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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보고 있다

[전태일통신 39] '우스운 아저씨'가 되지 않으려면…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에게 도덕 교육을 하기에 앞서 어른들이 행동을 올바르게 하면 도덕 교육 같은 것은 안 해도 어른들을 본받아 다 옳은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 보는 앞에서는 온갖 그릇된 행동을 해놓고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저렇게 행동해야 한다며 가르치고 있다. 생각하면 참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선생이지만 아이들 앞에서 실수도 많이 하고 잘못도 더러 저지른다. 실수도 잘못도 저지르지 말아야 하는데 잘 안 되고 있다. 그렇지만 내게도 한 가지 좋은 점은 있다. 아이들이 내 잘못을 지적하면 "그래? 아하 네 말이 맞구나! 내가 잘못했다.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미안해." 하며 그 자리에서 사과를 하는 점이다. 그리고 정말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반 아이들은 언제나 나한테 따지기를 잘 한다.
  
  "선생님은 상스런 말 쓰지 마라 했잖아요. 그런데 왜 '이 자슥들 말 안 듣나!' 이런 말은 왜 합니까?"
  "선생님, 실내화 신고 밖에 나가지 마라 해놓고 선생님은 왜 슬리퍼 신고 운동장까지 나갑니까?"
  "선생님, 우리 학급에는 학급규칙이 안 있습니까? 그러니까 규칙을 어겼을 때 주는 벌도 정한 벌칙에 따라 줘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왜 화만 나면 벌칙에도 없는 벌을 줍니까?"
  
  이럴 때 보통 어른들 같으면 어떻게 할까? "어린 놈이 뭘 안다고 그래!", "이 녀석 버릇 없이 어른한테 대들어?" 이러며 누르고 말겠지.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냥 어리다고만 생각한다. 사물을 보는 눈이 모자란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 보는 앞에서 그릇된 행동을 하는 일이 예사다. 어른처럼 완전하지 못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아이들도 나름대로 사물을 보는 눈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는 눈도 나름대로 깨어 있다.
  
  슈퍼 아저씨
  
  박원우(초등학교 5학년)
  
  과자를 살 때마다
  아저씨가 자꾸
  짜증을 낸다.
  
  "시간 없다!
  빨리 사라!"
  시간 있으면서
  괜히 짜증을 낸다.

  
  어른들이 물건 살 때도 이것 살까 저것 살까 여러 번 망설인 끝에야 겨우 하나를 골라 산다. 산 물건을 집에 가지고 와서도 못마땅하면 다시 가서 바꾸어 온다.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반품을 한다. 아이들은 더 그럴 것 아니겠나. 이것저것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많은 게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다 가질 수 없으니 어느 것을 고를까 망설이며 쥐었다 놓았다 할 수밖에 없지.
  
  그런데 동네 슈퍼마켓의 아저씨는 그런 아이에게 짜증을 내면서 "시간 없다! 빨리 사라!" 소리친다. 그 때 아이는 겁이 나 얼른 아무 거나 골라 나올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은 과자를 골라 왔을 때 아이는 얼마나 속상하겠는지 어른들은 알까?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일을 대부분 당해 보았다고 한다. 그와 관련된 한 아이의 쪽지 글을 보니 이렇다.
  
  며칠 전에 내 동생과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이 과자를 사오기로 했다. 내가 졌기 때문에 슈퍼에 갔다. 무슨 과자를 고를까, 하면서 한참을 고르니까 주인 아저씨가
  
  "야 임마, 빨리 안 고르나, 바빠 죽겠는데. 새끼 마!"
  
  이렇게 말해서 혼날까봐 되는 대로 빨리 골라 집에 왔다. 집에 와서 보니 맛없는 것밖에 못 골랐다. 가만히 생각하니 아저씨가 짜증나고 욕도 하고 싶고 때리고 발로 차고 싶은 마음이다. 아저씨 입을 꼬집어주고 싶고 그 아저씨를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다시는 그 슈퍼에 뭘 사러가지 않을 것이다.
  
  앞의 시에서도 아이는 '시간 있으면서 / 괜히 짜증을 낸다.' 이렇게 불만을 나타냈다. 아이는 투덜거리는 소리로 나타냈지만 그 속에 슈퍼 아저씨에 대한 강한 비판이 들어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과자 고르기가 쉽지 않지? 찬찬히 살펴보고 골라야 네 입에 맞는 과자를 고를 거야." 이러면서 어떤 과자는 어떤 맛이 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 좀 좋을까.
  
  못생긴 아저씨
  
  박수정(초등학교 5학년)
  
  우리 집 앞 길가
  못생긴 아저씨
  건들건들 서서
  담배 물고 있는 아저씨
  담배 연기 맛있다고
  쭈욱 들이키고
  하늘로 푸우우!
  두리번두리번
  눈치를 살피다
  담배꽁초를 싹싹 밟아버리고
  "난 아무 짓 안 했소!"
  하면서 간다.
  
  못생긴 아저씨!

  
  자가용을 운전해 가다 보면 앞 차 운전자가 담배를 피우다가 차창 밖으로 손을 내어 재를 탈탈 터는 모습을 흔히 본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길이 재떨이인 셈이다. 그래도 그건 별 일도 아니다. 붉은 신호에 차가 죽 늘어서 있는데 깨끗한 아스팔트길에 담배꽁초를 튕겨버리는 모습도 흔히 본다. 그 사람이 타고 있는 차를 보면 대체로 고급차다. 또 대체로 젊은 사람이다. 머리에다 무스를 발라 반질반질하다. (내가 본 모습이 그렇다는 것이지 모두 젊은 사람이란 말은 아니란 걸 알아주기 바란다.) 그냥 담배꽁초만 버리고 가면 또 덜하겠는데 가래침까지 뱉어버린다. 정말 의식 없는 행동이다.
  
  어른들이 많이 모이는 곳(바깥)에는 언제나 담배꽁초가 많이 버려져 있다. 쓰레기통 주위에도 담배꽁초가 즐비하게 버려져 있다. 쓰레기통이 있어도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다. 또 앞글에 나타나 있는 어른의 모습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도 담배꽁초를 마구 버린다.
  
  아이는 어른이 담배꽁초를 밟아버리고도 "나는 아무 짓 안 했소!" 하며 간다고 했다. 그런 어른을 보고 '못생긴 아저씨!' 하고 말했다. 정말 못생긴 아저씨다.
  
  쓰레기와 할아버지
  
  김대윤(초등학교 3학년)
  
  우리 집은 운문사 앞
  운문사 앞 야영장에
  쓰레기 주우러 갔다.
  모자 쓴 할아버지
  차에서 쓰레기 세 뭉치를 가지고 강가로 간다.
  강에 굴린다.
  그 할아버지 나를 본다.
  "저리 가라! 뭐 보노!"
  나는 신경질이 나서
  가는 척하다가 나무 뒤에서 지켜봤다.
  할아버지는 내가 갔나,
  두리번두리번
  눈이 헤딱헤딱
  쓰레기봉투를 다시 굴린다!
  돌에 걸려 터졌다.
  할아버지는 "와 또 터지노!"
  한 뭉치를 굴려가다 강물에 풍덩!
  마지막 한 뭉치는 풀숲에 살짝 버린다.
  내가 잘 아는 마을 할아버지가 왔다.
  "니 뭐 하노?".
  "저 할아버지가 쓰레기 버렸어요."
  쓰레기 버린 할아버지는 언제 들었는지
  "아닙니데이! 지는 안 그랬습니더!"
  그만 달리 뺀다.
  아무 데나 쓰레기 버리는 그 할아버지
  웃기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쓰레기를 차에서 내려 몰래 버리는 모습이다. 아이는 쓰레기를 주우러 가는데 할아버지는 몰래 버린다. 아이를 보고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저리 가라! 뭐 보노!" 이렇게 나무란다. 아이는 아무 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마을 할아버지가 와서 아이가 말하니까 "아닙니데이! 지는 안 그랬습니더!" 하며 그만 달아나버리고 만다. 아이는 그 할아버지를 '웃기는 할아버지'라고 했다.
  
  쓰레기 버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참 재미있다. '두리번두리번 / 눈이 헤딱헤딱' 이 모습을 보고 부끄러운 마음 안 가지면 온전한 정신 가지고 있는 어른이라 할 수 없다.
  
  어떤 운전기사 아저씨
  
  김은정(초등학교 6학년)
  
  문구점 앞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끼이익'
  "아휴우, 깜짝이야!"
  놀라서 멍하니 있으니까
  운전기사 아저씨
  "너 차 오는 것 몰라?
  몇 학년이야?
  겁도 없이!"
  "피이, 신호등 불이
  녹색으로 바뀌었는데
  차가 멈춰야지."
  유치원 아이도 다 아는
  녹색 신호등을
  아저씨는 모르는가 보네.

  
  새벽에 운동을 나가보면 신호등 지키는 차가 드물다. 붉은 신호등에도 마구 지나가는 차가 대부분이다. 길 건너는 사람이 조심을 하지 않으면 큰 사고가 일어나고 말 것 같다.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정말 두렵다. 최고 시속 100Km로 달려야 하는 길에서 시속 120Km에서 130Km로 달리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마치 꽁지에 불 붙여놓은 것 같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모르겠다. 단속 카메라에 안 찍히면 법을 어긴 게 아닌 것이다. 잘못된 것이 옳은 것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 앞에서까지 어른이 하는 짓을 보라. 녹색 신호등에 아이가 길을 건너가려는데 차를 마구 몰고 오다 갑자기 멈추었다. 하마터면 아이를 칠 뻔했으면서도 오히려 "너 차 오는 것 몰라? / 몇 학년이야? / 겁도 없이!" 이렇게 큰소리친다. 그 큰소리로 어른의 권위를 세워보려고 하는데, 참 눈물이 날 지경이다. 어른의 권위가 땅에 쿵 떨어져 끙끙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의 말을 들어보아라. '유치원 아이도 다 아는 / 녹색 신호등을 / 아저씨는 모르는가 보네.' 의식 있는 어른이라면 낯 뜨거워 해야 할 말이다. 또 이런 운전기사도 있는가 보다.
  
  어떤 버스 운전사
  
  소미령(초등학교 6학년)
  
  아주머니들이 타면
  부드럽게
  "얼른 타이소." 하다가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느릿느릿 올라타면
  짜증을 내면서
  "빨리 타소!" 한다.

  
  이번엔 버스 안의 모습을 한 번 보자.
  
  버스 안
  
  소미령(초등학교 6학년)
  
  버스를 타면
  앉은 사람도 있고
  서 있는 사람도 있다.
  "잠깐만요!"
  아기 업은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올라탔다.
  앉아 있는 사람들,
  아가씨는 갑자기 무슨 일이 있는 듯
  창밖을 내다보네.
  눈이 말똥말똥하던 아저씨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졸고 있네.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할까?
  눈을 지그시 감고 있네.
  신문을 열심히 보는 사람도 있네.

  
  버스 안의 모습 가운데 이런 모습만 가려 보여준 시지만 참 그렇구나, 싶다. 누구라도 이런 경험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좀 편안하게 앉아 가려고 하는데 나이 많은 어른이나, 아주머니가 어린 아기를 데리고 타면 서로 앞에 있는 사람이 자리를 양보해 주겠지, 그 사람 옆에 있는 사람이 양보해 주겠지, 생각하며 그냥 앉아 버티기를 하지. 그러다 자기 옆에 오면 속으로 투덜대며 할 수 없이 자리를 양보해 주기도 하고 말이다. 또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옆에 안 왔으면 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옆에 서 있어도 끝까지 버티는 사람도 많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조는 체하면서 말이다. 또 눈을 지그시 감고 무엇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체하기도 하고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열심히 읽는 체하면서 말이다. 정말 우습다.
  
  가끔은 이런 나이 많은 어른도 있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대뜸 "요즘 젊은 것들은 어른을 몰라봐. 어른이 차에 타면 냉큼 일어설 것이지 어디 그렇게 앉아 있어!" 이런 어른들은 어른 대접 받을 자격이 없다.
  
  고급
  
  한진숙(초등학교 6학년)
  
  편히 자고 편히 쉬면 되는 집이
  왜 몇 십억씩이나 되나요?
  외제 고급 침대와 고급 소파에서는
  고급 잠을 자나요?
  음식도 고급 음식점에서
  포크와 나이프로 먹으면
  고급 살이 찌나요?
  똥도 고급 똥을 누는가요?
  그런 사람들은
  땀, 때도 모두 고급인가요?

  
  돈 많은 사람들이 제 돈으로 고급 집에 살든 고급 옷을 사 입든 고급 음식을 먹든 상관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해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때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더구나 아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허영심에 사로잡히거나 위화감을 가지게 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돈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모습이 조금이라도 비치면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적대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더 큰 문제가 되지.
  
  그래도 앞의 글에서처럼 잘못된 모습을 비판하며 허영심에 빠지지 않고 위화감 가지지 않고 살아가려는 어른이 있고, 또 그런 아이들이 있어 지금 사회가 이 정도로라도 굴러가고 있고 미래도 어둡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앞에 보인 아이들의 시들을 보면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고, 아직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아이들 앞에서 부끄럼 없이 그릇된 행동을 하는 어른들은 제 정신 차려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눈이 어리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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