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마이크가 할 일은 많다."
방송사상 최초의 연예전문기자, 기자가 되기 전 KBS 슈퍼탤런트 본선 진출자로 뽑힌 전력을 갖고 있는 한때의 연기자 지망생, 고발 담당 기자, 탐사보도 전문기자.
욕심많은 이상호 MBC 기자(시사매거진 2580)가 <그래도 나는 고발한다>(문예당)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어쩌면 나는 기자의 모습으로 '억울한 사람의 한을 풀어주고 권력을 푸닥거리하는' 연기자에 불과할 뿐"이라며 무당기자론을 역설하는 이 기자는 실제로 연기자와 기자란 간극을 뛰어넘는 삶을 연출하고 싶어 한다.
<사진 방송사상 최초의 연예전문 기자로 마이크를 휘두르던 '노예계약과 PR비 파문'의 주인공 이상호 기자가 자신의 꿈과 고민, 경험을 담은 책 '그래도 나는 고발한다'를 펴냈다.>
***기자와 연기자의 사회적 역할은 비슷**
이 기자는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보도를, 억울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는 보도를, 힘 있는 자들의 위선을 꾸짖어주는 보도를 지향하는 것"은 기자와 연기자의 사회적 역할이 비슷하기 때문이란다.
기자의 본분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 기자의 고민은 사람에 있다. 그가 '사람, 그 위대한 만남을 위하여'란 글에서 소개한 취재기다.
"공공주차 시설의 주차관리 요원이 있었다. 50대 초로의 이 남자는 손님들의 차를 주차해주고 뒷돈을 받다가 우리 취재팀의 카메라에 잡혔다. 뉴스 보도가 나가자 그 남자는 해고됐다. 그가 받은 돈은 3천원이었다. 며칠 뒤 그는 나를 찾아와 눈시울을 적시며 말했다. 대학에 들어가야 할 고등학생 아들 둘이 있다고. 초년기자 시절 나만의 우물 속 정의감에 도취돼 물불 가리지 않고 날뛰던 나는 처음으로 깊은 회의에 빠져 들었다. 탄원서를 써서 들고 그의 복직을 위해 뛰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사람에 대한 번뇌와 고민은 모든 기자의 몫이다. 하지만 고발과 비판이 생명이라고 교육받아온 기자들에게는 공명심에 들뜨기가 쉽지 드러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간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또 인간에 대한 사랑은 때로 기자가 빠지기 쉬운 취재원과의 유착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기자가 내건 캐치프레이즈가 '고발합시다'. 그는 '칭찬합시다'란 프로그램으로 낙양의 지가를 높였던 MBC 프로그램이 '고발합시다'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칭찬' 보다는 '고발'이 우선되어야 하는 세상**
그가 꿈꾸는 세상은 "선의의 내부고발자가 보호받고, 그리하여 다수가 정당한 권리회복을 통해 실질적으로 일상 속에서 보상받는 세상. 고질적 사회악이 집중적인 제보를 통해 고발되고, 그래서 더 이상 억눌린 양심이 불의에 침묵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칭찬은 그 이후에도 늦지 않는다는 것이다.
"착해빠진 시민이 나랏일을 '대신 했다'고 방송이 칭찬하고, 기업인이 세금을 '제대로' 낸다고 국세청장이 표창하고, 공무원이 뇌물을 '먹지 않았으니' 내무장관이 특진시키는 그런 일은 내년에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칭찬하시다' 프로그램의 기본 취지는 좋지만 맹점이 크다는 지적이다.
주철환 이화여대 교수는 이 기자를 '아름다운 스트리트 파이터'라고 칭찬하며 "너무도 특이한 사람. 그러나 '이상'하지만 '호'감이 가는 그가 바로 이상호입니다"라는 추천글을 써줬다.
주 교수는 "그는 우리 시대가 낳은 돈키호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가 고뇌하는 돈키호테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달려든 풍차의 실체가 시대와의 불순한 야합물이라는 증거가 그걸 말해줍니다"라고 소개했다.
이상호 기자의 고민과 도전은 바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인 것이다. 연제협(한국연예제작자협의회)의 MBC 출연거부를 불러온 대형 연예기획사들의 불공정계약 관행(노예계약)과 올해 언론계 10대 뉴스로 선정된 'PR비 파문' 등 이 기자는 숱한 특종의 현장 속에서 고민한 자신의 생각과 바람을 솔직하게 책 속에서 털어놨다.
고발이 생명인 사건기자로 살아가면서 인간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 기자의 삶이 행복으로 가득 찰 때 "그래도 나는 고발기자로 남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나는 연기자로 남고 싶다"는 꿈으로 치환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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