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대선 직전 미국 주도에 의한 북한화물선 서산호 나포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정부는 이 사건이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미국측의 의도가 작용한 것이라고 판단, 미국측에 공식항의하기 위해 회담(a meeting)을 요구했었다고 영국의 가디언이 지난 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불안한 동맹국, 대결의 배후에 부시가 있다고 생각하다(Anxious ally sees Bush's hand behind the confrontation)'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정부의 한 각료급 소식통(A cabinet source)을 인용, "사건 당시 김대중정부가 미국측에 회담을 요구했"으며 "이 사건이 선거에 영향을 미쳐 친미적인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한국측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한미간 회담이 열렸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디언의 이같은 보도는 당시 대선과 관련, 세간에 나돌던 '미국발 신북풍'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김대중정부도 갖고 있었으며 이같은 의구심을 미국측에 공식적으로 전달하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신문은 또 도쿄에서 활동하는 한 분석가의 말을 빌어 한국 관리들은 "미 국무부가 북한의 이른바 핵계획 인정을 밝힌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 제조능력이 과장됐다고 느끼고 있다"면서 미국이 '북한의 핵계획 인정'을 공개한 것은 한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대통령선거일까지 (한반도의) 긴장이 계속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믿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 기사는 "북한의 핵 위반을 징벌하려는 워싱턴의 노력은 이제까지 가장 가까운 우방국이었던 한국을 소외시키는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라면서 만일 이번 사태가 외교적 타협에 의해 해결될 경우 "미국은 적도 제거하지 못한 채 친구 하나를 잃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이 기사의 전문.
***'불안한 동맹국, 대결의 배후에 부시가 있다고 생각하다'/가디언, 4일자**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된 이후 적국을 다루기보다 우방국을 다루기가 어려워진 적은 한두번이 아니다. 이번의 곤경은 동북아에서 일어났다.
북한의 핵 위반을 징벌하려는 워싱턴의 노력은 이제까지 가장 가까운 우방국이었던 한국을 소외시키는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다.
6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리는 모임(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에 앞서 서울측이 어제(3일) 내놓은 외교적 해결방안은 미국측이 선호하는 강경정책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부시는 이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만일 그가 한국측의 계획을 무시한다면 서울과의 관계는 더욱 벌어질 것이며, 반대로 이 타협안을 받아들인다면 그가 악의 축 국가로 비난했던 국가(북한)에 대해 한발 물러섰다는 이유로 국내의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함으로써 평양은 수개월 내에 핵폭탄 수 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게 됐다. 핵확산에 반대하는 그의 (강경)자세가 깡패국가에 의한 핵무기 취득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부시는 매우 어리석게 보이게 될 것이다.
서울에서는 이같은 상황을 만든 것이 미국 대통령 자신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갈수록 퍼져가고 있다. 부시 취임 이전까지는 북한을 고립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먹혀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000년에는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 그러나 퇴임 직전의 클린턴 대통령은 평양측의 방문 초청을 수락하지 않았다. 북한측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다는 것과 (차기 대통령) 부시가 미국의 대북정책을 동결시킬 것이라는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이같은 우려는 부시 취임 수일만에 사실로 드러났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 두 나라(한국과 미국)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나라(북한)에서 (제네바)합의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검증하는 데 대해" 회의를 갖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그후 2년간 (그동안 진전돼 왔던 외교적 해빙은) 지난 94년 이 지역을 전쟁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던, 등골 오싹한 핵대결의 재연으로 대체됐다. 94년 당시 서울 주민들은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너무도 놀란 나머지 생수와 화장지, 기타 생필품 등의 사재기에 열을 올렸다.
이번 이번 핵위기에서 대부분은 남한 사람들은 북한의 형제자매가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오히려) 이번 위기는 미국 탓이라고 원망하고 있다.
한국인들뿐만이 아니다. 지난 해 1월 부시 대통령이 상하 양원 합동 연설을 통해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 국가에 포함시켰을 때 미 국무부의 대부분이 경악을 했다.
백악관의 한 고문(adviser)은 "그 연설은 워싱턴의 외교정책 엘리트들의 입 안에 쓴 맛을 남겼다. 이들은 그같은 용어가 다시는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은 북한에 대해 계속 요구했다. (전임) 클린턴 대통령은 핵무기와 미사일 제거에 초점을 맞춘 반면 부시는 (북한의) 1백만 가까운 재래식 병력의 감축을 주장했다.
북한이 '선군정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사실상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 자신이 '혐오한다(loathes)'한다고 말한 북한 지도자의 종말을 부시 대통령은 결코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통상 미국을 추종해 온 일본도 부시행정부의 이같은 태도(dramatisation and personalisation)에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 해 9월 고이즈미 총리가 전격적으로 평양을 방문한 데에는 미국의 의도에 대한 우려도 한 요인이었다고 일본 관리들은 말한다.
2주일 후 워싱턴은 북한이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에게 우라늄 농축 계획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발표의 시기와 내용은 이번 위기가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manufactured)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이 지역에 불러 일으켰다. 서울과 도쿄가 평양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고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탈환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심지어 서울과 베이징은 북한이 과연 비밀핵무기 프로그램을 실제로 시인했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고 있다. 북한측이 비밀 핵프로그램을 인정했다기보다는 외교의례를 무시한 채 평양측을 압박한 켈리의 대결적 자세에 대해 저항의 표시로 볼 수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한국 통일부의 한 관리는 (북한측의 핵프로그램 '인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직 애매모호한 점이 있다.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다면 이는 정치적 언급이라기보다는 감정적 언사였을 수 있다."
이에 대한 분노는 (실제) 범죄에 비해서는 훨씬 엄청난 것이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수년전 북한이 지난 94년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기 전에 플루토늄 핵무기 2개를 갖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따라서 이른바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현재의 소동에 대해 여러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설사 북한이 실제로 우라늄농측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해도 이는 (플루토늄 계획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어렵고 시간도 수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도쿄에 있는 '경제ㆍ무역ㆍ산업연구소'의 분석가인 마이클 유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 관리들은 미 국무부가 북한의 이른바 핵계획 인정을 밝힌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의 핵무기 제조능력이 과장됐다고 느끼고 있다. 이라크공격이 당분간 가능하지 않을 것에 대비하여, 대통령선거일까지 (한반도의) 긴장이 계속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번 주까지 한국관리들은 이같은 의혹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워싱턴, 도쿄와의 공조전선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달 미사일을 싣고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 화물선을 스페인 해군이 미군을 대신하여 나포한 사건이 이들의 인내심을 무너뜨린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다.
이 사건은 한국 대선이 절정을 향해 가던 시점에 긴장을 유발시켰다. 한 각료급 소식통(A cabinet source)은 이 사건 당시 김대중정부가 미국측에 회담을 요구했다고 가디언측에 밝혔다. 이 사건이 선거에 영향을 미쳐 친미적인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수만명의 시위대가 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동안 이회창 후보는 선거에서 패배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 재래식 병력의 감축을 요구하지만 않는다면-이는 사실 북한내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켜줄 뿐이다-(한국 등이 주장하는) 외교적 타협에 의해 한반도는 지난 여름의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이며 (북한의) 우라늄농축 계획도 폐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같은 일이 가능해진다면 한미안보동맹 50주년을 맞는 올해 두 나라간의 관계는 최악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적도 제거하지 못한 채 친구 하나를 잃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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