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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에 떠는 보수ㆍ기득권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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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에 떠는 보수ㆍ기득권층”

서영석의 '삐딱하게 본 정치' <61> 인터넷추천제 斷想

김대중 정권의 공과를 걸러서 계승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인사(人事)'의 성패야말로 정권의 성패로 직결된다고 인식하는 것은 핵심을 제대로 짚은 것이라고 평가된다. 김대중 정권이 망가지기 시작한 근본 원인으로 필자는 몇몇 글에서 인사정책의 실패로 꼽은 바 있거니와, 이러한 생각은 비단 필자만의 관점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의 장ㆍ차관 인사란 어떠했던가. 이른바 인사존안자료에 대부분 의존해 왔었다. 인사존안자료라고 하면 좀 생소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청와대나 국정원 등에서 보유하고 있는 이 나라 주요인사들에 대한 인사파일이 그것이다.

김대중 정권 초기, 김영삼 정권이 청와대의 인사존안자료를 다 파기하고 다음 정권에 넘겨주지 않았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그야말로 적대적 정당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나온 루머일 수도 있는 얘기지만, 이후 김대중 정부의 인사난맥상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싶다.

인사존안자료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여론의 수집에 따른 결과물이다. 문제는 일부 극소수의 핵심인사들이 국정원 등의 편파적인 시각에서 작성된 인사자료를 기초로 만든, 지극히 자의적인 자료라는 한계에 있다. 청와대의 인사존안자료란 말하자면 이나라 기득권층의 집합적 결과물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급변하는 사회변동에 맞춰 새롭게 등장하는 엘리트들이 이 존안자료에 들어가기란 하늘에 별따기였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사회의 역동성에 집권엘리트들이 제대로 부응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으로도 작용했었다.

더 큰 문제는 지극히 기득권층 위주로 편중된 인사존안자료에 따른 집권자의 선택적 인사 역시 정실주의에 흘렀다는 사실이다. 김대중 정권 중기 필자가 만난 당시 권력 핵심의 한 인사는 필자에게 사석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장차관 인사가 나오면 신문에서는 이른바 프로필이라는 걸 쓴다. 지역이 어떻고 능력이 어떻고 하면서 발탁원인을 쓰는데, 솔직히 사정을 아는 내게는 배꼽잡는 얘기일 뿐이다. 정권창출에 자타가 공인하는 정치인 출신 장관을 제외한다면 예외없이 정실인사다. 하다못해 집권자의 사돈에 팔촌이라도 된다든지, 아니면 지연이나 학연 등으로 깊숙히 연결돼 있다든지 하다는 얘기다. 그게 진실이다. 능력 위주의 인사란 웃기는 개소리에 불과하다"

이러한 정실인사는 비단 김대중정권만의 과오는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 집권 이후 박정희, 전두환정권에서부터 김영삼 정권까지의 관행이었다. 김대중 정권 이전의 정실인사는 기득권층끼리 돌려가면서 나눠먹는 식인데다, 여론통제능력이 우수(?)했기 때문에 그만큼 잡음이 적었다는 것 정도가 차이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을 통해 장차관을 추천받겠다는 것은 대체 무슨 소리인가. 이러한 제한된 인사존안자료라든지, 정실주의 인사를 배척하겠다는 의지가 핵심이다. 적어도 한국의 집권엘리트 선택관행이란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혁명적인 조치다. 보수적인 세대들에게는 새롭고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전혀 혁명적이지가 않다. 잘못된 관행에서 제대로 된 절차로 이행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터넷(뿐만은 아니지만)을 통해 추천을 받겠다는 것도 결국은 장차관 후보자에 대한 광범위한 여론을 수집해서, 새롭게 인사존안자료를 만드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집권자에게 올라가는 명단을 결정하는 기초자료로서, 인사존안자료를 새롭게 갱신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왜 여기에 인터넷을 통한 추천이 들어가는가. 인터넷은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당선자가 배출된 원인이기도 한 인터넷이 최소한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의 여론을 수렴하는, 현재로서는 존재하는 최적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 이후에는 40대 후반은 물론 50대, 60대의 인터넷 인구도 급증하는 추세라고 한다. 인터넷을 모르고서는 변화하는 사회환경에서 낙오될 수 있을 것이란 경고음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이란 수단만 제외한다면 이러한 과정은 사실 이 땅의 기득권층이 우러러보는 미국의 인사발탁제도와 크게 다를 게 없다. 필자에게 이메일을 보낸 유수한 미국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30대의 한 행정학도는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주요한 포스트에 대해서는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응모가 가능하며, 의회나 대통령비서실의 인사들은 물론 사회단체로부터 추천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당선자의 인사관도 결국은 미국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에 의한 의사소통과정이 미국보다 오히려 뛰어나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한 추천이란 방법이 나왔을 뿐이다. 추천을 다양화하고, 이를 통해 엘리트를 투명하고 광범위하게 선발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제대로 된 인사를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그렇지 않았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의 보수적인 의견을 대표하는 언론 가운데 하나인 중앙일보는 이러한 실험을 파격이라고 표현했다. 제대로 된 인사관행을 확립하는 것은 결코 파격이 아니다. 물론 과거와 같이 끼리끼리 나눠먹는 식의 정실주의적이고 기득권층 위주의 제한적인 인재풀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파격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절차로 가는 과정에 비로소 우리 사회도 들어서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또한 이러한 인사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각종 위험성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효율성과 경쟁력이 보장될 수 있는가. 포퓰리즘(인기영합)의 위험은 없는가. 여론동원을 통한 인사개입 우려는 없는가. 걱정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인사존안자료에 의거한 방식에서도 여전히 동일하게 지적될 수 있는 단점들이다. 이렇게 동전의 양면일 수 있는 위험성에 먼저 시선을 돌린다는 것은 결국 새로움에 대한 공포요, 기득권 상실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정책은 선택이다. 인사정책도 다를 게 없다. 과거처럼 기득권층 위주의 불완전한 인사존안자료와, 정실주의로 고위관료들을 발탁할 것인가. 아니면 역동적인 사회변동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는 인재들을 발탁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취할 것인가. 노무현 당선자와 그를 보좌하는 그룹에서는 후자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객관적으로도 지극히 정상적인 인재발탁절차를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과정을 택한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집권자의 의지가 관건이다. 집권자가 열린 마음을 갖고 불편부당한 인재발탁을 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필자는 노무현당선자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의사소통과정에 대한 이해가 어느 누구보다 정통하다는 점에 위안을 삼고 있다. 인터넷은 새로운 의사소통과정일 뿐 아니라, 앞으로는 노무현 당선자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을 수행할 새로운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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