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국민통합 21은 28일 심야협상을 갖고 오는 2004년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공동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양당은 이어 29일 오전 정책 및 선거공조협의회를 열어 합의문을 교환한 뒤 오후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가 만나 공동선대위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대선공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25일 후보단일화후 나흘간 끌어온 개헌갈등의 타결이다.
***'분권형'이냐 '분권적'이냐**
민주당 임채정 정책본부장과 통합 21 전성철 정책위의장은 28일 밤 시내 모처에서 비공개 협상단장 모임을 갖고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전성철 의장은 모임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 임 본부장과 오는 2004년 17대 국회 개원 이후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발의, 추진한다는 데 사실상 합의했다"며 "이로써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논란은 매듭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전 의장은 이어 "쟁점이었던 개헌시기와 분권형 대통령제의 개념에는 의견접근이 이뤄졌으나 구체적 표현방법의 차이가 남아 있으나 이는 해결불가능한 것이 아니다"며 "29일 오전중 정책공조협의회가 다시 열린 뒤 노. 정 회담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양당은 28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정책공조협의회를 열어 2004년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을 추진한다는 데 합의했으나 '분권형'이란 용어를 놓고 양당의 입장이 엇갈려 합의문을 채택하지 못했다.
정몽준 대표는 17대 총선이 치러지는 2004년에 맞춰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외치(국방,외교,통일)와 내치(경제,사회,문화)를 나눠 맡되 각각 통할하는 분야의 각료 임면권을 분담하는 내용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제안한 바 있다.
민주당은 이에 반해 이원집정부제적 성격이 강한 '분권형'이란 표현 대신, 보다 포괄적이며 탄력적 개념인 '분권적'이란 표현을 합의문에 담기를 희망하고 있다. 노무현 대표는 28일 이와 관련, "이원집정부제는 너무 구속적"이라며 "지나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분권형 대통령제는 내각책임제, 제가 말한 책임총리제, 정 대표가 말하는 이원집정부제가 포함된 것으로 모든 것을 논의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었다.
민주당은 이같은 원칙에 입각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2004년 총선때까지 일단 책임총리제를 실시한 뒤 여론을 수렴해 총선후 분권적 대통령제 개헌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국민통합21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29일 작성될 합의문에는 2004년 발의한 개헌안의 성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을 전제로 '분권적'이란 표현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정몽준, JP도 반이회창 전선에 합류시킬 생각**
양당은 이밖에 분권형 개헌에 자민련을 참여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도 이견을 보였으나, 자민련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국민통합21측 주장에 민주당이 일정 부분 양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민련은 분권형 개헌을 자당의 당론인 내각제 개헌의 전단계로 보고 이에 적극 동조하는 입장을 보여왔으며, 국민통합 21과도 개헌과 관련 상당 수준의 사전협의를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몽준 대표는 28일 자민련과의 공조와 관련,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그동안 나를 도와주려 하셨는데 내가 제대로 못해 그분이 어려워진 데 대해 인간적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조만간 김총재를 만나 뵙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노무현-정몽준 회동이 성사된 뒤 그 성과를 바탕으로 정몽준 대표가 금명간 김종필 자민련총재와 회동, 개헌문제를 비롯해 이번 대선에서 자민련과 공조하는 방안까지 협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돼 귀추가 주목된다.
그동안 한나라당의 의원 빼가기로 공중분해 위기에 몰렸던 자민련은 앞으로 국민통합 21과의 합당까지 전제로 이번 대선에서 자신의 토대인 충청권에서 '반(反)이회창 전선'을 구축하는 데 동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순망치한**
지난 25일 노무현-정몽준 회동후 나흘간 진통을 겪은 끝에 양측이 어렵게 개헌에 합의한 배경과 관련, 정치권에서는 그 근원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서 찾고 있다. 두 사람이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릴 수밖에 없는 절대적 상호의존 관계에 있는만큼 서로가 일정 부분 양보하면서 공조체제를 복원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선 당장 급한 쪽은 대선을 20일 코앞에 두고 있는 노무현 후보다. 후보단일화 직후 '단풍(單風)'에 힘입어 이회창 후보를 7~9%포인트 앞질렀던 지지율이 개헌진통이 시작되면서 3~5%포인트 차로 좁혀지는 위축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다가 반드시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적극투표층'의 지지율은 이회창 후보와 거의 차이없는 팽팽한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장 심각한 대목은 '당선 가능성' 부분이다. 이 부분에 이르러선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를 더블포인트로 크게 앞서고 있다. 노후보의 '불안정성'이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같은 불안정성을 안정성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선 정몽준 대표의 지원사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게 민주당의 판단이다. 정대표는 여러 모로 노후보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몽준의 3대 파괴력**
우선 첫번째 강점은, 25일 여론조사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 다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줌과 동시에 '포스트 3김시대'의 대중정치인 가운데 한명으로 자리매김한 정몽준 대표의 '클린 이미지'다. 따라서 정몽준 대표가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전국 유세장을 함께 돌아다니며 TV지원유세를 해줄 경우 개헌갈등 때문에 잠시 수그러드는 기미를 보여온 '단풍'을 다시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특히 20~30대 젊은층에게 '세대교체론'을 확산시키는 폭발력을 기대할 수 있다.
두번째는, 이번 대선의 최대승부처인 40대와 PK(부산.경남)의 '표심' 장악력이다. 후보단일화 경선과정에도 정몽준 대표는 노후보에 비해 40대에서 강세를 보였다. 우리 사회의 허리층인 40대에게 노후보보다는 정대표가 훨씬 안정감 있는 인물로 비쳤기 때문이다. 또한 정몽준 대표는 인구 1백20만명의 울산지역에 기업체를 갖고 있고 내리 국회의원 4선을 했다. 정대표가 적극적으로 노무현 대통령만들기에 나설 경우 PK지역의 표심은 크게 꿈틀댈 가능성이 크다는 게 민주당측 판단이다.
세번째는, 정몽준 대표가 자민련의 JP 등, 비록 현실적 정치파워는 크게 쇠락했으나 범보수진영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는 인사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경우 이회창 범보수연합을 갉아먹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정몽준의 막강한 잠재력은 지금 이회창 후보와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노무현 후보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개헌갈등은 애당초 노무현 후보의 대폭적 양보로 결론날 수밖에 없는 일방적 신경전이었다는 게 정가의 일반적 관측이었다.
***공짜는 없다**
국민통합21의 전성철 정책위의장은 28일 개헌협상이 막바지 진통을 겪을 때 이런 말을 했다.
"노무현 후보가 차기 정부에서 정몽준 대표의 역할을 제시하지 않고 어떻게 정몽준 지지표를 흡수할 수 있겠는가. 공동정권 문제는 민주당에서 자연스럽게 꺼내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다."
정몽준 대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민주당이 벌써 자만해 그러는데, 그렇게 되면 불행한 결과가 되는 것을 알텐데..."
정몽준의 파괴력에 부응하는 '예우'를 하라는 주문이다. 경제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판에서도 '공짜'는 없다는 게 이번 개헌갈등이 보여준 현실정치의 한 측면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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