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정대철 최고위원은 20일 "최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내 인사를 최대 2백50~3백명 선발해 공기업에 진출시키기로 의결했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이날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하고 "이를 위해 당내에 가칭 인사위원회를 구성해 천거 과정을 투명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노 당선자도 인사위원회의 엄정한 다면평가를 통해 당내 인사를 공기업에 내보내는 방식에 동의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2백50~3백명 공기업에 보내기로 당내 의결"**
그러나 이같은 발언이 전해지면서 공기업 등에서 반발이 일 조짐을 보이자, 노무현 당선자측은 발언 다음날인 21일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이낙연 당선자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정 최고위원 발언에 대한 당선자측 생각을 묻자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정 최고위원 말씀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그러면서도 당내 인사들의 공기업 진출의 불가피성을 애써 설명했다.
그는 "당에서 함께 일한 분들도 공기업이나 정부 산하기관에 진출할 수 있으리리는 것은 새로운 게 아니다"며 "노 당선자도 당직자 연수나 인수위 회의과정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정당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당비를 내고 성실히 일했다는 이유로, 당선자와 뜻을 같이 했다는 이유로 일반 국민보다 더 큰 불이익을 받으리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정권은 혼자 잡는 것이 아니고 개혁 또한 혼자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정당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정부를 함께 운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있었으면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정실인사나 부당한 논공행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객관적이고 엄정한 절차를 거쳐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발한다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차라리 수억씩 주고 회사 못나오게 하는 게 나아"**
이 대변인의 이같은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정당에도 능력 있는 이들이 적잖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나 이들을 보내려는 곳이 다름아닌 '공기업'이라는 데 있다.
공기업도 기업이다. 언필칭 기업인 이상 간부급 이상 직원들에게는 경영능력과 전문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역대정권의 전례를 보건대, 정권이 바뀐 뒤 당에서 파견되는 이들이 하위직으로 가는 예는 거의 전무했기 때문이다. 낙하산 대부분이 상당한 요직을 차지했다.
더욱이 공기업은 민간기업보다 더 각별한 전문성과 경영능력이 요구된다. 역대 정권마다 예외없이 공기업이 일차 개혁대상에 포함되고, 직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민영화'가 추진된 것도 이같은 전문성과 경영능력의 열세가 낳은 불행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역대 정권의 낙하산들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항변하곤 했다.
"공기업에는 개혁 마인드가 없다. 따라서 우리가 가서 개혁을 선도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긍정적 결과를 얻은 곳도 있으나 그런 곳은 극히 일부였다. 대다수는 공기업의 뿌리깊은 폐단인 정경유착 비리를 초래했고, 공기업 임원들은 낙하산 인사들을 신주단지 모시듯 떠받치며 그들의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특히 DJ정부 시절에는 DJP 연합의 결과 1백여명의 JP 티오 인사들이 공기업 등의 분야에 대거 낙하산 투입되면서 공기업의 비리 확산에 결정적 작용을 하기도 했다.
한 거대 공기업 CEO는 기자에게 "차라리 낙하산들에게는 해마다 몇억원씩 연봉을 주는 대신 회사 업무에는 절대로 관여하지 못하게 하는 게 회사를 위해선 나은 일"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들에게 수천, 수조원대 투자가 들어가는 회사 주요업무에 관여케 했다가는 연봉보다 수백, 수천배 큰 손실을 회사에 입힐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참여연대 김민영 시민감시국장도 "공기업이 정치권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곳도 아닌데 민주당이 선거에 대한 논공행상처럼 비춰지는 일들을 한다면 문제가 있다"면서 "더군다나 민주당은 당 개혁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하면서 새정부 부처나 공기업에 자리다툼을 하는 것처럼 비춰져서야 되겠냐"고 신랄히 비판했다.
***낙하산 인사 토론회 갖자**
대선 직후부터 민주당 주변에서는 논공행상 이야기가 유령처럼 떠돌아왔다.
논공행상은 한국정치 현실에서 '필요악'적 측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노 당선자는 "나는 누구에게도 부채를 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깨끗한 정치를 할 자신이 있다"고 공언해 왔다.
민주당의 '낙하산 인사'는 이런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특히 최고위원 등이 참여한 민주당 회의에서 "2백50~3백명을 공기업에 진출시키기로 의결했다"는 대목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차대한 구태의 재연이다. 숫자를 미리 정해 놓았다는 것은 '낙하산 인사'를 강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숫자까지 정해 놓고서 하는 '엄정한 다면평가'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낙연 당선자대변인은 '낙하산 논란'과 관련해 당내 인사의 공기업 진출의 정당성을 해명하는 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당당하게 사회적 토론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민주당은 지금 즉각 낙하산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사회적 토론'의 장을 마련하라. 그리고 정대철 최고위원이 말한 2백50~3백명의 명단을 공개하고 각계로부터 엄정한 다면평가를 받아라.
만약 객관적 평가 결과 이들 대다수가 하자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민주당의 우수한 인재풀을 미쳐 알지 못한 무지에 대해 90도 고개 숙여 사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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