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간 철도ㆍ도로 연결을 위한 비무장지대 지뢰제거 작업이 마무리단계에 들어섰으나 미국측이 유엔사를 통해 지뢰제거 확인작업을 위한 남북간 상호검증단원들의 군사분계선 월선문제를 놓고 '자신들에게 통보가 되지 않았다'며 딴죽을 걸고 나섰다. 대북중유지원 문제에 이어 남북대화 및 교류협력에까지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내정간섭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13일 관계당국과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남북 양측 군당국은 현재 군사분계선(MDL) 남ㆍ북쪽 각 100m 지점까지 근접, 쌍방간 거리가 200m에 불과할 정도로 지뢰제거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러 상대방 지뢰제거 작업 상호검증을 위한 인원 파견에 합의했으나, 유엔군사령부가 상호 검증단원들의 MDL 월선 문제에 대해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 작업진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유엔사는 남북 상호검증단이 MDL을 넘기 위해서는 정전협정 사안인 만큼 사전에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채널을 통해 인원, 시기 등을 통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지난 9월 17일 발효한 남북 군사보장합의서에 따라 개설된 남북 군사직통전화를 통해 통보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북한측은 남북 군사보장합의서 제1조 2항에 "남북관리구역들에서 제기되는 모든 군사실무적 문제들은 남과 북이 협의, 처리한다"고 명시돼 있으므로, 남북관리구역내에서 상호검증을 위해 양측의 인원들이 MDL을 넘는데는 추가적인 판문점 군사정전위 채널이 필요하지 않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광일 국방부 군비통제차장(육군 준장)은 13일 브리핑을 통해 "남북은 전화통지문을 통해 검증요원 파견에 합의하고 우리는 이미 북과 유엔사에 명단을 통보했고, 유엔사도 지난 5일 (군정위 채널을 통해) 북에 명단을 통보했다"며 "그러나 북측은 (남북간 군사직통전화를 통해) 남측에만 명단을 통보하고 유엔사에는 통보를 안한 상태여서 우리측은 전화통지문을 통해 (군정위 채널을 통해) 유엔사에 명단을 통보하라고 북측을 설득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 차장은 "그러나 지뢰제거 작업은 검증 여부와 무관하게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방부측은 이번 달 말께 지뢰제거 작업이 완료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애초 남측은 상호검증단의 MDL 월선방식과 관련, '판문점 군정위 채널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남북 군사직통전화를 통해 명단을 받아 유엔사에 통보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논리로 유엔사를 설득했으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며 결국 유엔사의 입장을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 군사보장합의서는 이미 유엔사령관과 북한의 인민무력부장간의 합의에 근거해 이뤄진 것으로 남북관리구역내 문제는 이미 남북 양측에 위임된 상태다. 주한미군 소식통은 "상대측의 DMZ 지뢰제거 작업을 확인하기 위한 상호검증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유엔사가 정전협정을 근거로 반드시 판문점 군정위 채널을 통해 상호검증단의 명단을 통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같은 유엔사의 입장은 북한 핵문제 발생 이후 북한을 압박하며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을 원하는 미국 정부의 입장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분석했다.
대북강경책을 고집하는 부시 행정부가 겉으로는 국제공조를 내세우며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에는 간섭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압력행사가 가능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남북간 긴장완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남측이 관리권을 행사하고 있는 지역에서조차 미군이 군사분계선에 대한 '관할권'을 행사하며 남북협력사업의 속도를 조절하려 드는 것은 지나친 내정간섭이 아니냐는 비난을 사기에 충분하다.
미국은 현재 남북간 경제협력사업 뿐만이 아니라 북일관계 정상화에도 일정한 견제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10월 말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제12차 북일 수교교섭은 미국이 제기한 핵 문제로 사실상 결렬돼 9.17 북일정상회담의 성과 자체가 무산될 지경이다.
일본이 12차 수교교섭 때 합의한 북일 안보대화에서 핵 문제와 함께 북일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해결을 본 '납치문제'를 내세운 것도 미국의 입김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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