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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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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5>

지난 달 모스크바의 돔 쿨투리(문화의 집) 극장에서 벌어진 체첸 독립군의 대량 인질사태는 러시아 당국의 대량 살상사태로 마무리되었다.

8백여 명의 인질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1백여 명의 인질과 50여 명의 인질범을 전격적으로 살해한 러시아 당국의 ‘작전’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이 작전에 쓰인 화학무기가 국제협약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주된 공격무기가 가스였다면 인질의 일부만 목숨을 잃은 데 반해 인질범이 전원 섬멸된 것은 어떻게 된 일인지, 많은 의혹을 남겼다.

이런 문제에 앞장서서 따지기 좋아하는 미국이 모른 체하리라는 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만 붙이면 이스라엘의 몰상식한 팔레스타인 탄압도 역성들러 나서는 것이 지금의 부시 정권이니까.

그래도 유럽 쪽에서는 뭔가 따질 것을 따지러 나서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월요일의 EU-러시아 정상회담에서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었고, “테러행위는 동기가 어떤 것이든 모두 범죄이며 정당화될 수 없다”는 하나마나한 말만 있었다고 한다. 칼리닌그라드 통행문제 등 EU 현안에 대한 러시아의 협조에 대한 대가로 유럽국들이 묵인하고 넘어간다는 분석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테러는 동기가 어떤 것이든 모두 범죄다. 그리고 누가 저지르는 것이든 모두 범죄다. 1백여 명의 인질은 독가스 공격이 아니었다면 살아날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러시아 당국의 극단적 대응으로 목숨을 잃었다. 인질범의 대부분은 저항력을 잃은 상태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명분이 ‘테러와의 전쟁’이라 하더라도 이 공격은 국가테러리즘의 극단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다.

이 작전이 아니었다면 8백여 명의 인질이 모두 살해될 수도 있었다고 러시아 정부는 강변한다. 그런데 생존자들의 증언은 인질범들이 그런 끔찍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리라는 쪽으로 모아진다. 굳이 증언이 아니더라도 인질범들의 목적이 그런 참혹한 결과에 있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맹목적으로 인명을 살상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자살폭탄범 세 명만으로도 극장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50여 명이 떼지어 몰려들 필요가 없었다.

돔 쿨투리의 체첸인들은 살상이 아니라 대화를 원했다. 그들은 푸틴 집권 이래 완고해진 러시아의 체첸 밀어붙이기 정책에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인질극을 벌인 것이다. 그런데 푸틴은 대화가 아니라 살상을 원했다. 그는 체첸 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저항은 더 모진 탄압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싶었다.

범죄의 처벌에는 복수의 의미와 예방의 의미가 있다고 법철학에서 말한다. 현대사회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돔 쿨투리에서는 두 가지 범죄가 저질러졌다. 무고한 시민들의 신변을 위협한 체첸인들의 범죄, 그리고 2백 명 가까운 인명을 일거에 살해한 러시아 당국의 범죄. 이런 종류 범죄들을 예방할 만한 바람직한 처벌이 이루어졌는가?

인질범 다수가 체포되어 재판과정에서 관련사안들이 논의되고 그 결과 적절한 양형이 이뤄졌다면 일거에 섬멸되는 것보다 좋은 예방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행위의 범죄성이 그 지지자들과 본인들에게까지 분명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몽땅 죽고 말았으니 영웅이 되고 순교자가 될 뿐이다. 죽은 자들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겠지만, 그들을 숭앙하는 사람들이 다음에 무기를 들고나올 때는 대화보다 살상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한편 러시아의 범죄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있다. 체첸 민족주의자들은 이 범죄의 처단에 자기네라도 나서야겠다는 사명감을 더욱 강하게 느낄 것이다.

역사를 통해 최악의 테러리즘은 중세 마녀재판에서 나치의 인종학살, 스탈린의 숙청에 이르기까지 공권력의 테러리즘이었다. 규모가 크고 견제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테러리즘에는 그럴싸한 명분이 없을 때가 없다. 다수를 현혹시켜 소수를 박해하는 데 공권력의 위험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가 행여 테러리즘으로 흐르지 않도록 조그만 원칙이라도 철저히 지키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검찰의 고문치사 사건 파장 속에 조폭 수사에 열성을 보인 검사라 하여 문제된 검사를 동정하거나 심지어 칭찬하는 글, 관행은 서서히 고쳐나가야 할 것이니 검찰의 사기가 꺾여서는 안 된다는 글이 신문 지면에 울쑥불쑥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조폭의 잔인성과 무법성을 강조하며 그 검사의 “폐기 처분에 이의를 제기하는” 글까지 보인다.

일반 국민은 다수고 조폭은 소수다. 다수가 보기에 “짐승보다 못한” 조폭에게는 원칙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한다면 국민이 다른 방법으로 다수와 소수로 갈라졌을 때 그 소수를 위해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질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다수가 소수를 무시하는 사회가 바로 파시스트 사회이며 여기서 국가테러리즘이 일어난다. 테러리스트 한 명을 쏘아죽이기 위해 무고한 시민 세 명을 함께 죽여도 좋다고 하는 푸틴의 러시아 같은 나라가 되지 않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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