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하나 더 있다. 오늘은 법정기념일인 '농업인의 날'. 미국의 충견(忠犬)들이 밀어붙이고 있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줄줄이 몸을 던질 농업인을 기념하는 날이다. 덤 하나. '잠실의 바벨탑', 롯데수퍼타워123의 건축 허가장 교부 2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귀곡산장(鬼哭山莊) '가든 5'에서 보는 K-16
지금 서울 문정동 '가든 5'(입주율 70%도 못되는 귀곡산장: 오세훈이 만들어 놓고 팽개친 흉물로 웨딩홀만 성업이다. 주차가 편하니까)에 와 있다. 후배가 운영하는 회사 방문을 위해 중앙 광장에 들어선다.
연인 사이인 듯한 20대 남녀가 히히덕거리며 빼빼로를 씹고 있는데, 상공에 갑작스런 굉음. F-5 2대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랜딩 중이다. 원주 제8전투비행단을 이륙, 성남 비행장으로 향하는 전투기 편대 중 일부인 듯.
그 모습 보니, 또 열 받는다. 일본에 본거지를 둔 전형적 매판자본(買辦資本)에 의해 전략 공군기지인 제15혼성비행단이 유린되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봐야 하는 신세가 처량해서다. 아니 그보다 매판자본의 농간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해 안보를 팽개친 국군 지휘체계의 무책임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전략 공군기지, 제 15혼성비행단
공군 제15혼성비행단(ROKAF 15th Mixed Wing: 이하 '15비':단장 공군준장 우정규)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직제 상 15비는, 김해 제5전술비행단과 함께 공군 유이(唯二)의 참모총장 직속 비행단이다. 여타 비행단은 작전사령관이 지휘한다. 그만큼 기지의 중요성이 막중하다는 얘기. 전략 공군기지다. 당근, 출격(sorties)도 많다.
1970년 창단한 제15혼성비행단은 이름도 갖가지다. K-16, 서울공항, 성남비행장, 신촌리비행장 등. 우선 K-16. 이건 국제항공 통용 코드명이다. 항공운항 용어인 셈이다. 전 세계 어느 조종사든 성남 비행장에 접근하려면 K-16 관제탑을 불러야 한다. 지도에 표기할 항공 운항 상의 의미다.
K-16기지는 위치 상. K-18 기지(강릉소재), K-46 기지(원주소재)와 함께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는 기지다. 그 중에서도 K-16이 가장 중요한 전략 기지인 이유. 바로 복합 기능을 가진 전략 기지이기 때문이다. 이름 풀이를 통해 K-16의 성격을 살펴보자!
대통령, 외국 국빈 뜨고 내리는 VIP공항
'서울공항'
공군 1호기(Air Force One)로 불리는 대통령 전용기와 외국 국빈 탑승 항공기의 출입국 통로라는 이유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미국 워싱턴 DC 교외의 앤드루스 공군기지와 기능이 같다고 보면 된다. 레이건 국제공항이 인천국제공항, 덜레스 공항이 김포공항이라면, 서울공항은 앤드루스 공군기지인 셈.
나라꼴을 갖춘 국가는 대통령 전용기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보잉 747-200 점보기를 개조한 '하늘의 백악관'을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단거리는 보잉 737기를 운용해왔고, 장거리 순방인 경우 민항기를 임대해 쓰면서 구매와 구매포기를 거듭했다. 최근 다시 구매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아무튼 이 임무는 제251 수송비행대대가 맡고 있다.
서울공항은 국가원수와 외국국빈의 안전하고 신속한 이동 뿐 아니라 유사시 국가원수를 비롯, 핵심 지도부의 탈출을 책임지는 비행장이기도 하다.
Sortie 수 가장 많은 적군퇴치 보루, K-16
성남비행장, 또는 신촌리 비행장은 공군 고유의 업무에 붙여진 이름이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촌동, 심곡동, 오야동, 고등동을 아울러 공군에선 신촌리 비행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통령 전용기 운용 외에, C-130 허큘리스 수송기 12대를 운용하는 공군 물류 허브이기도 하다. 제257수송비행대대가 맡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부대가 있다. 바로 국산 KA-1 경(輕)공격기(Attacker)를 운용하고 있는 제237전술통제비행대대.
국산 기본 훈련기 KT-1을 개조·개량한 KA-1 대대는, 평시엔 북한 특수부대의 침입을 막고, 전시엔 북한 지상군 침투를 저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북한군의 지상 및 해상 침투 시 마하 속도의 F-15나 F-16가 지나치는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 수도권 방어 기종의 핵심 공군 전력이다.
중형 쌍발 엔진 탑재 호커 800XP를 개조해 대북 감청 임무(백두 정찰기)과 대북 정찰 임무(금강 정찰기)를 수행하는 255특수작전비행대대도 빼놓을 수 없는 전력이다. 그 밖에 제233탐조구조대대(헬리콥터)도 예하에 있다.
게다가 미 육군 제2사단 제2항공여단 2대대(2-2AVN 2nd battalion)도 곁방살이하고 있다. 서울공항에선 매년 가을 서울에어쇼(ADEX)가 열리고 있다. 가히 전천후 복합 공군기지다.
당연히, 이 기지의 항공기 출격(sorties)은 공군 타 기지의 추종을 불허한다. 추정컨대, 미 제7공군 전술항공통제본부(TACC: Tactical Air Control Center)와 함께 쓰고 있는 오산 기지(K-55)보다 붐비면 붐볐지 덜하지 않을 거다. 출격이 많다는 얘기는 그만큼 비행과 관련된 각종 사고 위험이 높다는 뜻이다.
15飛, '13만 시간 무사고 신화' 빨간불
그런데 이 기지는 자랑스러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작년 10월 4일 제237비행대대가 '13만 시간 무사고 비행기록'이라는 공군 역사상 최장기간 무사고 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이날 오후 3시 10분 정현동 소령(공사 46기)과 유상현 대위(학군 34기)가 조종하는 KA-1 경공격기가 계기훈련(INST)을 마치고 런웨이에 안착했다. 이로써 1975년 10월 23일부터 무려 35년간 무사고 기록이 수립된 것이다. 거리로 환산하면 약 4천212만㎞, 지구 둘레를 1,054바퀴 돈 거리다.
하지만 이제 이 기록은 공군의 전설로 남을 공산이 크다. 정권을 등에 업은 매판자본의 어두운 그림자가 15비 상공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K-16 안전문제 논란으로 밝은 기축년(己丑年)
▲ 제2롯데월드 조감도 |
2009년 새해는 제2 롯데월드의 건설 허가를 놓고, 첨예한 쟁론이 펼쳐지는 가운데 밝았다.
1월 7일 조중표 당시 국무총리실장 주재로 열린 행정협의조정위원회 실무위원회는 "서울공항의 동편 런웨이 각도를 3도가량 옮기도록 한 국방부 안이 타당하다고 판단, 공군과 롯데가 비용 문제 등을 포함해 추가 협의하도록 했다"면서 사실상 제2 롯데월드의 건축을 승인했다.
여기서 '성남비행장 런웨이(활주로) 각도 변경안'이란 게 뭔지 짚고 넘어가자. 성남비행장엔 역 'V'자 형태의 두 개 런웨이가 있다. 그 중 동편 런웨이의 하단부를 3도가량 서쪽 런웨이 방향으로 옮긴다는 거다. 그렇게 하면 높이 555m 짜리 마천루(skyscraper)를 지어도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총리실은 한술 더 떠 "롯데가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명시한 데다 국방부에서 새로운 방안을 내놓아 (비행안전 방안에 대해) 재논의를 하기로 했다"며 "사실상 비용(분담) 문제만 남은 셈"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MB, 軍의 경제위기 극복 동참 극찬(極讚)
공교롭게도 이틀 전인 1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방부 업무보고 석상에서 MB는 군이 경제위기 극복에 적극 동참키로 했다는 방침을 보고하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군의 경제 활성화 동참과 맞물려서 그 구체적 첫 사례가 공교롭게도 잠실 제2롯데월드 신축 허용이었던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까지도 군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보류(pending)됐던 바벨탑 건축안이, MB 정권 들어 롯데그룹과 정부가 핑퐁식 군불떼기를 몇 번 시도하면서 맷집을 키우더니, 드디어 신축 허용 쪽으로 못을 박은 것이다.
특히 그간 성남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면서까지 보호해온 비행장을, 일개 기업의 이익을 위해 기지 이전설을 부추기더니, 급기야 활주로 각도 변경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난도질을 시작한 것이다.
공군(空軍), 강경 반대서 수용으로 입장 바꿔
제2 롯데월드 신축에 대한 당사자, 즉 공군의 입장은 어땠나? 제2 롯데월드 건축안이 처음 제기됐던 YS정권 때부터 공군의 입장은 일관됐다. 절대불가(絶對不可)!
MB 정권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2008년 9월 공군참모총장 김은기가 갑자기 옷을 벗고 이계훈에게 공군 지휘봉을 넘겨준다. 2년 임기 중 무려 7개월이나 남은 시점이었다. 김은기의 갑작스런 경질이 성남비행장 버티기로 인한 괘씸죄 성격의 문책인사였다는 것은 군 전반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회자됐다.
김은기의 사퇴로 공군은 급격히 버티기 동력을 상실하고 만다. 1월 9일 공군은 제237전술통제비행대대(KA-1 경공격기대대)의 제8전투비행단(K-46) 이전안을 국방부에 상신, 승인 받는다. 알아서 기기.
공군은 이 안이 국방중기계획에 따라 이전하는 것으로 제2롯데월드와 관련이 없다고 친절하게 부연 설명까지 했다.
문제는 KA-1 대대가 원주기지로 이전할 경우, 그에 따른 비용 발생은 차치하고라도 특수부대 침투나 전시에 서해안이나 서부전선까지 날아가는 데 시간이 걸려 수도권 방위가 전술전략상 엄청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롯데, 대통령 전용기까지 내쫓아?
1월 11일 정부 관계자는 내게 또 하나의 충격적인 귀띔을 한다. 제2 롯데월드가 신축되면 서울공항을 이용하는 대통령 전용기(공군 1호기)를 김포공항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을 공군이 제시했다는 것.
잠실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경우 조종사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해 성남비행장이 군용비행장으로서의 기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할 뿐 아니라 비행착각으로 인한 대형 참사가 우려되며, 특히 국가원수의 안위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충정이 담긴 제안이었다는 것.
이 제안은 대통령 전용기가 김포공항으로 옮겨가면 제2 롯데월드 신축에 따른 비행안전성 논란이 증폭될 것을 우려한 국방부의 반대 때문에 기각됐지만, 공군의 '알아서 기기' 행태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음 방증하는 슬픈 기록이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공군 캐치프레이즈), 국제 신사 공군의 긍지, 대당 가격이 수백억 원에 이르는 항공기, 무엇보다 한 명 양성하는데 100억 원이 들어가는 조종사의 측량할 수 없는 가치 등을 공군 스스로 헌신짝 내버리듯 팽개친 것이다.
공군의 이 같은 태도변화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제2 롯데월드 신축 허가에 대한 당위성 확보를 위해 국토해양부, 항공안전본부 등 관계기관을 끌어들인다. 공군을 100%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납작 엎드렸던 공군, 다시 고개를 든다. 1월 12일자 <국민일보> 1면에서 최현수 군사전문기자는 '제2롯데월드 완공 시 공군 1호기의 이착륙에 안전이 결코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GPWS외에 별도의 경보장치를 달고, 제2롯데월드에도 ACAS라는 충돌방지시스템을 설치할 계획'이라는 공군의 방침을 보도했다.
하이에나 <조선>, 불난집에 부채질
그 와중에 성남 비행장 고사작전에 끼어드는 하이에나 한 마리 있었으니, 그 이름도 찬란한 <조선일보>.
1월 15일자 조선일보는 1면 톱 "모든 군사공항 주변 일괄 규제완화 검토" 제하의 기사에서 한나라당이 전국 군사공항 주변의 고도제한 같은 규제 등을 일괄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키로 가닥을 잡았다고 전했다.
"군사공항의 상당수가 과거에는 도시 외곽에 있었지만, 도심이 커지면서 시내 중심에 위치하게 됐고, 성남지역만 해도 서울공항 때문에 고도 제한을 받아 도시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등 문제가 많으니 이번 기회에 전국적으로 검토해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당시 원내대표 홍준표의 발언도 실었다.
여기에 수원 팔달 출신 남경필은 "성남, 수원, 대구, 광주, 청주 등 전국적으로 10개가 넘는 도심 군사공항 때문에 피해 받는 주민들이 1000만 명이나 되고 과도한 규제 때문에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소음피해 등도 심각하다"는 지원사격까지 했다.
남경필은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수원공군기지(K-13)를 의식, "국방력을 약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대안을 내놓으면서 도심공항은 이전하고, 이전한 공항 자리에는 경제 살리기를 위한 성장동력 산업단지를 유치해 육성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대안(?)까지 제시했다.
이 같은 행태에 대해 한나라당 의원을 지낸 김용갑이 일갈한다. 그는 1월 13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권이 제2롯데월드를 허용키로 한 것은 아이러니다. 만일 좌파정권에서 지금처럼 활주로를 3도 틀어 제2 롯데월드를 허용해주겠다고 했다면 보수단체에서 반대 집회와 서명운동을 하고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보수인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하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참 곤혹스럽다"며 "그렇다고 안보에 문제가 있는 것을 그냥 방관하고만 있을 수는 없고, 반대할 것은 반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총체적으로 볼 때, 당시 한나라당은 제2 롯데월드 건과 관련, 당의 주요 강령인 중 하나인 '안보 강화'에 대해선 일체 관심 없이 오직 주군에 대한 맹종과 함께, 찬스를 살린 이익 챙기기(해당 지역구의원의 경우)에만 골몰하고 있었던 거다.
바벨탑과 서울공항, 국회 링에 올라가다
제2 롯데월드 신축 허용이 시나리오를 짠 것처럼 순서에 입각해 착착 진행되는 가운데, 이 문제 드디어 국회 테이블에 올라간다. 2009년 2월 3일 낮, 국회 국방위원회 제2롯데월드 신축 이후 K-16의 항공기 이착륙 안전성에 대한 공청회장.
찬성 측에서 국방부 군사시설기획관 김광우, 15비단장 박연석, 한국항공대 교수 송병흠, 롯데물산 사장 기준, 성남시 부시장 송영건 등 5명이, 반대 측에선 예비역 공군중령 김성전, 전 공군기획관리참모부장 이진학, 한양대 교수 조진우 등(이상 당시 직책) 3명이 진술인으로 참석했다.
뭔가 블랙 코미디 같은 조합아닌가! 상식적으로 국방부 고위관료나 K-16기지의 책임자가 앉을 진영은 반대쪽일 것 같았는데, 정작 반대 쪽 진영에 포진한 인사는 공군 OB들이었다. 형님이 아우의 안위를 걱정하는데, 당사자는 괜찮다며 귀찮아하는 형국.
게다가 제2롯데월드 신축 이후에도 K-16의 안전에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찬성 쪽 발언은 불합리와 오만의 극치였다.
먼저 "동편활주로를 3도 변경한다고 해도 제2롯데월드와의 이격거리가 최대 1500m밖에 되지 않아 최소 안전 이격거리인 장애물 회피기준(1852m)을 확보할 수 없다"는 민주당 안규백 의원의 문제제기에 대해, 김광우는 "(동편 활주로 3도 조정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와 비교하면 아쉬움이 있지만 안전은 보장되며 작전수행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15飛단장은 경제 걱정, 롯데 사장은 안전 강변(强辯)
애처로운 코미디의 주인공은 피해 가능 당사자인 15비 단장 박연석이었다. 그는 "작전 수행에 지장을 주는 요소가 제거된다는 조건에서 기업이나 국민이 건축을 요청했을 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며 "더구나 국가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군이 '작은 불편'을 감수하지 않은 채 경제 활성화의 기회를 가로막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도대체 이 자가 군인인가, 경제인인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참 궁금하다.
롯데물산 사장 기준은 한술 더 떠 "공인 충돌위험모델(CRM) 시뮬레이션 분석결과 초고층에 충돌할 확률은 1000조분의 1로 안전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강조했다. 롯데물산이 비행안전을 다루는 전문기관인지 몰랐던 내 무지를 탓할 수밖에.
그는 제2롯데월드를 다른 곳에 지을 계획이 없느냐는 질의에 "땅이 없기 때문에 다른 곳에는 지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쯤 되면 오만을 넘어서 "배째라!"다. 어디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는 내뱉기 어려운 워딩(wording)이다.
空軍 OB 입 틀어막은 YB
공청회를 이끈 국방위 소속 의원들의 태도 역시 기묘했다. 고용창출을 내세워 재벌의 '바벨탑 쌓기'를 두둔하는 정부 방침에 일격을 가하는 것이 상식일 제1야당이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인 데 비해, 여당인 한나라당은 외려 까칠하고, 뾰족했다.
대구 동구 출신 의원 유승민은 "공군 조종사의 75%가, 관제사의 85%가 충돌 위험이 있다고 했다는데 대통령의 지시가 없었더라도 군이 허용한다고 했겠느냐"고 따졌고, 여성 보병대령 출신인 비례대표 김옥이는 "공군 지휘관이 장병들의 위험요소를 제거하기는커녕 인위적으로 위험을 만들려 한다"고 꼬집었다.
이날 공청회의 압권은 유승민의 휘니시블로우. 그는 당초 반대 쪽 진술인으로 내정됐던 전 공군참모총장 이한호(또는 전 방공포사령관 김규), 전 공군대 총장 최명상 등 공군 예비역 고위 장성들의 불참이 "공청회에 나가지 말라는 국방부와 공군의 압력이 워낙 완강했기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공청회 찬반 진술인의 5 대 3 불균형은 그래서 나온 것이었다.
국방부, "K-16은 첵랍콕 공항" 궤변
3일의 해프닝 이후 제2롯데월드 신축 담론은 성격이 달라진다. 특히 정부(국방부)의 궤변이 강도를 더해 가면서 자연스레 썰렁 개그로 바뀐다.
공청회에서 찬성 쪽 진술인으로 나왔던 국방부 군사시설기획관 김광우는 5일 KBS 라디오 '라디오정보센터 이규원입니다'에 출연, "(제2롯데월드) 건물이 지어지더라도 실제 우리 공군기가 정확한 경로로 정확하게 이·착륙하고 있다는 것을 초고층 건물에 계시는 분들이 직접 보면 오히려 더 신뢰할 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김은 "홍콩 어느 공항을 보면 빌딩 숲 사이로 커다란 점보기가 그대로 이착륙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그런데 그 공항에 어떠한 문제가 있다는 것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홍콩의 첵랍콕 공항을 말하는 것 같은데, 첵랍콕과 K-16을 같은 성격의 '공항'으로 본 그의 무지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제2롯데월드와 K-16 윈윈 가능"
김광우의 무모한 해석 이어진다. 15년 동안 안전과 안보를 이유로 반대한 공군이 MB 정권 출범 1년 만에 갑자기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선 "지난 12월 롯데 측에서 필요한 조치를 부담하겠다고 입장표명을 해 전향적인 방향 모색이 가능했다"고 답변한다.
공군이 돈 때문에 입장을 바꿨다는 얘기. 공군이 돈독이 올라도 한참 올랐다는 얘기를 국방부가 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한술 더 떠 "제2롯데월드가 신축되더라도 서울기지는 지금 위치에서 지금과 같은 작전 임무를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수행할 예정"이라며 "서로 윈윈 하는 방향 모색이 바람직하다"고 덕담까지 한다. 그의 화법에서 주목할 게 한 가지 더 있다. 항상 제2 롯데월드를 먼저 말하고 이어서 K-16을 말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낙관적으로 해석하는 김광우의 발언. 하지만 그 모든 발언이 얼마나 썰렁한 건지는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전 공군 기획관리참모부장 이진학의 발언에서 김의 화법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아니 어처구니없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김에 앞서 해당 프로그램에 나온 이진학은 "밤에 항공기가 불만 번쩍 켜고 다니는데 (제2 롯데월드에서 보면) 평상시보다 가까워 보이고, 날씨가 나빠 앞이 보이지 않으면 소리만 들릴 것"이라며 "제2롯데월드 입주자들은 비행기가 충돌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종국엔 "방 빼!" 불 보듯 뻔해
그는 "동편 활주로 각도를 3도 틀면 지금보다 한 500m정도 더 멀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항공기 이동속도로 보면 불과 5~6초 정도의 여유가 생길 뿐"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항공기가 바람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접근항로를 벗어날 수가 있고 또 조종사가 버티고(vertigo ·비행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 2009년 2월3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제2롯데월드 신축관련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한 조진수 한양대 교수가 제2롯데월드 모형 앞에서 항공기 충돌 설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이진학의 발언 중 결정적인 것은 바로 다음 대목이다. "입주자들도 불안하고 또 그 옆으로 다니는 조종사들도 높은 장애물 때문에 굉장히 불편할 것이다. 서로 상대방이 불편한 상대가 되니 성남기지와 제2롯데월드는 공존할 수가 없다. 결국 충돌 위험성에 대한 제2롯데월드 입주자들의 집단 민원으로 K-16의 이전이 불가피할 것이다."
미 FAA도 재앙 위험성 경고
참고로 미 연방항공청(FAA) 전문 기술진 3명은 2003년 10월 말 건교부 항공안전본부 초청으로 내한, 우리 공군기를 타고 K-16을 이륙해 제2 롯데월드 부지 위를 시험 비행한 뒤 비정밀 접근 시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들 기술진은 보고서에서 "해발고도 1883 피트에 들어설 제2 롯데 신축계획을 한국 공군이 매우 염려하면서 롯데에 건물 높이를 540피트(164m)로 제한토록 권고했다. 제한 근거는 건설 계획 위치가 공항 표면 및 계기접근절차 표면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보고서에 "이런 공군의 진지한 자세에 감명 받았다"고 덧붙인 이들은 미국으로 돌아간 지 2개월여 뒤인 2004년 1월 '세계적으로 직선 착륙이 불가능하고 선회 방식 착륙만 가능한 비행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위험을 회피할 최저 착륙 결정 고도가 얼마나 될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제2 롯데월드와 같은 수직 인공장애물의 사례 정보도 없다'는 요지의 비망록을 추가로 보내왔다.
병역 미필 통수권자의 안보 마인드
도대체 MB정권은 왜, 이처럼 턱도 없는 결정을 내린 것일까? 여기서 잠깐 국군 최고통수권자인 역대 대통령의 병역 기록을 살펴보자.
역대 대통령 병역 사항 |
이제 감이 잡히나! 보수 꼴통들이 좌빨이라고 그악스럽게(naughtily) 씹어대던 고(故) '바보' 노무현도 군댈 갔다 왔다. 그것도 '가장 뺑이친다'는 육군 보병으로.
MB에 관한 병무청 기록을 보자. 1961년 현역 입영 판정을 받은 그는, 1963년 단순 질병으로 귀가 조치 받은 후, 1964년엔 병역을 기피하고, 1965년에 폐결핵으로 면제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근데, MB는 바로 그 해 현대건설에 입사한 후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신화를 남겼다. 회식 자리에서 직원 모두 나가떨어졌는데도 혼자 남아 술을 마셨다는 것. 술꾼의 전설(The legend of tippler).
YS처럼 비록 일병일지언정 짬밥 맛을 봤다면 그래도 봐줄 수 있다. 근데 MB는 기피가 명백한 사유로 면제를 받았다. 앞으로 대한민국 대통령 피선거권을 가지려면 반드시 군을 필(畢)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든지 해야지, 원.
하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구석. 도대체, 왜, MB정권은 이처럼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그리고 앞으로 국가 안위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사안을, 수다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매판자본의 손을 들어준 것일까.
하긴 MB 임기가 2013년 2월 25일이니 대통령 전용기가 롯데수퍼타워에 충돌하든 말든 상관없겠지.
다음회는 <MB 정권 3대 비리 의혹 ②-下 '좋아 죽고 못사는 MB vs 신격호> 편이 나갑니다. 필자의 이메일 주소는 blest01@daum.net 입니다. 기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분은 주저말고 메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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