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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불교로부터 받은 문화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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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불교로부터 받은 문화충격

신영복 고전강독<151> 제13강 강의를 마치며-5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점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송대의 신유학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에 관한 것입니다. 주자가 그 곤궁을 극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임종을 앞두고도 대학을 장구(章句)하고 있었을 정도로 극진하였던 이유는 당대 사회의 엘리트로서의 사명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문풍에 대한 반성이라기보다는 당면한 사회적 현실에서 느끼는 위기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명의 중심을 자처한 중화사상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불교의 전래와 17세기 이후의 서구사상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중국 이외에 문명(文明)이 있다는 사실에서 받는 충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민족(異民族)의 지배기간인 원사(元史)와 청사(淸史)마저도 각각 송(宋)과 명(明)을 계승하는 정통왕조로 규정하는 것이 중국의 중화주의(中華主義)입니다. 중화주의는 민족주의적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나라가 망하는 것을 ‘亡’이라 하지 않고 도(道)가 전해지지 않는 것을 ‘亡’이라고 할 정도로 중화주의는 초민족적 세계관이며 문화주의적 세계관이었습니다.

중국이 불교에서 받은 충격은 이러한 중화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난 것입니다. 사이팔만(四夷八蠻)이라는 세계인식은 중국 이외에는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며 오만함이었습니다. 중국 이외에 다른 문명(文明)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화주의적 세계관이 무너지는 충격인 것이지요.

불교철학은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세계관의 변화를 요구할 정도로 대단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교사상은 현실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유학에 대신하여 사회의 이념형태를 규정하는 지배이데올로기로 굳건한 지위를 점하게 된 것이지요.

특히 불교사상은 개인주의적이며 반사회적인 해체사상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신유학의 등장은 불교의 이러한 해체주의적이고 반사회적인 사상영향으로부터 사회질서를 지키고 통일국가를 만들어가야 하는 현실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신유학이 종래의 중국학이 결여하고 있는 철학적 구조를 보완하고 있다는 견해에 대한 반성입니다. 유학은 송대 유학에 이르러 비로소 심성론(心性論) 우주론(宇宙論) 수양론(修養論) 등 체계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즉 송대 신유학에 이르러 비로소 유학의 철학화가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철학 즉 philosophy는 어디까지나 서양의 문화전통에서 비롯된 특수한 문화아이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리스철학 이후 중세의 스콜라철학을 거쳐 근대철학에 이르기까지 소위 서양철학은 그 철학적 구조는 현실(現實)과 이상(理想), 현상(現象)과 본질(本質) 등 이분법적(二分法的) 구조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학적(神學的) 구조라는 것이지요. 존재론적 구조이면서 동시에 신학적 구조라는 또 하나의 특수한 사유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따라서 철학을 인류 보편적 문화형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이지요. 철학이라는 지적 활동은 보편적인 것으로 추인하기보다는 그것을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유럽 중심의 특수한 지적 활동일 뿐이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송대 유학이 철학화(哲學化) 하였다는 평가는 서양철학의 고유의 범주와 개념을 송대 유학에 적용하여 바라보았을 때만 부분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불교사상이 중화주의를 자처하던 중국에 문화적 충격으로 나타난 것도 부정할 수 없으며 윤리중심의 중국사상에 결과적으로 철학적 사유를 심화하는 계기를 준 것도 사실이지만 이러한 접근은 우리가 불식해야 할 서구적 관점을 역설적으로 다시 심화하는 오류를 답습할 위험이 없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불교사상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사회적 문제는 선종불교의 해체주의적 성격이나 지방군벌(地方軍閥)과 결합한 실천선(實踐禪)의 경우뿐만이 아니라, 통일왕조의 이데올로기인 화엄철학 그 자체에 이미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여야 할 것입니다. 해탈(解脫)이라는 관념 자체가 일종의 초윤리적(超倫理的)이고 탈사회적 의식이라는 것이지요.

바로 이런 점에서 송대의 유학자들에게 불교사상은 현실의 물질성(物質性)을 제거하고 사회제도 그 자체의 존립을 부정하는 지극히 위험한 반사회적 사상이었으며 비윤리적 사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주자(朱子)로 대표되는 송대 신유학자들로 하여금 시대적 사명감으로 ‘중용’과 ‘대학’을 장구(章句)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유학에 대한 이해는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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