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북핵 당사자, 중재자 표현은 곤란”
조선일보 15일자 1면 주요기사의 제목이다. 방한 중인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여야 의원들에게 “북한 핵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을 (미ㆍ북간) 중재자라고 말하는 것은 곤란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는 것이 이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14일 여야 의원 7명과의 조찬간담회에서 역시 조선일보 출신인 최병렬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나온 발언이라고 한다. 최 의원은 “한국 정부는 마치 한국이 미ㆍ북협상의 중재자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는 적절치 못한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고 한다.
조선일보가 ‘한국은 북핵 당사자’라는 켈리 차관보의 발언을 1면 주요기사로 처리했다는 것은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과연 한국은 북핵 문제의 당사자인가, 중재자인가? 이 문제는 앞으로의 북핵 문제 해결과정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라면 미국과 한 편에 서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중재자라면 미국과 북한의 중간에 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는 한차례 제기된 바 있다. 대선 하루 전인 지난 달 18일 정몽준 의원이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전격 철회하면서 바로 이같은 내용의 노 후보 발언을 지지 철회의 근거로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노 후보는 유세 도중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려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는데 정 의원은 바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했다.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미국과 한 편이 되어 싸워야 한다’는 게 정 의원 생각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단도직입적으로 필자의 의견을 말한다면 한국은 북핵 문제에 관한 한‘당사자’가 아닌 ‘중재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난 93년 북핵 위기가 불거진 이후 지난 해말 북핵 위기가 재연되는 과정에서 한국은 한번도 ‘당사자’ 대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90년대초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처음 제기한 것은 미국이었다. 이후 북핵 문제는 북미간의 양자협상에 의해 진행돼 왔다. 94년 6월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대북 군사행동을 준비했을 때 ‘당사자’인 한국정부와는 아무런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지난 해 10월의 북한 ‘핵개발 재개 의혹’이 12월 들어 ‘핵동결 해제’와 NPT 탈퇴 등 전면적인 핵위기로 번져가게 된 결정적 계기인 지난 해 11월 대북 중유 지원 중단 결정 과정에서도 ‘당사자’ 한국의 의견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 핵위기의 고조를 막기 위해 12월까지만이라도 중유 제공을 하자고 주장했으나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유제공 중단을 결정했다. 이후 북한은 중유제공 중단을 제네바합의의 명백한 파기로 규정하고 중유제공 중단에 따른 에너지 부족을 보충한다는 이유로 그동안 동결됐던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했다.
한국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는 한국과 일언반구 상의도 하지 않고, 또는 한국의 의견을 듣고도 묵살해 왔던 미국이 이제 와서 한국을 ‘당사자’라고 추켜세우는 것은 너무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제네바합의 파탄에 대해 미국측은 북한측의 우라늄농축 계획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난 해 10월 켈리 특사 방북 때 ‘북한측이 (이를) 시인했다’는 켈리 특사의 전언에 의한 것일 뿐, 미국측은 아무런 구체적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그후 자신들은 ‘핵무기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을 뿐, 우라늄농축 계획을 시인한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우라늄농축’은 아직 구체적 증거나 제3자에 의해 ‘사실’로 입증된 사항이 아니다. 미국과 북한측의 주장이 있을 뿐이다.
제네바합의의 핵심은 북한이 핵동결을 유지하는 대신 미국 등이 경수로 2기를 지어주는 것이라고 대체로 얘기된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을 사용하거나 핵사용을 위협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양국간 경제ㆍ외교관계를 정상화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 3가지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2003년 이전 경수로 완공은 물 건너갔고,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는 94년말의 극히 상징적인 조치로 끝났다. 특히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1월 북한을 ‘악의 축’ 국가에 포함시키면서 이들 국가들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 선제공격 방침을 천명하면서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약속은 휴지조각이 돼버렸다(미국의 선제공격 전략은 지난해 9월의 신국가안보전략에서 보다 구체화됐다).
미국은 93년 북한과의 뉴욕 공동성명을 비롯, 제네바합의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핵무기 사용 위협을 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같은 약속은 부시행정부 출범과 함께 무용지물이 돼버리고 말았다.
공정한 입장에서 보자면 제네바합의 파탄의 책임은 미국측에 더 많은 것이다. 사실 94년 클린턴행정부가 북한과 제네바합의를 타결한 데에는 당시 미 행정부내에 만연했던 ‘북한붕괴론’이 큰 역할을 했다. ‘북한은 길어야 5년내에 붕괴할 나라인데 10년 뒤 약속을 무엇인들 못해주겠느냐’는 심정으로 합의에 임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막에 대해 미국의 진보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지난해 11월 <더 네이션>에 기고한 칼럼에서 ‘더러운 비밀(dirty secret)'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동북아는 물론 세계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변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개발 저지에 관해서는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에 있는 한국은 주요 당사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의 일방적인 대북강경책을 그저 추종하기만 하는 ‘당사자’ 역할은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대북 정책에 관해 아무런 발언권도 인정받지 못하면서 그저 미국의 정책을 추종하는 것은 '하수인'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북핵 위기에도 한국민들은 외국인이 놀랄 만큼 차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94년도 ‘불바다’ 발언 때와 같은 사재기 소동도 없었다. 이에 대해 프레시안의 한 독자는 그동안 남한과 북한간에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80년대 땅굴이 발견됐다는 소식만 들려도 가슴을 쓸어안던 사람들이 비무장지대 동쪽과 서쪽에 철도가 열리고 도로가 뚫려도 전혀 불안해 하지 않는 것은 6.15 정상회담 등을 비롯해 그동안의 남북간 교류로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협상용 카드라는 사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로 남한을 적화통일하려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다.
다만 북한과 미국간에는 남북한간에 이루어진 만큼의 신뢰가 형성돼 있지 않다. 클린턴행정부 당시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 최고위 군간부가 워싱턴에서 미 대통령을 만나는 등) 간신히 쌓아올린 북미간 신뢰는 부시 대통령 취임과 함께 일거에 무너지고 말았다.
지금은 바로 북한과 미국간의 신뢰를 다시 쌓아 올려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이 해야 할 역할을 미국을 일방적으로 추종하기만 하는 ‘빛좋은 개살구’식의 ‘당사자’가 아니라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둘 사이의 신뢰관계를 형성하도록 도와주는 ‘중재자’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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