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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독서계에 몰아친 '부시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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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독서계에 몰아친 '부시 열풍'

김재명의 '뉴욕통신' <3> 부시 다룬 책 2권이 베스트셀러 1ㆍ2위

9.11 사건 뒤 뉴욕의 서점은 애국주의와 테러리즘, 이슬람 관련 책자들로 넘쳐났었다. 그런 분위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을 인터넷으로 알아보려면, 뉴욕타임스를 접속하면 된다( http://www.nytimes.com/pages/books/index.html). 겉장이 얇은 보급판(paperback)과 겉장이 두꺼운 정장본(hardcover), 그리고 논픽션과 픽션, 아동도서로 나누어 판매량 1위부터 35위까지 베스트 셀러 순위가 매겨진다. 이 자료들을 들여다보면, 이즈음 미국인들의 독서경향을 엿볼 수 있다.

최근에 집계된 논픽션 1, 2위는 부시 미 대통령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인 밥 우드워드가 지난 해 11월말에 써낸 "전쟁중인 부시"(Bush at War)가 1위, 부시 대통령 취임 첫해 동안 연설문 작성자였던 데이빗 프럼이 올해 초에 낸 "정의의 남자"(The Right Man)가 2위다(두 권 모두 정장본으로 상대적으로 값이 낮은 보급판은 아직 발행되지 않았다).

***이라크전쟁의 나팔수, 데이빗 프럼**

"전쟁중인 부시"는 그동안 국내 언론매체들에도 널리 보도됐다. 2001년 9.11사건을 겪은 뒤 아프간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전시 내각'(war cabinet)을 이끈 부시의 리더십, 아울러 부시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강경ㆍ온건파 참모들 사이의 경쟁과 갈등을 보여준다(필자 우드워드는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다 많은 인터뷰 시간을 내준 콜린 파월 미 국무에 호의적이다. 반면에 딕 체니 부통령과 더불어 부시행정부의 강경파를 대표하는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 관련 서술엔 다소 인색한 편이다. 우드워드는 폴 월포위츠 국방부(副)장관을 비롯한 부시행정부 강경파들이 9.11 테러사건 뒤 미국을 휩쓴 애국주의 열풍을 기회로 삼아 사담 후세인을 쳐야한다는 주장했고, 부시 대통령은 "아프간을 먼저 다루고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발언했다고 적고 있다).

"전쟁중인 부시"와 "정의의 남자"는 부시 미 대통령이 읽어서 기분 나쁘지 않은 책들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에게 흐믓한 느낌과 더불어 "외부세력의 도전을 받은 대통령으로서 직무수행을 잘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안겨주는 책들이다. 다만 기술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노련한 언론인답게 우드워드가 책 뒷부분 부시 미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 등을 통해 부시의 세계관을 교묘하게 선전했다면, "정의의 남자"의 필자 프럼은 노골적으로 (부시에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독자에겐 혐오감을 일으킬 만큼) 부시의 '이라크 전쟁 나팔수' 또는 북을 치며 이라크 전선으로 진군을 재촉하는 고수(鼓手)의 몫을 떠맡고 있다.

프럼은 2002년 초 부시의 연두 국정연설문에 '악의 축'(axis of evil)이란 구절을 넣은 장본인으로 알려진다. (2002년 초 프럼의 부인이 친구들에게 보낸 전자메일에서 그런 사실을 밝힌 게 구설수에 올랐었다. 그러나 프럼은 연설문 초안에 'axis of hate'라고 썼고, 그의 상관인 마이클 거슨이 초안을 다듬으면서 'hate'를 'evil'이라고 고쳤다는 것이 정설이다).

책 제목이 직설적으로 나타내듯 저자 프럼은 부시를 외부의 테러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지키는 정의의 수호자로 묘사한다. 부시가 이라크 사담 후세인을 강력하게 짓누르는 것은 잘 하는 일이라고 프럼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성공적인 정치가의 내면은 창조적인 예술가의 상상력과 비슷하다"는 표현도 보인다. 9.11 테러사건과 이라크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상상력'으로는 가능한 일인가.

***"이라크 점령, 새로운 부(富) 굴러와"**

이 책의 흐름은 한 마디로 부시 행정부 내의 독수리파를 대변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미 외교정책은 21세기 유일 패권(hegemony) 국가답게 힘으로 밀어 부쳐야 한다는 시각이다. 부시행정부의 강경노선에 제동을 걸어온 '상대적 온건파' 콜린 파월은 이 책 곳곳에서 모욕을 당한다(필자가 '상대적'이라 표현한 것은 파월도 최근 사담 후세인을 압박하는 태도에서 보이듯, 본질적으론 강경파 부시행정부의 이익을 챙기는 쪽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서다. 미세한 방법론에서 상대적으로 강온의 차이가 있을 뿐, 큰 그림에서는 파월도 강경파인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과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상황이다).

프럼은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손쉽게 끝낼 것으로 믿는다. 아프간전쟁을 몇 백명의 미군 특수부대원들과 수십대의 비행기로 이겼으므로, 이라크전쟁에 수만명의 병력과 수백대의 비행기를 투입하면 쉽게 끝장을 볼 것이란 얘기다. 군사 초강대국 미국의 힘에 대한 강한 믿음이 프럼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이라크전쟁을 통해 사담 후세인 체제를 무너뜨릴 경우 미국이 챙길 이득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미 부시행정부는 아프간전쟁으로 탈레반이 무너진 뒤 친미적인 인물인 하미드 카르자이를 아프간 과도정부 수반에 앉혔다. 카르자이는 아프간에 대한 미군의 공습이 시작된 바로 뒤 오토바이를 타고 아프간에 잡입, 미 CIA와 위성전화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미군 특수부대원들과 함께 반탈레반 공작에 나섰던 전력을 지닌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프럼은 이라크에 "믿을만한(reliable) 친미 동맹자"를 이라크 실권자로 앉히는 구도를 장미빛으로 그린다. 그럴 경우 "세계에서 가장 큰 원유 산지를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부(富)가 우리(미국)에게 굴러 들어온다"는 것이다. 매우 '진솔한' 표현이다.

프럼은 한술 더 떠 내친 김에 "십만의 미군 병력과 수천대의 비행기를 동원해 걸프지역 전체를 평정할 수도 있다는 강변마저 망설임 없이 내놓는다. 프럼은 단언한다. "미국의 힘으로 어떤 일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프럼은 부시 외교정책이자 미 외교정책의 전통이랄 수 있는 일방주의 신봉자다. 그의 시각에선 책 제목대로 악(evil)을 쳐부수는 "정의의 남자"가 바로 부시 대통령이다.

그러나 프럼은 미국이 세계적 반전 여론을 거슬러 이라크를 포함한 이슬람권을 상대로 전쟁을 일방적으로 벌일 경우 일어날 국제법적인 문제, 아울러 두고두고 따를 부작용(반미감정 악화 등)에 대해선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미 강경파들이 늘 내세우는 계산법에 따라, 들인 비용(군사비 지출 플러스 소수의 미군 사상자)에 비해 산출(석유 플러스 세계패권 확장)이 훨씬 크다면 이라크전쟁을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트루만이 뉴욕을 공산당에 넘기는..."**

프럼의 책에서 보이는 또다른 결정적인 흠결은 부시의 친 이스라엘 일변도 정책에 대해 전혀 비판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프럼은 부시를 이스라엘의 가장 든든한(staunchest) 후원자로 묘사하면서, 이스라엘의 강점 아래 고통 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오랜 염원인 독립국가 건설을 적극 반대한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West Bank)에 독립국가를 세우는 것이 미국의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에 도움이 않는다는 주장이다. 프럼은 나아가 부시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돕는 것은 "트루만 대통령이 뉴욕 시를 공산당에게 넘겨주면서 냉전(冷戰)을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변한다.

결론적으로 프럼의 이 책은 단조롭고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글 앞머리에서 적은 대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부시 비판자들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려면 아주 커다란 인내심을 필요로 할 듯하다. 그러나 거꾸로, 부시와 세계관, 또는 현실인식을 같이 하는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에겐 프럼의 책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흥미를 끌 것이다.

올해 초 발행되자마자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온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 독서층의 상당 부분이 9.11 뒤 이미 '부시화(化)'됐거나 되고 있다는 증거다. 필자의 한 미국인 친구는 부시화를 거부하는 뉴요커 가운데 하나다. 지난 1월18일 워싱턴에서 열린 이라크전쟁 반대 집회에 참석하느라,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가 밤 11시 넘어 돌아왔을 정도로 열렬한 부시 비판가다. 그는 대형서점 반스 앤 노블 (Barnes & Noble) 창가에 앉아 프럼의 책을 잠시 동안 훑어보곤 "흠!" 하며 도로 내려놓는다. 그리곤 손을 벌이며 두 어깨를 으쓱 한다. 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부시 비판가로서 우리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노엄 촘스키나 하워드 진의 책들은 그러나 베스트 셀러와는 거리가 멀다.

<필자의 이메일 주소: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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