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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과 無常의 이율배반적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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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과 無常의 이율배반적 모순

신영복 고전강독<149> 제13강 강의를 마치며-3

다른 글에 썼습니다만 불교철학의 관계론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적 이미지는 인드라의 그물입니다. 제석천(帝釋天)의 그물망(Indra's Net)에 있는 구슬의 이야기입니다.

제석천의 궁전에 걸려 있는 그물에는 그물코마다 한 개의 보석이 있습니다. 그 보석에는 다른 그물코에 붙어 있는 모든 보석이 비치고 있습니다. 모든 보석이 비치고 있는 이들 모든 영상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영상도 담겨 있습니다. 그것이 또 다시 다른 보석에 비치고, 당연히 그 속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습니다.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영상이 다중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계의 참된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세계의 구조를 변화의 과정으로 보는 것입니다. 연기(緣起)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공간적이고 정태적 개념이 아니라, 시간적이고 동태적 개념인 것이지요.

그래서 연기를 상생(相生)의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연(緣)하여(pratitya) 일어나는(samutpada)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연기(緣起)를 보는 것이 바로 법(法)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무 두 개를 마찰하면 연기(煙氣)가 일어납니다. 이 경우 연기는 나무에 의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가 사라지면 연기도 사라집니다. 연기(煙氣)는 나무와 상의상존(相依相存)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인연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실체론적 존재가 아니며 관계론적 생성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이목상마(二木相摩)의 비유입니다.

어떠한 존재도 인연으로 생겨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존재도 공(空)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지요. 연기(煙氣)는 결과(果)이며 나무는 원인(因)입니다. 연기가 인연으로 생겨난 과(果)인 것과 마찬가지로 나무도 인연으로 생겨난 과(果)입니다. 물과 햇볕과 흙의 상마(相摩)에 의하여 생겨난 것입니다. 물과 햇볕과 흙이 사라지면 나무도 사라지는 것이지요.

인과 과는 하나가 아니면서 서로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인 것입니다. 그것을 불이무이(不二無異)라 합니다.

현대철학 특히 해체론에 의하면 모든 현상은 자기해체적 본성을 갖는 것입니다. 본질은 오로지 ‘관계맺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현상은 이질적인 요소들의 잠정적 동거(同居)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해체론의 핵심적 논점입니다.

이러한 해체론적 논의구조와 비교해 볼 때 불교철학이야말로 존재론에 대한 가장 과격한 해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존재를 연기(緣起)로 파악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존재를 연기(煙氣)처럼 무상한 것으로 보는 것이지요. 불교사상은 모든 생명과 금수초목은 물론이며 흙 한 줌, 돌멩이 한 개에 이르기까지 최대의 의미를 부여하는 화엄학(華嚴學)이면서 동시에 모든 생명의 무상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화엄(華嚴)과 무상(無常)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이 불교 속에 있는 것이지요. 모든 사회적 실천과 사회적 업적에 대하여 일말의 의미부여도 하지 않는 무정부적 해체주의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불교사상은 해체철학의 진보성과 해체철학의 무책임성이라는 양면을 동시에 함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책임성이란 모든 존재의 구조를 해체함으로써 존재의 의미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역할을 연기론이 한다는 것이지요. 마치 언어가 어떤 지시적(指示的) 개념이듯이 삼라만상이 어떤 지시적 표지(標識)로 공동화(空洞化)함으로써 가장 철저한 관념론으로 전락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든 것에 대한 의미부여가 거꾸로 모든 것을 해체해버리는 거대한 역설입니다. 실제로 수(隋) 당(唐)이래로 선종(禪宗)불교가 그 지반을 널리 확장해가면서 이러한 의식의 무정부성이 사회적 문제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그 의미를 규정하고자 하는 송대의 신유학(新儒學)이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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