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부는 27일 핵시설들에 대한 동결 해제 조치에 이어 북한에 주재하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원들을 추방하는 동시에,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한 방사화학실험실을 금명간 가동하겠다고 발표해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북한의 최후통첩, 방사화학실험실 가동**
북한의 리제선 원자력총국장은 이날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에게 편지를 보내 북한의 이같은 입장을 통보했다.
리 총국장은 편지에서 미국의 중유제공 중단에 따라 북한이 핵시설들에 대한 동결을 해제하기로 했다며 "이에 따라 우리(북)는 중단했던 원자력발전소들의 건설을 완공하게 되며 이 발전소들이 운영되는 때에 나오게 될 수많은 폐연료봉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방사화학실험실도 가동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핵시설들에 대한 동결이 해제됨으로써 조ㆍ미 기본합의문에 따라 핵시설들의 동결감시를 위해 영변에 와 있던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원들의 사명은 자동적으로 끝나게 됐다"며 "사찰원들이 더 이상 우리 나라에 상주할 명분이 없어진 조건에서 우리 정부는 그들을 내보내기로 결정하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조ㆍ미 기본합의문의 제1조 3항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흑연감속로와 관련시설들에 대한 동결기간에 국제원자력기구가 동결상태를 감시하도록 허용하며 기구에 이를 위한 협조를 제공하기로 돼 있다"면서 "사찰원들이 우리나라에 상주하는 것은 우(위)의 합의사상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IAEA 사찰단원 추방 결정이 지난 14일에 보낸 편지에서 밝힌 핵동결 해제조치에 이은 '후속조치'라고 말했다.
***북핵사태후 가장 강력한 어조로 대북경고**
우리 정부는 27일 이와 관련, 북핵 사태 발발후 가장 강력한 어조로 북한에 대해 엄중경고했다.
정부는 이날 저녁 보고를 받은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세현 통일장관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긴급 소집해 이같이 결정하고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의 조치에 대해 엄중 경고하며, 이를 즉각 중지할 것을 강력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조치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고 국제사회의 핵확산 우려를 증폭시키는 심각한 행위"라며 "이번 사태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감안, 북한의 행동을 즉각 중지시키기 위해 미국, 일본 및 IAEA 등과 긴급 협의해 나갈 것이며,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EU) 등과도 긴밀히 협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특히 북한이 핵재처리시설 가동에 실제로 들어가지 않도록 중지시키는 데 향후 외교력을 집중키로 했다고 임성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특히 방사화학실험실을 가동키로 한 것은 북한이 말해온 전력수요를 위한 가동과는 무관하다"면서 "우리는 이번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날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에도 이같은 상황과 회의내용을 전달했고, 정권인수위의 윤영관 외교안보통일 분과 간사 등 노 당선자측 외교안보분야 참모진도 접촉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정부는 이미 예정돼 있던 한.미.일 3국간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를 미국에서 조기 개최하는 외에 중국, 러시아에 고위급 대표를 파견키로 했으며, 이에 앞서 이들 나라와 고위급 긴급 접촉도 가질 예정이다.
***미국,일본,독일 등 강경반응**
미국은 27일 이와 관련, "(북한의) 위협이나 파기된 약속"에 반응, 북한과 협상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클레어 버컨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이 만들어낸 이번 상황의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미국은 위협이나 파기된 약속에 응해 협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에 대해 현재의 진로를 되돌릴 것을 요구했다.
일본의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외상도 27일 밤 담화를 발표해 "방사화학실험실의 재가동은 핵무기 제조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행동은 국제사회의 이해를 얻지 못한다"며 "일련의 행동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이 예상했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점을 중시해 한국, 미국, IAEA와의 연계를 통해 북한 핵개발 저지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독일 정부도 27일 이와 관련, 주독 북한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항의 문서를 전달했다. 독일 정부는 이날 북한이 국제 핵 협정에 위배되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기를 바란다는 강력한 뜻을 북한대사에게 통보했다고 외무부 대변인은 설명했다. 그동안 북핵 위기에 중재적 입장을 밝혀온 독일의 이같은 반응은 유럽이 더이상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밝힌 것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사무총장도 성명을 통해 "즉각적인 봉쇄와 감시 조치를 위해 사찰요원의 주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엘바라데이 총장은 "사찰요원들이 영변에 남아 필요한 봉인과 감시 장치를 설치하도록 허용할 것"을 북한 당국에 요구했다.
그는 "만일 그들(북한)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필요할 경우 사찰단원들의 출국 일정을 잡도록 즉각 통지해줄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미국 비난**
한편 러시아는 27일 북한 핵 문제와 관련, 미국이 제네바 기본합의를 이행하지 못함에 따라 전력 부족사태에 직면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재개하도록 원인 제공을 했다고 비난했다.
알렉산드르 루미얀체프 원자력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오늘날의 갈등은 KEDO 이사국들이 약속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실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1994년 체결된 제네바 기본합의는 북한이 핵 무기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가로 미국이 주도하는 KEDO가 경수로 2기를 건설해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루미얀체프 장관은 "지난 10년간 건축 공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그 결과 북한은 에너지가 고갈된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KEDO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지만 러시아의 경우라면 이미 핵 원자로를 건설했을 것"이라고 강조, 북한의 핵 에너지 개발을 지원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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