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가격이 한 알(100mg)에 2만3천45원으로 결정됐다.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는 21일 글리벡의 보험 약값을 이같이 정해 다음달 1일부터 적용하고 환자들의 외래진료 본인부담률을 현재 진료비의 30∼50%에서 20%로 낮추기로 했다. 만성골수성 백혈병 환자의 한 달치 약값은 평균 276만5400원이고 글리벡 제조사인 한국노바티스가 구매 물량의 10%를 무상 공급하기로 했기 때문에 실제 약값은 월 248만8860원이며 이 중 환자 부담은 20%인 49만7770원이 된다.복지부는 글리벡과 같은 혁신적 신약에 대해서는 주요 선진국 평균 가격의 83% 수준으로 한다는 약값 산정 기준에 따라 이같이 결정했다며 이 가격은 미국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가장 낮다고 설명했다.
한국노바티스는 2001년 11월 복지부가 글리벡의 가격을 한 알에 1만7862원으로 결정하자 이를 수용하지 않고 환자에게 무상으로 약을 공급해 왔다. 백혈병 환자모임인 환우회와 시민단체인 글리벡공대위는 이 결정에 크게 반발하면서 “약값을 더 낮추지 않으면 약품의 특허권을 인정하지 않는 인도에서 카피약을 들여와 복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2003. 1. 22)
<사진 1> 기적의 신약이라 불리는 글리벡 프레시안
이 이야기가 나오고서도 또 몇 차례의 줄다리기가 있었습니다. 노바티스 사는 환자 부담금 20% 의 절반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한 발짝 물러났지만, 백혈병 환우회에서는 5월부터 인도의 제약회사에서 생산한 글리벡 카피약 ‘비낫’을 들여오기 위해서 협상 중이라고 합니다. (비낫은 글리벡과 같은 성분, 같은 효능을 가진 카피약으로 가격은 글리벡보다 훨씬 싼 2~3달러(2600~4000원 선)에서 합의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인도는 유일하게 신약의 배타적 독점권을 무시하는 나라입니다. 원래 하나의 신약이 개발되면 약 15년 동안 신약 개발 회사에서만 약을 제조, 판매할 수 있는 배타적 독점권이 주어지거든요.)
노바티스에서 한 발 물러나긴 했지만, 현재 국내에서 글리벡의 보험약가를 적용받을 수 있는 환자들은 소수의 만성골수성 백혈병 환자들로 제한되어 있어서, 다른 백혈병 환자들이나 글리벡이 암 진전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이 밝혀진 다른 암 환자들에게는 보험약가가 적용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환자들의 경우, 1정당 2만 3045원의 약값을 모두 내야만 하며 보통 하루에 4-10정씩 글리벡을 복용하는 경우, 한 달 약값은 276만원에서 691만원까지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환자들이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함을 고려할 때 이런 살인적인 약값은 환자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의 생계마저 위협하는 실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진 2> 글리벡 약값 인하와 보험 확대 적용을 요구하며 농성중인 백혈병 환우 동우회 연합뉴스
오늘은 글리벡을 비롯한 각종 약(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제약회사 연구원으로서 느꼈던 약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죠. 일단은 전반적인 제약 산업에 대해서, 그리고 글리벡과 이로써 대변되는 신약에 대한 논란을 짚어봅시다.
약이라... 이 세상을 살면서 약 한 번 안 먹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우린 약을 참 많이 먹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밀려오는 두통에 진통제 한 알 집어 먹고, 으슬으슬 추운게 열이 오르니 종합 감기약도 한 알, 퇴근해서 무거운 머리를 누이고 잠을 청해 보지만 고질적인 속쓰림이 새벽잠을 깨우니 머리맡을 더듬어 위산 중화제을 먹고서 잠이 드는 일상은 별다를게 없습니다.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약이 참 많기도 합니다. '약(藥)은 근본적으로 독(毒)'이라고 하긴 하지만, 안 먹을 수 없는 게 또 약인지라 우린 오늘도 다양한 종류의 약을 털어넣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제약 산업, 특히나 지금까지 나와있지 않은 신약 개발 사업은 일종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기능을 합니다. 신통한 신약 하나만 개발하면 돈방석에 앉는 것은 정말 순식간입니다. 이처럼 신약 개발은 일단 한 번 만들어 특허 등록을 하고 판매권을 얻으면 보통 15년간의 배타적 특허 독점권을 가지기 때문이죠. 즉,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면 향후 15년간은 안정적이고 엄청난 수익이 보장된다는 뜻이죠. (일례로 글락소-웰컴의 위궤양 치료제 ‘잔탁’ 한 종류의 1년 매출은 32억 달러(한화 약 4조원) 일 정도로 엄청나답니다)
자, 그렇다면 신약 개발이라는 것이 이토록 군침 떨어지는 사업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신약은 몇 개나 되느냐? 이렇게 물으신다면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신약 개발의 메리트를 알고 뒤늦게 이 분야에 뛰어들긴 했지만, 아직은 결과는 미비한 수준입니다. 현재 국내 개발 신약 1호는 1999년 SK 제약에서 개발한 항암제 '선플라(heptaplatin)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최초 논쟁은 지난 90년 녹십자가 개발한 유행성 출혈열 치료제 ‘한타박스라는 이의를 받아서 논란이 되었기도 합니다) 이후, 2002년 이후 등록된 국내 신약은 밀리칸주(방사선 간암 치료제, 동화약품), 이지에프 용액(당뇨병성 족부궤양 치료제, 대웅제약), 큐록신정(퀴놀론계 항균제, 중외제약), 팩티브(퀴놀론계 항생제,LG생명과학) 등 총 5품목입니다. 그러나, 이들 품목들은 현재 국내 대상 신약품목일 뿐, FDA(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은 품목이 없어 세계 시장으로의 진입은 아직 미비한 실정입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탄저병 테러사건 이후, 팩티브가 탄저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한때 팩티브의 FDA 승인 가능성이 높아진 듯 보였으나, FDA는 임상 실험결과를 빌미로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잠시 현재 국내 제약 회사의 목록을 좀 볼까요? 국내의 제약 회사는 백여개가 넘습니다. 그 중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회사들의 목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회사의 대표 제품은 이미 특허권이 끝난 제품의 카피본이거나 심지어는 드링크제가 차지하고 있는 걸 아실겁니다. 신약 개발이 중요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사업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그들은 신약 개발을 못하고 있을까요?
<표 1> 의약품 등 생산실적 100대 기업(2001)
간단하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약 개발에는 엄청난 돈과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현재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는 2천억원 이상의 돈과 평균 10년의 연구개발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여기에 이런 연구를 수행할 연구원들도 필요하다는 것도 두말할 나위 없구요. 이러다보니 초기 투자 비용이 엄청나서 어지간한 크기의 제약 회사가 아니고서는 일단 신약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천억원의 투자가 가능할 만큼 탄탄한 기업이 몇이나 있을까요? 이래서 신약 개발을 혹자들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하지요. 구멍을 막아줄 두꺼비만 나타나 준다면 더할 나위없겠지만, 그런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 법이니까요. 이런 초기 투자 비용의 엄청남을 알고 있기에 신약에는 배타적 독점권을 주는 것이고, 노바티스사 역시 자신들의 투자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실상 얼마 들어가지 않는 생산가에 엄청난 프리미엄을 붙여서 팔고 있는 것이죠. 투자한 만큼 이윤을 얻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긴 하지만,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이윤은 남긴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재고해 볼 만한 일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군요,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은 도입만을 이야기하고, 다음 칼럼에서 왜 신약 개발하는데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지, 그리고 과연 글리벡이 어떤 과정을 통해 백혈병을 치료하길래 이렇게 많은 돈이 드는지 살펴 보기로 하죠.
hari-hara(harihar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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