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권력 2인자'라는 말을 듣는 그이지만, 임기를 1년 남기고 국정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진 정권이 개헌을 추진한다고? 대개는 '개헌 전도사'의 우악스러운 고집 정도로 넘긴 이 말을 예사롭지 않게 보는 눈이 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그는 "박근혜 대세론, 승리 가능성이 무너지면 이원집정부제 개헌으로 갈 것"이라고 봤다. 내년 대선 정국과 개헌,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기에….
이유인즉슨, 여야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논리, 안정적인 권력 분점의 욕심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무너진 한나라당은 권력을 내주느니 분점을 하는 게 살아남는 길이요, '안철수 외풍'에 휘청거리는 야당은 굴러 온 돌(안철수)에게 권력을 헌납하느니 개헌으로 기득권을 보장받는 길을 택하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내내 들썩인 개헌론은 여야 의원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라는 강력한 차기 주자에게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했다. 만약 '박근혜 걸림돌'이 빠진다면? 여야의 '개헌 카르텔'은 빠르게 구축될 수 있다.
권력욕에 의한 개헌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추진되기 어렵다. 국민적 동의를 얻기는 더욱 어렵다. 실제로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지고 개헌 정국이 열릴지는 가봐야 알 일이지만, 이런 '비상한 상황'까지 염두에 둔 남 전 장관의 지적에 의한다면 박근혜 전 대표와 안철수 교수의 향후 움직임이 더욱 주목될 수밖에 없다.
남 전 장관은 우선 '박근혜의 변화'에 주목했다. 복지를 비롯해 남북관계 문제는 색깔론에서 자유로운 박 전 대표가 변화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지금 이대로는 지는 싸움이다. 변하지 않으면 박근혜는 존립을 못 한다"며 변화의 당위성을 지적했다. 남 전 장관은 총선이 있는 내년 4월까지 박 전 대표의 상당한 변화를 예견했다.
한나라당의 화두가 변화라면 야권의 화두는 '통합'. 남 전 장관은 "모든 세력이 통합된다면 대단한 힘이 생긴다. (대선에서) 한번 해 볼 만하다"고 했다. 통합 과정에서 안철수 교수의 역할론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남 전 장관은 "안철수는 통합 후 추대 형식으로 모실 때까지 구름 위에서 내려오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체적인 정책이나 정치의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은 안 교수에 대해 "안철수를 지지하는 것은 일종의 백지 위임장을 주는 것이다. 위험하다"는 경고와 함께.
남재희 전 장관과의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와 임경구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안철수 풍선, 언제든 꺼질 수 있다"
프레시안 : 10.26 서울시장 선거는 무소속 후보가 야당 후보와 여당 후보를 차례로 이긴 선거였다. 새로운 야권 통합의 불씨, 혹은 한국 정치가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가 있다. 이번 선거의 의미는?
남재희 : 이번 선거를 보면서 처음부터 '박원순이 된다'고 판단했다. 왜 보궐선거가 됐는가.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이 발을 헛짚어서다. 출발에서부터 한나라당이 불리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거부반응이 셌다. 그래서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박원순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박원순이 무소속으로 남아 선거를 치르느냐, 민주당에 입당하느냐가 문제였다. 박원순이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는 것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이 상당히 냉소적이었다. 일장일단이 있었을 것이다. 민주당에 입당했다면 호남 세력을 묶는 효과가 있었겠지만 민주당의 모든 부채를 떠안은 채 선거를 치렀을 것이다. 그러나 입당하지 않고 선거를 치른 것은 결국 박원순이 전략을 잘 짠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한나라당에서 박원순을 공격할 것이 없어 네거티브 공격을 하게 된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1억 원 피부 클리닉과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가 큰 타격이 됐다.
프레시안 : 지난 10월 18일자 <프레시안>에 칼럼에서 '준혁명적 열기'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번 선거에서 그걸 느꼈나? (☞'남재희 칼럼' 바로가기)
남재희 : 그렇다. 준혁명적 열기가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불만을 가진 국민이 많으니까. 불만을 가진 민중은 선거철이 되면 나타난다. 그래서 준혁명적 분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명대 이봉수 교수가 <한겨레> 칼럼에서 지적했듯 요즘 젊은 세대는 안철수를 닮고 싶은 사람으로 생각한다. '나도 안철수처럼 됐으면 좋겠다', '안철수를 닮고 싶다'는 데서 인기가 있는 것이지, 안철수가 제시한 방향 정책대안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이 분석이 참 탁견이다. 안철수가 아직 이 나라의 정책 대안을 제시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만, 안철수가 재벌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삼성 동물원'이라고 했다. 재벌의 먹이사슬, 중소기업 수탈구조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정책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안철수는 일종의 백지상태다. 어떤 정치를 할지 모른다. 재벌 비판 안 하는 사람 누가 있나. 재벌 비판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안철수를 지지한다는 것은 일종의 백지 위임장을 주는 것이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안철수는 앞으로도 장기간 구체적인 정책을 이야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인 정책을 얘기하다 보면 보수 언론의 공격을 당할 것이다. 색깔 공세부터 나올 것이다. 지금 상당히 인기가 있으니까 공격을 덜 받기 위해 정책 제시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구체적 정책을 내는 것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지금은 판단하기에 이르다.
그리고 안철수가 독자 정당을 만드느냐, 민주당을 비롯한 여러 세력과 통합하느냐가 문제인데, 독자 정당은 못 만든다고 본다.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그렇게 독자 정당을 만든 예가 없다. 기존 정치 세력하고 이합집산, 통합 등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결국 독자 정당보다는 통합 정당으로 갈 것이라고 본다.
만약에 그가 대권 생각이 있다면 처음부터 (야권 통합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개입해서 상처를 입을 필요가 없다. 구름 위에 떠 있다가 일련의 논의가 모두 끝난 후 추대받는 형식으로 지상에 내려올 것이다.
프레시안 : 박원순 현상은 기존 정당이 힘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의 거취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안철수 없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단일 야권 세력을 만들어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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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통령제에서는 어쩔 수 없이 '대통령 감'이란 문제에 부딪힌다. 안철수 없는 야권에 국민이 기대를 걸고 밀어줄 대통령 감(구심점)의 부상이 가능하겠는가. 안철수 외 인물이 없다는 게 아니라, 다른 대통령 감 부상이 상당히 어렵다고 본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도 개인적으로는 괜찮다고 보는데, (대중적) 지지를 못 받고 있다. 문재인 이사장도 정치 신인으로서 경상도 표 일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 후광만 가지고 되겠는가. 김두관 한명숙도 있긴 한데, 국민들이 집결할 수 있는 후보는 없다.
하지만 안철수 없는 야당이 작심하고 '한번 해보자'해서 누군가를 후보로 밀고 간다면 또 힘이 생긴다. 안철수가 없더라도 야당에서 누군가 한 명을 결정해서 추대하면 힘이 생긴다. 그러면 국민은 또 밀어주게 되어 있다. 그렇게 돼도 한번 해 볼 만하다. (진보정당을 뺀) 야권이 통합된다는 전제하에서다.
이번 선거로 한나라당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진보정당이다. 완전히 위축됐다. 우리 동네만 하더라도 박원순에게로 표가 갔지, 진보정당에는 안 갔다. 2.2%밖에 안 나왔다. 만약에 진보정당을 뺀 나머지 정당이 전부 집결해서 안철수가 아닌 다른 후보를 내세워도 대통령선거는 치열할 것이다. 막상막하로 치러질 것이다. 꼭 안철수가 아니어도 세가 있으니까. 안철수는 금상첨화고.
야권의 변화, '온건 개혁'이 최대치
프레시안 :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가 대권도전에 의사가 있다면 내년 4월 총선에 나와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하는데.
남재희 : 안철수가 정치권에 들어가서 그렇게 성공적으로 역량 발휘를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현재의 안철수는 일종의 신화다. 현실 정치에 들어오면 안철수도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통합이 돼서 추대 형식으로 (안철수를) 모실 때까지 구름 위에서 내려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통합 과정에서부터 내려오면 상처투성이밖에 될 게 없으니까.
프레시안 : 대선 같은 경우, 장외에서 자기 관리하다가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지 않나.
남재희 : 미국 예를 들자면 아이젠하워 방식이다. 아이젠하워는 2차 대전의 영웅이었다. 그래서 공화당이 전혀 당과 관계없는 사람을 마지막 순간에 추대한 것이다. 그런 방식이 외국에 있긴 하다.
프레시안 : 그런 방식이 유리할지는 모르겠지만 검증되지 않는 상태에서 지도자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남재희 :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다. 너무 정책 방향 제시가 없다. 안철수가 구름 위에 있다고 했는데, 풍선 같은 것 아닌가. 풍선은 바늘 한 번만 찔러도 푹 꺼지는 것이다. 만약 인격적인 결함 같은 게 나오면 꺼질 수 있다. 그리고 정당은 조직 사회인데 조직에 속한 것도 아닌 안철수는 지도자로 상당히 위험하다.
아이젠하워는 그래도 몇 백만 명의 군대를 거느렸던 지휘관 아닌가. 조직관리의 경험이 있었던 반면, 안철수는 조직관리 경험이 없지 않나. 단순히 성공 신화지. 성공신화로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풍선처럼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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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야권에서는 통합과 연대 작업 외에도 구심점이 될 만한 인물을 발굴하는 것이 큰 과제겠다.
남재희 : 아니다. 지금 거론된 인물만으로도 뭉치면 힘을 발휘한다. 선거의 역학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문재인이 통합 야권에서 후보가 된다고 하면 힘을 발휘한다. 김두관이 통합 야권에서 후보가 된다고 해도 힘 발휘한다. 또 이번에 무죄 판결 난 한명숙이 된다고 해도 힘 발휘한다. 국민들이 다른 것 안 따진다. 'MB 물리치자, MB에 대한 재판이다'라고 하며 힘을 싣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지금 야권은 통합이냐, 연대냐 논쟁이 많은데 어떻게 보는가.
남재희 : 진보정당하고는 연합이겠지만, 나머지는 같은 사람들 아닌가. 크게 보면 전통적으로 모두 민주당 사람들인데 통합해야 한다. 연합(연립)이라는 게 이상한 것이다. 다만 진보정당하고는 연합(연립)이다. 다 같은 민주당인데 통합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세의 합산만으로는 도로 열린우리당, 도로 민주당이라는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려울 텐데.
남재희 : 볼거리로 앞에 많이 차려놓는 '윈도우 드레싱(window dressing)'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엔 재야인사라고 했는데, 요즘은 시민 운동하는 사람, 종교 세력 등이 윈도우 드레싱을 할 것이다. 그 사람들이 본질적인 힘을 발휘한다기보다는 윈도우 드레싱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니 단순히 도로 민주당이 뭉쳤다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장외에 있던 힘까지 통합야당이 끌고 나갈 수 있는가의 문제 아닐까.
남재희 : 안철수는 중도개혁 노선 정도밖에 못 할 것이다. 집권 플랜을 짤 때 중도개혁 이상 나갔다가는 우리나라 언론 구조를 봤을 때 상당한 역풍을 맞을 것이다. 결국 안철수가 집권 한다고 해도 중도개혁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본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국민들의 기대는 크게 충족을 못 시킬 것이라고 본다. 정권을 바꾼다는 데는 의미가 있지만 정책적으로는 큰 기대를 못 걸 것이다. 안철수의 생성과정을 보면 드라스틱한(급격한) 개혁을 할 사람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박원순도 마찬가지다. 박원순도 상당히 중도적 인물 아닌가.
프레시안 : 소위 진보-보수 정부를 거쳤는데 자본의 지배, 시장의 지배, 99대1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문제에 두 정부 모두 대응을 못 했다. 그런데 지금 그 부분에 대한 논의가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든 야든 과연 지금 양극화 문제를 제대로 대처할 사람을 뽑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없다.
남재희 : 우리사회 구조의 분포가 급격한 개혁을 할 분포가 아니다. 그래서 약은 사람들은 온건 개혁 정도로 끝날 것이다. 그 이상은 안 될 것이다.
'월스트리트를 장악하라' 분석 기사를 보면,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월스트리트의 정치자금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오바마가 (정치자금을) 더 받았다는 것 아닌가. 오바마의 개혁도 약간의 개혁이지 과감한 개혁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도 과감한 개혁이 필요한 시대인데 그렇게 나가기에는 우리나라 힘의 분포가 부족하다. 그러면 역풍을 만나니까. 당선을 생각한다면 역풍을 맞을 일을 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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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안철수 현상, 박원순 바람이 아쉬울 수 있다는 것인가?
남재희 : 국민들은 한나라당 정권을 바꾼다는 것만으로도 큰일이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그래서 안철수에 대해서도 그렇게 큰 기대를 안 할 것이다. 정권을 바꾼다는 차원이지, 준 혁명적인 것은 누가 정권을 잡아도 못할 것이고 사람에 따라 중도 개혁 정도는 할 것이다.
프레시안 : 야권에서 통합 정당이 나온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대중들의 열기를 수렴해 정치의 쇄신으로 이어질 수 있겠느냐인 것 같다.
남재희 : 국민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을 불신하고 있다는 이유로 완전히 새로운 세력이 나타나서 정국을 주도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어려운 일이다.
"박근혜, 변하지 않으면 어렵다"
프레시안 : 여론조사에서 제3세력에 대한 지지도가 상당히 높게 나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남재희 : 부분적인 개혁이 나타날 것이다. 일반이 생각하는 '기존 정당은 불임이니까 준혁명적인 형태의 정당이 나타나서 집권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 아닌가. 비관적인지 몰라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안철수가 그런 이미지가 전혀 없다. 그런 이미지 보여준 게 있는가. 박원순도 마찬가지다.
박근혜가 한쪽의 대항마인데, 지금 상태로는 가망이 없다. 박근혜도 변할 것이다. 내년 대선까지 엄청난 변화를 보일 것이다. 그걸 한꺼번에 하면 남 보기에 이상할 것 아닌가. 서서히 변해서 내년 4월 총선이 되면 '서서히 변했는데 지나고 보니 이렇게 많이 변했구나' 소리를 들을 정도로 변해야만 한다. 박정희 시대도, 이명박 시대도 아닌 새로운 시대를 맞는 분위기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박근혜가 대단한 변화를 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만약에 박근혜가 변하기로 하면, 야권에 비해서 더 개혁적으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정책 변화는 공화당이 했다. (반공 태도가 확고한) 닉슨이 중국 외교의 길을 열었다. 민주당은 역풍 때문에 어렵지만 공화당이 했기에 반발이 적었다.
변화할 것은 단순히 복지 차원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복지와는 담쌓은 사람들이다. 완전히 대기업을 위한 정부다. 그런 차원의 변화 말고도 중요한 것은 대북관계에 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것도 안철수가 변하는 것보다는 박근혜가 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만약 안철수가 변하려고 하면 '빨갱이' 소리 바로 나온다. 엄청난 색깔 공세에 시달릴 것이다. 그런 변화는, 하려고 한다면 박근혜가 더 유리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를 위해서는 안정 속의 변화로 (박근혜의 변화가) 더 바람직할 수 있다고 본다. 장기적으로 볼 때 정당이 바뀌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책 변화가 더 중요하다. 박근혜가 변한다고 하면 그 변화가 더 바람직하다. 박근혜는 또 그렇게 변해야만 지금 분위기에서 통합 야당 후보와 경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변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박근혜 세력 중에도 변화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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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 아직은 대통령제다. 대통령 후보가 변하고, 대통령이 변하면 당도 변한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당장에라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접수해서 당을 바꾸면서 4월 총선 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하는데 가능할까.
남재희 : 박근혜가 작심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당을 끌고 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여당 총선은 박근혜가 일선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 시간이 있다. 당권 차지하고 나서야지, 그렇지 않으면 총선 이길 수 없다. 박근혜가 최전선 사령관, 실권 사령관이 돼야만 총선을 치른다. 지금 홍준표 대표 체제로는 못 치른다.
내년 총선이 대선의 승부가 갈리는 일인데 박근혜가 최전선에 나서 당권 차지하고 뛰어야 한다. 지금은 시기를 보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당장 홍준표 체제를 바꿀 필요는 없다. 내년 4월까지는 아직 시간 있다. 적당한 때 당권 차지하고 바꿀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 무너지면 반드시 개헌론 나온다"
프레시안 : 지금까지 이명박-박근혜 관계를 보면, 박근혜가 총선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경우 이명박 계가 가만있지 않을 것 같은데.
남재희 : 박근혜가 '안철수의 유일한 대항마다', '안철수랑 한번 해 볼 만하다'가 유지되면 반발을 못한다. 흔들린다면 반발한다. '박근혜가 되겠어? 질지도 몰라'가 되면 흔들린다.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는 메시지다(Media is meaasge)'라는 말을 빗대어 나는 '집행이 정책이다(Operation is Policy)'라는 표현을 쓴다. 미디어가 곧 메시지는 아니지만, 결국은 메시지가 되듯이 정책이 중요하다지만 집행, 운영 또한 그 이상 중요하다. 집행만 잘해도 정책을 바꾼 효과가 있다. 그것이 박근혜 측의 강점일 수 있다. 정책을 바꿔서 혼란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집행을 책임감 있게 하면 정책을 바꾼 효과가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국민이 보기에는 한나라당이 강점이 있다.
세 번째 단계로, 박근혜의 주도성이 요새 좀 흔들리는데, 만약에 무너진다고 가정하자. 통합이 잘 진행되면 (박근혜 측이) 무너질 수 있다. 그렇게 무너지면 개헌론이 반드시 나온다.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이재오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개헌론이 계속 나왔다. 그런데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야당이 반대해서가 아니라 박근혜 세력이 엄존하기 때문에 이재오 측의 개헌론이 통하지 않은 것이다. '확실한 대통령 감이 있는데 왜 김빠지게 장난질이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박근혜의 주도성이 무너지면 개헌론이 통하게 된다. 박근혜 측도 박근혜 주도성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굳이 현 제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이재오를 중심으로 한 이명박 측과 같아진다.
민주당도 가령 안철수를 후보로 내세우면 '이질분자가 와서 대통령 하느니 우리끼리 하자'는 쪽이 많아진다. 기존의 민주당 내 개헌 지지 세력도 많다. 그래서 민주당도 내각 책임제 개헌론이 강해질 수 있다.
따라서 박근혜 주도성만 무너지면 (국회 의결정족수) 2/3가 간단하다. 그동안 개헌 문제가 논의되지 못했던 이유는 박근혜가 1/3의 비토 파워를 가지고 있어 이재오가 맥을 못 춘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가 무너지면 틀림없이 이원집정제 개헌으로 갈 것이라고 본다.
이원집정 개헌안이 근사하게 성안된 것도 있다. 개헌에 대한 한나라당 지지자들 많다. 민주당은 과반수 정도다. 내년 4월 총선 전 또는 12월 대선 전에도 개헌할 수 있다. 개헌하더라도 이원집정제가 될 것이다. 안보를 고려할 때 또 국민들이 갖고 있는 대통령 직선의 욕구에 비춰볼 때 대통령은 직선하되 외교, 군사적인 것만 관할하게 하고 권한 대부분을 내각에 주는 것이다.
국회의원 입장에서도 '서울시만 해도 4월 총선에 7,8할이 낙선될 판인데 개헌하자',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의원이 주도권을 갖자'고 하면 국회의원 선거가 쉬워지지 않겠는가. 안철수 풍선을 놔둔 채 선거를 하면 역풍이지만, 개헌 후 선거를 치르면 순풍에 돛달고 나가는 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가 안철수에 대한 경쟁력이 없어지면 바로 개헌정국으로 들어간다고 본다. 이런 상황이 좋다든가, 바람직하다든가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럴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희망 사항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10년-20년 안에 내각책임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대 대통령 중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는 대통령이 있었는가? 이명박도 시원치 않다. 그럴 바에는 내각책임제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내각제의 유일한 문제는 정당의 규율이 약해진다는 점이다.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버티고 있어서 정당의 규율이 있지만, 내각제에서는 국회의원들의 규율이 없어진다. 국회의원이 최고란 인식 때문에 더 부패할 수도 있다.
또 내각책임제는 재벌의 희망 사항이다. 일본 내각제 초기에는 재벌이 당을 갖고 있었다. 미쓰이당, 미쓰비씨당이 있었다. 국회의원이 300명이라고 하면, 30-40명씩을 재벌이 관리했다. 내각책임제가 되면 우리나라도 삼성과 현대, 엘지 같은 재벌이 국회의원을 관리하는 일이 없겠는가. 국회의원 선거에 10억 원이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돈은 재벌만 있다. 물론 요즘은 옛날보다 정치자금이 덜 들지만, 재벌들이 후원해서 돈이 들어간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그러면 정치부패가 더 심화된다. 이게 내각책임제에 대한 거부감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바로 서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벌에게 계속 후원금 받았다는 것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도 재벌 감세만 했다. 대통령도 재벌에 흔들리는데 국회의원 몇 명이 기업에 흔들리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말이자 18대 국회의 임기 말, 혹은 갓 출범한 19대 국회가 오로지 권력 연장을 목적으로 추진하는 개헌이 국민적 동의를 받기는 상당히 어려울 텐데.
남재희 : 개헌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국회와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본다. 국민의 힘이 실린 안철수와 박원순이 '권력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개헌하자고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반박해도 국회의원 대부분이 좋아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투표에서의 과반수, 힘이 들긴 하지만 가능하리라고 본다.
프레시안 : 국회의원들은 좋아하겠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권력을 분점, 유지하기 위한 야합이라고 보지 않겠는가.
남재희 : 물론이다. 그러나 개헌을 반대하는 강력한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민주당도 찬성하기 때문에 시민사회 말고는 반대하는 쪽이 많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안철수를 대통령에 앉혀 놓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는 것 보다 낫지 않겠나. 자신을 내칠지 모를 사람을 대통령에 앉혀 놓고 사랑방 손님 하는 것 보다 내각책임제로 국회의원 자신이 주인 하는 게 낫지 않겠나. 기성정치인 중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다만 이 모든 것의 전제는 박근혜의 대세론, 승리 가능성이 무너졌을 때다.
서울시장 선거 직전 이재오가 개헌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재오에게는 명운이 달린 거다. 이명박 계를 대변하는 사람 아닌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서 좋을 게 없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나.
남재희 : 안철수나 통합야당 후보에 대한 우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지는 싸움이다. 박근혜는 틀림없이 내년 총선 전까지 환골탈태, 변화할 것이라고 본다. 변하지 않으면 박근혜는 존립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권력 교체기에 개헌은 가장 극단적인 선택이 될 것 같다.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지면 한나라당 내에선 인물로 대안이 구축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인가.
남재희 : 김문수는 어렵다. 적당히 진보 페이스를 유지했어야 하는데 너무 오른쪽으로 가버렸다. 개헌이 좋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 (박근혜가 무너지면) 대세가 개헌론으로 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가 안 무너지려면 민심의 변화를 알아야 한다. 이명박 프레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이명박은 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펴고 토건 세력 위주의 정책을 폈다. 대북관계도 강경론이었다. 그런데 박근혜는 대북 노선에 온정적으로 지원도 하며 인도적 차원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렇다고 박근혜를 빨갱이라고 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 대북 관계 전환에 박근혜가 더 유리하다. 김정일도 만났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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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가 출신이라 대북관계에서는 실용적이지 않겠느냐, 박근혜보다는 진보적이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박근혜도 극우 보수층을 의식하면 또 달라지지 않겠나.
남재희 : 통합야당 후보가 됐든 안철수가 됐든 야권의 사람보다는 박근혜가 용이하다. 크게 보면 정국 전환의 결정적은 것은 복지와 대북이다. 미국도 일반 금융기관과 투자 은행 사이의 벽을 무너뜨려 문제가 되지 않았나. 결국 벽을 다시 살리자는 것이다.
부자에게 세금 더 걷고 복지 정책하고 재벌을 반대한다는 게 아니라 재벌을 좀 규제하고 대북관계 개선하면 된다. 그러면서 중국을 덜 자극하며 미국 주변에 있으면서 대중, 대북관계를 전환해야 한다. 전환에 한계가 있지만, 그렇게라도 전환해야 한다.
프레시안 : 대중과의 소통 문제를 보면, 이명박과 박근혜는 닮은꼴이 많다. 최근 화두가 된 소통이라는 건 결국 이번 정부에서 무너진 민주주의나 절차의 문제인데, 박근혜 대표도 소통의 캐릭터는 아닌 듯 보인다. 또한 이명박 정부 실정의 부채를 박근혜가 피해 갈 수 있을까.
남재희 : 박근혜는 이명박이 대통령 시켜주는 것 아니다. 제힘으로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는 한나라당에서 이명박 세를 쫓을 수 있다. 탈 MB를 할 것이다.
언론에서 소통을 문제 삼는다. 소통으로 문제를 돌리면 '이지고잉(eagy going)'이다. 정책으로 하면 결론이 있는데, 소통으로 하면 결론이 없다.
'격동의 시대는 갑자기(suddenly) 시작된다. 그리고 종말은 진부하게 끝난다'는 말이 있다. 지금 격동의 시대인데 결론은 또 진부하게 끝날 수 있다. 역사가 꼭 유종의 미로 끝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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