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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기, 강건너 불 아니다"

<데스크 칼럼> 대북 에너지 지원 등 대응책 세워야

북한이 24일 오후 평북 영변의 핵연료봉 제조공장에 대한 봉인 제거 및 감시카메라 작동불능 조치에 착수했다. 지난 12일 핵동결 해제선언 이후 4번째 핵동결 해제조치다.

이에 앞서 북한은 5MW와트 원자로, 폐연료봉 저장시설, 방사화학실험실(핵재처리 시설)에 대한 봉인제거작업을 완료했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북한은 앞으로 수개월내에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북핵 사태가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데 대한 서울과 워싱턴의 대응은 전혀 딴판이다. 어제(23일)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자와의 상견례에 관한 보도를 보아도 북핵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는 간단한 언급만 있을 뿐이었다. 두 분이 얼마만큼 진지하고 심각한 논의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되 언론보도만 보아서는 사태의 심각함을 감지할 수 없다.

반면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흉흉하기 짝이 없다. 이미 뉴욕타임스는 지난 23일자 기사에서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비외교적 대응’을 고려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월가의 반응도 싸늘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뉴욕에 사는 한 친구는 오늘(24일)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 내의 흉흉한 분위기를 전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군사대응을 우려했다. 지난 10일 스커드 미사일을 탑재한 북한 화물선을 미군이 나포했을 때 (북한의 최대 맹방인) 중국이 아무런 대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 아무래도 불길하다는 것이다.

뉴욕에 살고 있는 한 프레시안 독자도 프레시안에 보낸 이메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곳 미국은 전부 이라크와 북한 문제에 긴장되어 있는데 정작 서울은 너무 평온한 것같다. 지금은 북한과 미국이 게임을 하고 있으나 거기에 등을 빌려주고 있는 우리는 너무 판을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국민 생존에 관한 것은 게임에 걸리면 안 된다는 것이 지도자(현 대통령과 신 대통령)의 기본이어야 한다.

선거는 끝났다. 이제는 이성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고 이제 세계가 어떤지도 봐야 될 시점이다. 전쟁이 안 난다고만 믿지 말고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되는지의 worst를 가정해야 한다.”

북핵 위기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의 하나인 한국이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6.15 정상회담을 비롯한 지난 5년간 햇볕정책의 성과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여기에 기적과도 같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 가져온 환희, 또는 허탈 때문에 상대적으로 북핵 문제에 관심이 덜 미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선거는 끝났고 이제는 우리 앞에 다가온 문제들에 진지하게 대처할 때다. 그리고 노무현 당선자에게 닥쳐온 최초, 최대의 과제는 바로 북핵 문제의 해결이다. 5년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IMF위기 극복을 위해 불철주야 일했듯이 노 당선자도 당장 두 팔을 걷어붙이고 이에 대응해야 한다.

무작정 핵동결 해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북한에 대해 지금처럼 자제를 촉구하는 정부 성명을 발표하는 식으로는 현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나타나지 않는다. 노 당선자가 선거일 전날 말한 것처럼 ‘미국이 북한이 싸움을 하면 한국이 나서 말릴 수 있는’, 그런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지난 93-94년 핵위기 때와는 달리 지금은 북한과 미국을 중재할 수 있는, 카터 전 대통령과 같은 조정자가 없다. 어쩌면 한국이 조정자 역할을 맡아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 방안은 무엇일까.

논의의 출발점으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셀리그 해리슨이 지난 11월 18일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해리슨은 북한을 수차례 방문, 고 김일성 주석과 몇 차례 인텨뷰를 한 바 있다. 지난 94년 북한 핵동결에 대한 대가로 경수로 2기를 지어준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것도 바로 해리슨이다.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해리슨은 "한·미·일은 북한에 플루토늄을 재처리할 핑계를 줘서 위기를 부추겨서는 안된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케도)는 스스로 합의를 파기하거나 북한이 파기하도록 하는 대신 북한과 이 문제를 재협상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라늄농축 등 북한의 새로운 핵개발의 포기까지도 포괄하는 새로운 제네바합의를 타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전임 부시행정부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도 지난 11월 미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언젠가는 북미간에 보다 포괄적인 ‘핵합의’를 협상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보다 주목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이런 상황을 막고 기본합의의 효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미국의 그것과 상충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한국과 일본은 일시적으로 자신들의 석유를 북한에 공급해야 할 것이다.”

해리슨의 이 칼럼이 발표된 시점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미국의 일방적 주장에 의해 대북 중유제공 중단을 결정한(11월 14일) 직후이다. 북한은 지금 에너지 부족을 핵동결 해제의 이유로 꼽고 있다. KEDO가 12월부터 중유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에 이에 따른 에너지 부족을 메꾸기 위해 부득이 핵시설을 재가동한다는 것이다.

만일 한국(이나 일본)이 KEDO 공급분 만큼의 석유를 제공하거나 또는 전력 등 에너지를 지원한다면 일단 북한의 핵동결 해제를 막을 수 있는 명분은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해리슨은 또 이 칼럼에서 북한과의 핵 재협상을 위한 방안으로 현재 건설 중인 경수로를 1기로 줄이고 나머지 1기분은 미 석유기업 엑슨이 일본기업과 사할린에서 공동 개발중인 천연가스를 북한에 공급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에 대해 보다 강화된 핵사찰을 받도록 하라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해 보다 강화된 핵사찰을 받도록 함으로써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할 수 있고, 북한으로서는 김일성 주석의 업적인 경수로 건설을 1기라고 살려 놓았다는 점에서 체면이 서며,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북핵 위기를 해결하는 동시에 그동안 경수로 건설에 투입된 자금(한국 8억 달러, 일본 4억 달러)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해결방안이라는 것이다(셀리그 해리슨의 이같은 제안은 창작과 비평 2002년 겨울호에 보다 자세하게 실려 있다).

물론 해리슨의 이같은 제안이 유일한 모범 답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동결 해제를 놓고 미국과 북한이 정면 충돌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뭔가 현실성 있는 대안이 제시돼야 한다. 그리고 그 몫은 당연히 한국이 돼야 한다.

만일 한반도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미국이 아닌 우리 한민족이 고스란히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한겨레신문 11월 18일자에 실린 셀리그 해리슨의 칼럼 ‘제네바합의 재협상해야’의 전문이다.


***제네바합의 재협상해야/한겨레신문 11월 18일자**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이달 초 북한을 방문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를 만났을 때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가 “몹시 위태롭다”고 말했다. 달리 말해 기본합의가 사멸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달 4일 강 부상이 자신에게 합의는 “파기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강 부상이 켈리 차관보에게 뭐라고 했든 간에 기본합의가 깨질 경우 한국과 미국·일본이 곤란을 자초할 것은 분명하다. 폭탄 5개를 만들기에 충분한 플루토늄은 94년 합의 조건에 따라 현재 저장돼 있는 영변 원자로의 사용후 연료봉으로부터 재처리될 수 있을 것이다.

한·미·일은 북한에 플루토늄을 재처리할 핑계를 줘서 위기를 부추겨서는 안된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케도)는 스스로 합의를 파기하거나 북한이 파기하도록 하는 대신 북한과 이 문제를 재협상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케도의 결정이 자칫 북한의 대응조처를 낳아 군사적 움직임의 확대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막고 기본합의의 효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미국의 그것과 상충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한국과 일본은 일시적으로 자신들의 석유를 북한에 공급해야 할 것이다.

또 재협상을 통해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끝냈음을 확증할 수 있을 만큼 엄격한 사찰을 끌어내야 한다. 엄격한 사찰을 받아들이게 할 전제조건은 북한이 미국에 요구한 불가침협정이다.

이와 함께 새 합의는 북한이 심각한 에너지난에 대응하는 것을 돕고 러시아 사할린에서 북한을 거쳐 한국에 이르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공사를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미국 엑손모빌과 일본쪽 파트너가 백악관의 승인 없이 파이프라인을 북한을 거치도록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은 중동산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러시아의 가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다, 훨씬 떨어진 동부시베리아 코비차로부터 오는 파이프라인보다 값싸게 사할린 가스를 확보할 수 있다.

북한은 파이프라인을 통과하도록 하고 로열티를 받을 수 있고 파이프라인을 자체 발전소나 비료공장에 연결할 수도 있다. 남북한은 파이프라인 사업을 위해 경수로 2기를 모두 포기한다는 식으로 94년 합의를 개정하는 데는 분명히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남북한이 핵 협정을 따르고자 한다면 케도가 지을 경수로 2기 가운데 1기를 줄이는 것은 고려해볼 만하다.

이런 타협에 미국도 관심을 갖게 하려면, 북한은 경수로 사업 추진과 동시에 플루토늄을 생산하도록 고안된 핵시설을 해체하도록 돼 있는 제네바 합의의 비핵화 규정을 지키겠다는 것을 재확인해야 한다. 게다가 북한은 적절한 사찰조건 아래 우라늄 추가확보 노력을 못하게 하는 새 규정을 받아들이고, 94년 이전에 축적한 핵분열 물질의 양을 국제원자력기구가 사찰을 통해 측정하도록 한 지금의 규정에서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이런 사찰이 즉각, 합의가 정한 때보다 더 일찍 개시되기를 바라고 있다. 사찰 일정이 경수로 건설 진도와 연계돼 있다면 북한도 이렇게 앞당겨진 사찰을 받아들일 것이다. 미국도 엑손모빌 파이프라인의 북한 통과에 대한 반대를 멈추고, 파이프라인 옆에 발전소와 송전망·비료공장을 짓도록 다각적으로 지원하며, 경수로와 파이프라인을 완성할 때까지 케도의 대북 에너지 지원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부시 행정부로서도 북한이 강화한 핵사찰과 함께 경수로 1기 건설을 수용하도록 하는 것은 정치적 승리로 비칠 수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제네바 합의에서 그다지 엄격하지 않은 조건으로 북한에 너무 많은 것을 줬다는 공화당의 주장을 정당화하면서 말이다. 북한으로서도 기본합의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최소한 1기만이라도 세워 가동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긴요하다.

한국의 경우 케도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는 원자로 건설 계약과 관련한 기득권에서 일부 비롯된다. 한국은 올해 말까지 8억달러를 원자로에 쓰게 되며 한국 회사들은 이후 공사에 23억달러를 더 투입하는 계약을 맺고 있다. 한국이 지금까지 낸 돈은 인프라와 첫 경수로 건설에만 쓰였다.

한국은 경수로가 언젠가는 통일 한국에 귀속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케도 프로젝트를 선호한다. 반면 일본은 케도에 마지못해 10억달러를 주기로 했지만 질질 끌어왔다. 일본은 북한이 핵 안전기준을 지킬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데다 뒷마당에 또하나의 체르노빌 사태가 터질 것을 우려한다. 일본은 이미 4억달러를 썼기 때문에 이 사업이 완전히 백지화하는 것은 꺼린다. 하지만 한국처럼 경수로 1기로 줄이는 안은 수용할 수도 있다.

사할린 가스 개발에서 30%의 지분을 가진 일본 국영 석유자원개발주식회사(JAPEX)가 엑손모빌의 핵심 파트너라는 점이 중요하다. 북-일 수교 교섭이 계속된다면 일본은 사할린으로부터 북한을 거쳐 한국에 이르는 27억달러 규모의 파이프라인 건설을 지지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명심할 점은 파이프라인과 경수로 1기의 건설비가 대략 경수로 2기 건설비인 49억달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셀리그 해리슨/미국 국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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