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총사령관'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 전선으로의 진군 명령을 곧 내릴 태세다. 그런 부시가 국내 지지도 하락에 초조함을 느끼고 있을까. 부시 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자말자 떠오른 의문점이다.
1월 들어 미국에서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한결같이 부시의 지지율이 60% 밑이다. 월스트리트저널과 NBC 방송의 공동조사(1월 23일)는 부시의 지지율이 54%, 워싱턴포스트-ABC 방송 공동조사(1월 20일)은 지지율이 59%, 갤럽(1월 14일)은 58%라고 발표했다. 9.11 사건이 나고 아프간 공습이 벌어진 바로 뒤(10월 7일) 실시된 조사(워싱턴포스트-ABC 방송)에서는 지지율이 92%까지 치솟았던 점을 떠올린다면, 1년 반 사이의 커다란 변화다.
***"미국인은 이라크전쟁의 볼모인가"**
부시 지지율이 50%대로 떨어진 것은 어찌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9.11 뒤 집단적 흥분 상태에 빠졌던 미국민들이 어느 정도 이성을 회복하고 있다는 징표다. 지난 2000년 대선에서 부시가 이기긴 했지만, 앨 고어 민주당 후보에게 50만표를 뒤졌었다. 한마디로 미국 선거인단제도의 허점을 드러낸 결과였고, 한 시사평론가의 표현대로라면 "기괴한(bizarre) 승리"였다.
부시는 당선 뒤 특유의 보수 강경 논리로 미국을 이끌어 왔다. 취임 1년도 안 돼 일어난 9.11 사건은 그가 백악관 참모들에게 속내를 드러낸 대로 "기회"를 주었다 (밥 우드워드의 책 "전쟁 중인 부시"에 따르면, 부시는 9.11 뒤 참모들에게 "이것이 기회다"라고 발언했다). 그 기회란 한마디로 소련 해체 뒤 유일 패권국가(hegemon)로 떠오른 미국의 힘으로 적대세력들을 밀어 부칠 구실의 "정당성'을 뜻했다. 부시에게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은 곧 '정의의 전쟁'(just war)이다.
9.11 뒤 밀어닥친 애국주의 열풍(이 배경에는 미 보수언론이 부추긴 측면이 강했다!)에 힘입어 부시의 지지율은 지난해 3월 초까지는 80%, 9월초까지는 70%대를 유지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부터 조금씩 떨어지지 시작하더니, 급기야 60% 밑으로 내려갔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부시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신이 꼽힌다. 월 스트리트 저널-NBC 방송의 공동조사(1월 23일)에 따르면, 경기 부양(浮揚)과 8년 만에 가장 높은 실업율 해소가 그 핵심내용인 부시의 경제 시책에 대해 잘 하고 있다는 응답은 44%에 지나지 않는다.
부시의 이라크 압박정책에 대해서도 51%만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여론 조사 결과는 미국 시민들 가운데 절반은 9.11이 몰고온 광풍에서 벗어나 '미군 총사령관' 부시를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했음을 드러낸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프랭크 리치는 최근(1월 18일자) 한 칼럼에서 부시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을 계속 짓밟아대며, "이라크를 쳐부셔야 한다는 부시 행정부의 되풀이 된 주장에 온 미국이 인질로 잡혀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걱정했다. 여론조사 결과로 미뤄 프랭크 리치가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 부시에 대한 지지도는 역대 미 대통령들 가운데서는 높은 편이다. 부시의 강경파 참모들은 그에게 "여론조사 결과를 신경쓸 것 없다"고 조언하고 있을 것이다. 2억8천 미국인구 가운데 겨우 1천명을 조사한 것이니, 오차범위 (+-3%)를 따질 것도 없다는 생각들을 할지도 모른다. 부시와 그의 참모들은 대외적으론 이라크전쟁을 준비하랴, 북핵 문제를 가라앉히랴, 국내적으론 경제를 살리랴, 언제 터질지 모를 테러 위협을 막으랴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외부로 드러난 부시의 모습은 당당하다. 미국의 좌파 월간지 <진보>(The Progressive) 2월호에 실린 권두 칼럼이 지적한대로, 부시는 "메시아 군국주의"(messianic militarism)의 리더로서 악(evil)을 쳐부수도록 부름 받은 십자군 사령관 같은 모습이다.
***부시를 위협하는 "다모클레스의 칼"**
미국의 보수강경 칼럼니스트 가운데 하나인 마빈 올란스키(월간지 <World> 편집자)는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지휘하는 '미군 통수권자' 부시의 정치학점을 'A'로 매겼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프랭크 리치는 미국의 상황을 일컬어, "다모클레스의 칼"이 위협하고 있음을 지적했다(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하나인 시라쿠사의 절대 권력자 디오니시우스가 연회를 열어 평소 그에게 아첨을 잘 하는 다모클레스를 옥좌에 앉혔다. 그리고는 다모클레스의 머리칼에 칼을 매달아 그의 머리 위에 놓아둠으로써, 절대권력자가 누리는 외면상의 행복이 얼마나 불안한 것인가를 다모클레스에게 일깨워준 일화다).
문제는 전시내각의 지도자 부시에게 "그것은 아니지요"라고 직언(直言)을 할 수 있는 참모들이 그 주변에 포진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콜린 파월 국무 정도가 고작이다. 파월도 9.11 뒤 행정부 내의 강경파들의 견제에 밀려 자신의 입지 마련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밥 우드워드의 '전쟁 중인 부시"에선, 파월 자신이 "나는 냉장고에 갇혔다"는 자조 섞인 말을 내뱉는다).
워싱턴포스트-ABC 방송 공동조사(1월 20일)에 따르면, 미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유엔 무기사찰팀이 몇달 더 업무를 연장해서라도 섣부른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견해를 품고 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는 이즈음 여차하면 이라크전쟁을 벌일 태세다. 입만 열었다 하면 "시간이 다 되간다"(time is running out)고 후세인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굳이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백악관 안팎에서 고개를 쳐들고 나온다. 이라크 전쟁을 벌여 얻을 실익(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 걸프지역에서의 군사 교두보 마련,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세계패권 확장)을 떠올리면, 그리고 현실적으로 초강대국 미국의 군사행동을 막을 국제적인 제재 메카니즘이 없는 상황에서 이라크전쟁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 경제의 어려움을 이라크전쟁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생각들을 품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내세울 만한 명분 없이 뛰어들었던 베트남전쟁에서처럼 일이 결정적으로 꼬이거나, 레바논(1983년)이나 소말리아(1993년)에서처럼 미군 희생자들이 생겨난다면....이 부분이 부시의 고민일 것이다. 그럴 경우 미국의 국내여론은 악화되고 2004년 부시의 재선도 물 건너간다. 미국의 역사를 돌아보면, 일단 국내 여론이 나빠지면 집권 행정부는 정책결정의 입지가 매우 좁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베트남전쟁이 고전적인 사례다. 전쟁 개입 초기 미국 행정부가 주요결정을 할 때마다 미 국내여론은 그것들을 지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전사자가 늘어갈수록 베트남전의 미국 개입에 부정적인 반전여론들이 늘어났고, 결국 닉슨 대통령으로 하여금 베트남전에서 미군철수를 결정하도록 압력으로 작용했다(미국이 '명예로운' 미군 철수를 뼈대로 하는 파리 평화회담에 조인한 날이 바로 30년전 어제 1월23일이다).
미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결정은 잘못된 것인가"라는 설문에 대해 1965년 24%, 1966년 35%, 1967년 45%, 1969년 58%, 그리고 1973년 베트남전 평화협상이 파리에서 조인되기 직전엔 60%에 이르렀다(윌리암 메이어, "변화하는 미국여론, 1960년-1980년 사이", 1992년판). 결과론적이지만, 로버트 에릭슨같은 일부 미 학자들은 "만약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가 미국내 여론의 장기적 추이를 미리 알 수 있었다면, (개입확대가 아닌) 다른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미국여론, 그 뿌리, 내용, 그리고 충격" 1980년판). 이라크전쟁을 서두르는 부시 행정부가 이런 역사적 교훈을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음 주 국정연설에선 무슨 말을...**
외교정책에 있어서 국가이익 중심의 현실주의(realism)를 강력히 주창해온 헨리 키신저는 그의 신간 "미국은 외교정책이 필요한가"(2001년)에서 "'미국이 얻는 이득이 비용(희생)보다 훨씬 크다는 확신을 미 국민 다수가 가질 때만이 미국의 개입 독트린(doctrine of intervention)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민 10명 가운데 적어도 5명이 이라크전쟁으로 얻을 이득(석유 등)에 회의적이다. 그들의 관심은 전쟁보다는 국내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이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에 대한 비판이 전세계적으로 반대운동이 한창 벌어지던 60년대 중반 프랑스의 지성 레이몽 아롱은 그의 책 "평화와 전쟁, 국제관계의 한 이론"의 서문에서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어지러운 시절은 생각을 깊이 하도록 만든다(Troubled times encourage meditation)."
9.11 사건 뒤 들떴던 마음들이 가라앉아 가면서 많은 미국인들은 왜 미국이 공격을 받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즈음은 무슨 이유로 미국이 이라크 사담 후세인 체제를 힘으로 처리하려 하고, 북한과는 적어도 겉으로는 대화로 풀려하는가를 생각하는 모습이다.
다음 주 워싱턴에서 있을 연두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에서 '미군 최고사령관' 부시가 어떤 묘책을 내세워 이라크 전쟁에 대한 미 국민들의 거부감을 희석시키고 떨어진 지지도를 끌어올리려 할지 궁금할 뿐이다.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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