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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읽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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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읽어야”

신영복 고전강독<155> 제13강 강의를 마치며-9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3강령 8조목의 통일적 이해입니다. 이것이 ‘대학’ 독법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대학’ 독법에 있어서 비판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그 내용을 함께 살펴보기로 하지요.

‘대학’의 3강령 8조목은 대체로 가까운 데서부터 먼 데에 이르는(自近至遠) 단계적 순차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혀집니다. 수신(修身)을 한 다음에라야 제가(齊家)가 가능하고 마찬가지로 제가(齊家)를 이룬 다음에 치국(治國)할 수가 있으며 치국(治國)이후에나 평천하(平天下)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읽혔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집안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위인이 사회적 발언을 한다고 핀잔을 주는 예를 종종 목격하기도 하지요. 수신에서 평천하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순차적 과정으로 설정하고 그렇게 이해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대학’의 선언은 봉건적 관문주의(關門主義)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평가를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수신(修身)은 봉건적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러한 수신(修身)에서 시작하여 제가(齊家), 치국(治國)을 거쳐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는 장구한 과정을 설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청년들의 진보적 사상을 봉쇄하는 구조에 다름아니라는 것이지요. 물론 그렇게 읽혀져 온 것도 사실이고 그렇게 읽혀질 수 있는 내용이 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자가 ‘대학’을 장구하고, 고주(古註)와는 다른 해석을 내리고, 별도로 단행(單行)하여 존숭한 까닭은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당시의 시대적 과제와 무관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치지재격물(致知在格物)의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제기하는 까닭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사물과의 접촉 그리고 사물에 내재한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모든 것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자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찬가지 논리로 우리는 3강령 8조목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을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8조목은 각 조목의 순차성을 선언한 것이라거나, 그러한 순차성은 청년들의 진보적 사상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은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지요.

물론 ‘대학’의 내용 전반의 성격에 비추어 그러한 개연성을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며 또 지금까지 그렇게 읽혀지고 그렇게 주장되어 온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대학’ 본래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대학’의 정신은 한 마디로 8조목의 각 조목이 전체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데에 있으며 그 전 과정이 하나의 통일적 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데에 있습니다. 따라서 ‘대학’은 8조목 간의 순차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보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그 전체적 연관성을 깨닫는 데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대학(大學)’은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입니다. 풍우란(馮友蘭)의 관점이 그렇습니다. ‘대학’은 평천하(平天下) 즉 세계평화를 위한 방법론과 평화의 내용에 관한 담론이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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