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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패러다임의 변화 못읽으면 시장에서 도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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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패러다임의 변화 못읽으면 시장에서 도태된다”

서영석의 '삐딱하게 본 정치' <53>조갑제와 조선일보, 그리고 이후보의 비극

이번 대통령선거전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이 네거티브적인 공세를 퍼부으면 여기에 대해 포지티브적으로 노무현 후보가 대응하는 그런 양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또한 과거 대통령선거전에서는 네거티브적 캠페인이 먹혀들었던 데 반해 이번 대선전에서는 오히려 수세적인 포지티브가 공세적인 네가티브를 전반적으로 누르는 양상을 보였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으로 꼽을 수 있겠다.

확실히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시종일관 상대방을 흠집내고 매도하는 네거티브적 선거운동을 펼쳤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포지티브적 선거운동을 펼쳤다.

선거전 종반에 접어들면서 더욱 흥미있는 대목으로는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의 아이디어가 우리나라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우익논객인 조갑제씨의 홈페이지에서 제안된 것과 동일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서울천도론으로 매도하면서 집값폭락, 경제붕괴론으로 연결시킬 것을 주문한 이는 다름아닌 조갑제씨며, 노무현 후보의 장인 부역전력을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좌우색깔논쟁으로 선거종반을 몰고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조갑제씨고, 용돈으로 위협을 해서라도 자녀들을 설득해 노무현후보를 찍지 말고 이회창후보를 찍도록 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이도 조갑제씨다.

물론 이념적으로 같은 진영의 논객이 제안한 아이디어가 같은 진영의 정당에 채택되는 일이 아주 희귀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선거종반을 광풍처럼 몰아치고 있는 중요한 이슈들이 오로지 한 우익 논객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흥미진진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아이디어는 보수우익정당에서 채택됐고, 그러한 캠페인은 다시 조선일보에 의해 확대재생산되는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선거일을 이틀 앞둔 17일자 신문에서 조선일보는 우선 외부기고 칼럼을 동원해 조갑제씨가 제안한 자녀설득론을 증폭시키려 애쓰고 있다. ‘딸에게’란 제목의 칼럼에서 명시적으로 소위 부모세대가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인지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그 칼럼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이회창후보라는 점을 잘 알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칼럼의 필자는 “유권자인 우리는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그분들의 생각에 찍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이러한 권유는 살날 얼마 남지 않은 부모세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젊은 세대들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또한 마지막 TV토론이 끝난 이후 유권자들의 선택만 남았다는 요지의 사설을 통해 이번 TV토론의 유일한 수확이라면 “교육과 의료, 국민연금 등 사회복지분야에서 김대중 정권의 실정(失政)이 분명히 드러났다는 점”이라고 지적하고,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을 한단계 향상시킬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며 이회창 후보 지지를 권유하고 있다.

선거전 이후 공표금지된 여론조사의 추이가 어떠했는지는 언론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조갑제씨의 네거티브적 아이디어를 채택한 한나라당과 이회창후보, 그리고 이것을 확대재생산한 조선일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단 한번도 노무현 후보를 이기지 못했으며, 그러한 열세는 지금 이 시간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이같은 네가티브적인 아젠다의 확산을 통한 유권자 설득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릴 시점은 된 것 같아 보인다.

왜 실패했는가. 나라의 힘이 90% 이상 몰려 있는 거대정당의 대통령후보가, 또한 여론의 90% 쯤은 독점하고 있는 막강한 보수언론사들의 후원에도 불구하고 왜 실패해야만 했는가. 그것은 변화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정서와 이를 바탕으로 근본적인 변혁으로 나아가고 있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시대적이고 퇴영적인, 흑백논리식 접근방법으로 대통령선거전에 이들이 임하면서 패배는 예정된 일이었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옳지 않은 주의주장을 막강한 독점력을 동원해 마치 옳은 것처럼 포장할 수 있다고 그들이 믿는 한, 내가 선(善)이며 나 아닌 모두가 악(惡)이란 식의 힘의 흑백논리를 버리지 않는 한, 그들의 패배는 예정된 수순이며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변화하고 있는 정치 패러다임과 개혁을 열망하는 젊은 세대들의 열망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며, 사회 전반의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이번 대통령선거전에서 그러한 열망은 인터넷이란 신기술과 결합돼 이미 단초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를 부인하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다. 바뀌지 않은 틀을 고집하는 권위에 대한 저항이며, 과거와 달리 탄력성과 유연성을 지닌 새로운 권위를 향한 물결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지 않고 과거회귀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조갑제씨와 조선일보, 그리고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의 비극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론조사로만 보면 이회창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현재 낮은 것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설혹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선거전에서 이겨 당선된다손 치더라도 여전히 유효한 논리라고 필자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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