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가 지난 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대량살상무기 실태 보고서를 놓고 '사실과 다르다'며 어떻게든 전쟁을 일으킬 빌미를 잡으려는 미국과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전쟁을 피해보려는 이라크 사이에 실제 전쟁에 앞서 아이러니한, 치열한 설전(舌戰)이 벌어지고 있다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온라인이 23일 보도했다.
한 이라크 학자가 미 해외정보기관 CIA의 이라크 방문을 환영한다며 CIA가 이라크에 들어와 유엔무기사찰단의 대량살상무기 은닉장소 추적을 도우라고 말하자, 미국은 증거를 제시해야 할 쪽은 미국이 아니라 이라크라며 역공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그동안 자국의 정보기관들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실태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다며 이를 유엔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 이유는 이라크 유엔무기사찰단이 지금까지 이라크가 유엔결의안을 '중대하게 위반했다'는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 나라는 지난 수년간 이라크의 위반사례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수집해왔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먼저 선제공격을 한 사람은 이라크 최고위급 학자인 아미르 알-사디(Al-Saadi) 장군. 알-사디는 미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곧 CIA 정보원들을 유엔무기사찰단에 합류시켜 사찰단원들에게 미국이 갖고 있다는 증거를 현장에서 제시하라"며 "이라크는 미국 정보원들을 환영한다"고 비꼬았다.
알-사디는 또 미국이 구체적으로 이라크를 비판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먼저 그는 이라크를 대량살상무기 은닉국가로 지목하고 몰아세우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미국과 영국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어 이라크가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우라늄을 나이지리아로부터 수입했다는 지적에 대해 "그것은 우라늄이 아니다"며 "그것은 산화우라늄"이라고 주장했다(하지만 산화우라늄도 무기제조에 사용된다).
알-사디는 또 지난 91년 제1차 걸프전 이후 유엔의 이라크 무기사찰단장이었던 리차드 버틀러가 '이라크가 맹독성 VX가스 생산을 시도중이라며 증거를 찾아 나선 것'에 대해서도 "그것은 1990년 4월의 일로 시도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후로는 다시는 그러한 시도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미국은 후세인이 그같은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이라크의 선제공격에 이번엔 미국 백악관이 반격하고 나섰다. 백악관 관계자는 영국 BBC 방송을 통해 "이라크 제안을 거절한다"며 "이라크가 어떤 대량살상무기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를 제시할 책임은 후세인에게 있지 미국에 있는 것이 아니다"고 되받아쳤다.
세계가 원하는 것은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다면 증거책임을 이라크에 떠넘길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 명백하게 공개해 그 위험성에 대한 공감을 사는 것이다. 말만 앞세우고 있는 미국과 영국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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