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자 확정을 지켜본 뒤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메일을 확인해 보니 파리에서 클레망텡 교수의 쪽지가 와 있다. “좋지(glad)?" 하는 제목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이 말에 조금 전 들은 당선자의 "그냥 참 좋습니다~“ 하던 말이 떠올랐다.
누가 당선되기 바라는지 이야기한 적도 없는 것 같지만, 80년대 초 한국에서 몇 해 지낸 적이 있는 그는 내가 얼마나 정치를 재미없어 하는지 안다. 한국 정치가 얼마나 재미없는 것인지도 안다. 그래서 모처럼 재미있는 방향이 열린 것을 기뻐하고 축하해 주는 것이다.
그곳 라디오에서 노 후보의 당선 확정을 보도하며 당선자의 특징 두 가지를 소개했다고 한다. “체수가 작지만 선이 굵은 풍모”와 “미국 안 가 본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중 후자는 프랑스에서도 널리 통할 만한 자랑거리라고 덧붙였다.
“반미(反美)면 또 어떠냐?” 이번 선거에서 정책대결의 양상 중 한 중요한 방면을 상징한 말이다. 정몽준 씨의 이탈 핑계도 우방 미국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내세운 것이었다. 상식을 초월하는, 신앙 수준의 이런 절대적 신뢰가 그런 장면에서 핑계거리로 나올 수 있었던 데서 대한민국 반세기 역사가 이 우방관계에 어떻게 묶여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볼 수 있다.
미국과의 관계를 상식의 차원에 갖다놓는 것은 새 대통령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과제다. 그 길이 모처럼 열린 것을 멀리서 구경하는 프랑스 친구도 그래서 축하해 주는 것이다. 부시 정권의 초강경 패권주의가 이런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구경꾼은 더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구경꾼이야 재미있겠지만 당사자로서는 여러 모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외교-군사 등 대외관계만이 아니라 국내 경제구조에서 지식층의 사고방식, 대중의 소비패턴까지 깊이 미국화되어 있는 이 나라가 아닌가. 미국 중심 체제에서 실제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변화가 닥치면 일부 친미주의 세력이 문제가 아니라 온 국민이 상당한 고통과 불안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우산 속에 영원히 안주할 수는 없다. 미국 자신이 한국을 자기네 우산 속에 길이길이 안주시킬 동기를 잃는 쪽으로 여건이 바뀌고 있다. 한국 방향, 동북아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어떻게 바뀌는지 이해하고 국제사회 속에서 한국의 새로운 위치를 찾아 나서야 할 때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불안하더라도.
미국 우파는 중국을 21세기의 스파링 파트너로 점찍고 있다. 대결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패권주의 세력에게 ‘악의 축’으로 찍힌 조무래기 나라들은 성에 안 찬다. 한두 차례는 몰라도 체급이 너무 틀리는 상대만 계속 데리고 놀아서는 국민에게 흥행이 안 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돈 많이 들이는 사업인 미사일 방어망도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경제경쟁의 측면에서는 중국이 과거 소련과 비교도 안 되게 벅찬 상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 군사분야로 경쟁의 주무대를 옮기는 것이 미국 우파의 바라는 바다. 군비 수준을 높여야 인적 자원보다 물적 자원의 중요성이 큰, 미국이 유리한 싸움터로 중국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비용이 많이 들고 평화를 위협하는 패권주의 정책이 정상적 상황에서는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 힘들다. 뭔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어줄 꼬투리가 필요하다. 과거 소련은 폐쇄된 체제로 이런 꼬투리를 오랫동안 잘 만들어줬다. 그런데 중국의 개방 추세로 인해 꼬투리 잡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지나면 미국 국민에게 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슬람 지역을 둘러싼 테러전쟁에 편승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서둘러 규정하고 북한의 개방을 최대한 방해하며 극한적 대립으로 북한을 몰아가는 부시 정권의 압박정책도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오랜 맹방 북한을 집적거리며 중국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는 것이다. 중국이 발끈해서 삿대질하고 나오면 당장 중국을 소련을 잇는 주적(主敵)으로 규정한다. 중국이 참고 있으면 중국 옆구리에 시한폭탄을 계속 키운다.
부시 정권이 바라는 한국의 역할은 북한 압박정책에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는 것은 전혀 부시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쟤 나쁜 애래요, 쟤 좀 혼내 주세요” 하고 고자질할 것을 바란다. 이런 부시의 소망을 김대중 정부가 속시원하게 들어주지 않았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며 화물선을 나포하는 난리까지 벌였을까.
대한민국은 반세기 가까이 소련과의 대결에서 미국의 첨병 노릇을 했다. 그리고 이제 중국과의 대결에서 또 하나의 역할을 부탁받고 있다. 생산성을 추구하는 경제적 대결 속에서 선의의 경쟁에 끼어드는 역할이라면 우리 국익에 부합할지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군사적 대결 속에서 대립과 위험을 늘리는 역할이라면 할 만큼 하지 않았는가.
경제적 이유로는 한국을 위성국가로 더 이상 묶어놓을 동기가 미국에게 없다. 군사적 동기가 있을 뿐이다. 6·25 후 수십 년간 ‘전쟁의 나라’로만 외국에 알려졌던 한국이 지금은 ‘번영의 나라’로 더 널리 알려졌다. 군사적 중요성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경제적 중요성을 가진 나라로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미국과의 특수한 관계를 벗어나 같은 지역 안의 ‘진짜 이웃’들과의 관계에 관심을 집중하고 능동적 역할을 찾아야 한다.
어버이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은 어린 대한민국에게 우방이 아니라 어버이 노릇을 했다. 낳아주고 지켜주고 먹여주고 입혀줬다. 친구와 애인, 전공과 직업까지 정해줬다. 그리고 말만 잘 들으면 계속해서 슬하에 두고 싶어한다.
그 무릎을 떠나면 힘들고 괴롭고 불안한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만큼 덩치도 크고 생각도 자란 이제 떠나야 한다. 우리 일은 우리가 결정해 나가면서 힘닿는 대로 그 동안의 은공을 갚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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