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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우드워드가 뭐랬다구...

<데스크칼럼> 미국언론 제대로 읽기

밥 우드워드의 신간 저서 '전쟁중의 부시(Bush at War)'가 국내 언론에서도 화제다. 소속 언론사인 워싱턴포스트가 홍보 차원에서 이번 주초 3일에 걸쳐 책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자 국내 신문 거의 모두가 앞다투어 이를 보도한 것이다.

신문기사 검색사이트인 KINDS를 두들겨보니 무려 15건의 기사가 검색됐다.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로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그의 명성 때문인지 2년에 한번꼴로 발간되는 우드워드의 저서는 매번 빠짐없이 국내 언론에 소개된다.

워터게이트 보도의 후광 덕택으로 우드워드는 세계에서 가장 이름이 많이 알려진 언론인이란 말을 듣는다. 워싱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언론인이란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 추진 내막에 관한 이번 책도 부시 대통령 등 미 정부 최고위인사들의 생생한 육성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분명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우드워드의 새 책 내용을 보도하는 것과 그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평가할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 내용을 진실의 전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우리 나름의 비판적 문제의식을 갖고 평가해야 한다는 말이다.

17-19일에 실린 워싱턴포스트의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필자가 느낀 것은 2가지였다.

첫째,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다는 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에 소개된 주요 내용을 간추려 보면 ▲부시는 김정일을 아주 혐오한다 ▲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강경파들의 일방적 이라크 공격 주장에 대해 파월 국무장관이 부시 대통령을 설득, 유엔을 통한 이라크 공격이라는 수순을 택하도록 했다 ▲ 북부동맹 등 아프간반군들을 미국 달러로 매수, 7천만달러라는 '싼 값'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 아프간전 개전후 한달이 안 된 지난 해 10월말 승리의 조짐이 드러나지 않자 언론들이 회의적 논조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시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애초의 계획을 밀어붙임으로써 11월초 예상외의 조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는 정도이다.

부시가 김정일을 싫어한다는 것은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이미 지난해 3월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김정일을 믿을 수 없다"고 대놓고 말한 사람이 아닌가. 파월의 신중론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고 미국이 대외공작을 할 때 중앙정보국(CIA)을 통해 적국 인사들을 매수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한마디로 우드워드의 새 책에는 정책수립과정 등의 디테일은 있을 망정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내용을 뒤집는 새로운 사실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부시행정부의 현실인식과 세계관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을 뿐, 비판이나 문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라크 전쟁의 예를 들어보자. 카터 전 대통령이나 고어 전 부통령 등 미국내 제도권(Eatablishment) 인사들조차 이라크를 대테러전쟁의 핵심에 놓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가 여전히 건재한데 어째서 이라크를 지목해 대규모의 전쟁을 일으키려 하느냐는 것이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과 알카에다와의 관계는 아직도 분명치 않다. 게다가 이라크는 91년 걸프전 이후 유엔금수조치 등에 의해 11년째 꽁꽁 봉쇄돼 있는 상태이며 이들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여부도 확실치 않다. 나아가 핵 등 대량살상무기가 문제라면 어째서 이스라엘이나 파키스탄, 인도 등의 핵 보유는 놔둔 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만 문제삼는가.

우드워드는 알카에다를 제쳐둔 채 이라크를 미 대테러전쟁의 최우선목표로 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묻지 않는다. 그저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국 혼자서라도 후세인 제거에 나서겠다는 부시의 결심을 영웅적결단으로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또 다자주의적 접근을 주장하면서 유엔을 통한 파월의 접근법이 대단한 것인 양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이라크전의 정당성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파월의 입장은 체니 등 강경파와는 오십보백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쟁 수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뿐이다.

밥 우드워드는 국내에서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ing)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내부자보도(insider reporting)'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정ㆍ재계 고위 인사들과의 두터운 친분을 바탕으로 이너서클의 속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론 내부자보도를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바로 비판정신과 문제의식의 포기이다.

우드워드는 80년대 후반 이후 중앙정보국(CIA)의 내막을 파헤친 '베일(Veil)', 합참 내부를 다룬 '사령관들(Commanders)', 연방대법원에 관한 '형제들(Brethren)', 클린턴행정부의 속사정에 관한 '어젠다(Agenda)' '선택(Choice)' 등 권력 내부의 메카니즘에 관한 일련의 저서를 냈다. 지난해엔가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준 이사장에 관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

필자는 이들 책중 극히 일부를 읽어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 책에 관한 서평들에 따르면 우드워드는 이들 권력자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전달만 할 뿐, 문제의식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우드워드가 그나마 비판정신을 보인 것은 클린턴행정부에 대해서였다.

창간 직후 청와대 등 권부를 취재한 한겨레신문 기자들은 그 이유를 잘 알 것이다. 역으로 김영삼정부때까지 조선일보가 특종을 밥먹듯 했던 이유도 웬만한 기자들은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기자들에게 권력자들이 고급정보를 줄 까닭이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드워드는 고급정보와 비판정신을 맞바꾸는 '파우스트의 거래'를 한 셈이다. 그래서 필자는 평소에 우드워드는 '미국의 조갑제'라고 생각해 왔다. 아니 조갑제가 '한국의 우드워드'인가.

이제 우드워드를 세계 언론의 신화적 인물로 떠오르게 한 워터게이트 보도에 대해 살펴보자. 우드워드가 워싱턴포스트에 입사한 것은 그의 나이 28세때인 1971년 9월이었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해군 정보장교로 5년을 복무한 그는 1970년 워싱턴포스트에 입사원서를 냈다가 퇴짜를 맞았다. 그후 워싱턴 근교의 지방신문에 1년간 근무한 후 71년 9월 워싱턴포스트에 입사한 것이다.

워터게이트사건의 발생은 1972년 6월, 우드워드의 워싱턴포스트 입사 9개월만이다. 당시 지방부의 신출내기 기자였던 그는 그후 2년간의 집요한 추적끝에 닉슨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위업을 이룬다. 어째서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입사 2년차의 신참 기자가 어찌하여 권력 최상층부의 은밀한 비밀을 파헤칠 수 있었을까.

이른바 '깊은 목구멍(Deep Throat)'이라는 익명의 정보원(source)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드워드의 취재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이 정보원은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며 그가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도록 도와준다. 우드워드는 워터게이트 사건 발생 30주년이 되는 현재까지 '깊은 목구멍'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와 당시 편집국장 빌 브래들리, 이 두 사람만이 '깊은 목구멍'의 정체를 알고 있을 뿐이다.

1991년 미국에서 출판된 '은밀한 쿠데타(Silent Coup)'라는 저서에 따르면 '깊은 목구멍'은 당시 백악관 고위 보좌관이었던 알렉산더 헤이그(레이건 행정부 초창기 국무장관 역임)라고 한다. 당시 현역 공군 대령이었던 헤이그는 닉슨이 군부 등과는 일체의 상의 없이 키신저 안보보좌관과 단 두 사람이 중공과의 화해를 추구한 데 대해 위기의식을 품고 닉슨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과거 백악관에서 함께 일했던 예비역 해군장교 우드워드에게 결정적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10년간의 탐사보도 끝에 이 책을 낸 2명의 필자들은 그러나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우드워드가 닉슨행정부 초창기인 1969년 해군 연락장교로 백악관에 1년간 근무했다는 사실만 제시했을 뿐이다. 헤이그와 우드워드는 같은 시기에 백악관에 근무했다는 사실만을 인정했을 뿐, 당시 그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들의 주장은 확정된 진실은 아니다. 그러나 우드워드의 삶의 궤적으로 보아 그는 권력자의 대변인(mouthpiece)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 근거중의 하나는 그가 예일대 출신이라는 점이다. 예일대는 미국내 어떤 대학보다도 많은 권력 내부 인사를 배출하는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CIA 창설 이후 60년대초까지 CIA 구성원중에서는 예일대 출신이 가장 많았다.

사실 우드워드가 해군에 5년간 복무하게 된 것도 예일대 때문이었다. 명문 사립대인 예일대의 엄청난 등록금을 감당하기 위해(장학금을 받기 위해) 해군 ROTC에 지원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미 사립대학의 비밀결사체인 'Fraternity' 출신이다. 이들은 대학 구내의 한 집에서 생활하면서 끈끈한 우정을 쌓아 사회에 나가서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한다. 이른바 예비 이너서클인 셈이다(미국에서 이러한 관계를 'Old Boys'라고 부른다).'Fraternity'의 구성원이나 운영방식 등은 일체 비밀에 가려 있다. 맷 데이먼이 출연한 최근 영화 '해골(Sculls & Bones)'를 보면 'Fraternity'가 뭔지를 실감할 수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예일대 최고의 비밀결사인 '해골(Sculls & Bones)' 출신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우드워드는 4대 'Fraternity'의 하나로 꼽히는 'Books & Snakes" 출신이다. 그 인연으로 미국사회의 이너서클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게 이 책('Silent Coup') 필자들의 주장이다.

밥 우드워드는 그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59세의 나이가 되도록 편집국의 꽃이라는 편집국장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아마 영원히 오르지 못할 것이다. 언론인으로서의 그의 경력에 치명적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퓰리처상 사상 수상 반납이라는 사건을 빚어낸 '지미의 세계' 사건 때문이다.

80년대 중반 워싱턴포스트는 10대 초반 꼬마의 마약중독이라는 충격적 사실을 보도해 퓰리처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얼마 안 돼 이 기사가 완전한 날조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상은 취소됐고 담당 기자는 언론계를 떠났다. 당시 우드워드는 담당 부장이었다. 이 사건으로 우드워드의 편집국장 등용은 물 건너갔다는 게 미국 언론계의 정설이다.

우드워드는 분명 영향력 있는 기자이다. 어쩌면 워싱턴에서 가장 막강한 언론인일지도 모른다. 또 좋든 싫든 미국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그가 전하는 미국내 권력자들의 속사정과 속내는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드워드를 언론인의 표상인 양 우러러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언론인으로서 그에게 배울 것은 별로 없다. 반면교사라면 몰라도.

사족: 워싱턴포스트의 미디어 전문기자인 하워드 커츠는 19일자 기사를 통해 우드워드의 이번 저서에 대해 권력자의 의도적 정보유출에 놀아났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같은 사 소속의 편집부국장을 자사 지면을 통해 비판할 수 있는 이같은 비판정신이 그나마 미국언론의 건강성을 지키는 '소금' 역할을 하고 있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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