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선을 불과 8일 앞두고 스커드미사일 10여기를 선적한 '북한 화물선'이 인도양 공해상에서 미국과 스페인 등의 무력에 의해 나포되는 사건이 발생, 대선 판도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장 한나라당에서는 성명을 발표, "마구 퍼주기식 대북지원의 결과가 핵개발과 대량살상 무기 제조로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국가의 안위보다는 정권연장에만 혈안인 급진과격 불안세력에게 어떻게 국가의 안보를 맡길 수 있겠느냐"라며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공격했다.
이에 대해 노무현 후보는 북한 화물선 나포 보도가 나온 지 2시간만에 "북한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미사일 수출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하면서 "미국도 북한과의 대화를 조속히 재개해 미사일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리와 함께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미국 주도에 의한 북한 화물선 나포가 즉각 한국대선의 주요한 변수로 등장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한국 대선판도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보기 전에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왜 이 시점에 미국이 무력을 동원,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저지하려 했느냐 하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첫째, 북한의 미사일 수출이 그들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확산과 관련해 새로운 사태전개인가 하는 점이다. 둘째,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금지시킬 수 있는 근거(국제법, 또는 양자간 합의)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셋째, 미국이 공해상에서 다른 나라의 선박을 무력으로 나포할 법적 근거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첫번째 질문과 관련, 북한의 미사일 수출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공산권이 무너진 90년대 이후 미사일은 북한 최대 수출품으로 자리잡았다. 중국ㆍ소련의 식량 및 에너지 지원이 격감하면서 북한은 주로 중동지역에 대한 미사일 수출로 달러를 벌어들여 식량ㆍ에너지 수입에 충당했다. 그 규모는 대략 연간 5억-10억달러로 추정돼 왔다. 일례로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추계에 따르면 지난 87년 북한의 미사일 수출 규모는 약 5억2천만달러에 달한다.
따라서 북한의 미사일 수출은, 지난 10월 북한이 미국측에 시인했다는 '우라늄농축' 프로그램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또 한나라당 주장대로 현 정부의 '대북 퍼주기'가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부추긴 것도 아니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합의를 통해 미국과 '핵없는 한반도'라는 원칙에 동의한 바 있다. 따라서 우라늄농축 계획은 이같은 제네바합의 정신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사일수출에 관해서 미국이 문제삼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여태까지 방치해 왔던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이제 와서 문제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북한의 미사일 확산은 세계평화와 관련해 분명 문제가 있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전임 클린턴행정부는 북한과의 제네바합의 타결 이후 북한과 미사일협상을 벌였으며 클린턴행정부 말기인 지난 2000년 거의 타결 직전에 이르렀었다. 그러나 최종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부시행정부가 들어섰고 그 이후 현재까지 미사일협상은 중단 상태에 있다.
두번째, 미사일의 대외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근거로 이른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란 것이 있다. MTCR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 7개국이 대량살상무기 운반수단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거리 300km, 탄두중량 500kg 이상의 미사일과 관련 부품 기술에 대해 제3국 수출과 국가간 이전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출범시킨 국제체제이다. 지난 93년부터는 대량살상무기의 운반 가능성이 있는 미사일에 대해서는 사거리와 무관하게 일정한 통제를 가하는 하부지침을 채택, 그 적용범위를 넓힌 바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3월 MTCR에 가입했으나 북한은 아직 가입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MTCR을 근거로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막을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앞에 말한 대로 미 클린턴행정부는 90년대말 북한과 진지하게 미사일협상을 벌였었다. 당시 북한측은 미사일이 자신들의 최대 외화벌이 수단임을 내세워 미사일 수출중단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의 경제지원을 요구했다. 당초 북한은 연간 10억달러의 현금지원을 요구했다가 미국이 난색을 표명하자 3년간 매년 10억달러에 해당되는 석탄, 곡물 등의 지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2000년 말 북미간의 미사일협상은 최종 타결 단계에 이르러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매듭지을 예정이었으나 미 대선에서 공화당 부시 후보가 선거 부정 논란 끝에 당선이 확정되면서 클린턴 방북은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북미간 미사일협상의 쟁점은 5가지였다고 한다. 첫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즉 대포동 미사일)의 시험개발 중단, 둘째 일본을 사거리 안에 둔 중거리미사일(노동 미사일)의 폐기, 셋째 단거리 미사일(스커드)의 수출 중단, 넷째 북미간 미사일협정 체결, 다섯째 위 4가지 사항에 대한 검증 등이 그것이다. 네번째 쟁점과 관련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MTCR의 규정대로 사거리 300km 이하로 제한할 것을 요구한 반면 북한은 사거리 500km를 주장했다고 한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2003년 이후에도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할 것이라고 밝혀 첫번째 쟁점은 일단 해소된 상태다. 그리고 나머지 4가지 쟁점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물론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및 수출을 협상이 아닌 무력에 의해 해소하겠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지닌 미국이 무력을 동원하겠다고 할 경우, 국제법 등을 들어 이를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막을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의 이번 행위는 오래전부터 워싱턴정가에서 얘기돼 왔던 방안 중의 하나다. 이른바 '아미티지 보고서'가 그것이다. 현재 미 국무부 부장관을 맡고 있는 아미티지는 수년전 발표된 '아미티지 보고서'를 통해 협상을 통한 북한 대량살상무기 문제 해결이 불가능해질 경우 미사일 등을 수출하는 북한 선박을 공해상에서 나포해 미사일을 압수하자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이번 사건은 아미티지의 이같은 제안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미국은 협상을 통한 북한 대량살상무기 문제 해결을 포기한 것인가. 부시행정부의 태도 변화 여부는 앞으로 미국정부의 공식 발표 등을 보아야 할 것이다. 부시행정부가 정말로 북한과의 협상을 포기한 것이라면 앞으로 한반도의 위기상황은 급격하게 고조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미국은 미사일수출보다도 훨씬 심각한 문제인 북한의 '우라늄농축'이 밝혀진 이후에도 줄곧 '평화적 방법에 의한 사태해결'을 밝혀 왔다. 아직까지 이런 태도에 변화가 있다는 조짐은 없다. 그런 미국이 이미 십수년 넘게 이루어져 온 북한의 미사일 수출에 무력을 동원한 저의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참고로 대외 무기수출에 관한한 북한은 미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지료에 따르면 미국의 대외무기 수출은 90년대 내내 연간 2백억 달러를 웃돌았다. 97년의 경우 2백82억 달러, 99년에는 2백62억 달러나 됐다. 반면 북한의 미사일 수출은 90년대 후반 이후 급격히 줄어들어 1억 달러가 채 안 된다. 미 CSIS 추계에 따르면 95년 6천2백만달러, 97년 7천만 달러 정도다. 또 한국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97년에서 2000년까지 연간 6천만 달러 규모에 불과하다.
북한의 수백배에 달하는 무기를 해외에 팔고 있는 미국이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문제삼을 수 있는 것인지 그 또한 궁금한 일이다.
세번째 문제와 관련,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정부의 한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미국이 공해상에서 항해하는 타국의 화물선을 나포할 권리가 없고 비회원국인 북한에 MTCR 조항을 적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서 "미국이 나포와 관련해 어떤 근거를 내세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문제삼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국제법상으로도 그렇고 북미간 양자간에도 미사일 수출 중단을 합의한 바 없다. 그런데 미국은 무력을 동원해 공해상을 항해하는 북한 화물선을 나포했다. 이런 행위가 과연 국제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 것인가. 딱 한가지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있다.
이 화물선에 실린 미사일이 이라크로 향하는 경우이다. 조만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고 이라크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므로 이라크에 전달된 북한의 미사일은 이스라엘 등 주변의 미 동맹국 공격에 쓰일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미사일들이 이라크로 향하는 것이라면 이라크의 전쟁능력 확대를 막기 위해서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이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는 미국의 '충정'을 국제사회가 인정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 당국자들조차도 이 화물선이 이라크로 향했던 것은 아닌 것같다고 말하고 있다. 예멘이 최종 목적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미국은 무슨 이유로, 하필 이 시점에, 무력을 동원하면서까지, 북한이 십수년간 행해온 미사일 수출을 막으려 했던 것일까. 도통 모를 일이다.
때마침 '아미티지 보고서'의 작성자인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중국으로 떠났다. 그가 김대중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는지 이 또한 궁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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