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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 낮추되 시선은 멀리 두자”

서영석의 '삐딱하게 본 정치' <65> 盧 첫 인선 유감

노무현 당선자의 첫 인사가 그리 개운스럽지 못하다. 청와대 비서실장에 문희상 의원을 낙점한 데 대해서도 말들이 많고, 총리감으로 고건 전 총리를 내세우게 된 점에 대해서도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음으로 양으로 노무현 당선자를 도운 사람에 대한 배려였건, 안정감과 인사청문회를 염두에 둔 총리 인선이었건 이유야 많겠지만, 워낙 그 인물들이 김대중 정권에서 깃발 날렸던 사람들인 때문인지 그렇게 신선해 보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인사탕평을 염원했던 사람들에게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 것 같다.

역시 한계는 노무현 당선자의 협소한 인재풀일 것이다. 김대중 정권을 꼭 승계해서가 아니라 쓸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2004년 총선전까지는 야대(野大)의 상황에서 한나라당을 의식해야 하며, 노무현 정권의 초기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선국면에서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을 데려다 쓸 수는 없다는 제약도 있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노무현 당선자 스스로가 협소한 인재풀에 대한 한계를 누구보다 절감했을 것이다.

'그 인물이 그 인물'인 사람들을 기용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이유를 대보라면 못댈 것도 없다. 청와대 비서실장에 측근이라고는 할 수 없는 현역 의원을 기용한 것은 노무현 당선자가 공언했던 대로 청와대 비서실장을 '권력의 2인자'로 여기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일 수 있으며, 그동안 정무수석으로 한정돼 있었던 대야창구를 비서실장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보수세력들이 노무현 당선자에게 보내는 불안심리를 희석하고, 무엇보다 개혁의 손발이 되어줄 공무원 조직의 안정성을 위해 한차례 검증받은 사람을 총리로 기용할 수도 있다. 검증받은 사람을 데려다 쓸 바에얀 과거 정권 인물보다는 그래도 자신의 개혁을 적극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김대중 정권시절의 인물이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사실 지금 이 시점은 보다 냉정한 사고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노무현 당선자의 탄생은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의 정착을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정치권 전반에 구축돼 있는 구세력들과의 본격적인 대결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 마련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행정 등 사회 전반에 아직도 낡은 패러다임의 수구기득권 세력들이 판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노무현 당선자의 승리 이후 다소 숨을 죽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노 당선자의 정책이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기득권에 침해된다고 생각되면 수구반동적인 이빨을 드러낼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김우중 식으로 표현한다면 참으로 바뀌어야 할 사회적 메커니즘과 기득권 망(網)은 넓고도 넓기만 하다. 역사의 긍정적인 진보를 위해 개혁해야만 할 대상은 많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직은 역량이 불충분하다. 분출하는 욕구의 수위를 적절히 조절해 나가면서 큰 저항없이 하나하나 부조리한 체계를 척결해 나가기 위해서 노무현 당선자가 갖고 있는 권한은 그렇게 크지가 않다. 법적인 뒷받침을 해야 할 민주당은 다수당이 아니다. 수구보수세력의 집합체인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수를 훨씬 넘긴 거대야당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한나라당도 복잡한 구성요소들이 얽혀있는 정당이긴 하지만, 적어도 자신들의 이익에 침해가 된다고 생각할 때는 똘똘 뭉칠 것이 분명하다. 정치개혁의 본질은 인적 청산에 있다. 낡은 패러다임의 정치인들을 청산하기 위한 노무현식 개혁에 한나라당 대부분의 의원들은 위기의식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결국은 2004년 총선전까지는 노무현 당선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법적인 뒷받침 없이도 가능한 행정부 내 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당선자를 배출시킨 시민의 힘이 보내는 기대수준은 높지만,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능력은 터무니 없이 모자란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시민의 기대가 일차적으로 좌절감을 맛보는 것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진정한 개혁은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과, 민의를 대변하면서 대통령의 개혁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원내 안정의석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물론 원내 안정의석의 구성원들도 변화와 개혁의 흐름에 적극 공감하는 새로운 세대여야만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이 대통령만 개혁적이어서는 그러한 기대가 좌절될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현실이야말로 차기 총선이 갖는 시대적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해 줄 것이다.

진정한 개혁의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2004년 총선이 중요하다.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시민의 힘이 노무현당선자를 탄생시켰다면, 이러한 힘들은 다시 2004년 총선에서 분출돼야만 한다. 좌절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좌절이야말로 염원을 지속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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