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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善說보다 더 짙은 性惡說의 인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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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善說보다 더 짙은 性惡說의 인간주의

신영복 고전강독<131> 제11강 순자(荀子)-8

蓬生麻中不扶而直 白沙在涅與之俱黑(勸學)

이 구절은 순자의 교육론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 구절입니다.

“쑥이 삼 속에서 자라면 부축하지 않아도 곧게 되고 흰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함께 검어지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이야기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교육에 있어서 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자’의 이 구절은 일반적 교육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제도와 규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순자가 맹자에 비하여 인간에 대하여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순자는 예(禮) 즉 제도의 의미를 높게 평가함으로써 오히려 맹자에 비하여 문화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순자의 인문사상이며 발전사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가가 치인(治人)에 앞서서 수기(修己)를 요구합니다. 이 경우의 치인(治人)이 순자의 체계에서는 예(禮)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순자는 수기(修己)보다는 치인(治人)을 앞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수양에 앞서 제도의 합리성과 사회적 정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도덕성은 선천적인 것도 아니며 개인의 수양의 결과물도 아니며 오로지 사회적 산물인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순자는 개량주의적이기보다는 개혁주의적입니다. 훌륭한 규범과 제도가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도덕성의 근원을 인간의 본성에서 찾는 맹자가 주정주의(主情主義)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사회제도에서 찾는 순자는 주지주의(主知主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순자의 이와 같은 진보적이고 신선한 관점이 매우 놀라우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논의와 비교해 보더라도 그 선도(鮮度)가 떨어지는 점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충격인 것은 그에게 일관되고 있는 것이 인간에 대한 신뢰라는 사실입니다. 순자를 성악설의 주창자로서만 알고 있던 우리들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울 정도의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보다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에게서 훨씬 더 짙은 인간주의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순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인도(人道)와 인심(人心)입니다. 천도(天道)와 천심(天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순자의 도는 천지의 도(天地之道)가 아니라 사람의 도(人之所道)일 뿐입니다. 순자의 이론에서는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그는 성인(聖人)이라면 하늘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군자는 자기의 내부에 있는 것을 공경할 뿐이며, 하늘에 있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순자의 이와 같은 인간주의와 인본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인간주의 인본주의가 감상적으로 피력되지 않고 냉정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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