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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을 다시 방문해야 한다"

서영석의 '삐딱하게 본 정치' <59>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차기정부의 북핵 해법은 이제 분명하게 가닥이 잡혔다. 김대중 대통령의 30일 국무회의 발언과 노무현 당선자의 계룡대 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요약하면 북핵위기가 한반도의 전쟁으로 발전돼서는 안되며, 당연히 평화적으로 해결을 모색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과 노 당선자의 이같은 선언은 해방 이후 우리 외교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해방 이후 김대중 정권 이전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를 잠깐 제외한다면 일관되게 대미 종속적 외교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동북아정책이 바로 우리 외교의 가장 중요한 아젠다였으며, 따라서 우리 외교는 미국의 동북아 이익을 보장하는 테두리 내에서만 가능했다는 얘기다.

김대중 정권은 이런 의미에서 비로소 자주적 외교의 기틀이 잡히는 시기였다. 물론 김 대통령의 일관된 소신에서 발원한 햇볕정책과, 미국의 진보주의적인 클린턴 행정부라는 두가지 요소가 결합됐기 때문에 그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의 대미외교 역시 기본적으로는 한국의 이익과 미국의 이익을 합치시키려는 노력이 기본 바탕이었다고 하겠다. 클린턴 행정부가 김대중 정부를 지원했던 것은 그들의 동북아 인식에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해(害)가 되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자주적인 외교노선이 미국 국익에 합치될 것이란 인식을 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다는 것, 그것은 결국 불완전한 대미종속외교란 특성 속에서 필연적인 결과였다. 부시행정부 등장 이후 임기말에 들어선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 한때 보수일변도로 흘렀던 것 역시 자주적 외교노선의 불완전성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불완전한 자주노선은 노무현 당선자의 출현으로 드디어 보다 완전한 대미 자주외교로 업그레이드될 계기를 맞은 것 같다. 노무현 차기 정부는 말할 것도 없이 햇볕정책의 계승을 천명하고 있다. 재야시절 미국에 신세를 진 김대중 대통령과 달리 노무현 당선자는 미국에 진 빚이 없다. 오직 미국에 부채가 있다면 동북아의 국제정세 속에서 절대로 미국에 자유로울 수 없는 한반도 남쪽의 불운한 위상일 뿐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맞춤형 봉쇄를 통한 경제적 붕괴란 초강경책을 내놓은 직후 김 대통령이 “냉전시대에서도 공산국가에 대한 억압과 고립화가 성공한 일이 없다”며 대북 봉쇄를 반대하고 나서고 노무현 당선자가 계룡대에서 “미국의 북핵 무력공격은 안되며 대화해결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화답하고 나선 것은 결국 이런 맥락에서 봐야만 이해가능하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들고나온 직후부터 미국의 대북압박이 강화되기 시작한 배경에 대한 분석은 여러갈래다. 동북아 경영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미국의 의도가 그 기본이며, 여기에는 북한의 개방이 장기적으로 몰고올 중국-러시아-한반도의 경제블럭화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을 수도 있다. 유럽과 동북아가 러시아 횡단철도를 통해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미국보다 더 긴밀한 경제협력관계를 구축할 때 미국이 2등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어느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과의 관계를 완전하게 단절할 수도 없는 입장인 것은 분명하다. 미국과 대등한 관계에 선다는 것과 적대적인 관계를 설정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제역학상의 여러 문제점을 고려할 때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로 갈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대등한 관계이며, 최소한 한반도 문제만큼은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미국이 동조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자주외교 천명에 대해 이 땅의 보수적인 의견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한나라당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보수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기본적으로 노무현 당선자의 발언 즉 “(미국의 북핵 무력공격이) 미국에게는 국지전일지 모르나 한반도에는 전면전일 수밖에 없다”는 데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북핵위기는 김 대통령이 천명한 대로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의 국익은 전쟁없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것이다. 북한이 핵포기를 먼저 선언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북한과 타협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대화의 창구까지 부정하지는 않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치국면을 풀 수 있는 주체는 한국일 수밖에 없다. 미국을 비롯한 중국과 러시아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외교적인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한국의 주도적인 해결을 위한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을 제외한다면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진 나라는 한국 뿐이다. 퍼주기란 비난 속에서도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최대 지원을 한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 본인이었다. 한국이 주도권을 쥘 때 그 주체는 김대중 대통령이 되는 것이 자연스런 순리다. 노무현 당선자는 만에 하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한발짝 뒤로 물러서는 게 옳다.

한국이 북핵위기 해법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북한을 직접 설득한다는 의미다. 임기 2개월을 남기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북한 설득에 나서야 한다. 김 대통령은 다시 평양을 방문해야 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실효성 있게 핵포기를 설득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은 현재로서는 김대중 대통령 외에 달리 대안이 없다.

이제 김 대통령이 평양을 다시 방문한다고 해서 다른 오해를 받을 리는 없다. 김 대통령이 평양방문을 통해 북한의 핵포기를 받아내고 지속적인 지원을 보장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김대통령의 역사적 책무이며, 정치적으로는 자신의 어떤 지원도 없이 당선돼 햇볕정책의 계승을 천명해온 노무현 당선자와, 나아가 한반도를 위해 해야 할 마지막 역할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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