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의 시간 연장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진행중이다. 한데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참으로 그 논의 수준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특히 반대하는 쪽의 입장을 대변하는 신문사들중 조중동은 논의의 왜곡을 주도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1월 20일자 사설 '시간 연장보다 프로 개선이 먼저'에서 "방송협회가 지상파 TV 방송시간 연장을 요구하는 명분은 '방송시간 자율화'다.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자율은 높은 수준의 역량과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상파 방송이 이같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객관적 증거를 찾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한데 찬성론자들이 '시청자의 복지'와 '방송시간의 자율'을 같이 내걸었건만, 중앙일보는 '방송시간 자율화'만 제시한 것처럼 독자들을 속이고 있다. 자사의 입장을 관철시키고자 '시청자 복지'는 배제하고 '방송시간 자율'만 선별 부각시킨 중앙일보의 사설은 기사 및 내용의 선택과 배제과정에서 '불순한 의도'가 담뿍 담긴 전형적인 '비윤리적'인 보도태도다. 또한 '객관적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주장도 그렇다. 이렇게 주장하는 중앙일보는 방송사가 높은 수준의 역량과 책임이 없다는 '객관적 증거'가 있는가?
조선일보도 같은 날 사설 'TV 방송시간 연장 온당치 않다'에서 '논설위원들의 무식함'을 한껏 뽐낸다. "지금 국민(시청자)이 원하는 것은 지상파방송의 공정성 확립과 프로그램 질(質) 향상이지 결코 방송시간 연장이 아니다"란다. 말은 그럴 듯하다. 한데 여기서 '공정성'이라고 표현한 것은 '공공성 또는 공익성'으로 바뀌어야 한다. 공정성은 대체로 뉴스의 잣대로 활용되고, 공공성 또는 공익성은 '프로그램 일반'을 평가하는 잣대로 활용된다. 또한 조선일보가 공정성을 운운하려면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특유의 '외곽 때리기'가 나온다. "2월이면 임기가 끝나는 방송위 집행부가 지상파 방송사들의 독점을 강화해 주는 방송시간 연장을 거론하는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단다. 많이 보아 온 문구다. 조선일보의 정치면에서 주로 접할 수 있는 이런 류의 주장은 논쟁의 본질은 쏙 빼먹고 부차적인 문제를 핵심으로 전환시키는 전형적인 조선식 '외곽 때리기'다. 그리고 이런 유치한 '조선식 반론근거'에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요 '후렴구'쯤으로 여기고 같이 합창하는 모습도 보기에 좋지 않다.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방송위원들의 임기 만료전 선심정책'과 관련해서 20일부터 3일 연속 관련기사를 확대보도한 것은 가히 '조선일보만이 할 수 있는 보도'라는 평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동아일보의 1월 28일자 시론, '왜 지금 방송시간 늘리나'에서 외국어대 김우룡 교수의 주장은 이번 논쟁에서 단연 '백미'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하면서 국제 유가가 연일 급등해 에너지 대책에 비상이 걸린 마당에 TV 방송시간 확대라는 에너지 소비촉진책을 쓴다는 것은 시의 적절치 못하"단다. 도대체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70년대의 '한 가정 한 전등 켜기'식 논리를 21세기 방송정책에 적용하는 학자의 지적 게으름에 통탄할 뿐이다.
***"조중동이 방송시간연장 관련기사 50% 이상 차지"**
문제는 올해 들어 '방송시간연장'과 관련된 전체 신문기사 총 29건 가운데 50%이상인 15건이 조중동의 사설 칼럼 스트레이트 등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특히 스트레이트에서 드물게 시민단체의 주장을 상세히 보도해 주는 '새로움'까지 더했다. 왜? 자신들의 광고 이익에 영향을 받을까 노심초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이들은 솔직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체간 균형적 발전이니 '방송광고 시장 독점 심화' 운운하며 케이블과 위성방송을 끌어들인다. 언뜻 의미 있는 반론근거일 수 있으나, 그 속에 감추어진 '밥그릇 보존의 법칙'이 독사의 혓바닥처럼 보일락 말락한다.
반대를 해도 저질스런 반대론을 주도하면서 '진지한' 논의 자체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시청자 복지' 문제나 방송시간의 '여유'가 주는 '시청률 경쟁이라는 심리적 압박감으로부터 탈출'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다. 그리고 저질프로 운운하며 그 저질 프로들이 단지 방송시간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부작용인 것처럼 오도한다. 또 '재방송'을 극도로 경계한다. 좋은 다큐프로를 재방송해도 저질인가. 재방송이 무조건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재방송시 특정장르를 제한한다. 또는 특정 장르의 비율을 몇%로 한다'는 문구 하나만 들어가면 '재방송'은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그리고 저질프로의 문제는 '제작환경'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지 방송시간 연장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인력, 적절한 제작비용, 사전제작 비율 확대 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저질프로'를 단순히 '방송하기에 너무나 많은 시간'때문으로 단순 도식화시키는 것은 매도에 다름 아닌 사실 왜곡이요, 본질에 대한 의도적인 회피이다.
이번 논쟁의 본질은 시청자들은 질 좋은 프로그램을 볼 수 있고 제작주체들이 질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레 현재 우리 방송이 안고 있는 열악한 ‘제작환경’이 쟁점으로 등장해야 하고, 이런 제작환경의 개선 없이 방송시간의 연장은 안된다든지 아니면 방송시간 연장의 전제조건이 이런 제작환경의 개선이라든지 하는 쪽으로 가야했다. 한데 조중동이 이끄는 여론몰이에서 시청자와 제작주체가 철저히 배제된 것이다. 그 결과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는 온데간데 없어져 버리고 음모론과 소모적 논쟁만 무성한 가운데, 우리 방송의 고질병들을 들추어내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밥그릇의 당사자인 각종 매체들은 오로지 '방송시간 연장'이라는 문구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원칙을 상실하고 '진흙탕 개싸움'에 이편저편 나뉘어 편들기에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은 최소한의 방송시간을 규정하고 나머지 문제는 각 방송사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원칙과 상관없이 너저분한 '제논에 물대기' 논리만 주장하며, 3시간을 연장해야 하느니, 안 된다느니 하면서 정작 방송의 핵심 당사자인 시청자와 제작주체를 편의대로 갖다 쓰는 '논쟁수단'으로 전락시켜버린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 문제는 제작환경 개선을 통한 질 높은 프로그램 생산과 소비가 핵심이며, 방송시간과 관련해서는 '최소한의 방송시간 확보' 및 '방송사 자율성'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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