 과정은 매우 느린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노력을 극대화한다면, 즉 그들이 가지고 있다는 1천개의 가스원심분리기를 모두 사용한다면, 그들은 파키스탄의 핵프로그램 모델에 따라 매년 1,2개의 매우 덩치가 큰 원자폭탄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11) 켈리가 워싱턴으로 귀환한 직후 부시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기자들에게 1994년 이래 북한 영변의 원자로를 동결시켜 왔던 기본합의는 무효화됐다고 말했다. 이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부시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부시의 보좌관들은 제네바 기본합의는 죽은 문서라고 선언해 왔기 때문이다(부시행정부의 대변인들이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기본합의에 우라늄농축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그러나 북한이 기본합의의 정신을 위반한 것은 분명하다).

그때부터 “위기” 속편은 재빠르게 재연됐다. 부시가 이라크에 정신 팔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북한이 세게 밀어붙이고 부시행정부는 거의 매일같이 논조를 바꾸는 형국이다. 이런 식이다. 워싱턴은 북한과 협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핵공갈”에 보상을 해주는 꼴이므로. 아니 잠깐, 그들하고 대화하는 편이 낫겠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곧 핵보유국이 될 게 아냐.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보상”을 해줄 수야 있나. 그러니까 “대화”를 해야 돼. 그렇지만 “협상”은 안 돼. 잠깐만! 북한이 또다시 선을 넘어가고 있잖아. 차라리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갖고 가지. 아냐, 아냐, 안보리에 가봐야 별 소용없어. 중국이 협력하지 않을 거야. 그러면 낮은 급이나 물밑 채널로 평양에 사절을 보내보지.

***스스로 궁지에 빠진 부시 - 선제공격독트린으로 대북협상 여지 원천봉쇄**

이처럼 미국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평양은 실제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하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그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미국이 북한정권을 인정하거나 또는 (그들의) “공갈”에 굴복하게 되는 셈인데 워싱턴은 김일성이 북한정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1946년 2월 이후 한사코 이를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미국과 스페인이 합동작전으로 예멘에 스커드 미사일을 싣고 가던 북한 화물선을 나포했다. 당초에는 미국이 이 화물선을 압류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국 워싱턴은 이 화물선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국제법상으로 주권국가 간의 미사일 거래를 막을 방법도 없는 데다 미국 자신이 세계 최대의 미사일 수출국가였기 때문이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현안에 대한 평야의 편집광적 집중이 워싱턴의 무관심 및 혼돈과 맞부딪쳤으며 결과는 늘 북한쪽의 승리였다. (한반도문제에 관해 미국 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믿을 만한 전문가중의 한 사람인) 리언 시갈은 현 상황을 내게 이렇게 요약했다.

“상대편 친구 오줌보가 가득 차 있을 때는 오줌싸기 내기를 하는 게 아니지. 김정일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거든”

밀어붙이기가 거세지면서 마침내 워싱턴은 그 나름대로의 하한선을 밝히기 시작했다. 1994년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국방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으며 이 문제나 또는 다른 어떤 문제를 이유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도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유엔 제재가 “북한으로 하여금 전쟁을 일으키도록 한다면...우리는 그러한 위험부담을 기꺼이 떠맡을 것이다.”12) 하지만 당시 중대한 중간선거를 4개월 앞둔 상황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그러한 위험부담을 떠맡을 배짱이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개리 럭이 그에게 전쟁이 발발할 경우 최소한 6개월이 걸릴 것이며 전사자 10만명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입장을 페리는 지난 1월 19일자 뉴욕타임스의 중요한 사설에서 거의 말 한 자 틀리지 않고 그대로 반복했다. 미국은 “전쟁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핵위협을 제거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새해 들어 국방부의 강경파들이 과거 클린턴이 세웠던 영변에 대한 “제한적 폭격” 계획을 부활시키고, 외교관들은 워싱턴은 평양과 대화할 용의는 있지만 협상을 하거나 “핵공갈”에 대해 보상하지는 않겠다는 말을 되뇌고 있는 동안, 조지 W. 부시는 미국은 북한을 “침공할” 의도가 없다는 말을 몇차례나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김정일의 몇겹의 방해를 원망하고 있다. 그러나 2002년 9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상정키로 한 부시의 결정, 그리고 이에 따라 이라크 문제의 당사자가 늘어난 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현 핵위기를 재연토록 하는 계기가 됐음이 분명하다. 부시는 ”악의 축“과 관련해 일련의 계획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담 후세인, 그 다음 북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란을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김정일도 매우 사정이 다급한 사람이다.

이번 위기 속편의 해법도 원래의 위기와 똑같다. 즉 (미국과 북한간의) 직접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동결하고 나아가 궁극적으로 해체하며(1994년의 기본합의가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은 경제협력과 맞바꿔 해체해 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미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외교적으로 승인하고, 핵무기로 북한을 겨냥하거나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문서로 보장하며, 원조 및 투자의 형태로 북한에 대해 간접적 보상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고 받자(quid pro quo)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지난 1998-2000년 클린턴의 대북특사로 활약했던 인물이 바로 윌리엄 페리이다. 중요한 것은 1998년 북한이 우라늄농축이라는 별도의 핵프로그램을 위해 필요한 알루미늄 원심분리기와 기타 기술 등을 수입했다는 정보***에도 불구하고** 그는 양국간의 수교와 김정일이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의 완전 제거를 위해 한발 한발 다가갔다는 점이다. 그러나 조지 2세 대왕 폐하(부시 대통령을 지칭: 역자)는 아직 이번 위기 속편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천명한 새로운 대외정책 공약에서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해서는 협상이 아니라) 선제공격과 예방적 전쟁을 공언했기 때문이다.

***각주**

8) C. Fred Alford, Think No Evil: Korean Values in the Age of Globalization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99), p. 2. 물론 한국의 기독교도들은 악(evil)을 믿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은 부시 대통령이 믿고 있는 것과 같은 선과 악의 독트린을 서양으로부터 수입해 온 것이다.

9) 후에 임동원은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매우 길고도 자세한 친서”를 가지고 갔다고 말했다. 그 친서에서 김대중은 9.11테러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며”,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확산 저지를 위해 군사적 수단을 사용할 준비가 돼있”다는 것, 따라서 김정일은 “북한도 미국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 등을 강조했다. 로이터 통신, Martin Nesirky 기자가 2002년 4월 12일 제주에서의 임동원의 연설을 인용 보도.

10) National Security Council, National Strategy to Combat Weapons of Mass Destruction, December 2002.

11) 이 문제에 관한 정보들은 2002년 10월 18-22일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들을 주로 참조했다. 이 문제에 관한 최고의 정보는 뉴요커(The New Yorker) 1월 27일자 세이무어 허시(Seymour Hersh)의 “핵실험(The Cold Test)" 기사에(pp42-47) 담겨 있다. 허시는 이 기사에서 농축우라늄을 이용해 핵폭탄을 제조하는 것과 관련해 파키스탄이 북한측에 청사진과 모델을 제공하고 모의 핵실험(즉 cold test) 등을 도와주었다는 상당한 증거들을(주로 CIA를 통해 알게 된) 제시하고 있다. 허시는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가 이같은 북한의 핵기술 도입을 알고 있으면서도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프로그램 및 미사일 개발을 저지시킬 수 있다는 믿음 하에 평양에 대한 포용정책을 계속 밀고 나갔다고 적고 있다(허시 기사의 한글 번역본은 프레시안(www.pressian.com) 1월 22일자에 ”부시와 체니는 쟁반에 담긴 김정일의 머리를 원한다“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역자).

12) 시카고 트리뷴 1994. 4.4에서 인용. 1996년 4월 10일자 유엔에 보낸 각서에서 북한은 “유엔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일방적으로 ‘제재’를 가하려 한다면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1996. 4. 10.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언론보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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